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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골로새서 04:02-18/ 마지막 권면과 인사 [새벽]
  • 조회 수: 868, 2014.09.25 15:23:05
  • 1.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기도에 얼마나 힘쓰는지 1:9절을 봅니다. 에바브로를 통하여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는데 기도의 사람일수록 기도의 중요성을 알죠. 그래서 골로새교인들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전도할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사도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갇혔거나 아니 갇혔거나 간에 전도할 문 즉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할 문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복음을 증거 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눈이 밝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나라에 대하여서는 장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며 사단의 권세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만이 눈을 뜨게 하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교회의 기도는 이런 기도에 힘을 쓰고 이런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외인들에게 지혜롭게 행하고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 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세월을 아끼는 것인데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더욱더 외인에 대하여 기회를 선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외인에 대하여 말할 때에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과 같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이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말은 외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든지 퉁명스럽게 한다든지 아니면 교만해 보이면 누가 진리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면 말도 은혜로운 말이 됩니다. 은혜가 넘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언제나 친절하고 유익한 말을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 중에 얼마나 무익한 말이 많은지 아십니까? 남의 흉을 보는 말에서 모함하고 참소하는 말까지 마귀의 주특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진리에 대하여 물어보려고 오겠습니까?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대답할 말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3:15-16절입니다.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믿지 않는 자들이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오는 그런 기적을 맛보아 가기를 소원합니다. 

    3. 오늘 마지막 인사말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 때문에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게 되었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두기고라는 사람입니다. 골로새교회에 바울사도의 편지를 들고 간 사람입니다. 이 외에도 에베소서와 빌레몬서도 전달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얼마나 신실하였으면 형제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일까요? 두기고의 특징은 신실함입니다. 신실함이란 충성이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둘째로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다가 어떤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종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역시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9절을 보시면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두기고와 함께 보낸다고 합니다. 전에는 도망을 친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셋째, 마가가 나옵니다. 이 마가 때문에 베드로와 바울 간에 충돌이 일어났지요. 마가는 성숙하지 못하여서 팀사역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바울과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후에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바울의 사역에 참여합니다. 넷째로 에바브로입니다. 인사에 거론된 사람으로는 여섯 번째 사람입니다. 골로새지역에 복음을 전한 사람으로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바울에게 전한 사람입니다. 이 에바브로도 지금 바울과 함께 사역하는 중이기에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항상 기도합니다. 다섯째로 누가와 데마입니다. 14절을 보시면 누가에 대하여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라고 합니다. 누가는 바울사도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동역한 사람입니다. 의사이기에 바울의 건강도 돌보면서 사역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누가를 사랑받은 의원이라고 하는 반면에 데마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수식어가 없습니다. 그냥 데마도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인물들은 다 신실하고 사랑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역사한다는 그런 표현들이 다 있는데 이 데마는 아무런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평소에도 별 신실하지 못하였든지 결국에는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4:10절입니다. “9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미지근하면 결국 떠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눔바입니다. 15-16절입니다. 눔바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여인으로 자기 집을 교회로 내어놓은 사람입니다. 끝으로 아킵보입니다. 아킵보는 골로새 교회에 사역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람은 모두 10명입니다. 그 중에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게 사역하여 사랑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도에 포기하였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모릅니다. 누가 어떻게 될지를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토록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의사도 노예도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마가처럼 중도에 포기한 자라도 돌이켜 주실 것입니다.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났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택한 백성이 아니라면 끝까지 세상을 사랑하다가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사람이라면 마가처럼 돌이켜 주셔서 유익한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을 것은 신실하신 주님입니다. 자기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게 하시고 자기 백성이 아닌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지 못하게 조치하실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를 맛보고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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