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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 "새로운 삶의 실천" 책 전체 내용 [새로운 삶]
  • 2016.03.01 19:29:52
  • 새로운 삶을 공부할 때 학생들로 하여금 반드시 "새로운 삶의 실천" 책을 구입하도록 하십시요.

    여기에 올리는 내용은 부득이하여 책을 늦게 구입하게 되었을 때 임시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는 보조수단으로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차       례

    ◆ 하나님 나라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 첫째주: 하나님 나라의 삶 - 당신의 새 가족
    ◆ 둘째주: 하나님 나라의 삶 - 함께 방문해 봅시다
    ◆ 셋째주: 이 세상 나라들 - 낡은 것들?
    ◆ 넷째주: 이 세상 나라들 - 무엇이 새로운가?
    ◆ 다섯째주: 종의 삶 - 섬김의 준비
    ◆ 여섯째주: 종의 삶 - 주님을 가까이
    ◆ 일곱째주: 사생활 - 요새를 다루는 법
    ◆ 여덟째주: 사생활 - 태도를 다루는 법
    ◆ 아홉째주: 권세 직면 - 영적 전쟁
    ◆ 열번째주: 권세 직면 - 씨름시합
    ◆ 열한번째주: 순례의 길

     

     

     

     

     

     

     

     

     

     

     

     


    하나님 나라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랄프 아저씨”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다보면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많이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래서 저도 사도 바울의 형식으로 여러분께 직접적으로 나의 삶을 나눌 수 있도록 이 교재를 쓰고자 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영하며 또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앞으로 여러 주일을 함께 보내면서 여러분과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주님은 저를 싱가폴에서 여러 해 동안 살게 하셨습니다. 저의 중국이름은 “행복한 아저씨”라는 뜻을 갖고있습니다. 중국 친구들은 저를 “랄프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불러주면 고맙겠습니다.
     앞으로 11주 동안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배우도록 여러분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시간을 좀더 보람있게 보내기 위해서 다음 사항들을 따라주기 바랍니다.
    * 3-7쪽을 지금 곧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그리고  일주일에 다섯 번 매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저와 만나주시기 바랍니다.
    * 최소한 15분을 우리들의 만남을 위해서 할애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더 오래 만나도 좋습니다.
    * 항상 성경책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많은 성경구절들을 찾아볼 것입니다.
    * 필기도구를 준비하셔서 모든 질문들에 성심껏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 교재 가운데 있는 암송구절표를 잘라내시기 바랍니다.
    * 일주일에 성경 2구절씩을 암송하시고 이미 암송한 구절들을 복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미 소그룹에 속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공부시간을 본 교재 뒷면에 있는 시간표에 여러분의 인도자가 기록할 것입니다. 준비되셨습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요?

     

     

     

     

     

     

     


    하나님 나라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고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아니면 더 나은 길을 찾고 계셨습니까? 어쩌면 당신은 극히 성공적으로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심각한 문제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평탄한 삶을 살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텅빈 마음으로 지쳐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전부인가?”

    이제 당신은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새롭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당신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해오셨습니까? 이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아직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삶은 어떤 것도 당신을 새로운 삶을 위해 준비시키지 못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아주 비싼 컴퓨터를 산 후 그 컴퓨터에 대한 지침서를 읽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컴퓨터의 많은 사용 용도에도 불구하고 마치 쓸모 없는 기계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 동안 이것저것을 눌러보다가는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았습니다. 그가 만일 지침서를 읽었다면 그 용도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당신은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삶을 이렇게 취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바로 당신의 삶의 지침서입니다. 우리가 함께 공부하면서 어떻게 지침서를 사용하는지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최고의 삶을 누리십시오

    당신은 걱정, 탐심, 두려움, 짜증, 지루함, 분노, 고통, 그리고 불행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당신은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새로운 삶이 이것을 가능케 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이 누리는 하나의 특권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아마도 당신이 아는 많은 분들도)은 본 안내서에 있는 원칙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서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신이 갖고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과거의 삶에서 참행복을 발견하셨습니까?

    당신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얼마나 지속되었나요? 저는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당신 자신도 그것을 알기 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지금까지 당신은 참행복이 외부로부터 온다고 생각하셨습니까? 혹 이렇게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만일....하다면 나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만일 내 육신이 건강하다면...
     만일 돈을 더 많이 갖고 있다면... 
     만일 더 좋은 직장을 갖고 있다면...
     만일 학교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면...
     만일 다른 부모 또는 다른 배우자를 만났다면...
     (혹은 그 외의 다른 것들입니까?)

    아래의 조건들 중에서 당신에게 참행복과 평강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온 것들에 표하시기 바랍니다.
    *새 차  *좋은 집 *학위 *해외여행 *좋은 영화 *믿을만한 친구 *사업체 *승진 *자녀 *새 가구 *좋은 음식 *낚시 *명성 *권력 *존경 *성공적인 증권투자 *새 옷 *건강 *새도시로 이사 *CD 플레이어 *음악회 표 *성적만족 *파티 *사냥 *컴퓨터 *자전거 여행 *볼링 *등산 *살 빼는 것 *예쁜 얼굴 *아름다운 몸매 *단단한 근육 *몸무게를 늘리는 것 *쵸코렛 *동등감 *가정의 안정 *자유함 *내적인 조화 *아름다운 세상 *성숙된 사랑 *나라의 안정 *사회적 승인 *지혜 *자립 *창조적인 삶 *자제력 *안정된 삶 *나를 지원해주는 사람 *노후대책

    모든 불행의 원인

    당신은 해결방법을 알기 원합니까?

    이 방법은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심각한 문제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행복하지 못한 모습 뒤에는 오직 한가지 근본적인 이유밖에 없습니다.

    아래 질문에 답해보십시오.
    당신은 주위의 사람들이나 환경이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때 불행함을 느끼십니까?
    □ 예
    □ 아니오

    문제의 초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불행을 초래하는 것은 당신의 기대입니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친구가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을 때 당신은 실망합니다.

    두려움, 탐심, 걱정, 짜증, 분노, 슬픔, 싫증, 미움 등은 당신의 감정의 결과이며 이 감정들이 당신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을 때 당신은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당신은 왜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이나 사건들에 의존합니까? 내 삶 밖에서 오는 일들은 항상 당신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사람과 환경에 의존하는 평강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잘못 프로그램 된 우리의 삶

    컴퓨터는 많은 일들을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천재적인 기능부터 쉽게 출판 인쇄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도구로 사용되어집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당신의 삶 속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지적 습관과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것들을 모았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아직 갓난아기였을 때, 우리는 크게 소리를 지르면 누군가 우리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 아직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어린이가 되어서 우리는 부모님들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지!” 또는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을거야!”라고 배우게됩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대부분 홍역을 앓는 것같이 생겨납니다. 당신은 어디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언제 갖게되었는지는 확실히 압니다.

     

    다음의 가치관들이 어디서 갖게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가치관
    출처: 사람 또는 ?
    열심히 일하는 것

    이빨 닦는 것

    당신이 믿는 것에 대한 확신

    분을 다루는 법

    남을 용서해주고자 함

    성숙된 사랑 (이성간)

    삶의 뜻

    자제심(self-control)

     


    당신이 받아들여야할 참 가치관들은?

