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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_구약 시편 107:01-09/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절기]
  • 조회 수: 464, 2013.11.30 14:56:16
  • 연말이 가까이 다가오다 보니 각 종 행사 예배 시에 자주 불려지는 은혜스러운 찬양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이 찬양은 평소에도 은혜가 되지만 연말에 불러보면 더 은혜가 됩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부르다가 문득 2절 가사 시작 부분에 나오는 내용에서 시선이 멈추어졌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이 가사의 내용을 생각해보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어떤 분은 스스로가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각 종 병을 몸에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도 감사하며 열심히 신앙으로 사는 것을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넘칩니다. 그런데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다 저 잘나서 지금까지 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참 사는 환경이 어렵고 위험한데 다 하나님이 새 힘 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됨을 믿습니다. 


    독일을 물리치고 2차 세계대전을 끝낸 미국 연합군이 독일에 진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악명 높은 유대인 포로수용소로 들어가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끔찍한 가스실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한 병사의 입에서 신음에 찬 비명이 흘러나왔습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먼!’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너무나도 처참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여기저기 감옥을 살펴보던 그 병사가 다시 소리쳤습니다. ‘믿을 수가 없구먼, 믿을 수가 없어!’ 그러면서 그는 감옥의 지저분한 벽에 써져 있는 글씨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습니다. 그 벽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God is good" 여호와는 선하시다는 뜻입니다. 그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선하시다!’ 라는 신앙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그 상황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놀랍지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 인생이라는 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때로는 광야를 지나고, 바다의 폭풍우를 만나고, 죽음을 직면하는 병도 만나고 하면서 온갖 우리 자신을 얽어매는 갖가지 상황 가운데서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인생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인생에 뭐 선한 것이 있습니까? 그 인생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개입하게 될 때 그게 바로 성공 인생 스토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7편 전편에는 바로 이런 이야기가 4가지로 나뉘어져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노래한 내용인데 신앙의 고백과 같은 똑 같은 내용의 구절이 네 번 반복됩니다. 이 반복 되는 네 개의 문장이 시편을 네 개의 단락으로 나누고 있는데 1절에 표현된 이 말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 말씀이 15절, 21절, 31절에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단락에서 네 개의 상황, 환경을 생각하는데 모두 악한 상황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이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 째는 4절에 나타난 대로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거주할 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거주할 성은 물론 가나안 땅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 인생도 광야와 사막의 길을 걷습니다. 어디 쉴만한 곳이 있는가 하고 걸어보지만 어딜 보나 삭막하고 건조하고 팍팍한 인생길을 지나온 것입니다. 2013년 한 해를 돌아 볼 때 우리 가운데 지난 일 년의 삶이 마치 광야 사막 길의 방황과도 같았다.... 이런 느낌을 갖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안정을 누릴만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런 광야의 길에서 안정을 찾지 못한 우리 자신들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고 한 지점에서 또 다른 지점을 향해서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던 모습을 4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도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이 일에서 또 다른 일로.... 어떻게 보면 지난 1년간의 우리의 삶이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방황이었고 아픔이 아니었겠습니까?


    두 번째로는 얽어 매인 상황 속에서 신음하는 인생의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10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이라고 말씀하는데 마치 인생이란 사슬에 얽매인 것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이 깊은 궁지 속에 빠져서 꼼짝 달싹 할 수 없이 사슬에 메인 것 같은 구속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고, 빠져나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냥 사슬이 아니라 쇠사슬! 우리 힘으로는 깰 수 없고, 우리 노력으로 깨뜨릴 수 없는,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강력한 사슬에 메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것은 그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우리 죄가 만들어 낸 사슬, 우리의 어리석은 결정이, 우리 과오가, 잘못되고 부도덕한 결정이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얽어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11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라고 하면서 죄가 우리에게 속박을 가져다주었다고 고백합니다. 불순종의 사슬, 습관의 중독... 우리를 얽어매어서 삶을 파괴하게 만들고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이 경험이 우리에게 한 번쯤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 경험을 한 게 기억납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적지 않은 방황을 했습니다. 방황을 하면서도 저의 모친을 보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은데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면 그 후회했던 어제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괴로웠습니다. 혼자 있을 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때를 기억해 볼 때 오늘 이 말씀이 꼭 맞는 겁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는 나 자신...” 얼마나 표현이 적절한지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중에는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한 채 신음하며 사는 분들이 계실지도 몰라요. 과거의 습관, 중독... 이런 것들이 마치 나를 사슬로 꽁꽁 묶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지요.


