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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색 옷과 가시 면류관의 예수(막 15:16-32) [고난특새]
  • 조회 수: 675, 2014.09.24 21:37:29
  • 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희롱을 당하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문의 일정을 다시 한 번 절리해 보면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일 먼저 끌려간 곳은 (1)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의 집이었는데, 여기서 예수는 그의 하속으로부터 손으로 침을 당했으며, (2) 다음으로 간 곳이 대제사장 가야바가 있는 산헤드린 공회였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는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맞았습니다. (3) 세 번째로 간 곳은 빌라도의 관사입니다. 거기서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갈릴리의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헤롯에게로 보냈습니다. (4) 네 번째로 헤롯에게 끌려간 예수는 거기서 업신여김을 당하고 희롱을 당했습니다. (5) 다섯 번째로 간 곳은 다시 빌라도의 관저였습니다. 거기서 예수는 채찍에 맞고 군병들로부터 옷을 벗 기우고 홍포가 입혀졌으며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갈대로 맞으며 희롱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갈대로 머리를 맞고 다시 홍포를 벗기고 다시 먼저 옷을 입고 희롱을 당한 후에 골고다를 향하셨습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 뒤에 달리셨을 때 그들은 모욕하고 희롱하고 욕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수치와 능욕을 당하신 것은 이사야 53장 3절과 4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을 이루려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빌라도의 법정에서의 신문은 예수님을 희롱하는 일에 있어서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무리들은 왕들이 입는 홍포, 자색 옷을 입히고 날카로운 가시로 만든 관을 머리에 눌러 씌움으로 고통을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씌운 것은 조롱거리도 되거니와 그 머리에 깊게 씌움으로 고통을 가하기도 위한 것입니다. 게다가 군인들은 그 가시면류관이 예수님께 고통이 되도록 갈대와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탁탁 치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옷을 벗기고 다시 입히는 등 멸시와 조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수치 중에 가장 극한 수치가 옷을 벗김으로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통, 모욕, 수치들이 예수님께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수치와 능욕을 당하신 것은 이사야 53장 3절과 4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을 이루려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무지한 인간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갖 비방과 저주의 말과 행동으로 멸시하고 조롱합니다. 그러한 멸시와 조롱은 주님으로서는 온당치 않은 것이었으나 우리를 위해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을 위해 멸시와 천대, 조롱이 올 때 주님을 위해 기쁘게 받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홍포와 가시면류관... 그리고 그 손에 갈대를 주어준 것은 왕의 모습으로 꾸며 놓고 조롱하고 빈정거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사람들도 똑같은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왕이라 하지만 우리의 삶에 예수님을 우스꽝스러운 왕으로 만들어 놓고 전혀 왕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도 이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이나 똑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만들어 놓고 조롱하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본문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 시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비록 짧은 한 절에 요약되어 있으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로마 군병들이 '억지로 같이 가게' 한 십자가였습니다. 원래 죄수는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가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문에 의해 시달린 나머지 그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동기가 어찌 되었든지 비록 억지에 의한 요구라 할지라도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기독교인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5:41). 바로 이 말씀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시몬에게 있어 그 십자가는 그에게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잠간 뿐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날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함으로 주님을 위한 고난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고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순간적으로 보면 고통이나 길게 보면 축복이 됩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시몬을 소개하는데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기록하던 당시 그가 모든 이들이 알 수 없었던 덕망 있는 신자였음을 증명하여 줍니다. 시몬의 집안은 분명 이 일을 계기로 믿음의 집안이 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은 그 자신에게 복이 되고 후세에 알려질 뿐 아니라 그로 인하여 집안과 후손도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고통은 오히려 축복이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3. 성문 밖에서 지신 십자가 ....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으로 갔다고 하였는데 '골고다'가 '장소'로서 예수의 대속적 죽음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곳이 예루살렘 성문 밖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제사의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 속죄를 위한 제물의 피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고 그 제물의 고기는 영문 밖에서 불사른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써 인류의 죄를 사함받기 위하여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속죄제로 드리는 아사셀 염소도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회막문에서 광야로 내보내졌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철저한 도말과 죄의 철저한 유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속죄제물로써, 아사셀 염소로서 성문 밖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의 십자가는 만왕의 왕으로서의 그 보좌이며, 그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은 세상 만민을 그 앞에 경배케 하는 권능의 홀이며, 그가 쓰신 가시관은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의미합니다. 그는 패배하심으로써 승리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영원히 사셨습니다. 그는 죄인을 당신의 자녀로 만드시고 미움을 사랑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그리고 그 부끄러운 치욕을 영원한 영광으로 바꿔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승리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변함없는 사랑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여 주셔서 새벽을 깨우며 주의 전에 나오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기도하는 가운데서 우리를 만나고,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육신을 붙드사 강하게 하시고, 지쳐 있는 우리의 심령을 붙드사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막힌 문이 열려지게 하시고, 우리의 상한 심령이 회복되고, 육신의 질병으로부터도 치유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염려와 근심, 아픔과 절망이 기도를 통하여 남김없이 다 사리지고 떠나가게 하여 주옵시고, 죄악과 사탄의 세력이 우리를 틈타지 못하도록 오늘도 지켜 주옵소서. 이 시간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항도교회에 더욱 더 은혜를 베푸사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시고,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여 주셔서 가정 가정마다 은혜의 강물이 흘러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생명이 넘치는 가정, 구원받는 믿음의 가정,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들이 날마다 더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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