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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스바냐 3:11-20/ 진정한 주의 날의 모습 [새벽]
  • 조회 수: 910, 2013.12.11 12:30:05
  • 스바냐서가 3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참으로 무겁다는 것을 우리가 지난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읽어오면서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지서에서 그러하듯 ‘주의 날’의 결론은 회복이지 무너뜨리는 것이 결코 아님을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참고 참다가 화가 치밀어 오르면 자녀들을 책망하고 때로는 매질까지 하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사랑이 있고, 정이 있는 부모라면 그 다음부터서는 싸매고, 회복시키는 그런 과정이 있습니다. 사랑의 징계라는 것이 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과정이 나옵니다.


    13절에 보니까 더 이상 거짓과 악이 이스라엘 안에 없어질 것이며 이러한 결과로 백성들이 먹고 누울지라도 더 이상 두려워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전에는 어땠습니까? 백성들로부터 방백들과 재판장들, 선지자, 제사장들에 이르기까지 다 악을 행하니까 이것은 완전히 양육강식의 사회입니다. 그러니 힘이 없는 백성들은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니까 먹고 누울지라도 평안이 없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것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면 먹고 사는 것의 차이점이 아닙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삶의 행복, 삶의 안정감... 이런 것입니다. 공적인 질서가 잡히니 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약자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그런데 후진국으로 갈수록 무질서 하고 관리들이 타락하니 뇌물만 주면 못하는 게 없죠. 이런 사회는 있는 사람들만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백성들이 먹고 누울지라도 더 이상 두려워할 일이 없다’ 이건 사회 기능이 제대로 돌아온 것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질벌로, 심판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 15절에 이런 일들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주의 날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날’의 목적은 치유, 회복에 그 목적이 있지, 파괴와 무너뜨림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 장의 여러 표현들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 형벌이 무시무시하게 표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분노가 맹렬한지 너무너무 섬짓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분노가 그렇게 강하게 표현된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군에 있을 때 신참들을 괴롭힌 고참이 있었어요. 이 고참이 대대 보급 창고에 신참들을 데리고 가서는 구타를 하는데 제가 정말 싫었던 것은 때릴 때에도 실실 웃으면서 때리는 것입니다. 보통 화가 나서 때리는데 이 고참은 웃으면서 때리니까 제 마음에 분노가 치미는 것입니다. 때림으로써 어떤 교육의 목적이 있다거나 이러면 되는데 그냥 재밌어서 때린다... 이건 아주 파괴적인 폭력이죠. 하나님의 심판은 그런 게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고, 특별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어떤 선한 의도를 가진 징계인 셈이죠. 그 결과가 어떻느냐.... 다시금 하나님과 회복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에는 분노를 품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정상이 되고, 관계가 회복되고 난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너무너무 귀해 보이고, 이뻐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17절 말씀은 아주 잘 알려진 유명한 말씀이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저는 이 찬양을 참 좋아해요. 마치 제가 우리 자녀들을 볼 때 제 마음 속에 생겨나는 딱 그대로의 표현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막 하루 일을 마치고 밖의 일로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데 사랑하는 어린 자녀, 혹은 손자, 손녀가 소리를 치며 반겨줄 때 꼭 우리 마음이 이 스바냐 3장 17절 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본문이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 잘 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위하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면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해주신다는 사실을 오늘 이 새벽에 좀 깨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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