    ... 더 많은 돈이나 권력이나 자유시간이나 성만족 또는 더 많은 무언가를 갖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미 갖고계십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리셨습니까?)

    그 무언가를 갖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얻었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즉시 그것을 잃거나 망치지는 않을까 하고 염려하시지 않았습니까? 또는 그 보다 낳은 새로운 모델이 나왔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듭니까? 아이고!

    당신은 항상 행복하십니까---항상?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왔으며 그에게 새로운 삶을 달라고 했습니다. 맞지요? 당신은 삶 자체를 만끽하기 원합니다. 그런 새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보장됩니다.

    당신은 이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신은 “책 한 페이지”를 넘긴 것이 아니고 당신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열게되었습니다. 정말 새로운 것입니다!

    어느 남자가 자기 아저씨에게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값나가는 다이아몬드를 도둑 맞을까봐 밤낮으로 걱정했습니다. 얼마 안돼서 그의 얼굴이 형편없어졌습니다. 그의 친구가 말하기를, “무슨 일인가?” 그는 말하기를, “글쎄, 백만불이 넘는 다이아몬드가 생겼다네. 그런데 그것을 도둑 맞을까봐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네” 그의 친구가 말하기를, “내가 도와주지. 자! 자네 은행으로 가지.” 그들은 은행에서 보관함을 빌렸습니다. 두꺼운 철벽 안에서 안전하게 다이아몬드는 보관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집에 돌아가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삶이 당신에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갖고있던 값비싼 당신의 삶을 하나님의 독생자의 보호하심에 맡기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처음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전부를 그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당신의 삶을 환영합니다.

    외국에 들어갈 때 당신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여권을 보이고 비자를 받는 일입니다. 당신이 모든 자격을 구비했다면 입국이 허용될 것입니다.

    당신이 십자가 앞에 나아와 예수님의 보혈로 당신의 죄를 깨끗케 해달라고 간구했을 때,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2:12에서 당신이 이렇게 하기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20에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당신은 세상에 산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처럼 사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108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 나라 대한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땅에서의 삶과 앞으로의 영원한 삶을 하나님 나라에서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란 단어에는 “통치”라는 뜻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배울 때마다 “통치”라는 단어로 대치하십시오. 왕은 그의 나라의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 사람, 땅, 각종 보물 등. 왕은 그의 소유물을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통치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왕중왕으로서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누가복음 1:31-33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왕되신 예수님이 오늘 통치하십니다.

    오늘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누가복음 17:21에서 예수님이 설명하시기를 하나님 나라를 찾으려하는 자는 결코 찾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실 때, 그는 우리 안에서 통치하십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인이라고 선포하는 모든 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요한계시록 1:6은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하나님 나라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도 당신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되신 예수님께서 당신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미래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지역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스런 나라를 재건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5:17에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왕께서 이 땅에서 그의 나라를 통치하시기 위해서 곧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있습니다. 없어질 것들에 우리의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11주 동안 당신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지에 대해 배우게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살기 위해 우선 태어났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처음 태어났을 때,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모든 감각기관들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당신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맛과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신은 희미하지만 불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차츰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고요. 얼마 후에는 무엇이든지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당신은 기어다니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걷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신의 부모가 하는 말들을 흉내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육체적 감각들의 조화가 당신의 몸을 특정한 일에 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이 생겼습니다. 당신은 어린아이로부터 젊은이로 그리고 마침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인생의 과정을 겪게됩니다. 적당한 시기에 재생산의 기능이 갖춰지게 됩니다. 이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을 닮은 사람을 만들 수 있게 합니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당신은 또한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당신의 기술과 가능성에 합당한 과제들이 당신에게 믿고 맡겨집니다. 당신은 곧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당신은 당신의 가치가 당신이 이루어 놓는 일들에 달려있다고 믿게됩니다. 만약 이것이 당신에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사단의 세계에 갇혀있는 한 희생자입니다.

    사단의 나라에서의 삶은 당신에게 모든 악을 노출시킵니다. 아마도 당신은 사기와 배신으로 인한 많은 상처들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죽음의 위협을 받는 심한 고통을 겪게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을 배웠고 또한 친구들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게 됩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성공하려면 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고 믿게 됩니다. 또는 어떤 사람들처럼 사치스런 물건들이나, 성적인 쾌락 또는 마약 등을 통해서 당신의 욕망을 채우기도 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살기 위해 새로 태어났습니다.

    당신이 십자가 앞에 나와 당신의 삶의 소유권을 예수님께 맡겼을 때 당신은 아직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에 필요한 만큼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에베소서 2:12)

    요한복음 3:3에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13:15에서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두 번째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영적인 태어남을 뜻합니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영적인 감각기관이 형성되어졌습니다. 그 새로운 영적 감각기관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서 새로운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당신은 이제 영원한 것을 보게되었으며, 영적인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사용되는 하나님 나라의 언어로 말을 하게됩니다.

    당신은 사단의 공격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이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권세로 하나님 나라를 지어갈 것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의 친구들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왕이신 예수님께 인도할 “영적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로 통치하시는 초자연적인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로 그들을 환영하는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자! 준비되셨습니까? 이제 우리의 여행을 시작해볼까요?

     


    첫째 주 첫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당신의 새가족
    오늘의 주제: 모든 아기들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19-22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모든 아기들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아기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많은 친척들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아기들이 그들을 먹이고 보살펴 줄 어머니와 아버지 없이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기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을 사랑해주고 보살펴 줄 부모가 있어야합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다만 이상일 뿐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당신의 삶은 어떠합니까?)

    당신이 크리스천이 되면 새로운 가족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영적인 가족을 뜻합니다. 디모데전서 3:15에서 사도바울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고 말합니다. 초대교인들은 즉시 10-15명의 핵가정을 구성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임을 위해서 특별한 건물을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그들은 이 집 저 집으로 다니면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필요한 것에 대하여 민감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족적인 모임에서 한 기구로 변해갔습니다. 교회는 한 기구가 되었습니다. 수세기를 걸쳐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족생활은 “교회”라고 불리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만남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실상 “교회”라는 단어와 건물을 관련시켜서는 절대 안됩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 왔는데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의 높은 건물로 상징되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9-22에서 건물은 무엇이라고 불립니까? 당신의 생각에 표하십시오.
    ( ) 터 위에 세워진 한 건축물
    ( ) 그리스도가 거하실 처소가 된 사람들
    ( ) 성경말씀이 분명치 않다. 둘 다 맞을 수 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좀더 성경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소그룹 혹은 “핵(Cell)”이 온 지구에 형성되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핵으로 시작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은 찬양, 예배, 그리고 성경공부 등 여러 핵조직이 드리는 생동하는 예배에 참석할 것이며 여러분의 삶은 가족, 곧  셀그룹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당신의 소그룹은 당신의 필요한 부분에서 함께 도와주고 특별하게 섬기기를 원하는 한사람이 인도할 것입니다. 앞으로 당신도 성장하면 소그룹 봉사자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소그룹은 15명이 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소그룹의 구성원들이 당신과 함께 영적인 여정을 가고 있다는 것을 곧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구성원은 견고한 크리스천이고 어떤 구성원은 미약한 크리스천입니다 (어떤 구성원은 큰 바윗덩어리 같은 문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크리스천으로서 성장하는 모델인가 아니면 방해 때문에 성장을 못하는 모델인가 관찰하십시오. 당신 자신도 그들 가운데서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나 형제자매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우듯이 당신도 다른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또 각자의 필요를 위해 힘쓰는 것 등을 보며 자신의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크리스천 중에서 가장 성숙한 분들은 “사도” 또는 “선지자”라 불렸습니다. 에베소서 2:20에서 보듯이 그들은 성도들의 지붕도 아니고 지배자도 아니고 오히려 성도들을 지탱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모퉁이 돌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에베소서 2:19-22을 다시 잘 읽으시고 아래 질문에 답 하십시오. 만약 확실한 답을 할 수 없으면, 당신의 인도자와 토의하십시오.
    1.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란 말은 당신에게 무엇을 뜻합니까?

