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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계시록 21:01-08/ 새 하늘과 새 땅 [계시록]
  • 조회 수: 948, 2013.11.30 18:03:46
  • 예수의 재림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지구의 역사 6000년 동안 기다려 온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의 신앙의 총결산이며, 모든 성경 말씀의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죄의 역사가 끝나는 날,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며 참아 온 자들이 드디어 영생에 들어가는 날, 그 재림의 날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신약 성경은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약속을 약 150번 이상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번만 말씀하셨어도 지키실 텐데, 150번이나 말씀하셨으니 예수께서는 꼭 재림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도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직접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으니 예수님의 말씀까지 우리는 헛소리로 알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진리는 언제나 우리의 불타는 소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두 번째 사망
     

    20장에서 보면 천년왕국 이후에 사탄이 잠시 놓임을 받으면서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였는데... 이 표현은 정확히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20장에 천년 동안 사탄이 무저갱에 잡혀 꼼짝할 수 없도록 열쇠로 봉해두는데 천년이 지난 후 잠시 놓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무저갱을 어떤 신학자들은 지옥으로 해석하고 마는데 이 무저갱은 구약 창세기 1장에 천지를 창조하기 전의 혼돈 상태를 히브리어로 ‘아비세’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이 무저갱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0장에서 천년왕국 기간 동안 사탄이 갖혀있었던 곳은 지옥이 아니라 천년왕국의 새 예루살렘과 그 천년왕국의 영내 밖 일곱 대접의 심판으로 쑥대밭이 된 그 어떤 지역 내에 천사가 사탄을 잠시 결박해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이 끝난 후 악인들의 부활이 이어지는데 더 이상 이 땅이 보호되어야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이 땅에 잠시 부활된 악인들이 머물 수 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의 속성은 부활해도 악만 남아있게 되는데 사탄이 최후의 발악으로 이 악인들을 충동질하여 또 한 번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것이 바로 곡과 마곡의 전쟁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인들은 다 죽고 천년왕국은 죄 없는 천년의 통치인데 어떻게 천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이 다시 생겨날 수 있을까.... 앞뒤가 맞지 않지요. 


     이렇게 최후의 발악을 하는 마귀와 모든 악인들의 세력을 불로 소멸하게 되면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1) 라고 표현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8절에 말씀하신대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8절).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두 번째 사망이라는 표현입니다. 사람은 세 번 죽는데 그 첫째는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되는 죽음입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볼 때 태어나면서 이미 죽음을 향한 행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출생을 알리는 이 기쁜 날에 ‘당신의 아기는 태어나면서 이미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기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 없이 태어나는 그 자체는 그런 운명을 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자신이 이미 모태에 있을 때부터 죄를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나무의 본 가지에서 꺾여져 나온 가지 신세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축하할 때 꽃다발 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명 없는 그것을 뭐 할려고 줍니까? 받고난 뒤 2, 3일 뒤에는 쓰레기 처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살아있는 화분을 주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거죠. 올 해 아는 사람이 공연한다 그래서 저는 한 3만원짜리 화분을 사 가지고 갔어요. 사진 찍고 그럴 때에는 태가 안 나지만 그 집에 지금까지 잘 크고 있지 않겠습니까? 잘 못키워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미 영적인 죽음이라고 하는 이 첫 번째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아 이 첫 번째 사망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은 누구나가 한 번은 겪어야만 하는 육체적 죽음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왕후장상이라도 죽음을 비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번째 사망이라고 했을 때 그 첫 번째 사망은 바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진정한 죽음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걸 말하죠. 그러니까 이 부활을 생각할 때 육체적 죽음이라는 것을 성경은 단지 잠잔다고 표현합니다. 말하자면 이제는 육체가 우리의 몸을 더 이상 지탱해 나갈 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로운 몸으로 회복시켜주실 때까지 잠시 자는 과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나긴 잠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힘드나 봅니다. 누가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겁도 나고, 육체가 허물어지니까 아픔과 고통도 느끼는 과정이겠죠. 그런데 아이들이 갓 태어나서 잠이 들 때에는 어찌 그리 울어대던지... 한 번은 제가 우리 큰 아이가 아기 때 엄마는 어디 가고 없고 제가 아기를 보아야 하는데 잠이 오는지 그렇게 울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도 답답해서 아기에게 물었어요. 아가, 잠이 오니까 그렇게 고통스럽냐? 어찌 그리 울어 되냐? 지금은 잠들면서 전혀 울거나 징징되지 않죠. 잠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나이 들어 긴 잠으로 들어가는 이 육체적인 죽음도 이렇게 받아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세 번째 죽음은 악인이 영원불멸의 육체를 옷 입고 불 못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세 번째 죽음이며 오늘 본문에서 이를 두 번째 사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세 종류의 죽음으로 분류를 하는 것입니다. 


    2.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본문에서 표현된 새 하늘과 새 땅에 세워진 새 예루살렘은 온갖 아름다운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는 듯이 보여진다고 11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좋은 재질을 표현할 때 옥, 수정... 등등의 보석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수영만 일대에 세워진 유리 아파트를 보면 세례요한이 그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은 그 당시의 언어와 개념으로 하늘나라를 표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걸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외에 4개의 문이 있고 그 위에는 이스라엘의 지파별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성곽에는 12 기초석이 놓여져 있고 그 위에는 12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표현합니다. 12지파는 구약을 상징하고, 12 사도는 신약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결국 신천신지 하나님 나라는 신구약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 뼈대와 기초가 단단하여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의 질은 어떠할 것이냐?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 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하늘나라의 삶의 질이 어떠할 것이냐를 잘 가르쳐줍니다. 사실 삶의 질을 이야기 할 때 그 측정도는 우는 것의 정도, 고통의 정도, 질병의 횟수와 정도... 이런 것이 중요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돈... 이런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지 부자들은 일체 이런 것들을 삶의 질로 여기지 않지요. 부자들이 얼마나 돈을 펑펑 써되는지.... 우리 둘째가 겨울방학 때 강원도에서 스키 강사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단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스키장 중에서 가족에게 겨울철 내내 임대해 주는 미니 스키장이 있는데 그런 게 몇 개 된데요. 그런데 그 스키장을 부자들이 겨울 한 철 동안 20억원을 주고 임대를 한 대요. 그러고는 고작해야 한 서너 번 오고나면 겨울이 끝나니까... 부자들이 그런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부자들도 이러는데 천국을 먹고, 마시는 이런 시시한 것을 가지고 묘사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니까 일단은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천국의 일상이 어떠할까를 자주 상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죠. 하여튼 우리가 들어가게 될 하늘나라에는 어떠한 고통의 그림자도 결코, 결코 드리우지 않고 복되고 행복한 삶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는 65장 17절에서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시도 천국소망에서 벗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부활의 소망을 말씀하면서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왜냐..? “이는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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