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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복음 19:31-42/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새벽]
  • 조회 수: 609, 2014.04.18 19:44:15
  • 어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셨습니다. 오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치우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31절에 보니까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요청하기를.... 안식일에 십자가 위에 시체를 그대로 두는 것은 안식일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리를 꺾어 당일에 시체를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잔인해서 시체를 매달아 놓고 장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둡니다. 그러면 새가 뜯어먹고, 개가 와서 핥는 비참한 현장입니다. 생명이 긴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려서 못이 박힌 채로 몇 일 씩이나 꿈틀거리며 살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유대인의 장례법에도 어긋난 것일 뿐 아니라 안식일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를 꺾어 숨을 끊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요구에서 우리는 모순점을 찾아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을 보시면 안식일은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왜 이방인의 풍속인 십자가 사형을 빌라도에게 요구했느냔 말이죠. 또 사형을 시켜놓고 보니까 안식일에도 죄수가 십자가 위에서 신음하며 살아있을 수 있고, 또 안식일에 죽으면 안식일을 부정케 하여 안식일을 범하는 결과가 되니까 잔인하게 살아있는 사람 뼈를 꺾어서라도 당일 죽게 하라.... 이러는 요구이니 얼마나 잔인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소행입니까? 그러니 애시당초 왜 이방인의 사형법을 요구했느냔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이 이런 유대인들을 향해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을 마시는데 하루살이는 더럽다고 걸러내고,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위선자다..... 이 말은 사소한 것은 그렇게 지키려고 힘쓰다가도 엄청나게 큰 죄는 그냥 눈 깜짝하지 않고 범한다는 말이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이 바로 그런 꼴이었단 말입니다. 진실한 사람일수록 앞뒤가 맞는 사람이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맨 날 되는대로 사니까 유익하면 이 말하고 불리하면 저 말하면서 앞뒤 분간이 제대로 되지 않죠. 우리는 이런 모순덩어리 인간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언제나 일관성이 있고, 한결같은 진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다리도 꺾으려고 와서 보니 벌써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물과 피가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증언해준 것이기에 사도 요한은 35절에 이를 진실한 것이라고 몇 번씩 강조하는 것을 봅니다. 왜 이 증언을 진실한 것이라고 강조합니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을 증언하는 것을 들으니 이는 성경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예언한 것과 똑 같았기 때문입니다. 36-37절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창을 찌르는 모습,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이런 게 구약성경에 다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보고 사도 요한이 깜짝 놀라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 몇 백년 전에 이렇게도 세밀하게 예언되어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사형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사도 요한의 마음에 일어난 고백은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이는 현장에 있었던 백부장의 실제 고백이기도 하지만 사도 요한의 고백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런 신앙고백을 붙잡고 밧모섬에서 죽을 때까지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증거한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가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우리가 또 무얼 더 요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형장에 있었던 백부장처럼, 사도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고백할 수 있기를 이 새벽에 축원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어야 겁쟁이 아리마대 요셉처럼, 니고데모처럼 예수님께 용감히 나설 수 있습니다. 38절에는 아리마데 사람 요셉을 신앙적으로 평해 놓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 밤에 살짝 예수님께 찾아왔던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죠. 하나 같이 겁쟁이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받은 이들은 다른 제자들이 다 도망쳤을 때 예수님의 장례를 책임졌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확실한 사람은 숨지 않습니다. 믿음이 확실한 사람은 비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다 숨어도 꼭 필요할 때 주님을 위해 분연히 일어섭니다. 어떻게 이렇게 됩니까?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이런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확실한 신앙의 고백이 있게 되기를 바라며 만약 고백이 있는 분들일지라도 더욱 그 고백으로 인하여 새로워지기를 이 새벽에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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