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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사무엘상 30:01-06/ 아말렉을 제거하라 [주일낮]
  • 조회 수: 644, 2014.01.24 13:37:11

  • 아말렉을 제거하라(삼상 30:01-06)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에 의하면 아말렉이 다윗 일행의 거처인 시글락을 급습하여 모든 재산을 비롯하여 처자식들까지 다 생포해 갔으며 집은 몽땅 불을 태워버렸습니다. 이 아말렉의 급습은 사울의 눈을 피하여 간신히 안정된 삶을 시작했던 다윗에게 치명타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윗은 신앙이 좋고, 굉장히 강인한 사람입니다. 사울이 그렇게 다윗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였으나 다윗은 사울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나 겉옷만 살짝 베어 증거만 삼고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신앙적이면서도 강한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한 사람만이 이런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4절에 보니까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그들의 처자식이 잡혀감으로 인해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강인한 믿음의 사람 다윗마저 울게 했을 정도로 아말렉의 공격이 치명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말렉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민족과는 달리 하나님은 아말렉을 다루실 때에는 좀 특별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아주 짧고 단호했습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그들을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가축이든, 제물이든 남기지 말고 싹 쓸어버리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른 민족과는 달리 아말렉이라는 민족을 다룰 때 이렇게 가차 없고 단호합니까?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아말렉과의 첫 대면은 출애굽기 17장 8-16절에 나타납니다. 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가 지휘하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지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모세가 힘이 들어 손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아론과 홀이 모세의 오른쪽, 왼쪽 손을 양쪽에서 붙들어줌으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지는 방식의 이런 싸움은 이스라엘의 전쟁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와의 싸움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전쟁을 치른 적이 없고 오직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독특한 모습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을 하는 동안 모세로 하여금 손을 들고 내리지 못하게 했을까요? 왜 모세의 손이 들리면 전쟁에서 이기고, 손이 내리면 전쟁에서 밀려야 했습니까? 이는 아말렉과의 전쟁이 물리적인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영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말렉과의 전쟁은 물리적으로는 칼과 창을 쓰는 전쟁이나 그 이면에는 아말렉을 강하게 움직이는 어둠의 영적인 힘에 맞서야 하는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전쟁사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이 아말렉의 세력을 어둠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갈등 속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겪는 갈등은 물리적이면서도 영적인 면이 있습니다. 사소한 부부간의 갈등에도 마귀가 역사합니다. 만약 평상심이 있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아프고 힘들게 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겠습니까? 전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일평생 그렇게 서로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다툼이 생겨납니다. 이럴 때에는 사랑도, 동정도 어디로 갔는지 그렇게 철천지 원수처럼 서로를 아프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는 정장적인 부부의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물리적인 여호수아의 힘으로만 대항해서는 백전백패요, 영적인 힘을 상징하는 모세의 손이 하늘을 향해 높이 올려져야 하며 바로 이때의 모세의 손은 기도의 손인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모세 혼자서도 안 되고, 아론과 홀과 같이 모세와 함께 기도로 동역하는 세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17장에 나타난 아말렉과의 전쟁이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갈등을 다루어 나갈 때 물리직인 힘인 여호수아의 군대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만 믿으면 백전백패입니다. 여호수아의 군대보다도 더 강한 무기인 기도의 손을 모으고, 기도의 팔을 높이 들어 올려야 합니다. 자기의 힘, 자기의 꾀를 믿는 자는 자기 꾀에 빠져 멸망할 것이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이긴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전반에 나타나는 갈등들을 영적인 전쟁으로 알고 기도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사무엘상 15장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사울 왕에게 보내셔서 아말렉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치되 그냥 대충 하지 말고 그들의 소와 양과 모든 재산, 그리고 남, 녀, 노소, 자녀들 가리지 말고 다 죽이고 불태워 없애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왜 아말렉을 치라고 명령하셨느냐? 2절에 보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의 길을 갈 때 이스라엘을 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아말렉을 대하는 하나님의 자세에 대해 분명한 설명이 되지는 못합니다만... 아말렉 자체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세력으로서 이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방해가 되는 요소요, 사탄의 역사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데 항상 방해를 합니다. 우리를 향한 마귀의 소원은 우리가 신앙의 행진을 잘못하여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끈질기게 방해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함이 없이는 한시라도 편안한 신앙의 삶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라, 도륙하라... 가차 없이 명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을 멸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의 온갖 좋은 것... 소, 양, 보물, 사람들을 살려 남겼습니다. 그리고 쓸모없는 것들만 하나님의 명령을 적용하여 불태워 멸한 것입니다. 나중에 사무엘에게 가서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라며 아주 뻔뻔스럽게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이런 말씀을 받을 때에 일단 이 일을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한가, 손해인가를 먼저 살핍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실익을 계산하고 난 후에 불리한 것은 안 하고, 유리한 것만 순종합니다. 그래놓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순종했노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손해가 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절대 이익이요, 자신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되면 그게 두고두고 우환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가 되고, 나중에는 이 때문에 소리 높여 통곡하게 될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사람이든, 가축이든 좋은 것들을 남겨놓았는데 이것이 나중에 다시 더 큰 아말렉의 세력이 되어 이 믿음의 사람 다윗을 그렇게 기력이 없도록 통곡하며 울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지금 다윗을 통곡하며 울게 만드는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잘 아는 바대로 다윗은 끊임없이 자신을 추격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사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이미 아기스는 사울과 다윗 사이가 원수 관계임을 알고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다윗의 망명을 받아주어 시글락 평지에 살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부하 600여명의 모든 가족들이 거기에 정착하게 됩니다. 다윗은 고된 환경에서 벗어나 이제는 평안함을 누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남의 땅에서 원수의 눈치나 살피면서 이중적인 삶을 사는 것은 구차한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삶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존귀한 이스라엘의 차기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왜 왕이 되도록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그가 구차하게 남의 나라에 숨어서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까? 

    이런 그를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말렉이 시글락을 공격하도록 방치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치명적인 멸망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2절에 보니까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산 채로....’ 잡아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왜 성경 저자가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다 죽여 버렸으면 희망이 없는데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라는 것은 다윗이 깨닫고 나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르기에 그가 당면한 문제에 빠져 지금까지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대성통곡의 눈물을 흘립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심지어 그를 따르던 부하들까지도 그의 가족들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해 분노가 폭발하여 다윗을 돌을 들어 치려고 합니다. 6절에 나오죠.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마음이 다급하였으나 여호와로 인하여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사람에게 위기라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단지 잘못된 곳에서 빠져 나와 정상적인 길로 가기 위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요, 축복입니다. 이것을 잘 알면 큰 어려움, 절망, 낙담 가운데서도 여호와로 인하여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후에 다윗은 아말렉을 추격하여 모든 것을 다 회복한 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괴롭히는 아말렉을 제거하지 않고는 신앙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아말렉이라는 것은 사탄의 어둠의 세력이 틈탈 수 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돈이 될 수 있고, 명예가 될 수 있고, 자신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온갖 모든 것들이 우리의 아말렉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좋아 보이나 실제로는 이스라엘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 원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말렉을 몰아내어 마귀가 틈타는 일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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