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구약 스바냐 01:01-13/ 주의 날 [새벽]
  • 조회 수: 271, 2013.12.06 19:35:41
  • ‘복 있는 사람’ Q.T 집이 고린도전서를 마치고 오늘부터 스바냐서를 배정했습니다. 스바냐서의 주제는 ‘주의 날’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도 나타나는데 아마도 성탄절 ‘대강절’ 절기에 맞춘다고 스바냐서를 배정해놓은 것 같습니다. 

    우선 스바냐 선지자를 소개하자면...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의 왕손으로서 유다 요시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유다 왕 요시야는 성전에서 두루마리를 발견하고, 유다의 모든 우상과 산당을 타파한 개혁적인 왕이었습니다. 이러한 때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신앙 개혁을 부르짖는데 이는 요시야 왕으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개혁을 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피로감을 주어 신하들과 백성들로부터 원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선지자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강하게 말함으로써 신앙개혁에 대한 원망을 막는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좋은 왕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구약에서 다루는 주의 날은 ‘크고 두려운 날’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도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주고 있습니다. 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데 본문에서 심판의 몇 가지 특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2, 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우주적 심판입니다. 유다 예루살렘에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기는 하지만 우주적인 심판이었습니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고 했습니다. ‘진멸하다’라는 말은 ‘끝장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상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과 짐승,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까지 멸절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내가 사람을 멸절하리라”고 거듭 강조하신 것은 심판의 원인이 사람의 죄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를 통하여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심판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죄에 대한 징벌의 성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하면서 세상 것을 좇으며 삽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부인하며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심판이나 내세를 부인하는 자들을 여호와의 큰 날에 심판하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4절에는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멸절하며...”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요시야 왕에 의해 단행된 종교 개혁이 철저한 우상숭배 타파까지 가지 않았음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5절에는 우상숭배자 뿐만 아니라 미신적 신앙 태도를 가진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상숭배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태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을 가지더라도 옳은 자세로 신앙을 가져야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름대로는 잘 믿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법대로가 아니라 자기 기분대로, 감정대로, 습관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도 하나님이 우상숭배처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6절에는 무관심한 자를 심판하시고, 8절에 보면 이방 옷을 입는 등 세속문화를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9절에 보면 강포와 궤휼로써 속이는 자를 심판하시며 자기중심적인 자들도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무관심한 것, 자기중심적인 것... 이런 것까지 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주 예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길입니다. 미국에 가면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반도를 연결하는 금문교가 있는데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두 지역을 건너는 데 3일이 걸렸지만, 이제는 10분도 안 걸린다고 합니다. 3일의 시간을 10분으로 줄인 대단한 금문교...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길은 영원의 길의 거리를 아멘의 한 순간으로 줄인 기적의 길입니다. 심판을 견디고 구원과 축복을 이루는 십자가의 길... 이런 의미로 볼 때 ‘주의 날’을 저주의 날에서 축복의 날로 바꾼 것이 바로 주님의 오심인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 되고 저주가 축복 되고, 지옥이 천국 되는 이 길, 십자가의 길을 믿고 자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됩시다.

댓글 0 ...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5174
1843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429
1842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692
1841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624
1840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468
1839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724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