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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누가복음 16:01-09/ 지혜로운 악한 종 [주일낮]
  • 조회 수: 666, 2014.09.22 15:40:42
  • 구약성경에 의하면 솔로몬 왕은 스물 한 살에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답답한 중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고,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들었습니다.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이러한 참 귀한 기회에 솔로몬은 오직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 지혜를 구한 바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원수의 생명도, 장수도, 건강도, 그 많은 물질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 "나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이렇게 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혜가 가장 귀하다고 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으로부터 지혜를 배웠습니다. 잠언 6:6 이나 30:24 이하를 보면 개미에게서 부지런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사반에게서 배우고, 메뚜기에게 배우고, 도마뱀으로부터도 배우라고 말씀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선한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배울 뿐 아니라 악한 사람으로부터도 지혜를 배웁니다. 예수님께서도 "순하기와 순결하기는 비둘기같이 하라. 지혜는 뱀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으로서는 뱀이란 악의 상징입니다. 악한 자로부터도 지혜는 배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모델만을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주로 악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도 계속 지혜는 배워 나가야 한다는 그런 높은 차원의 지혜를 오늘 본문의 악한 청지기를 비유로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결코 이 청지기가 선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악이 정당화되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이 악한 청지기로부터 지혜, 그것만은 배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어떤 청지기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돈 많은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서 청지기를 둡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주인의 수하에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수하에 많은 종을 거느리고 일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돈을 대신 관리하는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자율성도 있고 타율성도 있습니다. 이것이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가 행실이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악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주인은 찾아와서 "이런 소문이 들리니 어찌 됐느뇨? 네 청지기 직분을 여기서 중지시켜 빼앗겠으니, 그 동안 네가 한 일을 결산하라. 셈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아주 지혜롭습니다. "자, 이제 와서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했습니다. 그것도 늘 땅 파던 사람이 파는 것이지, 안 하던 일 하기가 어렵다 하는 얘기입니다. 또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했는데 그것도 맞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어떡하면 좋겠는가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지혜를 짜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옳지 않은 청지기의 지혜입니다. 결국 주인이 칭찬한 것은 그 지혜뿐입니다. 이 청지기가 선하다든지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록 악하지만 지혜는 있었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그 지혜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다시 복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혜만은 칭찬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주인의 돈을 낭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한 가지 일을 생각했는데, 남은 시간과 남은 기간을 잘 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서 빚진 사람들을 다 오라고 해 놓고 "너 얼마나 빚졌느뇨?" "기름 백말입니다." "빨리 앉아서 증서에 오십 말이라고 써라." 했습니다. 이건 공문서 위조입니다. 그 다음에 "너는 얼마나 빚 졌는냐?" "밀 백 섬을 빚졌습니다." "아, 그래? 이제 팔십이라고 써라." 20퍼센트를 탕감해 주는 겁니다. 이것은 횡령입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아주 지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뒤에 자기가 쫓겨날 때 덕을 준 사람들이 도와 줄 것이 아니냐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지혜로운 바가 무엇입니까? 그는 끝을 아는 사람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습니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청지기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요, 주인의 심판에 따라서 언젠가는 끝이 온다 그 말입니다. 모든 것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재물을 가졌습니까? 이 재물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입니다. 건강이 있습니까? 아무리 위생을 지켜도 언젠가는 이 건강도 없어질 것입니다. 언젠가는 끝날 것입니다. 내가 앉은 회전의자에 항상 앉아 있는 것이 아니요 언젠가는 내려앉아야 됩니다. 기독교인의 고난관도 말하자면 이 고난도 잠시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난이 심해도 잠깐 지나갑니다.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몸뿐이요 결코 마음은 아닙니다. 고난은 잠깐이요 받을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앞에 있는 영광과 오늘에 당한 고난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각입니다. 끝은 옵니다. 반드시 끝은 있고 그 뒤에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의 또 한 가지 지혜가 뭐냐 하면 남은 것을 생각한 점입니다. 남은 시간, 남은 기회를 선용했습니다. 없는 중에도 남은 것, 끊어진 중에도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리 절망하는 것을 봅니다. 