    2. 19절에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말과 21절에 “건물마다”라는 말은 어떻게 병행합니까?

    3. 22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어디에 거하십니까?
    (진정,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첫째 주 둘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당신의 새가족
    오늘의 주제: 자라는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본문: 히브리서 5:11-14

    당신은 갓 크리스천이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신체적인 성장과 영적인 성장을 비교해 보십시오. 신체적으로는 꽤 성장을 했을지라도 아직 영적으로는 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각들이 아직은 발달되지 못한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유아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한 20년 걸립니다. 영적인 성장도 역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육신적 성장과는 달리 영적 성장은 모두가 다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더 나가서 성경공부는 하지만 믿음은 서로 나누지 않는 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성장하는 사람들도 당신은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목사인 저의 아버지는 저를 아버지가 설교하시는 곳에 데리고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참석한 한 사람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세 살밖에 안돼 보였으나 이 “어린 아이”는 얼굴에 수염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32세였으나 그의 신체나 사고는 그가 3살 때 성장을 멈췄던 것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천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그들은 적절한 성장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에서 저자는 독자들로 인해 낙심하고 있습니다. 5:11-12에서 무엇이 그들의 문제였다고 봅니까?
     그들의 듣는 것이 ___________________.
     그들은 _______이나 먹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은 못 먹는다.

    육적인 나이로는 그가 크리스천으로서 얼마나 성숙한가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년간 크리스천일지라도 몇 달밖에 안돼는 신자같이 자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당신은 영적 우유를 소화시켜야 한다

    아기들은 우유를 마시다가 점차적으로 단단한 음식을 먹게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단단한 음식을 먹기까지 성장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13과 14절에서 우리가 취할 음식과 우리를 자라게 하는 정확한 처방을 주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의로움에 대한 가르침”을 마시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훈련인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하나님 나라 밖에서 살 때 당신은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창세기 1:27)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그때는 선과 악을 구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악의 존재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17)

    그런데 사단은 그들에게 왔습니다. 창세기 3:5에 사단이 그들을 파멸하기 위해 사용한 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그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사단은 거짓의 조상이고 당신은 그가 사실을 말하리라고 절대 기대도 하지 마십시오)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악의 결과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두워졌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 안에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도덕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타락한 상태는 우리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그 지식을 억누르게 합니다.

    당신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을 막는 세상에 들어왔다

    당신의 전 생애동안 당신은 그 능력을 절제하며 살아왔습니다. 한 살된 아이가 어머니가 보지 않을 때 가위를 집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어머니가 그 장면을 보았을 때 왜 놀라겠습니까? 그것은 그 아이가 가위 사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위로 눈을 찌른다면 영구적인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사는 첫순간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당신의 삶에서 그것을 구별하도록 영적능력을 갖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의로움을 가르쳐 주는 “신령한 우유”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2에서 말하듯이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젖이란 말은 성경을 가리킵니다.

    어떤 이는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며 대소롭지 않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것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개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잘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나오는 결과는 악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기들은 우유를 스스로 마시지 않습니다. 아기가 우유병을 스스로 들기까지는 여러 주가 걸립니다. 다른 사람이 우유를 먹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그룹의 참여가 하나님 나라의 삶에 중요합니다. 당신은 영적성장에 도움을 줄 사람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첫째 주 세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당신의 새가족
    오늘의 주제: 누가 “아버지”인가?
    본문: 요한일서 2:12-14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성장의 세단계는 무엇입니까?
     시작의 단계: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다음 단계: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마지막 단계: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번 주 마지막 3일 동안 당신의 소그룹 구성원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영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랐을 것입니다. 당신은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보고 각자의 삶에 하나님이 얼마나 역사하고 계시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본문 말씀을 참고하여 위의 질문에 적당한 답을 하셨습니까? 시작의 단계는 아이의 단계요, 그 다음 단계는 청년의 단계요, 마지막 단계는 아버지의 단계입니다. 우리는 먼저 아버지의 단계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단계가 가장 관찰하기에 좋은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영적인 의미에서 남자와 여자를 다 포함합니다.)

    아버지들은 독특한 점들을 갖고있다

    13절에서 “아버지”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__________________ ”

    14절에서 “아이들”에 대하여는 무엇이라 말합니까?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____________________”

    여기에 흥미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나 “아버지들”이나 하나님 아버지를 압니다. 거기에는 무언가 이 두 부류 모두가 알고있는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을 모르고는 왕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할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랄프 아저씨, 유엔의 사무총장이 누군지 아세요?”하고 당신이 묻는다면, 저는 대답하기를 “그래요, 텔레비전에서 보아서 알지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는 “랄프 아저씨, 룻 네이버를 아세요?” 하고 묻는다면, 저는 “그래요, 저는 그 여자를 알아요. 그녀는 나와 여러 해를 함께한 사랑하는 제 아내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차이점을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과 오래 함께 할수록 당신은 그 사람을 더 잘 알 것입니다. 시편 25:4에서 시편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들은 “나는 주님과 오랫동안 함께 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주의 도를 압니다. 주님은 나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해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어떤 것인가를 알며 하나님을 경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나는 주님의 도를 압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아버지의 정의

    어느 사전에 의하면 아버지는 “재생산하는 남자”라고 정의합니다. 당신의 소그룹 구성원들을 사귀며 또한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잃은 양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진정한 아버지들입니다. 당신은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도 많이 하는 이들을 발견할 것이며 당신은 그 사람들이 “아버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되는 마지막 시험은 재생산입니다.

    누가 당신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까? 그 이름을 아래에 적으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분이 바로 아버지입니다. 당신은 이런 분을 몇이나 더 알고 계십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도록 사용됩니다. 만약 그리스도를 알고 또 당신과 사귀려고 시간을 할애하는 “아버지”들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직도 사단의 어둠에서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에서 우리는 12제자의 하나인 안드레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처음 한 것이 그의 형제 시몬을 찾아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한 것입니다. 안드레는 자기 친형제의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첫째 주 네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당신의 새가족
    오늘의 주제: 누가 “젊은이”인가?
    본문: 요한일서 2:13-14; 에베소서 6:11-17

    요한일서 2:13-14에서 “젊은이”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맞는 답에 모두 표시하십시오)
     □ 그들은 악을 극복했다.
     □ 그들은 강하다.
     □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있다.
     □ 위의 보기가 모두 틀리다.
     □ 위의 보기가 모두 맞다.

