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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히브리서 12:05-13/ 징계를 벗어나려면 [주일낮]
  • 조회 수: 540, 2014.09.22 15:37:03
  •   갓난아이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우리의 무의식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짜로 웃는 건지, 억지로 웃는 건지도 가리지 않고 엔돌핀, 엔케팔린, 세로토닌 등 좋은 호르몬을 마구 분비합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도 무의식은 진짜인 것으로 인식해서 좋은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 건강해... 부자야"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즐겁다, 감사하다, 기쁘다....는 말을 자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최은희씨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행복 전도사가 됩시다. 여러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하나 하죠. 저는 혀가 좀 짧은 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 노래를 시키면 언제나 “찌여영 찌여영 비켜나세요...” 이렇게 자전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혀가 짧으면 설교 할 때에도 좀 불편합니다. 가끔 말이 씹힐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떤 청년이 저의 아픈 곳을 찔러요. 목사님 말씀 들을 때에 한 번씩 말이 씹히는 때가 있는데 혀가 짧으신가 봐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말은 씹지만 음식 먹을 때 혀를 씹을 염려는 없어요. 여러분 즐겁게 해 드리려고 한 번 해 본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징계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왜 하나님은 성도를 징계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의하면 유익하게 하고 하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케 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얼굴을 가져야 하는데 하나는 사랑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징계의 얼굴입니다. 부모가 되면 부모로부터 징계를 받은 추억도 있고, 또 자녀를 징계한 적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모들이 하는 징계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징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징계는 주로 이 세상에서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문제로 징계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종종 분이 나서 혈기로 행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는 무한한 지혜와 사랑과 선하심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의 영원한 복락과 유익을 염두에 두고 행하시는 징계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정당한 징계를 받고 나면 아무 말 못하고 따릅니다. 비록 그 징계가 도를 넘고 화를 내며 하는 징계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징계야 말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독수리는 새끼를 낳아 그 새끼가 날 수 있을 때쯤 되면 절벽 위에서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이는 새끼가 미워서가 아니라 새끼가 올바르게 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징계하시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자녀 된 성도를 사랑하시기에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를 가볍게 여기거나 이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그 가운데 내재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이를 겸손히 받아들여 믿음이 더욱 성숙케 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람은 징계를 당할 때 쾌락주의로 빠지거나, 자포자기에 빠져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법으로 징계하시며, 연단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사용하시는 징계의 방법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1. 우리를 약하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스스로를 생각할 때에 자신이 뭔가 좀 된 사람인 줄 알아서 자신에게 능력이나 교양이나 인격이 좀 갖추어졌으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에게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어려움은 자신이 전혀 아무것도 아닌 아주 약한 존재임을 여실히 깨닫게 합니다. 뜻하지 않은 질병이 온다던지. 집안의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등...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듣고도 벌벌 떨어야 하는 아주 심약하고 연약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은 아무 때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 그러한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평소보다 약해졌다는 느낌이 느껴지면 아 이것이 혹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진 후에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2. 능욕을 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교만이 하나님의 기준을 넘어 극에 달하면 즉시 능욕을 보내셔서 징계하십니다. 정말로 자신과 비교를 해볼 때 도저히 상대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자신을 아주 우습게 취급하며, 자주 엉뚱한 오해도 받고, 주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자신에 대하여 수근거리기도 합니다. 밖을 나와도, 집에 들어가도 모두들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각해 보면 분통이 터지고,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자리가 익숙해짐에 따라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업신여기는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골리앗을 보내 능욕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윗을 보내 능욕하셨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야단입니다. 여인들이 훤화하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외쳤습니다. 사울로서는 능욕을 당하는 순간입니다. 그 소리가 귀에서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전부다 다 자기를 비웃는 것 같고, 다윗을 추종하는 것 같아보였습니다. 이렇게 능욕을 당할 때 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기 보다는 분노로 그 모습이 일그러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능욕을 받을 때에는 즉시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징계하고 계시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과 일체의 변론을 포기하고 얼른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를 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을 좇아다니며 설득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오해가 풀리지 않습니다.

       잠21:1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라고 솔로몬이 말씀합니다. 왜 지난 50여년 이상 미국과 소련에서 개발되어 온 핵폭탄이 지금까지 터지지 않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통치자들의 마음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조종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해서 그것을 실력으로 극복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무지한 오기로는 결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능욕의 징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또한 내 힘과 방법으로 나를 업신여기는 상대에게 환심을 사려고 아무리 귀한 선물을 하더라도 안 됩니다. 사람은 그때뿐이고 더욱더 배신감으로 능욕을 당할 뿐입니다. 이럴 때에는 그저 겸손하게 하나님께 무릎을 굻고 “하나님 그동안 제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하며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되고, 원수들의 상에서 잔치를 배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곤란을 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셔서 우리를 곤란케 하시면 어찌할 방도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됩니다. 전혀 내가 원했던 길이 아닌데 어떻게 일이 이상하게 꼬여들어 갑니다. 아무리 풀어내려고 해도 이 문제를 내 힘으로는 풀어낼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바울이 바로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인 선배님이시다 생각을 해보면 누가 약하다고 해도 바울 사도는 약하지 말았어야 하며, 누가 업신여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바울 사도는 업신여김을 당해서는 안 되었던 분입니다. 바울 사도는 침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 분이었기 때문에 곤란을 당할 필요가 없었던 분이십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들과 똑같이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할 때 바울은 가차 없이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즉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결과 바울에게는 더욱더 강력한 성령의 권능이 함께하여 바울로 하여금 전보다 더 큰 기사와 이적을 베풀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허락을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약할 그 때가 곧 자신이 강해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나, 같은 성도들에게 원치 않는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들이 약해지는 시기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때가 더욱더 강해지는 시기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살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큰 고난을 당했을 때는 수치와 괴로움과 낙담이 너무 커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욥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 그 고통과 슬픔의 시간들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후에야 그 괴로움이 얼마나 감미로운 치료제요, 주님의 자상하신 손길인줄 알았습니다. “근심이 도리어 더 큰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감추어진 축복이었으며 자기중심과 어리석음에 빠져있던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욥의 경우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고난은 아니었지만, 나중 상태가 처음 상태보다 훨씬 더 나아졌듯이, 저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저에게서 앗아가신 것보다 더 크고 소중한 것으로 돌려주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잠깐 눈에 보이는 잃어버림에 대하여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 잃어버린 것을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회개하고 엎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잃은 것 대신 다른 엄청난 축복을 준비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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