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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19:01-12/ 이혼에 대한 가르침 [새벽]
  • 조회 수: 746, 2014.10.08 11:18:58
  • 1. 사람이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가르침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위하여 이 질문을 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혼을 반대하신다고 말하면 그들은 그의 말을 악용하여 이 지방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반감과 분노를 일으키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세 율법의 적으로 비난했을 것이다. 그것은 모세 율법이 이혼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다면 그들은 메시야의 교리가 갖추어야 할 완전성이 그리스도의 교리 속에는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비록 이혼이 허용되긴 해도 보다 이 엄격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혼을 좋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질문은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그들의 율법은 간음의 연고가 있을 경우 이혼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혼이 아주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질문은 "난잡한 사람들이 아주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옳다고 생각되는 연고가 있으면 이혼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2. 이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4-6)


     비록 그 질문이 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위하여 제기되었다 해도 그리스도는 그들의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하셨다.  그의 답변은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의 뜻과 약속으로 말미암아 가장 완벽하게 결합되었다면 어떤 경우에도 쉽사리 헤어지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세 가지 사실을 들어 남편과 아내의 결합을 주장하신다.


      (1) 그리스도는 아담과 하와의 창조에 관하여 바리새인들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에 호소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반문하신다.  즉 "너희는 성경에서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것을 읽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한 남자를 위하여 한 여자를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을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취할 수 없었다. 그것은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그들의 결합이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2) 기본법으로서의 결혼 : 이는 곧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는' 것이다.(5절).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보다 더 밀접하다. 만일 부자간의 관계가 쉽사리 깨질 수 없는 것이라면 결혼에 의한 결합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연고로도 한 자녀가 그 부모를 떠나거나 한 부모가 그 자녀를 버릴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3) 결혼 계약의 특성 : 결혼은 인격적인 결합이다.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자녀들은 그 자신의 지체들이지만 그의 아내는 그 자신과 같은 것이다.  결혼에 의한 결합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결합보다 더 밀접한 것처럼 그것은 인체 재의 한 지체와 다른 지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 관계와 같이 결합된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는 결론을 내리신다(6절).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 멍에를 씌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를 만드신 것이다.  비록 결혼이 교회의 고유한 규례가 아니고 세상 전체의 규례라 해도 결혼은 '하나님께 합당하게'(요삼 1:6)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딤전 4:5) 지켜져야 한다.  이 결혼 규정을 양심적으로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은 부부간의 의무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부부 관계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의 규정에 의해 짝지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규정으로도 나누어져서는 안된다.


     3. 그리스도의 답변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대들(7)


     사람이 제 아내를 내어 버릴 경우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7절).  여기서 그리스도는 이혼을 반대하는 성경적인 근거를 주장하신 반면 바리새인들은 이혼을 인정하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 주장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외관상의 모순은 타락한 사람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4. 바리새인들의 반대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8,9)


      (1) 그리스도는 모세의 율법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오해를 시정해 주신다.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을 명령으로 생각했지만 그리스도는 그 율법을 허용이나 묵인으로 간주하신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조그마한 틈만 주어져도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런 묵인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고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모세가 이와 같이 묵인을 하게 된 것은 결코 그들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8절).  모세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였던 것을 한탄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할 때에도 완악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완악한 사람은 자기 아내를 거칠고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일을 수치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 아내를 내어버리도록 허용된 것이다.  이는 곧 아내를 데리고 있으면서 더 나쁜 행동을 하는 것보다 이혼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친 사람이나 광란 속에 날뛰는 사람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약간의 양보를 하는 것이 더 큰 잘못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이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을 고려하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치유해 주고 있다.  그리고 율법은 죄를 알게 하지만 복음은 그 죄를 이기게 한다.


      (2)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에게 본래의 결혼제도를 상기시키신다.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규정 가운데 부패한 규정이 생길 경우 최초에 제정되었던 제도를 상기시켜 그 부패된 규정을 제거해야 한다.  사본이 오류로 가득찼을 경우 그 사본은 원본을 통해 조사되고 교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는 확고한 규정을 제시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9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전에(마 5:32) 말씀하신 것과 일치된다.  그는 이 두 곳에서 음행의 연고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이혼을 허용하시고 있다.  이혼을 반대하는 규정의 근거는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한 말씀에 있다.  만일 아내된 자가 음행을 범하여 다른 남자와 한 몸을 이루게 된다면 이혼을 반대하는 규정의 성경적 근거는 그 효력이 소멸될 것이며 그것은 이혼을 반대하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는 음행이 아닌 다른 연고로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이혼이 옳지 않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용서를 받았고 또 용서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서로 참고 사랑 안에서 서로를 용서한다면 이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며 그들이 생명의 은혜를 상속한 자들처럼 함께 산다면 그들은 이혼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5. 그리스도의 이러한 규정에 대한 제자들의 이의(10)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제자들은 이혼의 자유가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자유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자들은 만일 그들이 이혼의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경우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간은 타락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억제를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삶의 위로속에 포함된 십자가 때문에 이 삶의 위로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조건이 어떻든 그 조건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고 그 조건 속에서 얻게 되는 위로에 감사하며 그 조건이 지니는 십자가에 순종하고 현재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마음대로 결혼의 멍에를 벗어 버려서는 안된다면, 그 멍에를 지게 될 때, 우리는 사랑과 온유와 인내로써 그것에 어울리게 처신할 것을 결심해야 한다.  사랑과 온유와 인내가 있다면 이혼이란 가장 불필요하고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6. 이러한 제자들의 이의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11, 12)


     그리스도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12절).  그리스도는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10절)라고 한 제자들의 말을 인정하셨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성욕을 절제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독신으로 지낼 경우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은혜가 커지는 것이 가족이 늘어나는 것보다 좋으며 또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교제가 어떤 다른 교제보다도 좋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결혼을 금하는 것을 가장 불행한 일로 여기시고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결혼하기에 부적당한 경우를 두 가지로 말씀하신다.


      (1)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재난이 된 경우 : 이런 경우에 속한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고자가 되었거나 사람에 의해 고자가 된 사람들이다.  


      (2)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미덕이 된 경우 :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이 결혼하기에 부적당하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결혼 생활을 하기에 부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와 같이 결혼을 통해 얻는 모든 기쁨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 경건한 경지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런 기쁨들을 삼갈 수 있는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들이다.  독신으로 지내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타고난 자' 외에는 아무도 이 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욕을 억제하는 것은 일부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이므로 다른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독신 생활은 천국을 위하여 채택되어야 한다.  신앙을 위해 독신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그 독신 생활을 인정하시고 받아주신다.  독신 생활은 우리를 위한 최선의 조건이기 때문에 채택되고 지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독신 생활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최선의 조건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준비하게 하고 마음속에 간직하게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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