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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느헤미야 07:01-04/ 느헤미야의 인구조사 [주일낮]
  • 조회 수: 765, 2014.09.24 22:05:26
  • 요즘 새벽마다 느헤미야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굉장히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1장에서 6장까지는 52일 동안 행해진 성벽재건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고, 7장부터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회복에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느헤미야 7장은 신앙회복을 위해 느헤미야가 시도한 첫 번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구조사였습니다. 흔히 옛날에 인구조사의 의미는 세수, 즉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목적이 다분 했죠.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인구조사를 그런 의도로 했다 해도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의도로 인구조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7장 5절에 보면 느헤미야가 인구조사를 한 동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5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인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보계대로 계수하게 하신 고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를 얻었는데....” 5절을 주목하면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인구조사를 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인구 조사할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타냅니다. 왜 하나님은 성벽완성 후 인구 조사를 하게 했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레위인의 혈통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노력은 먼저 1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1절에 나타나는 문지기, 노래하는 사람, 레위인들은 다 성전에 관련된 직분을 의미합니다. 이 1절에 나타난 문지기, 노래하는 사람...의 직분에 대해서 알아보려 하면 역대상 25, 26장을 잘 읽어보아야 합니다. 역대상 24장부터서는 다윗이 정복전쟁을 다 끝내고 국가의 조직을 새롭게 하는데 24장은 제사장, 25장은 성전의 노래하는 자, 26장은 성전 문지기.... 이렇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래하는 자들, 성전문지기들의 신분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성전에 관련된 직분을 예사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70년 식민지 생활로 인해 이러한 신앙의 기반이 다 무너졌습니다. 64, 65절을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그 동안 자격 없는 제사장들이 교묘하게 이스라엘 공동체에 파고들어 백성을 대신해서 중보기도 하며, 제사를 지내는... 말하자면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특권을 행사하며 제사장이 누리는 권리를 누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혼탁하게 한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무자격자들을 정리하면서 이스라엘의 제사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회복되어야 제사가 회복되고, 제사가 회복되야 신앙이 회복되고, 신앙이 회복되야 나라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신앙을 새우는데 있어서 직분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도 한 장면을 기억합니다. 부산 연지동에 살다가 좌천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옮겼어요. 그러고 한 2년 정도 다녔는데 한 날은 저의 모친이 직장에서 일찍 오셔서 교회에 가신다고 신경 써서 옷을 챙겨 입는 것입니다. 주일도, 수요일도, 금요일도 아닌데.... 교회에 왜 가시냐고 물었어요. 그러니 교회 당회에서 서리집사 면담을 위해 부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긴장을 하며 준비하시던지 그 장면을 아직도 제가 기억합니다. 그 때 종이 한 장을 잘 접어서 가방에 넣는데 그게 서리집사 조사서였어요. 공 예배 출석, 십일조 헌금, 자녀들의 신앙 유무.... 이런 것들을 미리 체크해서 면담에 제출하는 것인데 오늘날의 수준으로 치면 거의 피택 장로급 면접입니다. 제가 걱정이 되는 게 뭐냐 하면 지금 우리교회 4, 50대에서 장로 피택이 된 후에 노회 면접에 가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노회 면접에서 기본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새벽기도, 공예배 출석인데... 이런 거 물어보면 예...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거 못했다 그러면 거절당하는 겁니다. 여러분... 굳이 장로, 안수집사, 권사.... 이런 직분 생각할 것도 없이 공예배 출석, 십일조... 이런 것은 세례교인의 의무 아닙니까? 교회 헌법에서 교인의 조건에 보면 다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중직자 피택의 조건이 되니, 뭐니... 이러는 형편이니까 오늘날 교회 직분이 얼마나 흐려져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바로 새우고, 직분에 임하는 자세를 바로 새워야 우리 교회가 잘 될 줄 믿습니다.

      둘째, 느헤미야의 인구조사는 ‘예루살렘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족보를 구해서 그들 중 얼마를 인구가 턱없이 부족한 예루살렘 성내로 이주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족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보고자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오늘날처럼 황폐화 된 것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버리고 정치적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 이런 변두리를 선호했습니다.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있으면 손해였죠. 세금 착취도 심하고, 사상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것은 식민지 통치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죠. 예루살렘은 정치중심지, 종교중심지니까 식민통치를 위해서는 예루살렘이 잘 돌아가면 별로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망이 된 거죠. 아무리 성벽재건을 해 놓아도 그 안에 사람들이 살지 않으면 다시 황폐화 되죠. 느헤미야는 이런 사실을 잘 알았기에 예루살렘을 떠난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루살렘에 기업을 두고 있는 자들은 다 돌아오라... 이런 뜻입니다. 억지로라도 다시 데려오겠다 하는 그런 의지가 엿보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중심으로 살았듯이 우리는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니까 예루살렘이 그렇게 황폐화 된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의 중흥을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떠나간 유대인들이 돌아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가 잘 되고, 우리 가정이 잘 되고, 우리 자녀들이 잘 되려면 세상으로 향하던 발길이 교회로 돌아와야 되는 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적 흐름이 우연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제적 성장은 교회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올 때에 나라가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교회에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나라의 경제성장률도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이로운 경제적 성취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예배의 기적, 기도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2프로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동력은 더 약해져서 2030년 정도 되면 거의 0% 내지, 마이너스로 내려갈 거라는 예측까지 있습니다. 그 때는 지금 공부하는 우리 자녀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데.... 이 자녀들은 돈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해요. 우리는 가난했지만 예배하며, 기도하며 가난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 우리 자녀들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으며 그렇게 가난을 견디어왔습니다. 그런데 돈으로 키우는 우리 자녀들은 신앙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예배도, 기도도 없습니다. 이런 자녀들에게 경제적 혹한기가 닥치면 어떻게 견딜까요? 누구를 의지할까요? 존경하는 부모님들이여.... 자녀들에게 왜 예배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떠나게 합니까? 하나님 없는 공부, 예배 없는 그런 공부 시켜서 뭐합니까? 제가 욕먹을 각오로 이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요셉은 한 부족의 존귀한 왕자처럼 자랐지만 하루아침에 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는 하루 아침에 왕자에서 종이 되는 신분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견디기 힘들죠.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셨기에 절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죄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순결을 지켰습니다. 자기 신념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지켰고,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어 마침내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를 통치하는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요셉처럼 하루아침에 왕자의 신분에서 종의 신분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럴 때에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환경과 고난을 극복할 능력이 있습니까? 신앙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구걸을 하며 살지언정 지옥에는 가지말라.... 제 아내가 휴가 온 아들에게 읽으라고 사 준 책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지옥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는 자녀들은 구걸하며 살 턱이 없죠. 

    오늘날 교회는 얼마나 멋지게 지어놓았습니까? 그런데 그 예배당에 사람들이 비어가니까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좋은 예배당이 미국, 유럽처럼 술집으로, 클럽으로, 아니면 모슬렘 사원으로 다 바뀌게 되겠다 하는 거죠. 

     따라서 전체적으로 느헤미야의 인구조사는 현제 이스라엘의 영적 수준을 나타내고 이를 토대로 성벽재건과 같이 신앙재건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살지는 않습니까? 시온의 대로가 열린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 항도교회 모든 성도들의 심령 속에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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