    가장 좋은 운동선수는 10대 후반이나 20세 초반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의 근육은 잘 발달되었고 경험도 쌓을 만큼 쌓았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젊은이”도 크리스천의 어린 시절을 지냈고 사단과의 결투도 겪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적 싸움을 이해하기 전에는 외적 싸움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단은 다른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요새 (Stronghold)"입니다. 요새는 힘이 지배하는 하나의 성곽입니다. 그러나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요새 안에서만 지배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18번 사용되는데 이는 모두 요새 안에 숨어서 벌리는 전투를 뜻했습니다. 그것은 사단이 지배하는 내적 상태를 갖고있는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4에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Stronghold)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말했으며, 그는 다음절에서 이 “요새”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하는 것입니다. 괄호 안에 있는 말은 헬라어 문자대로의 표현이며 “요새”는 우리의 모든 생각에 관여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높아진 것”은 창세기 11:4에서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입니다. 사단의 계략은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 대신 자기 자신을 높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마음을 두려움과 회의로 채우려하며 우리가 그를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의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겪는 두려움을 표시해보십시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 내 직업에 문제가 있다; 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잘 할 수 있을까?
    □ 나는 무서운 병으로 죽을 것이다.
    □ 내 삶은 다른 사람들 보기에 무가치하다.

    당신의 두려움이 위의 종목들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아래 난에 적어보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요새는 정욕, 자존심, 마음의 상처, 용서하지 못함, 불만, 질투, 탐심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와 같은 점이 항상 당신의 생각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이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함 받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더 이상 이 “요새” 때문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6:11-17에 “젊은이”가 사단을 대했을 때 지켜야할 6개의 지침이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Note: 이 갑옷은 원래 방어용입니다. 그래서 전사의 배후를 보호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사단은 우리의 뒤에서 공격을 절대하지 않는다.
    □ 우리는 사단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의 싸움을 이기셨다.
    □ 위의 보기가 모두 맞다.
    □ 위의 보기 중 하나는 틀리다.

     

     

     

     

     

     

     

     

     

     


    첫째 날 다섯째 일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당신의 새가족
    오늘의 주제: 누가 “사랑하는 자녀들”인가?
    본문: 갈라디아서 4:19; 에베소서 4:15; 데살로니가전서 2:7-8

    “사랑하는 자녀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전적인 신뢰감과 순수함을 갖고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옳은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의 결과를 모르고 위험한 환경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를 알 때까지 계속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4:19에서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자녀들”인 크리스천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분만의 고통을 받는 여성에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분만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형상같이 되려는 갈망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2:2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사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떤 뜻에서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는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아직도 그들의 삶속에서 발육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베소서 4:15에서 그는 성숙함이 어떻게 이루어 가는가를 나누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경공부는 “사랑하는 자녀”로 자라게 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믿음의 동료들과의 관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생활에는 그들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이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새가족(소그룹 안에서) 중에는 하나님의 조명하심으로 당신의 필요를 보게될 형제나 자매도 있을 것이며 그들은 전심으로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성경은 서로를 “세운다”라고 합니다. 새신자들은 “젊은이”와 “아버지”들이 여러분 소그룹에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도와주리라 기대하셔도 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7에서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소그룹 식구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족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형성되도록 도와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8에서 바울은 소그룹 안에서 진정한 믿는 자의 자세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아래 항목 중 영적으로 “어린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표하십시오.
    □ 거짓 가르침과 사교로부터의 보호
    □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 당신의 삶에 남아있는 “구습”을 제거하는 방법
    □ 문제로 고심할 때 용기
    □ 침례와 성찬의 뜻
    □ 말씀을 아는 “아버지”들로부터 상담
    □ 육신이 아플 때 안수기도
    □ 고통과 재해가 왔을 때 위로
    □ 다른 것들(구체적으로)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바울은 새신자들 삶에서의 구체적인 도움의 필요성들을 자주 언급합니다. 그는 크리스천이 되려면 많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에 대해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그릇된 가르침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새신자들이 성령의 은사를 개인의 즐거움으로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그는 어린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로부터 떨어져 나가 당을 짓는 것에 대해 번민하였습니다. 그는 성적불결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는 새신자들에게 끊임없이 “어머니”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염려를 더 알기 위해 당신 스스로가 공부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바울서신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새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당신은 사도바울의 어떤 글들이 바로 지금 당신의 삶에 대하여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음에 놀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어른이 와서 그 아이에게 “내게도 좀 주겠니?”하고 물었을 때 그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기를 거절한다면 이기심으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기꺼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준다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편에 큰 기쁨이 올 것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읽고 받은 은혜를 소그룹에서 나누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첫단계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당신은 다른 사람을 축복할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가족 안에서 “가르치는”자들입니다. 단순히 가르치려 하지만 말고 베풀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크리스천의 삶은 시작부터가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베푸는 것을 배우는 삶입니다. 주님과의 교제 그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첫걸음입니다. 한번 시도해보십시오. 그들도 기뻐할 것입니다.

     

     

     

     

     

     

     

     

    둘째 주 첫째 주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함께 방문해 봅시다.
    오늘의 주제: 3개의 하늘
    본문: 누가복음 17:20-21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배웁시다

    21쪽의 도표는 성경에서 뜻하는 나라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나라들이 존재하는 3 영역이 있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여러 성경구절들이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주님)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신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10) 하나님 나라의 활동이 하늘과 땅으로 연결됩니다.

    성경에 기술된 세 하늘

    첫 하늘은 땅의 대기입니다. 이사야 55:9-10을 보면 “하늘이 땅보다 높고” 그리고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하늘은 사단의 영역입니다. 에베소서 2:1-2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고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권세 잡은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하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6:12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세상 주관자와 정사와 이 어두움의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고 가르칩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이사야 63:15) 이곳은 또한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부활 승천시킨 곳이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자기[하나님]의 오른편에 [그리스도를] 앉히사...”(에베소서 1:20)  우리가 천국시민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그리스도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라고 에베소서 2:6은 말합니다.

    우리는 한 주간에 걸쳐 이것을 함께 생각하게 될텐데, 그 이유는 당신이 이 모든 의미를 알 때에 당신의 기도생활이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이 땅에 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한편 사단은 이 세상의 모든 왕국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또 예수님을 아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들의 영광을 보였다.”(마태복음 4:8)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생활 모두를 사단의 지배하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왕국들”이란 실제로 형무소 감방이었습니다. 당신의 모든 지난날들이 그의 포로였습니다. 당신의 가치, 습관, 그리고 행동이 그의 지배하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일부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듣고, 보고, 말하고 느끼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몇 주를 보낼 때,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당신의 생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세 번째 하늘
    하나님이 계시고 그리스도의 즉위하시고 천사들이 계속해서 봉사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곳에 앉아 있고 하나님의 뜻이 다시는 도전되지 않는 곳.

    두 번째 하늘
    사단과 타락한 천사들이 있고 영적인 전쟁터이며 여기서부터 이 세상의 왕국들이 지배 받고
    하나님의 뜻이 항상 저항 받는 곳.

