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도 주의 날에 임할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 심방 갔다 오면서 교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랬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하필이면 왜 스바냐서를 우울한 12월에 배정을 해 놓아가지고서는 새벽마다 자꾸 심판의 이야기를 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12월이 아무래도 어수선한 달인데 거기다가 잘못 살아서 심판 받는다니... 이런 말씀을 새벽마다 연속적으로 들으면 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중에서도 위로가 되는 말씀을 찾아볼 수 있겠는데요.....
1-5절까지를 보면 한결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1-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총체적인 불의를 지적하고 나서 3절 부터서는 구체적인 것을 밝히는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라고 했습니다. 방백들은 고관들을 가리키는데 이 고관들이 부르짖는 사자라고 했으니까 일단 무섭고 두렵습니다. 고관들이 사랑과 인자함으로 백성들을 대해야 하는데 사자처럼 울부짖으니까 백성들이 무서워서 다 피해버리는 것입니다. 또 울부짖는 사자라는 것은 탐욕스러움을 표현합니다. 뭐 잡아먹을 것이 없나... 이러면서 울부짖으며 살피지요. 관리들이 으르렁 대면서 백성들을 노리는데 그냥 뭐든지 탈취하고 빼앗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또 재판장은 내일 아침까지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는 저녁 이리 라고 표현합니다. 저녁에 무얼 잡으면 그걸 아침까지 놔 둘 여지도 없이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재판장이 그렇습니다. 재판장은 원래 힘없고 억울한 서민들을 위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재판장의 먹이감이 되니까 그 사회가 얼마나 악한 사회입니까?
4절에 선지자는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입이 무거워야 하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경솔하면 하나님의 말 보다는 자기감정에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성소를 지켜야 하는데 오히려 성소를 더럽히는 일에 앞장선다.... 여기서 사회의 자정기능을 담당해야할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간다는 뜻입니다. 사람 사는 사회가 이러니 그 사회가 얼마나 엉망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5절에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이랬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데 하나님만 의롭고, 아침마다 자기 공의를 사람들이 사는 땅에 비추신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래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사회가 왜 이렇느냐? 모든 사회의 문제를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는 자체가 불손 그 자체인 것입니다. 질문을 하는 자신이 바로 사회 문제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하나님은 언제나 한결 같은데 사람들이 다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회가, 우리 공동체가 잘 될려면 남의 탓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내가 자리를 바로 잡고, 내가 바르게 행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지금이라도 고쳐먹으면 당장 내리기로 작정한 형벌이라도 거두어들이겠다... 하는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 우리가 위로를 받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우리 죄로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형벌, 심판을 아직도 받지 않고 있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 은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우리에게는 구원의 때요, 은혜의 날이라....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