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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베드로전서 01:13-21/ 주실 은혜를 기대하라 [주일낮]
  • 조회 수: 352, 2014.10.17 12:45:59
  • 오늘은 베드로전서 1장 13절 말씀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라고 하신 말씀에서 힌트를 얻어 ‘주실 은혜를 기대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는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 그리고 이 구원을 우리에게 전하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치루어야 했던 그 대가를 생각해 볼 때 이 구원을 우리가 어찌 등한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 18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 구원을 위해 치룬 그리스도의 피값을 잘 알고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서도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가 히브리서 2장 3-4절까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이렇게 큰 구원을, 이렇게 엄청난 희생의 대가가 들어간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여기에 생략된 말이 있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이런 말씀이죠.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비록 어렵고, 핍박을 받으며, 고난 중에 있지만.... 답답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성도는 앞으로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며 살라고 당부합니다. 이게 바로 앞에서 말한 사노 소망이죠. 자 13절을 같이 읽읍시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이렇게 주님이 주실 은혜를 바라며 산 소망 가운데 사는 성도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13절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말씀합니다. 조금 전에 13절을 읽으셨죠. 허리를 동인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 한국식 문화는 무언가 큰 결심, 각오를 할 때에는 머리에 띠를 묶습니다. 저는 이제껏 뭔가를 결단하며 머리에 띠를 묶어본 적이 없지만 항상 그림을 보면 뭔가 결심하고 나면 머리를 띠로 묶더라고요. 그런데 성경에 나타나는 유대인 문화는 뭔가 큰 결단을 한다고 할 때 띠로 허리를 동인다고 표현합니다.


    성경 처음에 나타나는 표현은 출애굽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지시사항입니다. 애굽에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장자죽음의 재앙을 내리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양의 고기는 삶아서 먹되 무교병, 즉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밀가루만 반죽하여 화덕에 구운 빵을 말하죠, 이 무교병과 함께 쓴나물을 곁들여서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양 고기와 빵과 쓴 나물을 먹을 때 서서 허리를 동이고, 지팡이를 짚고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곧 바로 왕의 허락이 떨어지면 애굽을 탈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문화에 있어서 뭔가 큰 각오, 결심이 설 때에는 허리를 동인다는 표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허리를 동인다’는 표현은 ‘결심한다, 각오한다’는 뜻의 관용어처럼 사용되었죠. 예를 들자면 누가복음 12:35절에도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성도들은 깊은 한 밤 중에도 문을 열어줄 준비를 하며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들고 서 있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잠언 31장에 나타나는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도 “힘 있게 허리를 묶은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항상 떠날 준비태세를 갖춘다든지, 아니면 금방이라도 일할 태세를 갖춘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것은 군에서 말하는대로 5분 대기조죠. 5분 대기조는 항상 출동준비를 하고 기다립니다. 잠을 잘 때에도 전투복과 군화를 착용한 채로 잠을 자죠. 언제든지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떠날 수 있는 그런 자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허리를 동인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성도의 삶은 이와 같이 즉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라고 하면 이유를 달지 말고 즉각 하고, 떠나라고 하면 이유를 달지 말고 즉각 떠나고... 버리라고 하면 이유를 달지 말고 즉각 버리고.... 이것이 바로 마음에 허리를 동이는 신앙의 자세임을 믿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렵고 힘이 들 때에는 항상 마귀가 틈을 노려 우리의 신앙을 허무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공든 탑이 한 순간의 사욕으로 무너집니다. 14절에는 이전에 행하던 사욕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사욕이라는 것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오기 전에 가졌던 욕망입니다. 누구나 육신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살 때가 있습니다. 어디에 빠진다는 표현을 잘 쓰죠. 술에 빠진다든지, 성에 빠진다든지, 마약에 빠진다든지, 도박에 빠진다든지... 하여튼 빠진다는 말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빠진다는 것은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를 믿고 이런 것들을 청산합니다. 앞 절에서 허리를 동이는 것처럼 큰 결심을 하고 이런 모든 사욕에서 떠나죠.