    첫 번째 하늘
    사람이 있는 곳: 이 세상의 왕국들
    천사들이 하나님께 시중들고 사단이 활동하며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


    “무엇이든지 땅위에서 묶이면 하늘 나라에서도 묶인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일원,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사랑하고, 웃고, 말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나라”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용어들은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 영역을 “하늘”이라 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강한 역사들을 이 땅에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고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7-8) 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시민으로서 당신의 의무는 하늘나라의 능력을 당신의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지금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손을 들어 그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것입니다. 그 분께서 마태복음 28:18-20에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십자가에 나오기 전에 당신의 삶이 이처럼 의미 깊다고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을 통하여 하늘의 권능이 가까운 친구들에게, 친척들에게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짐을 알게될 것입니다. 당신은 셋째 하늘과 첫째 하늘 사이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둘째 주 둘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함께 방문해 봅시다.
    오늘의 주제: 세번째 하늘
    본문: 고린도후서 12:2-4

    사도행전 14:19-20에서 우리는 바울이 돌에 맞아 죽게 버려졌다고 배웠습니다. 그의 동역자들이 기도할 때 그가 살아 일어날 뿐만 아니라 24시간 후에 그의 다음 사역지로 떠났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복귀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고린도후서 12:2-4에 말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는 그가 셋째하늘에 이끌려간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본 것들이 너무나 황홀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1:21, 23에서 그곳에 돌아가기를 갈망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그것이 더욱 좋으나.”

    당신이 알다시피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요한 계시록 4:1,2,8에서 요한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5:6에서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나타납니다.

    셋째 하늘은 당신의 본향이다

    바울이 셋째 하늘을 방문한 후 이 세상을 떠나 그곳으로 가기를 갈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9에서 그는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싱가폴 사람인 이여사가 나에게 “제발 미국에 대하여 말해주십시오. 내 남편과 나는 그곳에 가서 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당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할 때 그 여인의 눈은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가를 알려고 했습니다. 현재 하나님 나라는 셋째 하늘에 존재하고 있기에 성경은 그곳에 관한 많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영원히 살게 될 나라에 대해서 오늘 잠깐 고려해봅시다.

    아래 성경구절을 찾아봅시다.
    창세기 21:17 -- 하갈의 아이가 울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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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하갈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알려주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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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8:12 -- 성경에선 어떻게 셋째 하늘과 첫째 하늘간의 연결을 보여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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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기하 7:14 --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 기도를 들으실 때 어디 계십니까?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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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경구절들이 셋째 하늘과 첫째 하늘간의 명백한 연결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까지 통화합니다. 우리와 하나님 간에 이러한 특별한 연결이 있기에 기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죽기전에는 이 셋째하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바울이 특별한 경험을 가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1:18-21을 잘 읽어보십시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자!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6은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다”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3:1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그곳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에 셋째 하늘의 입국을 허용하십니다. 언제나 원할 때 그곳에 들어갈 수 있고 또 거기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마치 끊겨짐이 없는 열린 전화선과도 같습니다.

    당신이 만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그것을 이해 못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포기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17에서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당신이 셋째 하늘에 가기 위해 멋있는 유리로 지어진 건물 안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영적인 의미에서 당신은 이미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도 그곳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유다서 20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라고 써 있습니다.

    수년 전에 “가려진 장소(The Hiding Place)”를 쓴 코리텐 붐씨를 만났는데 그때 그 여자는 매우 늙었으며 나치 수용소에서 무서운 몇 년을 보냈습니다. 그 고통스런운 기간에도 기도 가운데 그리스도와 계속적인 만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구경할 때, 그 여자의 입술이 자주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듣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는 노년기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내가 말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나는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코리여사, 여사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어요. 저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으세요?” 그녀는 네덜란드 말투로 대답하기를 “ 아!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우리 주님에게 우리가 나누고 있는 아름다운 대화에 대하여 단지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천국시민으로서의 최대 특권은 이미 셋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항상 통로를 열어 놓으십시오.

    나중에 우리는 당신 생애에서 당신의 “경청의 방”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셋째하늘과 교통할때나, 성령으로 기도하는 등의 특별한 사건들이 이 방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먼저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는 법

    당신은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다. 그것은 어리석다.”라고 생각합니까? 해보기 전에는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6개 분야에서 10분씩 보내십시오.
     1) 주님께 예배드리고 시편 40편을 묵상하고 큰소리로 찬양하십시오.
     2) 당신 목사님, 교회 그리고 소그룹 멤버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3) 당신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4) 주님을 따르는 것이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5)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6) 당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 세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함께 방문해 봅시다.
    오늘의 주제: 둘째 하늘
    본문: 요한계시록 12:7-8; 에베소서 6:12; 로마서 8:38-3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분명하게도 본절은 셋째 하늘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둘째 하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 하늘”이 항상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둘째 하늘이 예수님이 지적하신 지옥이나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0:28 참조). 오히려, 영적 전쟁이 항상 일어나는 영역, “공중의 정사와 권세”(에베소서 6:12)에 관한 전쟁터라고 하겠지요.

    언제 둘째 하늘이 생겼는지 아는데 도움이 되는 성경구절을 찾아봅시다. 셋째 하늘에서 가장 높은 천사들 중에 하나인 루시퍼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수천년전에 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올라가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이사야 14:12-15)

    악한 세력은 항상 “나의 의지로 한다”라고 말하는데 근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사단이 하나님께 반역하기로 결정했을 때 교만으로 가득찬 사단의 생각이었습니다. 권위에 대항한 교만과 반역, 이런 것들이 악한 세력의 표시들입니다. 어디서나 그들을 볼 때 그들의 행사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하는 것들은 유다서 6절과 베드로후서 2:4에서 언급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둘째 하늘이 이루어진 것이 그때였습니다. 사단을 따르기로 결정한 천사들은 요한계시록 12:7-9에 의하면 사단과 함께 지옥으로 던져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천국으로 들어간다

    창세기 28:12에 야곱이 “꿈에 사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천사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천국시민들을 섬기려고 오며 때로는 둘째 하늘을 통해 우리에게 오려고 전쟁을 해야만합니다.

    이것은 다니엘서 10:12-13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이상을 해석할 수 있게 하나님께 3주 동안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드디어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닫으려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을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페르시아군이 3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페르시아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도와주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린 아이”로서 당신은 둘째 하늘에 대해서 빨리 이해해야 합니다. 일단 당신이 사단의 지배로부터 풀려났음을 깨닫지 못하면 당신은 또다시 속아넘어가게 됩니다. 사단은 당신이 자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8-9에서 “근신하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으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13에 의하면(첫째 주, 네째 날 복습),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청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합니까? (알맞은 네모 속에 표시하시오)
    □ 한 달에 두 번 예배에 참석한다.
    □ 악한 세력을 물리친다.
    □ 절제하여 나쁜 습관을 끊는다.
    □ 위의 모두.
    □ 위의 어느 것에도 해당 안됀다.

    두 번째 것이 정답입니다. 당신의 첫 목표는 영적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지만, 당신의 구원에 위험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당신 죄를 갈보리에서 짊어졌을 때, 그는 사단이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고 당신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 안에서 전적으로 안전합니다. 그의 천사들이 당신의 길을 항상 보호하고 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새로이 태어났기에 당신의 자리를 빼앗길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요점입니다.

