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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갈라디아 03:01-09/ 어리석은 갈라디아 교인 [새벽]
  • 조회 수: 886, 2014.09.24 22:19:27
  •   1. 어리석은 갈라디아 교인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대하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짓 선생들의 꾐에 넘어가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도리를 잊어버린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밝히 보았으면서도 거짓선생들의 꾐에 넘어간 사실에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십년 동안 성경을 배우고, 교리를 배웠으면서도 이단의 꾀임에 쉽게 넘어가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십자가를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단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던 자들인데 이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2.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결정적인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으면 뭣 때문에 성령을 주셨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한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방인들로 율법에 대하여는 아는 것도 없었고 지키는 생활도 하지 못했었다. 그들은 율법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고 율법으로 의를 얻고저 힘쓰는 생활도 하지 않았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구원을 받았으며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해 온 것이다. 바울이 왜 여기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무엇으로 그 성령을 받았느냐고 다구쳐 묻고 있는 것인가? 성령을 받는 일은 구원의 모든 일이 완성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에 성령의 임재하심으로부터 그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성령은 구원의 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그 성령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다. 성령의 임재는 곧 새사람의 증표인 것이다. 성령은 믿는 사람 안에 들어 오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은 영을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으로 살리신다. 이 같은 살리심이 거듭나는 일인데 우리의 거듭남은 곧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령의 일차적인 역사이시다. 

     3.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느냐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최종적으로 다구친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반격을 가한다. 여기서 육체는 성령이 하시는 일과 대조를 이루는 육체로 정욕과 자랑으로 옛사람의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바울이 본 절에서 주장하는 바는 자신의 육체를 이미 십자가에 못 박은 내가 어떻게 다시 육체적인 자아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분명 성령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생애를 시작했지만 그들은 이제 거짓 선생으로 말미암아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어버린 옛사람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했다면 성령으로 끝맺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처음 그 출발점도 성령이며 믿음도 성령의 선물로 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소망 역시 성령이 주신다. 인생의 최종적인 소망은 천국인데 이 천국의 소망은 오직 성령으로만이 얻게 된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로 그리스도만 믿게 하며 그의 십자가 공로만 의지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성령이 처음이 끝인 것이다. 우리는 분명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들이다. 결코 육체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4. 아브라함이 얻은 의

     이제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사람이 어떻게 의를 얻느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6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고 논증하므로 아브라함이 받은 의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가 받은 의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된 것이다. 롬 4 : 18절 말씀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자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 22절에 와서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 아들에 관한 약속과 그 아들로 말미암은 의와 구원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의를 가진 자들이며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아브라함이 약속 받은 유업을 아브라함과 함께 받을 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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