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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 (막 14:22-31) [고난특새]
  • 조회 수: 622, 2014.09.24 21:32:29
  • 유월절이 시작되는 명절의 저녁 식탁은 구운 양고기와 무교병, 포도주를 마시는 관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구운 양의 고기는 생략된 채 무교병과 포도주를 나눠주시고 '내 몸과 피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 스스로가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찢기실 자신의 몸을 인생의 영생 양식으로 삼을 것을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제 예배 설교에서도 성찬의 의미를 되새겼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이 성찬이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먹는 것은 인생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인생은 모태로부터 무덤까지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부친의 몸을 받고 모친의 태를 먹고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관심과 친구의 우정과 배우자의 애정을 먹고 삽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의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은 우리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고 경건한 생명을 허락하여 줍니다. 음식이 우리의 육체를 지탱시켜주는 중요한 요인이라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려주는 음식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인생의 영원한 양식으로 오셨습니다. 서로가 섭취하기를 원하여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 아수라장의 세상에 주님은 영생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양식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섭취하는 사람은 끝없는 탐욕의 굶주림이 그치게 되고 영혼의 포만감을 얻어 남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인생의 떡으로 오신 것을 증거합니다. 주님은 (1) 떡집이라는 이름의 베들레헴에서 나셨고 (2) 주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들이 증거하기를 말구유에 누운 아기가 바로 구세주라고 했는데 말구유는 말먹이 그릇이요, 갓난아기가 그 안에 담겨 있으니, '그릇에 담긴 음식'으로 구세주가 오셨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3) 주님 자신도 자기를 가리켜 하늘의 만나요, 하늘에서 내려 준 '생명의 떡'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2)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따라 나누어주시면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25절)고 하시며 성찬식을 마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은 성도들이 항상 기억해야 할 귀한 말씀인데 이것은 1. 천국에서 다시 우리가 화려하고도, 풍성한 식탁에서 주님과 다시 만날 소망을 안겨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찬을 대할 때마다 하늘의 풍성한 식탁을 기대하며 소망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2.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이제 땅에서의 시간은 거의 지나가고 수난과 죽음이 곧 온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성찬을 대할 때마다 주님 따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충성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몸과 피를 주시고 사신 보물 같은 존재들입니다. 승리하신 주께서 세상 끝날까지 동행하사 영육간에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 잔치하는 날까지 괴롭고 슬프더라도 하늘 양식이 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먹고 소망으로 마시며 사랑으로 나눠주는 생활을 합시다. 

    3) 이제 참으로 안타깝게도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의를 위하여 사신 예수! 제자들을 사랑하며 양육하신 예수! 가난한 자와 아픈 자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도우셨던 예수! 그 예수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셨던 제자들에 의해 이젠 버림을 당하시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삼년간 양육했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입니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까? 

    1. 믿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넘어지는 자 곧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버리는 자는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믿음이 뿌리 내리지 못하면, 누구든지 환난이나 핍박 앞에서 예수님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떼를 지켜 주는 자입니다. 목자의 경험이 풍부했던 다윗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건져내었고'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목자의 생활이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의 위험을 무릅쓰고 양떼를 지키는 일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죽게 되니 양떼가 제 스스로 어찌 위험한 데서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양떼에게는 언제나 성실한 목자가 언제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3. 감정적인 열정만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의 신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충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충정을 옳게 봐 준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만심의 발로라 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의 열정은 감정은 감정적 열정이 아니라 신앙적 열정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했다는 것은 그가 참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는 증거요, 신앙적 열정이 아닌 감정적 열정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그가 어떤 제자보다 그리스도를 사랑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사랑은 가변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이어야 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행함이 참사랑인 것입니다. 훗날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 문답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회복하고 평생 그 사랑을 소유한 채 그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4.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는 말에서 그의 교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와 제자들을 비교해서 자신이 제자들보다 더 용감하고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이 항상 그를 사로잡았고, 또 항상 그렇게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주님의 수제자였고, 제자들 중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현 위치를 가지고 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서 결국은 멸망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주간 첫 말 새벽에 불신앙과 교만을 버리고 진정으로 낮아져서 인생의 참 양식과 음료되시는 주님을 취하므로 우리 영혼이 살찌고 강건하여져서 주의 나라를 위해 힘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 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남 밤 동안에도 저희들을 주님의 품안에 지키시며, 편히 쉬게 하여 주시고 새 힘과 소망을 가지고 하루를 맞이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또 저희들을 재촉 하셔서 이 새벽에 주님의 거룩한 집에 나와서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부터 특별새벽기도가 시작됩니다. 그 동안 세상의 안일만을 추구하고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는데 게을렀던 저희들입니다. 용서를 구하오니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이 새벽에 새롭게 변화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단비를 내려 주셔서 빈들의 마른풀이 단비를 맞아 소생하듯이 저희들의 영육이 새롭게 변화되어 소생케 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이번 특별새벽기도를 통하여 새벽기도가 훈련되게 하시고 새벽잠을 희생하고서라도 기도해야 한다는 영적인 부담이 심령을 파고들므로 계속적으로 주님 앞에 새벽기도를 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회에 확실한 새벽 사람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께서 새벽에 이적을 행하심으로 새벽을 깨우는 종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치 못하는 성도들이 없게 하시고, 전교인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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