    저는 세 아들이 있는데, 그들의 아버지로서 그들이 내 아이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성공”을 했건 “실패”를 했건 간에 그들은 항상 나의 자녀들입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결코 어떤 이유로든지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적과 그가 둘째 하늘로부터 어떠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가를 알지 못할 때 불필요한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보겠지만, 당신은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4:14은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로마서 8:38-39에 따르면 무엇이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있습니까?
    □ 천사들과 권세자들
    □ 셋째 하늘의 권세자들
    □ 죽음
    □ 위의 어느 것도 해당 안됨

     

     

     

     

    둘째 주 네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함께 방문해 봅시다.
    오늘의 주제: 첫째 하늘
    본문: 열왕기상 8:35-36; 로마서 8:19-23; 베드로후서 3:10-12

    열왕기상 8:35에 어느 하늘이 기술되어 있습니까?
    □ 셋째 하늘
    □ 둘째 하늘
    □ 첫째 하늘
    세 번째 것이 정답입니다.
    열왕기상 8:36에 어느 하늘이 기술되어 있습니까?
    □ 첫째 하늘
    □ 둘째 하늘
    □ 셋째 하늘
    이번에도 세 번째에 표시했습니까?

    많은 성경구절이 이 땅 바로 위에 있는 하늘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셋째하늘을 뜻하는 “천국의 하나님”과 연결짓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그 후에 그냥 내버려두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분은 모든 행사에 매우 활동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심을 압니다. 하나님 자신이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것이니라”(욥기 41:1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사실라면 로마서 8:22은 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고 합니까? 이것은 우리가 대답해야할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때, 온 땅을 다스릴 아담과 그의 후손(당신도 포함)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번식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들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하셨습니다.
    사단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사단이 이 새로운 “인간”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에게 세상과 그 위에 있는 하늘을 지배할 수 있게 허용할 수 있습니까? 이 일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치밀한 음모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이브와 아담 안에 있는 교만에게 접근했습니다. 창세기 3:5에서 그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즉, 너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되어 선과 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성경은 첫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께 대한 첫 불순종을 했으나, 마지막은 아니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6에서 “우리 모두가 각기 제길로 갔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가 사람이 시작부터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하늘과 땅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예외 없이 사단의 목적은 파괴입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9:11에서 그에게 주어진 이름들은 “무저갱의 사자”, “아바돈”(히브리 음), “아볼루온”(헬라 음) 입니다.

    당신은 쓰레기 냄새를 좋아합니까?

    한번 맡는 지독한 냄새로 충분합니다. 그렇죠? 수백년동안 모든 죄로 더러워진 인간들이 살아온 이 지구촌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산더미 같은 쓰레기가 있고 산림과 바다가 파괴되어 갑니다. 아직 생태학적 재난은 처음부터 교만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실행하는 무지막지한 악한 행위와 비교할 때 아주 작은 문제들입니다.

    잔악한 행위들, 살인자들, 대량학살들, 전쟁들, 도둑들, 사기들, 깨진 가정들 그리고 당신이 개인적으로 알고있는 많은 사건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수천 배를 더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왜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8:19)

    모든 사물이 반드시 본래의 모습대로 될 수는 없습니다.

    로마서 8:20-23은 우리에게 피조물이 변하기 전에 인류가 변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납니까? 베드로후서 3:10-12은 이 세대가 끝날 때 불로 이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에서 요한은 마지막 때의 이상을 보았습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않더라”. 모든 사물들이 그렇게 끝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바로 이 교재가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당신은 이미 지금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주 다섯째 날
    단원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삶
    금주의 주제: 함께 방문해 봅시다.
    오늘의 주제: 세관 통관
    본문: 에베소서 2:1-6; 디모데후서 3:2-5

    저는 보기에 매우 안절부절하는 젊은 남자 옆에 앉게되었습니다. 우리가 싱가폴에 가까이 갔을 때 그는 “이 나라에서는 마약을 들여오는 자들을 교수형에 처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럼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가 마약이 없는 나라인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입국 시에 체포되면 그들은 곧장 감옥에 가게되고 법정에서 유죄가 판명되면 교수형에 처합니다.”

    그는 이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측하고 “당신은 갖고 다니기에 위험한 것들을 제거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부끄럽게 나를 바라보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착륙했을 때 세관 검사관은 그의 복장, 머리모양, 그리고 나이를 보고 그를 옆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아주 현명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는 입국하려는 싱가폴이라는 나라에서 금지된 짐들을 제거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까지 살아온 우리의 과거는 오늘 읽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습관과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당신의 과거의 삶 가운데 프로그램 된 나쁜 습관의 짐들을 아직도 휴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에베소서 2:1-2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가르침에 따르면 당신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누구를 섬겼습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에베소서 2:3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이 당신의 과거의 생활습관과 관련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예, 그것을 인정하기는 쉽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 아니오.
    □ 나는 그것에 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수년전, 제 아내 룻이 구급 팀에 속해있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희생자를 구하려고 열차사고 현장에 갔었습니다. 그는 희생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동차 정면충돌 사고들 당해서 많이 다쳤습니다. 우리가 병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그는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오른팔이 부러졌으니 부목이 필요하고 충격을 받지 않도록 혈관 주사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의사에게, “선생님,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통관 할 수 없는 “나쁜 습관의 짐”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질문에 불편해 하지 말고 오히려 과거와 현재의 나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만을 없애고 “주님, 나는 많은 고침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2-5에서 나열된 짐을 고려해봅시다. 당신의 생활상태의 부분이었거나 부분인 항목들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밑줄을 치십시오. 동시에 하나님께 그것들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심에 감사하십시오.

    ▣ 자신을 사랑하는 자  ▣ 돈을 사랑하는 자
    ▣ 자랑하는 자   ▣ 교만한 자
    ▣ 학대하는 자 (누구를?) ▣ 불효자
    ▣ 고맙게 생각지 않는 자 ▣ 거룩하지 않은 자
    ▣ 사랑이 없는 자  ▣ 용서 못하는 자 (누구를?)
    ▣ 중상하는 자   ▣ 자제력이 없는 자
    ▣ 짐승같은 자   ▣ 선을 사랑치 않는 자
    ▣ 믿을 수 없는 자  ▣ 성급한 자
    ▣ 자만심이 가득한 자
    ▣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향락을 즐기는 자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

    당신이 밑줄친 것을 고려해 볼 때, 어느 것이 당신에게 가장 어려움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사단은 바로 그것들을 사용해서 당신을 불구자로 만들고 당신의 평화와 기쁨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입구”에 들어섰고(세관) 검사대에 바로 당신과 같은 짐들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아마도 당신 문제와 같이, 그들이 단지 그 짐들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당신이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 기도는 오래된 짐으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 예수님. 이 짐은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전에 그것을 버리려고 할 때, 저는 항상 실패했습니다. 저는 이 짐을 손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제 피부와 제 뼈와 같이 저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그 앞에서 무력합니다. 저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원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를 구해주실 것을 또한 믿습니다. 주님은 셋째 하늘로부터 내 삶에 들어와 사십니다. 저는 이 시간 주님이 제 삶에 들어오셔서 역사 하시기 원합니다. 저는 제 힘으로는 이 짐을 주님께 드릴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이 짐을 거두어 주실 줄 믿습니다. 당신께 모든 것을 맡기며 주님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을 여러분께 솔직히 보이겠습니다. 저는 제게 잘못을 했던 사람에 대한 씁쓸한 감정을 25년 이상 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단지 상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저를 무너뜨리려 하는 이 용서하지 못하는 짐을 보게 하시더니 나로 하여금 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제가 주님께 손을 내밀고 위의 기도문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저의 아픈 마음을 다 내어놓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서서히 그 쓰린 마음들을 내게서 다 제거시켜 주셨습니다. 20년전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도 똑같이 역사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세째 주 첫째 날
    단원의 주제: 이 세상 나라들
    금주의 주제: 낡은 것들?
    오늘의 주제: 옛 나라들을 떠나라
    본문: 이사야 37:15~16;60:12;갈라디아서 3:22,26~28;빌립보서 3:20

