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팔 복의 그 마지막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을 접하고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말입니까?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이 왜 축복입니까? 손해보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 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기독교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씀이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성품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진리 중에는 역설적인 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낮아지고자 하면 높아지고,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지고, 예수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면 생명을 얻고, 생명을 얻고자 하면 생명을 잃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라는 말씀 등등입니다.
여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말은 의롭게 살기 위해 고통을 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핍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 후 곧이어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을 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산상 팔 복 가운데 '복이 있나니'하는 말씀이 두 번 반복되는 곳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에게 뿐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에게는 갑절의 복이 부여됩니다. 예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 후 곧 이어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을 때 복이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핍박이 따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바보 취급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핍박을 받을 때, 오히려 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담대히 주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라고 예수께서 우리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아멘!/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이기풍이라는 사람은 평양에서 출생하였는데 어려서 사서오경을 읽었고 12살에 백일장에 급제했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방자하여 젊어서 술을 많이 먹고 나쁜 짓을 많이 한 깡패였습니다. 한 번은 평양 좌수의 행렬을 가로막고 좌수를 땅에 집어 던진 죄로 석 달을 목에 칼을 쓰고 옥고를 치른 일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마포삼열 목사님에게 이마에 돌을 던져 피를 흘리게 하고 넘어지게 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평양이 피바다가 되자 이기풍은 원산으로 피신하여 여기서 스왈렌 선교사를 만나 양심에 가책이 되던 마포삼열 사건을 고백하고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평양 신학교에 입학 1회 졸업생 중 한사람으로 그는 안수를 받고 길선주 목사와 함께 일하다가 최초로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 받아 인천항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그마한 목선으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모두 사망했지만 이기풍 목사는 헤엄을 쳐서 추자도에 상륙하여 구출되었고 그 후 제주도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동네 깡패들이 예배 장소에 쳐들어와서 예배를 방해하고 이 목사님을 붙잡아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예수쟁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이 동네에서 대장인데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의 단체가 그 동네에 생기기 때문에 자기들의 지역전통이나 체면이 안서며 또 예수쟁이들의 행동은 자기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옛날 깡패 실력으로 싸우고 싶었지만 꾹 참고 박해를 받았는데 나중에는 복음의 큰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박해의 첫 번째 이유는 예수를 믿는다는 그 차체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의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입니다. 성경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3: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갈4:29절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자가 성령을 따라 난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또한 롬8:17-18절에서도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요15:18-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미워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백 년 전 백인 선교사가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선교하러 갔을 때, 흑인들은 사람은 얼굴이 검어야 하는데 얼굴이 흰 것은 '사람일 수 있는가? 귀신'이라고 해서 백인 선교사를 쫓아냈답니다. 까마귀들의 모임에 백로가 갔더니 까마귀들은 흰 것이 어찌 새인가 하고 백로를 내어 쫓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경은 의로운 사람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을 경우가 많습니다. 로마에 가면 옛날부터 내려오는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장 유명한 예배당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성 베드로의 예배당이고, 또 하나는 성 바울의 예배당입니다. 이 두 예배당의 유래를 보면,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그 자리에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졌고, 바울이 칼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은 그 자리에 성 바울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AD64년 네로 황제 때부터 313년 밀라노 칙령이 있기까지 약 250년 동안 로마의 박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카타콤 성전이 세워졌고, 원형극장에서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형당했습니다. 그때 당한 핍박은 개인이나 가족이나 사회적으로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심한 고문과 불에 달군 쇠로 지짐을 당했고, 눈을 빼고 사지를 찔렀으며,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십자가형으로 죽이기도 하고, 기름 가마 속에 넣어 튀겨 죽이기도 했으며, 가죽을 벗기고, 맷돌로 누르기도 하고 얼음 속에 넣어 동사시키는 등,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다.'는 말이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왜 성도가 핍박을 받는가? 몇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⑴성도는 세상의 불의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미워합니다.
⑵불신자를 향하여 죄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⑶성도는 우상 숭배를 배격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⑷성도는 주님 뜻대로 살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⑸성도는 불신자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을 예언하다가 미움을 받았습니다.
