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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창세기 17:15-27/ 아브라함의 불신앙 [새벽]
  • 조회 수: 257, 2014.01.30 13:26:15
  •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저절로 신앙이 좋아질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오래된 신앙의 연수가 하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래가 사라로 이름이 바뀌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분명 사래가 사라로 이름이 바뀌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라의 이름의 뜻이 ‘열국의 어머니’ 라는 뜻이 있는데 이 이름이 사라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입니다. 아들 하나도 없는데 무슨 열국의 어머니라는 말이냐? 불신앙에서 나오는 냉소적인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래를 사라로 바꾸어 놓고는 열국의 어머니가 되는데 사라로부터 여러 왕들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아들 하나도 없고, 지금 나이가 90세 가까이 됩니다. 아브라함 노부부도 지금 이 상태로서는 두 부부 사이에 아들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17절에 보니까 아브라함이 속으로 웃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는 말이 됩니다. 


    흔히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너희들은 오대양육대주를 누비면서 위대한 일을 하는... 장차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일꾼들이 될 것이다.’ 이러면 일단 입으로는 ‘아-멘’ 이라며 응답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교사나 학생들은 속으로 웃습니다.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구 내 처지가 이 초장동, 아미동도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오대양육대주를 누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물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할 때 그걸 축복으로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그냥 겉으로만 아-멘! 할 뿐이지, 속으로는 다 믿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사래를 사라로 만들었듯이, 우리 환경, 우리 처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이를 보고, 자기 몸을 보고, 자기 능력 보면 하나님의 축복이 전혀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래를 사라로 만드신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 비전, 약속, 축복이 다 우리 것이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자기의 가정에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자녀의 표시로서 할례를 다 행하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신의 몸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몸에 언약자손의 표시를 새기라는 말은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언약자손 다운 모습을 보일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마음과 입으로만 표시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생활과 행동으로서 신앙을 나타낼 것을 요구하십니다. 마음과 입술은 거짓이 많습니다. 그러나 삶과 행동은 그 사람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가 말과 혀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 우리의 삶 어딘가에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오늘도 우리의 삶에 뚜렷한 신앙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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