    성경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는 왕국이 형성됨으로서 시작됩니다. 창세기 10:8~10에 나오는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 나라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니므롯이 먹이를 향하여 가는 사냥군의 갈망으로 광대한 지역들과 사람들을 정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이 땅은 욕심많은 사냥꾼들의 손에 의해 타락되어졌습니다. 지배의 욕망과 함께 인간들은 ‘왕’으로 군림하기를 항상 원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역사의 시작부터 인간들을 교묘하게 다루어 나라들을 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경우-하나도 예외 없이-국가들은 탐욕과 세력으로 쌓아 올려졌습니다.

    저는 텍사스 서부에 있는 한 부자집의 목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거대한 야생금렵지역으로 지정된 곳이었습니다. 동물들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되어 왔습니다. 동물들의 습성을 연구하는 그 분은 “이곳의 수천 수만 에이커는 거의 모든 부분 부분들이 어떤 한 동물 혹은 동물 그룹의 지배아래 다스려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1마일이나 떨어진 저쪽 언덕을 가리키며 “예를 들면, 저 언덕은 산염소의 점령구역인데, 만약 다른 동물이 그곳에 들어온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거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혼자  “모든 인간들이 그런 동물적인 기질을 조금은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단은 인간을 ‘국가들’이나 ‘나라들’을 서로 분열케 하고, 순진한 사람들에게 파괴를 초래하게끔 농간을 부리고 있습니다. 중국을 뜻하는 문자의 의미는 ‘중간나라 中’인데, 가운데 있는 사각형이 중국을 상징합니다. 위로 올라간 줄이 한국을 상징하며 아래줄이 베트남을 상징합니다. 중국역사의 초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존재를 기록하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모든 나라나 국가는 자기 나라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따돌리다’를 의미합니다. 이방인들은 시민의 권리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출생지에서 평생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들도 돌우상에는 절하지 않지만 첫계명을 어기고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국가적인 것들을 통하여 나라를 섬기고, 전 세대들이 망쳐지고 전멸하였습니다. 20세기까지 어떠한 희생에도 상관없이 통치권을 장악하려는 통치자들의 제물로 수백만의 생명들이 희생되어졌습니다. 이 세대의 유대인 대학살이 우리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로마서 13:1~7은 우리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우리 나라에 충성된 시민이 되고자 함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충성해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힘이 들겠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처음부터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시민권자로서 서약할 때 크리스천으로서 모든 옛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독특한 전통은 모든 국가 안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전통은 우리를 밧줄같이 얽매어 자유가 없어질 때까지 묶어 놓습니다. 전통 속에서 긍정적인 많은 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이혼율이 불과 2%인데, 이것은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는 부부의 주위사람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혼율이 결혼율과 거의 같거나 더 높은 다른 문화권들과 비교해 보십시오.

    또한 전통문화의 어떤 면들은 바르지 못합니다. 그것은 비성서적입니다. 예를 들면, 전통문화가 아이들에게 우상을 섬기라고 가르칠 때, 이것은 죄악입니다. 전통문화가 난잡함과 마약을 허용할 때, 이것은 죄악입니다. 어떤 국가의 헌법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진리는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견해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는 말입니다. 그러한 사고 체계 때문에 “내게 옳으면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도 옳다”라는 사회 통념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통념에 거슬릴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합니다.

    이사야 37:15~16에 의하면 세상 왕국에 전개되는 모든 일에 최종적인 권세를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1) 나라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람, 혹은 사람들
    (2) 사단
    (3) 하나님
    (4) 전부 해당된다.
    (5) 해당사항 없다.

    앞으로는 어린 시절에 세워진 가치관들을 통해서 생각할 때 미치는 영향들로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좋았거나 나빴거나 우리는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인 ‘자기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60:12에 의하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백성이나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갈라디아서 3:22을 자신의 말로 표현해 보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역사에 강대한 나라들이 붕괴한 예들이 충분히 있지 않습니까!

    갈라디아서 3:26~28에서 신자들인 우리는 왜 유대인이나 헬라인 형제자매를 차별해서는 안됩니까?
    (1) 우리는 국가적인 풍속을 떠나 우리 자신들에게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야 합니다.
    (2) 우리 민족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들이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3) 둘 다입니다.
    (4) 해당사항 없음

     

     

     

    세째 주 둘째 날
    단원의 주제: 이 세상 나라들
    금주의 주제: 낡은 것들?
    오늘의 주제: 누가 나라들을 움직입니까?
    본문: 누가복음 4:5~8

    사단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어린 예수님을 해하려 합니다. 예수님의 온가족은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사단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부추겨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마태복음 12:14;마가복음 3:6).

    사단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가장 위협을 받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4:17) 수세기 동안 천하만국을 지배해 온 마귀의 세력은 새 나라의 등장으로 도전 받게 됐습니다.

    사단은 타락한 천사로 나라의 왕으로 삼아 공중권세를 잡아왔습니다.(다니엘 10:20~21) 사단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멀게하고 잘못된 가치관과 속임수로 그들을 조정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의 나라를 이룩하신다면 사단은 그의 세력을 잃을 것입니다. 그의 세상의 왕국은 사람을 가두는 감옥과 같아서 피조물인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주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도모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긍정적인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지배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권세는 무너졌을 것입니다.

    사단은 어떻게 천하만국을 순식간에 예수님께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1) 이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며, 자연적인 면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2)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단의 힘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3) 둘 다입니다.
    (4) 해당사항 없음

    누가복음 4:6에 사단은 예수님께 천하만국으로부터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
    2)
    사단 사용한 두 가지는 사람들에게 당장에 필요한 것들로 보여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유혹에 넘어 가실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사단은 교환조건을 제시합니다. 다만 사단이 노리는 것은 예수님을 지배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대답을 잘 알고 있듯이 그렇게 될 리가 없지요. 우리는 세상나라들이나 세상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숭배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권세)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특별하다’고 인정받는 것(자신의 영광)입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제공하는 사단
    당신의 가치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단의 유혹들에 젖어 있습니까?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막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그렇게도 갈망하기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당신의 삶에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 아니면 맨 마지막에 두려 하십니까? 가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개인적인 세력이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깊이 스며들어 있어 이것들을 깨기에는 매우 어렵습니다.

    다음 칼럼에 열거된 가치관들을 공부하시고, 당신의 현재 사는 방식에 첫째가 되는 곳에 ‘1’, 가장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곳에 ‘18’을 적고, 두 번째로 중요한 곳에 ‘2’, 두 번째로 중요하지 않은 곳에 ‘17’ 등등....
    각 항에 순위가 주어질 때까지 적어보십시오. 이것은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만약 필요하다면 내일 다시 생각해서 답을 주셔도 됩니다. 절반은 이번과의 마지막날에 끝내고, 나머지는 그 주 쉬는 날에 하셔도 됩니다. 이것들을 진지하게 다루십시오. 다음 장에서 자주 이 페이지를 참고할 것입니다.

