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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05:17-18/ 율법의 완성 [수요]
  • 조회 수: 750, 2014.09.21 20:57:57
  • 사실상 유대 정통 율법 교리에 의해서 살아온 유대인들이게는 갑자기 나타난 에수님의 교훈은 혁명적인 말로 들리는 것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율법을 아예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는 자, 율법을 무너뜨리는 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성하기 위해 내가 왔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구약을 표시할 때 율법, 선지자들의 예언.... 이렇게 표현했고... 이것을 종합적으로 율법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고 합니다. 율법의 작은 부분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되고 너희 의가 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못해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우리 오늘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율법의 완성이 의미하는 뜻

      1) 제사의식에 속한 의식법(Ceremonial Law)의 완성입니다. 구약에 율법에는 대체적으로 크게 세 가지의 법으로 구성되어졌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중세기 유명한 카톨릭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하나님의 율법을 “도덕법과 의식법과 사회법”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Ceremonial Law"리고 하는 의식법입니다. 우리는 레위기에서 속죄제, 속건제, 번제들의 의식법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제사 의식법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위한 그림자와도 같은 성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셔서 단번에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 십자가 상에서 완전한 제사의식을 행하셨으므로 이 의식법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민법과 형법(Judical Law)의 완성입니다. 또한 구약은 민법과 형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개 민법과 형법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만 역시 이 구약 율법도 민법과 형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령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야만 된다 혹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이런 민법, 형법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상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주님이 오시어서 십자가에서 모든 만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심으로서 죄과를 치루어 보상해 주었기 때문에 이 법도 주의 십자가로 완성케 하신 것입니다.
     
      3) 도덕적인 법(Moral Law)입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법,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성문화시킬 수 없는 어떤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 십자가로 모든 것을 완성하심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도 문제를 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법을 만든다고 할 때 그 법의 가장 큰 근본 정신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간단하게 줄여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은 율법의 도덕적 측면에 대한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살인하는 자
      
    ㄱ. 노하는 자

      예수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형제를 향해서 분노한다고 해서 지방 재판소에 끌려가서 심판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향해서 마음속에 분노를 품기만 해도 이러한 재판소에 가서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인 것입니다. 노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을 한 것은 그 사람을     통해서 분노함이 이미 화살을 당긴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고 했습니다. 
      
      ㄴ. 라가라 하는 자

      라가라 하는 말의 본래의 뜻은 “속이 빈 놈” 혹은 “쓸모없는 녀석”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명예 살인죄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즉 남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비웃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명예를 살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고작해봤자 100년 미만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명예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100년못지 않은 육신을 죽이는 살인 보다 도 영원한 사람의 이름, 그 명예를 살인하게 되는 것이 더 큰 살인이 된다고 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은 라가라 하는 사람은 바로 살인 한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2) 간음하는 자

     ㄱ. 눈으로 볼 때 간음하게 됩니다.(삿16: , 삼하11:4, 벧후2:14)우리의 눈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경험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단결 같이 부드럽습니다. 몇몇의 맹인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들을 대할 때마다 마치 무슨 천사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들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볼 때 사람이 눈으로 보는 데서부터 더러워지고 때묻고 순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 우리 인간이 왜 음욕을 품게 되어지고 이 무서운 죄에 이르게 되어지는 생활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것은 눈으로 무엇을, 어떻게, 봤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좌우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되어질 때에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에 역시 우리의 마음은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추함과 더러움의 모습을 보게 되어질 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모습으로 점점 내 마음의 그림이 바뀌어 진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눈을 가지고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의 눈을 항상 하나님께서 밝은 눈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적인 아름다움의 눈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ㄴ. 마음에 음욕이 생기므로 간음하게 됩니다.(삼상16:7, 잠4:23)마음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잠언기자는 잠언 4장 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음란과 간음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가 범죄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늘 항상 우리의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바라며,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늘 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늘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 마음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ㄷ. 입술로 간음하게 됩니다.(고전 15;33, 시41:3)우리 격언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을 성결한 입술로, 제단 숯불로 지져 우리의 입술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죄에는 쾌락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죄를 범합니까? 죄를 범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아름다운 환락과 쾌락을 맛보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음담패설을 늘어놓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들은 재미있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음담패설이 결국은 간음죄를 짓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을 조심함으로 말미암아 죄의 유혹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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