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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08:01-13/ 두 그룹의 차이 [수요]
  • 조회 수: 1172, 2014.09.24 22:17:44
  • 430장 찬송


    오늘 말씀에도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1절을 볼까요? 같이 읽어봅시다. "그 즈음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왔다고 되어있습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빼고 4천명이 넘는 숫자입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 엄청난 숫자가 마가복음 7:31절에 보면 이방 지역인 두로와 시돈 지경에서부터 데가볼리를 거쳐 갈릴리 지방까지 따라왔습니다. 이 거리는 약 60키로의 거리입니다. 60키로, 약 150리 되는 길을 4000명 이상이 따라온 것입니다. 그것도 오늘 말씀에 보면 사흘간이나 굶어가면서 따라왔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 이 시대는 선물을 주면서도 예수 믿으라고 해도 잘 믿지 않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흘간이나 굶어가면서 따라오다니 정말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이들을 평가해 보면.....


    1. 신앙의 배경이 없었던 이방인 지역 사람입니다. 7장에 나타난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식이 없었으나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본고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좋은 믿음이라고 해서 이들의 믿음은 훈련된 믿음도 아니고 철학과 논리와 지성에 근거한 믿음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교리적이고 전통적인 믿음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을 받아드려 단순히 믿은 것입니다. 믿을까 말까가 아니라 찰싹 믿어버렸습니다. 미지근한 숭늉처럼 믿은 것이 아니라 흥분을 하면서 믿었습니다.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4일 동안이나 굶어가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2. 이들은 준비 없이 따라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방 마을인 두로 지방을 잠깐 들려왔기 때문에 먹을 것도 별로 챙겨오지 못했고 아무 준비 없이 따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여행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좋은 믿음은 환경과 관계가 없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에는 조건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환경이라는 것, 조건이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믿음을 더 어렵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둔한 제자들


    오늘 환경을 바라보았던 제자들을 봅시다. 4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은 얼마나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도 엄청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광야가 나타나자 믿음이 그냥 사라져버렸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광야에서먹을 것을 구합니까? 이곳에 레스토랑이 있습니까? 중화 요리집이 있습니까? 아니면 서대회집이 있습니까? 주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그렇게 오래 같이 있었음에도 듣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는 몇 일 동안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아침 일찍 회사에 가야했습니다. 부인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싫었던 남편은 테이블 위에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침 6시에 깨워 줘"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남편이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오전 9시가 넘었을 때였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부인을 찾으러 벌떡 일어났는데 테이블 위에 메모지가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6시에요. 빨리 일어나서 나가요!"


    서로 말은 하지만 듣지는 못하는 부부들, 하나님이 말씀은 하시지만 듣지를 못하는 제자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듣지 못하는 교인들, 오늘 이것이 현대 교인들의 일그러진 초상들입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둔한 제자들입니까? 예수님을 오래 믿었으면 무엇을 해요?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으면 무엇을 해요? 그 많은 만남이, 그 많이 들은 말씀이 광야라고 하는 빈들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이 정도였습니다. 이방인들은 사흘을 굶었어도 꿈적하지 않았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수님과 같이 있었던 제자들은 광야 앞에서 맥을 못쓴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던 것이 오히려 올무가 되어버린 것 아닙니까? 많이 듣다가 보니까 소중함이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도 말씀을 너무 많이 대하다가 보니까, 테이프도 많이 듣고, 방송도 많이 듣고 그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많이 듣다가 보니까 사실 그 말씀들이 너무나 소홀해 진 것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IMF도 아닙니다. 배우지 못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최대의 문제는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린데 있습니다. 믿음이 무디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능력이 충만히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면 점점 매말라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사도행전 3:6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서서 걸으며 뛰며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우리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힘을 얻고 일어나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면서 들어가는 교회, 죽음과 절망과 홍수와 전쟁, 복잡한 삶의 현실 속에서도 기쁨으로 충만한 얼굴로 뛰어들어가는 교인 이 모습이 진정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저는 지난주 당회를 하면서 장로님들에게 제 진심을 다하여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사람의 계획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자리잡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 생명이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생명이 넘쳐서 기적이 일어나도록 해야합니다." 생명이 넘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그 생명이 충만한 교인이 되기를 축원, 그 생명이 넘쳐서 기적이 홍수처럼 일어나는 교인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광야 빈들에 모였던 병든 사람들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볼 줄을 알았습니다. 이들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이들은 경험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흘을 그 먼길을 굶고 걸어오면서도 끄덕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영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오늘 예배가 한시간만 넘어가고 시계를 자꾸 바라보는 우리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오늘 우리들은 광야에 모인 예수를 따르는 이 병든자, 가난한자 이들이 믿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굉장히 축복하셨습니다.

    1.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2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흘동안이나 예수님 한 분 바라보고 쫓아온 이들을 바라보시며, 이들의 배고픔을 바라보시고 사랑을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가다가 다 기진하여 이 사막에서 죽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서 기적을 배풀어주어야 하겠다. 그래서 제자들을 향하여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느냐 가져와 보아라."

    주님을 따르면 사랑을 받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 인생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어둡고 험악하고 병든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그 인생이 빛을 냅니다. 아무리 죄가많았던 인생이라도 밝은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리 죽을 병에 걸렸던 인생이라도 주님을 따르면 더욱 건강하게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인생으로 삽니다.

