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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호세아 12:01-14/ 헛된 노력 [새벽]
  • 조회 수: 161, 2013.11.28 11:50:39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는지를 보시며 그의 조상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왔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시면서 헛된 노력을 그만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1절에 이스라엘이 행하는 헛된 노력, 수고에 대해 여러 가지 표현들을 쓰고 있습니다. 먼저 바람을 먹는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람을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맛이 있습니까, 배가 부릅니까? 물론 헛배만 부르겠죠. 이스라엘이 하는 것들이 헛배만 부르게 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맛도 없고, 유익도 없는 그런 일을 한다 이 말이죠. 이사야 55:2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사야나 호세아 선지자 두 분 다 하나님이 문제의 열쇠를 쥐고 계시는데 이스라엘은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1절에 보니까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낸다....’ 그랬습니다. 쉬운 말로 양다리 걸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와 애굽 양쪽 사이에 줄타기를 잘 해서 어느 쪽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다.... 이런 계략이겠죠. 이런 것을 두고 바람을 먹는 것이며 잠시 맹렬히 부는 동풍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동풍을 따라서....’ 라는 표현은 오늘날로 치면 유행을 따라간다는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그 당시 동풍은 10월에 부는 계절풍인데 동쪽의 아라비아 광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모래를  동반해 오기도 하며 곡물과 인명, 집, 심지어 지중해의 배들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 번 그러다가 사라지는 바람이죠. 이런 동풍을 따른다는 것은 득세하는 세력에 편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가 약하니까 바람에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꼴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주변머리 없이 유행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얼마나 헛된 것입니까? 우리 교인들은 유행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주변머리 없이 남 따라 가는 것은 결국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를 그 예로 설명하면서 야곱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합니다. 3절에서 6절은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교묘한 사람이었죠. 우직한 형 애서를 속여 온갖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탈이 나서 집에서 도망쳐 나오게 됩니다. 그는 밧단 아람에 도망가서 살았는데 거기서 제산을 일으키는 과정에서도 교묘한 방법으로 외삼촌 라반을 속여 온갖 좋은 양은 다 자기가 취합니다. 야곱은 7절에 이스라엘을 상인이라 표현한대로 이에 눈이 밝아 참 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진다고 자기를 죽이려고 추적해오는 형 애서의 일행을 직면하면서 형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재산을 떼어 주고, 또 한꺼번에 가면 몰살될까 봐 여러 패로 나누기도 하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꾀를 부려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들이 문제해결의 열쇠는 되지 못하는지라 결국은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얍복강에서의 철야기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져서 나에게 복을 주시기까지는 절대로 당신을 그대로 놓아줄 수 없다 하면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김으로 얍복강의 철야기도를 끝내고 그는 자신을 향한 애서의 분노를 형제간의 사랑으로 바꾸어 아름다운 만남으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이 그의 조상 야곱과 같이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는 말을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람을 먹는 것처럼 헛된 짓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7절 8절에 보면 속이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해서 번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내가 행한 것 가운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죄에 양심이 마비되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예 보지도 못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지적하시는데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유익이겠느냔 말입니다. 인간성 잃고, 관계 떨어져나가고, 하나님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말이죠. 꼭 하나님 만나기 전의 야곱과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도 똑 같습니다. 죄를 지적하면 뭐가 문제냐... 하는 식입니다. 요즘 사람들 보면 참 희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명히 자기가 잘못했는데 ‘내가 뭐가 문제냐?’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 좋을 땐 서로가 좋지만 어떤 문제가 딱 생기면 문제를 만든 쪽은 ‘내가 뭘...’ 이러면서 잘못한 게 없다... 이러고 그러면 상대방은 억울하고, 답답해하며 방방 뛰다가 결국은 관계 끝입니다. 도저히 화해가 안 되죠. 이렇게 살아서 무얼 하겠다는 말입니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마치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금을 달아주는 것이나 똑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대로 신앙을 세우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을 바로 새우는 것이며, 교회와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하여금 우리를 고치시고, 치료하시고, 지도하시는 회복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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