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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데살로니가 전서 4:09-18/ 사랑과 소망의 인내 [새벽]
  • 조회 수: 580, 2013.12.18 14:59:37
  • 오늘 본문은 3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 둘째는 부지런히 일하는 것에 대하여, 셋째는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해주고 있는데 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귀한 가르침입니다.


    1. 사랑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9절에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사랑에 대해서는 데살로니가교회가 흠잡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10절에서 마게도냐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크게 도움을 준 것에 대해서 바울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그리하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이 1장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라고 칭찬한 바가 있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로 피곤해지면서 사랑이 식어집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처럼 사랑의 섬김을 꾸준히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의욕이 있어서 열심히 합니다. 또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 열심히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지면 모든 것이 처음만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에배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형제를 섬기는 이 모든 일에 사랑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2. 자기 일에 충실 하라는 것입니다. 11절에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 외인에게 아름다운 본보기가 되며, 둘째, 궁핍함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니까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라고 했는데 일을 하는 것이 단정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빈둥빈둥 노는 것이 단정해보이지 않다는 말이죠. 아무래도 자기 일이 있으면 생활의 리듬이 있고, 활기가 넘치고, 부지런하고, 또 열심히 사는 그 자체가 보기가 좋다는 말입니다. 일이 없으면 아무래도 보기가 싫죠. 그러니 뭐든지 일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일이 없으면 생활이 어려워지니까 궁한 소리가 나오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이 꺼리는 그런 사람이 되겠죠. 한마디로 단정치 못하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3. 죽음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갑자기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면 교회 내에 어떤 중요한 분이 돌아가셔서 교인들이 낙담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짐작을 해 봅니다.


    먼저 사도바울은 죽음을 잠자는 상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후에 부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을 ‘사망’이라고 표현하죠. 이는 죽어서 사라진다... 망이 망할 망자 아닙니까? 죽으면 끝이다 는 생각이 이 말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죽음을 긴 잠 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우리가 오늘의 걱정, 슬픔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잠을 자고 새로운 아침을 맞으면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제는 잠을 통하여 지나가고 새로운 아침을 맞죠.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연약한 육체적 고통, 아픔... 이런 것들이 죽음이라고 하는 긴 잠을 통하여 다 지나가고, 잊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의 내일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을 맞기 까지 잠간 자는 것....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죽음관입니다. 그러니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이나 가족, 지인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웃이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가는 것도 슬퍼서 우는데 내 사랑하는 사람이 이 땅에서는 살아서 갈 수 없는 저 천국으로 가는데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죽은 이 앞에서 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울음에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헤어지지만 천국에 가서 꼭 만나겠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나도 고인과 같이 열심히 신앙의 길을 가리라..... 이것이 바로 소망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들에 대해서 울고 슬퍼할 여유가 없는 것은 15절에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만나는 순서상 죽은 자들이 먼저 깨어나서 주님을 맞이한 뒤에 그 다음에 우리도 주님을 만날 기회가 있다는 의미로....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자들이 먼저 주님을 맞이하게 되며 지금 살아 있는 자들은 그 다음 순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산 자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킬 때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오히려 믿음으로 열심히 살다 죽은 자들이 더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에 대해 그렇게 슬퍼할 필요가 없고.... 이 땅에 남아있는 우리야 말로 천국을 향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은 다 가야 합니다. 여기에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 자는 사람은 우리 주님이 공중에서 다시 오실 때 깨어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하게 되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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