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선거가 두 번 있었습니다. 그 때 한나라당에서는 모 의원에게 선거를 좀 도와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는 자기는 가만히 있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서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으로선 그가 선거운동을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반대도 안 했지만 돕지도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나라당에게 해를 끼쳤을까요, 아님 한나라당에게 그냥 아무 것도 안 한 것이 되나요? 그는 아무 것도 안 했으니까 해당행위를 한 것도 아니라 생각하지만 한나라당 주류들로서는 그가 결국 아무 것도 안함으로서 당에 해를 끼친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보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뜻은 신앙에서는 중립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배경에는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평가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집중하는 사람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베풀어 고쳐주셨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은 놀라며 예수님을 가르쳐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아니고서는 이런 능력 있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새불을 힘입어서 이러한 기적을 베푸셨다고 억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25절 이하에서 이에 대해서 아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라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힘이 센 귀신이 힘이 약한 귀신을 쫓아낸다면 결국은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이니까..... 그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약한 자가 밀리고 있으면 더 강한 자가 와서 도와주지, 쫓아내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먼저 귀신들의 왕인 사단을 무찔렀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그 졸개들.... 귀신들은 손쉽게 쫓아내실 수 있었으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승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바알세불이라는 더 센 귀신으로 약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억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묻습니다. 만약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좇아낸다면 너희 아들들은 무엇으로 귀신을 쫓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예수님 외에도 신앙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만약 내가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너희들도 귀신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냐....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사실 귀신이라는 것은 함부로 사람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심약하거나.... 지나치게 어떤 것에 집착하여 내면세계가 병들 때 그 때 귀신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들을 보면 다 사람이 심적으로 약해 빠져 있습니다. 좀 못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면 좋을 텐데... 귀신은 성격이 못된 사람은 못 건드려요. 여러분.... 저도 귀신들렸다 하는 사람들을 지금까지 여러 번 보았는데.... 좀 뭐라 할까.... 심신이 좀 약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담대하면 귀신이 붙지를 못해요. 그리고 귀신이 붙었다고 해도 담대한 마음으로 제압하면 쫓겨나갑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담대한 신앙으로 귀신 따위를 쫓아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다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냐...?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바로 그겁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존귀를 타고 난 인간으로서 귀신을 제압하는데 하나님 나라, 모든 빛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어두움 속에 움크리고 숨어 있는 귀신 따위는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8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이 딴죽을 거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적도 아닌데 은근히 같은 편에 서서 딴죽을 걸면 그게 적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적을 보면 한 팀이 단합해서 적개심을 가지고 싸우고자 하는 의욕을 보이는데, 같은 편에 있으면서 행동은 같이 안하고 자꾸 딴죽만 거니까 이러면 팀의 사기가 저하되고, 분위기를 흩뜨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다 그 입에서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성경을 이야기합니다. 무늬로 보면 같은 편인데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귀신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저런다.... 이라니 이게 보통 딴죽을 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딴죽을 거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30절에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라고 하면서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신앙생활이란 어정쩡한 중간지대, 회색지대는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모르겠다....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겠다.... 이런 회피용의 중간지대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편이 아니면 마귀의 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반드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신앙적으로 “나는 아무 것도 안 할래.....” 이러는 순간에 마귀는 나에게로 다가와 “그러면 내 편....”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 말씀에서 ‘나와 함께하다’와 ‘나와 함께 모으다’ 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먼저 ‘나와 함께하다’는 이 말은 소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편이냐, 저 편이냐... 이 둘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 소속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 거침없이 예수님 소속이오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래 ‘크리스챤’이라는 말은 ‘크리스찬루스’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크리스찬루스’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속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뜻, 나의 마음, 나의 입장....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다음으로 ‘나와 함께 모으다’의 의미는 함께 사역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그저 마음으로 믿는다고 말하고, 마음만 있으면 된다, 생각만 있으면 족하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런 정도의 동의만으로는 바른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신앙에는 반드시 충성이 따라야 하며, 이 때문에 시간도 바치고, 정성도 바치고, 물질도 바치고, 몸도 바치고, 때로는 생명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충성 없이 그저 예수 믿는다고만 하는 것은 이런 기준에 비추어보면 온전치 아니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사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더 나아가 예수님과 함께 행동하며,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역에 방관하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찍이 성경학자 브루스는 ‘사단은 낭비가의 대장이요 예수님은 모으시는 추수꾼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자꾸만 흩뿌리고, 분열시키는 자요 예수님은 모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모아야 합니다. 모으는 일은 전도하는 일이요, 모으는 일은 봉사하게 하는 일이요, 모으는 일은 기도하게 하는 일이며, 모으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며.... 더 나아가서 함께 사랑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려고 애쓰시던 바로 그 마음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를 아끼지 아니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열정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물질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생각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주님과 함께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