    78년 어느날 위암 말기의 선고를 받고 수술한 후에 지금까지 하루에 한번씩 가사상태에 몇시간씩 빠지면서 지금까지 시한부 인생을 살아온 시인 오혜령씨의 신앙을 들어보십시다.

    "당신의 사랑이 없는 생애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눈을 들어 얼굴을 들어, 비로소 별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옛날 동방박사들이 올려다보았던 그 별 하나를 마침내 본 것입니다. 오 주님 당신이란 별 하나, 그 사랑의 별만을 끝끝내 보게 해주소서" 오혜령씨는 20년간을 병으로 육체의 사형선고를 받고도 주님의 사랑 하나 가지고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온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십시오. 전심으로 따르십시오. 순수하게 따르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따르실 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 또 내가 너의 것이라. 너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땅의 깊음 가운데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네 모태에서 너와 함께 있었느니라. 너는 내 손으로 조각하였고 내 품의 그늘 안에 너를 숨겼느니라. 나는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너를 보고 있고, 엄마가 자녀에게 하는 것보다 더 친밀한 보살핌으로 너를 돌보고 있느니라. 난 네 머리카락도 다 세었고 너의 모든 발걸음을 인도하고 있느니라. 네가 어디를 가든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어디서 안식하든 내가 지키리라. 너의 모든 배고픔을 만족시켜 줄 양식을 주고, 너의 모든 갈증을 해갈시켜 줄 음료를 주리라. 내가 너에게서 내 얼굴을 숨기지 않으리라. 내가 나를 알 듯이 나를 아는 것처럼 너도 너 자신을 알 듯이 나를 알게 되리라.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의 아버지, 어머니, 오빠, 누나, 애인, 배우자 그래 너의 아이까지 될 것이라. 네가 어디에 있든 내가 거기 있을 것이라. 어떤 것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할 것이라. 우리는 하나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하나가 되는 축복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받는 축복입니다.

    2. 명령을 받습니다.

    6절을 다같이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제자들이 앞에 놓더라" 주님은 이들에게 앉으라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항상 명령하십니다.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노아에게 방주를 지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믿음을 복을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기 위해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무엇이 인생에 복입니까? 아무런 명령도 받지 못한체 빈둥빈둥사는 것이 인생의 복입니까? 아니면 분명히 할 일을 명령받고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까? 군대가면 제일로 불쌍한 것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따까리입니다. 중대장들 밥 날라다 주고 구두 딱아주고 부식타다 주고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군인들입니다. 좀 편한 것 같지요. 훈련도 안 받으니까. 그러나 이런 군인들처럼 불쌍한 군인은 없습니다. 그게 제대로 총을 쏠줄 압니까? 훈련을 제대로 받기나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까 중대장 밥이나 타다주는 따가리 시킨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군인 대우도 받지 못해요. 계급도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만은 그냥 계급이 야 딱가리입니다.

    아무런 명을 받지 못하는 인생,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인생 참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면 주님이 명령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명령을 받았습니까? 지금 조용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까? 너 먼저 가족을 구원시켜야 해. 너 좀더 이웃을 사랑해야해. 너 좀더 말씀을 살아봐. 너 좀더 기도해봐. 좀더 열심히 살아봐. 좀더 공부를 해봐. 좀더 성실하게 살아봐..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인생을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사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받아서 그 일에 전념하십시오. 이 세상에 가장 큰 상이 있다면 노벨상입니다. 노벨상을 만든 노벨은 정작 참 불행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 사람은 몸이 너무나 약해서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재능을 가지고 인류를 좀더 큰 공헌을 하기 위해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이 노벨이 죽을 때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나의 모든 제산을 더 가난하고 뜻이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웃에게 주어라"


    마지막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다려간 노벨,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 이런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3. 흩어보내심을 받습니다.


    9절 다 같이 읽으십시다. "사람은 약 4천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명령을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이제는 흩어지십시오. 흩어지는 자들이 믿음이 있는 자들이요, 축복을 받는 자들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들었으면, 은혜를 받았으면 믿는 사람들이 그냥 모여있는 것을 참 싫어하셨습니다. 얼마나 그냥 모여있는 것을 싫어하시느냐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느니까 핍박이 일어나게 해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모든 교인들이 다 흩어지로록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은혜를 받고 나서 아무것도하지 않은체 모여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 성경공부, 봉사 이런 것 하지 않으면 주로 무엇합니까? 남 원망하고 모함하고 남 비난하고 소문 퍼트리고 이런 것 하지 않습니까? 교회처럼 말 말많은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말이 교회를 무너트리고 성도를 무너트리고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공부 끝났으면 바로 흩어지십시오. 봉사하는 일, 예배드리는 일, 기도하는 일 끝났으면 세상을 향해서 흩어지십시오. 세상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십시오.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사십시오.


    여러분 세상에 나가십시오. 나가서 먹고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믿음과 신뢰에 대해서, 세상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이야기보다 사랑을 주고 이야기하십시오. 늘 변하는 우리들의 생각들보다 영원이 변함이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십시오. 쓸데없는 동료들의 까쉽이나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 세상에 가장 깊이 있는 주님의 목소리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우리들보다 세상에 나가서 이 세상보다 더 위대한 분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을 주어야합니다. 성령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할 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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