의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누구나 90퍼센트가 제 명을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아직도 의학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아이쿠 이제 죽었구나" 하면 곧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몸으로서는 더 살 수 있는 사람인데도 "이제 죽는다" 하면 미리 절망해서 거꾸러지고 만다는 말입니다. 고신의료원 암 병동에 있는 환자들 가운데서 암을 극복하고 생존하는 사람들과 죽는 분들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암환자라는 사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은 100%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살아있다는 시간들이 있음에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암을 극복하고 생존할 가망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이 쓴 소설 중에「아끼루」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산다"는 뜻입니다. 그 소설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25년 동안이나 시청에 근무하던 어떤 사람, 아주 몸이 건강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위암입니다. 의사는 말하기를 6개월 산다고 선언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고민을 합니다.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물론 직장에도 가고 싶지 않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셔도 재미없고, 누구를 만나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는 아주 절망하고 삽니다. 그러다가 어떤 꽃 파는 불쌍한 어린애하고 앉아서 얘기를 합니다. 말동무가 됩니다. "나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는 슬픈 얘기를 합니다. 이 철없는 어린애의 대답이 "그래도 6개월은 있잖아요" 합니다. 아, 그 말이 맞단 말입니다. 여기서 정신을 차립니다. "6개월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6개월은 있다" 이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용기를 얻어 가지고 6개월 동안 "내가 뭘 할까" 하며 그는 가능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귀중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죽음을 극복하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또 가가와 도요이꼬 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우찌무라 간조와 쌍벽을 이루며 일본의 기독교 사회주의의 거두이십니다. 평생을 고베의 빈민촌에서 선교하면서 목회하신 아주 유명한 분이십니다. 이 분의 책 중에 ‘사선을 넘어서’라는 자서전적인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그는 치명적인 폐결핵으로 죽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죽을 때는 죽더라도 불쌍한 사람들을 돕자’ 라는 결단으로 빈민선교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고 평생을 고베의 빈민촌에서 규휼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지나간 것에 눈물짓고,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을 받아드리고 지금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레이 크록이라는 사람은 53세 때까지 믹서기를 파는 판매원이다가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를 창업했습니다. 지금이야 53세도 청년이지만 1955년에 53세라면 거의 할아버지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53세 때까지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열정이 오늘날의 맥도날드가 있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가진 바가 있습니다. 없는 중에도 있는 것이 있고, 모르는 중에도 아는 것이 있고, 다 할 수 없는 것이면서도 아직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악한 청지기는 "네 보던 일을 셈하자" 하는 선언을 받는 순간 끝이 왔습니다. 그는 끝을 시인합니다만 아직도 기회가 있습니다. 이 셈을 끝낼 때까지는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 기회를 최대한도로 이용합니다. 남은 시간, 남은 정력, 남은 가진 것, 그 남은 바를 굳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후회하고 있습니까? 후회라는 것보다 큰 낭비는 없습니다. 미래의 환상에 젖어 있습니까? 이것은 더 큰 낭비의 출발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결론을 맺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이것은 역설적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써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이 아니라 "어차피 없어질 재물이니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어라." 이런 뜻이 있습니다. 좀 더 확대 적용할 것 같으면 이왕 없어질 돈이니 선행을 해라는 것입니다. 죽고 나면 어차피 재산은 남에게 갈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 남의 것이 되면 어리석은 사람이고, 살아 있을 때 남에게 주면 선행입니다. 영원히 가지고 누릴 그러한 것을 가지고 남에게 주라는 얘기가 아니요, 어차피 남의 것이 될 것을 미리 주라 그것입니다. 어차피 빼앗길 것이니 빼앗길 바에야 내가 주라는 이것뿐입니다. 무슨 대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어차피 잃어버릴 건강, 어차피 없어질 건강인데 힘껏 일해 봅시다. 어차피 남의 것이 될 재물인데, 그저 좋은 일에 함 번 듬뿍 써 봅시다. 어차피 떠나야 할 세상인데 있는 동안 보람 있게 살 마음 없습니까? 이게 바로 지혜로운 것입니다. 끝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여유가 있습니다. 단지 남은바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석양이 기울어집니다. 이제 남은 바를 굳게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악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후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지막 지혜를 가져 끝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됩시다.

    기도 :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 할 수 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된 것이 없지만 된 것이 있는 것처럼 속고 속이고 살아오는 어리석은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불충한 지난날을 이대로 시인하며, 주님의 심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을 주시옵소서. 주여 끝을 아는 지혜를 주시고, 그리고 남은 날을 아는 지혜를 주시고, 남은 시간, 남은 정력, 남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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