의를 위한 핍박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일을 잘못 처리한 결과로 어려움이나 공경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그것은 처벌입니다. 어느 설교 가는 핍박과 처벌에 대한 개념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핍박이란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하여, 나쁜 사람에게 받는 것이요, 처벌은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하여 좋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씀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 처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핍박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⑴우리의 실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은 핍박이 아닙니다. 벧전2:20절에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또 벧전4:1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무슨 말씀인가? 살인, 도적질, 악행, 또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 잘못되어 받는 고난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의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이 아니고 처벌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⑵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누구를 반대하기 위하여 받는 핍박은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정당 또는 어떤 주장은 반대하기 때문에 감옥에 투옥되고 혹은 죽음을 자초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오늘 본문에 의 때문에 받는 핍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위한 투쟁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 때문에 믿는 핍박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절대화하고 신성화하기를 원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일)과 사람의 것(일), 땅의 것(일)과 하늘에 것(일)'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아멘!/
⑶자신이 미련해서 받는 핍박도 본문의 의 때문에 받는 핍박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좀 슬기로워야 합니다. 지혜의 영인 성령 님의 인도를 받으면 절대로 미련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믿/ 성령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할/
⑷어떤 사람은 성격이 못되고, 고집이 세고 남을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고난을 받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본문의 의 때문에 박는 핍박이 아닙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고집, 제한된 자기의 경험과 지식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⑸광신적인 열정 때문에 받는 고난도 본문의 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92년인가 언젠가 잘못된 종말론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혼자만의 지나친 열정 때문에 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주님은 마10: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고 하셨습니다.
⑹대의명분을 위해 받는 고난도 있는데 이것 역시 본문의 의가 아닙니다. 정치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혼합시켜서 그것이 마치 의를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받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에 참여하고, 미디어 법에 반대하고, 노사문제에 개입하고, 어떤 정당에 반대하다가 투옥을 당하고 고문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 희생하고 행동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일이고 의를 위한 일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민주화를 위해서 분신자살을 합니다. 그것은 그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희생된 것뿐입니다. 잘 분별하는 영의 지식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④하나님은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을 허용하는가?
⑴핍박은 진정한 성도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성도 아닌 사랑이 누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이기에 예수님도 사랑하며 그리스도인이기에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15:19절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토마스 와슨은 '가짜 성도는 예수님을 따라서 감란 산까지는 갈 수 있으나 갈보리까지는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⑵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품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핍박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성품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히12:10절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그리고 롬5:3-4절을 보세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서양 속담에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시냇가의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돌들이 있기 때문에 시냇물은 흘러가며 노래를 창조합니다. 마찬가지로 고난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난의 아픔이 창조적인 인격을 완성해 나갑니다. 시119:67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⑶핍박은 주님을 만나는 체험의 계기가 됩니다. 다니엘 3장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칠 배나 더해진 풀무불 앞에서 외쳤습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욥은 환란 중에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했으며, 요16:33절에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승리의 약속이며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2. 핍박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12)
1) 천국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10절)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게 되면은 어떤 핍박이 와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내 배가 부르고 든든한 사람은 남이 뭐라고 그래도 별로 신경 안 씁니다. 내가 배고프고 내가 없으니까 남들이 무슨 소리를 하면 자기 설움, 자기 컴플랙스, 열등의식 이런 것 때문에 오해를 하게 되고 괜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핍박이 와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천국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언제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진 줄 믿습니다.
2)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12절, 단24:25, 벧후1:11)
요한 계시록 7장에 보면 셀 수 없는 흰옷을 입은 큰 무리에 대해 장로중 하나가 설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늘 우리도 고난과 핍박을 통해 하늘의 생명의 면류관을 얻어야 되겠습니다.
3) 선자자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 복을 누립니다.(12절)
본문 12절에 말씀하기를 전의 선지자들도, 너희의 신앙의 선배들도 그렇게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핍박과 환란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입문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나만이 아니라 우리 선배들도 우리보다 앞서간 신앙의 사람들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믿음 가운데 거하여 승리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