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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베드로전서 01:22-25/ 뜨겁게 사랑하자 [주일낮]
  • 조회 수: 577, 2014.10.24 12:21:49
  • 베드로전서 01:22-25/ 뜨겁게 사랑하자


    오늘은 베드로전서 1장 22절 말씀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이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에 따라 ‘뜨겁게 사랑하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 가을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을에는 아름답고, 싱그러운 꽃과 잎을 다 떠나보내고 오직 열매만 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깊은 가을에 서서 그동안 살아온 우리 인생의 열매를 생각해 볼 때 직장, 자신의 위치, 재산, 가정, 자녀들.... 이런 것들을 그동안 삶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열매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자랑할 만하고, 자부심도 갖게 하죠. 그러나 이런 것들에 사랑이 없다면 인생의 가을에는 자신의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힘과 정력, 열정이 다 떠납니다. 재산도 그다지 의미가 없어집니다. 자식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이웃에게 자랑할 거리는 되나 이미 떠난 자식들입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자신의 직장과 위치.... 그것도 이미 지나간 추억이며 그 자랑스러운 추억담에 귀를 기울일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명성 붙들고 현재를 한하며 허무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라고 하였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의 그 어떤 자랑도 때가 되면 시들고 땅에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한 그 모든 것들은 다 헛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전도서 12장에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더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이니라" 라고 가르쳐 줍니다.


    왜 인생이 허무하고, 왜 인생이 쓸쓸하냐... 그동안 사랑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으로 행한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면서 쓸쓸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아! 내가 그동안 무얼 하고 살았나? 내 딴에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 자녀들도 나를 떠나고, 내 이웃도 나를 떠나고, 심지어는 내 배우자까지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구나!’ 정말 이렇게 되면 인생이 허무한 거죠.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사랑할 걸... 이런 후회가 이 가을에 밀려오는 거죠. 그러나 아직도 후회하기에는 늦은 시간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가을에는 우리가 뜨겁게 사랑하여 사랑으로 불타는 가을이 되기 바랍니다. 저 산에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보면서 서로에게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 저렇게 불타오르네요!’ 라고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본문에 나타난 사랑의 의미부터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22절에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는데 ‘피차, 혹은 다른 말로 서로 간’이라는 것은 성도와 성도 간입니다. 이미 가족 간에, 부부 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은 말 할 필요도 없이 성도들 간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필라델피아'로 사용했습니다. 이 필라델피아라는 말은 필로스라는 단어에서 온 파생어인데 성격상 아카페적인 사랑과 비슷하나 좀 더 인간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느냐...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처음과 두 번째는 아카페로 물으셨고, 마지막에는 필로스로 물으셨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헬라어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숭고한 사랑은 아카페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친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아카페적인 사랑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 아카페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기까지 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자녀에게만 줄 수 있는 사랑으로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자식 된 은혜 때문에 누리는 거죠. 이 아카페적인 사랑을 이 세상에서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내리 보내는 이 사랑 속에서 우리는 부분적으로나마 이 아카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한다면 에로스와 스톨게가 있습니다. 에로스는 남녀의 사랑입니다. 더 깊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스톨게라고 하면 혈육 간의 사랑입니다. 다 사랑할 조건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죠. 사랑하는 남녀이기 때문에, 또 친 혈육이기 때문에.... 사랑할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신적인 아카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 간에 이루어지는 필로스적인 사랑을 나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필로스는 아카페와 가장 가깝습니다. 하나님처럼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믿음의 형제들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헌신합니다. 희생합니다. 그래서 신적인 사랑은 아카페라고 한다면 가장 신앙인다운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필로스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 필로스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필로스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에 보면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이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사랑할 능력이 생겼다는 거죠. 이 사랑은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사랑은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흉내는 낼 수 있죠. 이걸 거짓된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네... 가짜네, 흉내만 내었네... 이렇게 드러나는 겁니다. 이런 사랑은 거듭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23절 함께 읽어봅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아주 유명하고 잘 알려진 말씀이죠.


    거듭났다...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죠. 처음에는 육체의 사랑으로 태어났지만 다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으로 새롭게 시작한 인생을 거듭났다 그럽니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삶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인생은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다.


    언제 믿음이 드러나느냐? 어려울 때 다 드러납니다. 왜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느냐? 정금 같은 믿음을 만들기 위해... 그래서 1장 6-7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확실한 믿음입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어려움이 생기면 가짜 믿음은 다 드러납니다. 아, 저 사람이 저런 사람이었구나. 아, 진짜 믿음이 아니었구나, 아 거짓으로 형제를 사랑했구나, 아, 거짓된 겸손이었구나.... 이렇게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화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그 안에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을 딱 받쳐주고 있으니까 어려움이 와도 형제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는단 말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 말씀 아닙니까?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까, 그리고 이 말씀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곧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떠 바쳐주는 믿음이 어떻게 흔들릴 수가 있고,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까? 어렵다고 왔다갔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교회를 핍박한 네로 황제, 벌써 죽었어요. 교회를 핍박하고, 야고보를 목 밴 헤롯도 죽었습니다. 성도를 괴롭게 하던 그 어떤 핍박자도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이름들만 남아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조롱을 당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손에 있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영원할 것입니다.


    자 이제 24-25절 말씀을 함께 읽고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이사야 55장을 인용했는데요... 그래서 말씀 붙들지 않는 인생은 꽃처럼 떨어지고, 풀처럼 시듭니다.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히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여러분들의 믿음이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왔다 갔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끝까지 믿음으로 형제 사랑하기를 그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지 않았다고요, 사랑해본 적이 없다고요?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사랑하기를 시작하십시오. 사랑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은 없는 줄 믿습니다. 바쁘게, 바쁘게만 살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로에게 돌아와서 의지하며 사랑하는 노부부를 바라보노라면 마치 단풍이 불타듯 얼마나 애달픈 사랑입니까? 더 늦기 전에 무엇인가를 해 주어야 한다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그 사랑 안에 숨겨져 있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합니다. 심지어는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일지라도 우리는 뜨거운 사랑으로 상대방에게 영원히 기억될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라고 하면서 최후에 남는 것은 사랑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사랑으로 하나 되는 우리 항도교회와 성도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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