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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누가복음 01:39-56/ 마리아의 찬가 [새벽]
  • 조회 수: 323, 2014.06.03 14:32:09
  •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통보를 받고 어떻게 처신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 우리가 배울 것이 많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이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듣고 마리아는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에게로 급히 갑니다. 39절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수태고지를 듣고 마리아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말한다거나, 아니면 정혼한 요셉에게 알린다거나....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런 기대와는 달리 엘리사벳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리아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엘리사벳이 제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아들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사정을 이해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영이 통하는 여인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41-45절에 보니까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자마자 성령이 충만하여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주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마리아는 잘 이해한 것입니다.

     

    2.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서 3달을 머물렀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56절에 보니까 석달 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합니다. 꽤 긴 기간입니다. 아무리 친척의 집이라고 해도 이렇게 석 달을 머문다는 것은 비상식적입니다. 특별히 엘리사벳도 임신한 몸인지라 불편한 환경입니다. 이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모종의 의논을 한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우선 마리아는 처녀이기 때문에 임신한 경험이 없을 것이므로 엘리사벳으로부터 조언을 들었을 것입니다. 임신초기는 힘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이를 막기 위해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같이 있자고 한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마리아를 가장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엘리사벳입니다. 만약 마리아의 가족이 이 임신사실을 알았다고 한다면 마리아가 이 사실을 어떻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멸할 수 있겠습니까? 임신초기에는 육체적으로도 힘들 때인데 이런 일들로 하여 정신적으로도 무척 힘이 들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이런 마리아의 형편을 잘 알고 자신도 몸이 불편하지만 마리아의 임신초기를 잘 보살펴주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엘리사벳의 자상한 성품도 한몫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 태중에 있는 주를 섬긴다는 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충성스러운 여인입니다. 우리가 충성스러운 종이 되려면 이렇게 엘리사벳과 같이 자상한 인격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 마리아는 그의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볼 때 참 곤란합니다. 처녀가 아기를 갖는다는 게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닙니다. 순결을 목숨으로 여기는 여인이 결혼 전에 아기를 가졌다.... 이는 충격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라지만 이걸 쉽게 받아드릴 여인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리아도 상당히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오해를 어떻게 풀까? 어떻게 이 사정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참으로 골치 아픈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리아의 변명을 비웃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신하게 해 주셨다...? 이를 누가 받아드릴까요? 마리아도 처음에는 이런 복잡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와 같은 경험을 한 엘리사벳을 보자 마음이 평온을 되찾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비천한 계집종을 돌아보사 복을 주셨다고 노래합니다. 마리아는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받아드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이 창대해지기를 원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 자기가 희생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들어갈 만한 아들이 그 대학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간다고 하면 머리를 싸매고 들어 누울 성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아버지는 의사이고, 장로인데 그 아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신앙이 얼마나 특출한지 주일뿐만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 심야기도회까지 와서 밤 늦게 기도하고 갑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고 3때 신학교 갈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들 얼굴을 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처럼 의사가 되어야 하는데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간다니 마음에 안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아들이 목사가 되어 한국교회를 책임지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장로님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 이래요. 그러니 마리아가 얼마나 충성스럽습니까? 자기를 희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기를 원하는 이 마리아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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