    그런데 이런 사욕들이 언제 살아나느냐.... 우리가 어려움에 빠지면 우리 안에 잠재해 있던 사욕들이 꿈틀되며 본능적으로 되살아납니다. 예수 믿으면서 다 죽은 줄 알았던, 청산된 줄 알았던 과거의 사욕이 성도의 삶에 어려움이 생기니까 머리를 듭니다. 지금 베드로 서신을 받는 성도들은 어려움, 고난 속에 있습니다. 그동안 믿음을 잘 지켜왔는데 이대로 고난이 계속 되면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의 인격을 완전히 쏟아버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욕, 본능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분이라도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자만할 수 없죠.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어려움 일, 고난이 닥치면 그만 예수 믿기 이전의 육체적 본능들이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가끔 자신에 대해서 의심을 합니다. ‘그동안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는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으면 왜 이런 생각이 아직까지 나에게 있지?’ 거기에 대해서 마귀가 우리에게 속삭이죠. ‘그동안 너의 신앙은 허상이었다. 너는 믿음으로 산 것이 아니다. 잠시 고상한 채했을 뿐이다.’ 이렇게 마귀가 우리에게 도전하죠. 이렇게 마귀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의 본능 속에 숨어 있다가 틈만 나면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 본능, 이 사욕... 예수를 믿고 나서도 불쑥 불쑥 떠오르면서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힙니다.


    이 사욕, 이 육체적 본능 속에 마귀가 숨어있기 때문에 마귀로 볼 때는 이게 우리 안에 있는 견고한 진입니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는 진지를 먼저 구축해야 하죠. 그 진 안에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틈이 나면 쳐들어가는 거죠. 진이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우리의 사욕 속에 마귀가 숨어 있는데 이 사욕이 바로 우리가 깨기 힘든 견고한 진이라는 겁니다. 이 견고한 진을 완전히 부셔버려야 마귀가 숨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깨뜨려야 합니다. 이 견고한 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욕을 완전히 거두기 전에는 우리가 결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 아버지처럼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 사욕을 그대로 두고서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갈 수 있습니까? 거룩한 것처럼 흉내를 내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본질이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자만해서는 안 되고 항상 두려움과 긴장 가운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하셨으며, 17절에는 나그네로 있고, 고난 중에 있는 지금도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간권하신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같이 읽어봅시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다 이길 수 있는 것들입니다. 왜? 시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시지 아니하시리로다” 라고 하셨으며, 시편 56편 11절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셨고,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우리가 붙들고 있던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며, 받은 은혜를 쏟아버리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동안 믿음으로 살아온 우리가 믿음을 포기하고 마음대로 사욕으로 돌아 것입니다. 이걸 두려워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받은 믿음인데,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돌아왔는데, 우리가 어떻게 받은 은혜인데, 또 장차 주님이 나타나시면 우리에게 주실 은혜가 얼마나 큰데 이걸 버리고 과거로, 사욕으로, 욕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간단 말입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이 구원의 귀함을 18절에서 21절까지를 통해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이 18절부터 21절까지를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주님의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하죠. 얼마나 값진 피 입니까?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우리의 죄 가를 치루기 위해 흘리신 피 이기 때문에 보배로운 피, 보혈의 피죠. 이 보배로운 피로 얻은 구원.... 이걸 위해 고향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버리고 나그네로 여기까지 왔는데.... 주님의 피 뿐만 아니라 순교자의 피에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견뎌온 수고와 인내, 그 많은 세월들... 그 수고가 얼마나 큰데, 이제 와서 힘들다고 그동안 쌓아온 신앙의 모든 것을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과거의 사욕으로 돌아가 마귀의 종인 된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므로 어려울 때, 고난의 때에는 믿음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더욱 더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는 말이죠.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할지라도 고난의 때에는 사욕을 틈타 마귀가 역사하며 우리의 시계를 과거로 돌려놓고 그동안 우리가 걸어 온 믿음의 길을 헛수고로 돌리며 모든 은혜를 쏟아버리게 합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운 것은 사람도 아니며, 환경도 아니며, 마귀도 아니라 우리를 이기게 하시며,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불신앙과 과거의 사욕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바라는 산 소망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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