    그 다음에는 죽음에 직면하는 질병으로 신음하는 상황이 나오는데요... 사람들 가운데 예기치 않게 이런 중병을 얻어 충격에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병원 심방을 자주 가는 편인데 아픈 분들을 보면 제가 어떤 걱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제가 뭐 아픈 데가 있습니까? 원하고 싶은 데 가고,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지요. 그런데요, 어떤 분은 오늘 이 시간에 단 한 걸음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옮겨보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병실 침대의 이쪽 편으로 누워 있다가 스스로 반대편으로 한 번만 돌아누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멀쩡한 우리가 볼 때에는 너무나 그 소원들이 소박하여 우리가 가진 염려, 걱정, 금심... 이런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의 케이스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의 체험입니다. 22절부터 인데요, 인생을 살다보면 어떨 때는 광야의 사막 길 같은, 메마른 사막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런 사막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순간은 갑자기 내가 깊은 풍랑 속에, 바다의 한 복판 속에 빠져서 일어나는 그  급류 속에 물살과 그 풍랑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나님 살려주세요! 소리칠 수밖에 없는 그 풍랑을, 인생의 풍랑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풍랑일 수 있습니다. 또 내 사업의 장에 몰아닥친 풍랑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직장의 해고라는 그 풍랑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풍랑의 물살을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인데요, 2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했고요, 27절에는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 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어요.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잎새 같은 내 최후의 희망이신, 그리고 나의 최후의 구원이신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렇게 오늘 본문의 시인이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제까지 나는 이 속에서 도저히 허우적거리고 빠져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 내 인생의 풍랑이 한 순간 잔잔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리 바다 같은 평안이 내 인생의 장에 다시 찾아옵니다. 자, 그것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29-3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할렐루야! 바다는 잔잔해졌습니다. 내가 타고 있는 배는 다시 소원의 항구를 향해서 순항하기 시작합니다. 그 역경과 풍랑의 급류를 빠져 나와서 다시 소원의 항구를 향해서 순항하기 시작한 이 뱃전 안에서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감격의 찬양이 있습니다. 무슨 찬양일까요? 바로 31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 찬양이 4번씩이나 반복되며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 사막의 길, 그것은 고통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쇠사슬, 그것도 고통입니다. 질병으로 말미암아 느끼는 죽음도 고통입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그러나 이 악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는 시인의 모습을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뭡니까? 그것이 처음 절과 마지막 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 했다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께 감사를 드리는 삶,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찬송가 66장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는데 이 찬송의 스토리를 제가 최근에 읽게 되었습니다. 찬송가 66장의 제목이 ‘다 감사드리세’ 인데 마틴 리카르트라는 독일의 목사님이 17세기에 작시한 곡입니다. 17세기의 독일과 구라파는 페스트라는 질병이 온 유럽을 휩쓸고 다닐 때였습니다. 이 마틴 리카르트 목사님이 목회하고 있던 교회지역에서 사랑하는 교인들 가운데서 날마다 이 병으로 죽어갑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장례식을 50번까지 한 날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분의 심경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러다 마침내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의 고통 속에서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어떤 날 그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 그리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들면서 이 찬송가를 작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 감사드리세 우리말의 가사는 조금 뜻을 의역했습니다만 직역을 해서 옮긴다면 마음으로, 손으로, 목소리로, 나의 전 존재로 감사를 드리세. 엄마의 팔에서부터 여기까지 인도된 내 인생.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안에서 참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들을 누리며 살게 하시니 감사를, 다 감사를 드리나이다.


    인생은 반드시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인생의 길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광풍이 있습니다. 광야의 어두 움이 있습니다. 악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악함 속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하심이 너무 감사하고 눈물겨워 우리는 하나님처럼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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