    나의 가치체계, 제1부

    우선순위       가치                             우선순위            가치
    (  )       부유와 번영      (  )         우정
    (  )       재미 좇는 일           (  )         안전한 보호
    (  )       어떤 큰 일을 성취하는 것  (  )         취미생활(여행, 영화감상 등)
    (  )       갈등없이 사는 것   (  )         하나님의 뜻을 따름
    (  )       다른 사람들과 평등한 감정  (  )         자존심과 자기 경외
    (  )       나의 가족을 안전하게 하는 것         (  )         인정과 칭찬
    (  )       선택의 자유                  (  )         다른 사람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
    (  )       행복감, 만족감   (  )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
    (  )       내부의 갈등으로부터의 해방  (  )         야심

    세째 주 세째 날
    단원의 주제: 이 세상 나라들
    금주의 주제: 낡은 것들?
    오늘의 주제: 솔로몬의 결론들
    본문: 전도서 1:1~2;2:4~11,12:13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열왕기상 3: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말년에 전도서를 썼습니다. 위에 열거한 성경귀절들은 이 세상 삶에 대한 그의 염세적인 판단이 기록된 성경구절들입니다.

    전도서 2:3에서 그는 어떻게 그의 결론을 내렸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혜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삶의 모든 활동들을 경험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천하 인생의 얼마동안 인간에게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를 보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위한 모든 것을 시도해 보았는데, 세력과 부유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아내들, 호화로운 주택들, 또 아름다운 것들을 건설했습니다. 우리의 일생에 삶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이 솔로몬에 의해서 시험되어졌습니다. 따라서 그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단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만약 사단이 우리들에게 육체적인 생활방식이나 부도덕한 행위, 도적질, 폭력 등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피할 것입니다. 그 대신 그는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약속과 함께 우리가 보기에 해롭지 않을 것같은 가치관들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이러한 잘못된 방법으로 우리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소비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끝부분에서 솔로몬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을 보기 전에, 그가 시험해 온 몇가지 가치들을 찾아봅시다.

    전도서 2:4~11에서 솔로몬이 어떤 가치관들을 시험해 보았습니까?
    (1) 번창하고 부유함
    (2) 하나님의 뜻을 따름
    (3) 어떤 큰 것에 성취하는 것
    (4) 신나는 일들을 하는 것

     

    성경귀절 1:17에서 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말을 사용하여 대답하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전도서 12:13에서 솔로몬의 최종적인 결론은 무엇입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당신은 솔로몬이 그의 말년에 아래의 가치관들을 어떤 순위로 열거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두가지를 선택하십시오. (하나는 당신 생각에 솔로몬이 ‘1’ 순위로, 다른 하나는 ‘18’순위로 선책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
    솔로몬의 가치관들(33페이지 참조)

    우리가 열거한 목록 중에 단 한가지를 제외한 모든 가치관들이 우리의 생활방식으로 채택될 수 있는 사단의 가치관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 하나만 오직 하나님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다른 것들 전부는 솔로몬이 말한 것 같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이 당신에게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목록을 다시 살펴 보십시오. 당신 자신에게 “만약 이 가치가 나의 삶의 일부가 아니라면 나는 얼마나 비참해질 것인가?”하고 물어보십시오. 예를 들어, “나는 충돌을 일으키는 삶을 즐긴다”, “나는 범죄로부터의 보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삶을 즐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절친한 친구들이 필요없다”, “나는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위의 부정적인 의견들을 생각해 볼 때, 당신은 위협이나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까? 실제로,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거나, 당신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당신은 두렵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다 그렇습니다.

    매일 우리의 두려움들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조절합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감옥안에 철창들입니다. 예를 들면, 한 숙녀가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나중에 가난할 것이 두려워 돈을 저금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자녀들을 위한 시간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녀들은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합니다. 드디어 그녀가 은퇴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많은 돈이 저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가난을 두려워합니다. 그녀의 노후에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녀는 가난의 두려움 때문에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친구들도 없습니다.
    이것이 사단의 계획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거짓 가치관들에 초점을 두기 원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삶에 평강을 가져오지 않는 것들을 좇아가는 헛된 삶의 결과들을 볼 수 없도록 우리를 방해합니다. (이 모든 것의 해결을 살펴보려면 마태복음 6:33을 읽으십시오.)

     

     

     

     

     

     

     


    세째 주 네째 날
    단원의 주제: 이 세상 나라들
    금주의 주제: 낡은 것들?
    오늘의 주제: 누가 당신을 지배합니까?
    본문: 요한일서 5:19;로마서 6:20

    위의 두 구절에서 사용된 ‘지배’라는 단어는 사단의 세력이 세상에 ‘널리퍼지다’를 의미합니다. 두 성경구절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자유가 없다고 말해줍니다. 모든 생명은 사단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사단은 다른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함으로 우리를 조정합니다.

    예수님의 한 제자 중에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는 적의에 가득 찬 군중들 속에 혼자 있었을 때, 예수님을 변호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루밤 사이에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사단의 무리들에게 지배받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올바른 결정해야 합니다.

    55살의 중국여인이 그의 소그룹에서 자기는 여러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의 신앙고백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 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몇 년 동안 벽장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자기의 어머니를 불쾌하지 않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믿음보다 더 중요하였습니다. 그녀는 누가복음 9:26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는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

    그녀는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데 그의 삶을 바쳤습니다. 사실은 사단의 지배로 인해 그녀의 어머니를 75년 넘게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딸의 침묵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이라는 곳은 하나님과 영원한 이별을 직면하게 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이들을 기쁘게 해 주고 있는지를 엿보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이러한 ‘특별한 사람’들은 부모님, 배우자, 고용주, 애인, 혹은 친척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사단의 지배를 받는다면, 당신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때 반대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다루겠습니까?

    아래의 어떤 상황들이 거부의 두려움 때문에 당신을 침묵케 하며, 천국시민이 아닌 것 같이 행동하게 만듭니까?
    (1) 크리스천으로 합당하지 않은 파티를 원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2) 부정한 사업을 인계 받아 계속하라고 부탁 받았을 때
    (3) 당신이 구원받은 것을 모르는 옛 친구와 함께 있을 때
    (4) 전부 다 해당됩니다.
    (5) 아무 것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은 채로 살아왔습니다. 이전에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일에 한번도 노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당신의 모든 사고를 조용히 조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을 통하여 당신을 지배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이 어떻게 당신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새 주인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들의 영향을 받아 일시적인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당신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육신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감정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수세기전에 어거스틴은 파티를 즐기며 창녀들과 어울리는 거친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개심 후 창녀들 중의 하나가 그의 팔을 붙잡고 그녀의 방으로 그를 유혹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죄송합니다. 당신이 알고 있던 어거스틴은 죽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어거스틴이며,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도 이와 같이 말하고 싶은 상황에 처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알맞은 때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보여 주실 것입니다. “벽장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지금 결정하십시오.”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선택하는 순간, 사단은 사람들에게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당신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당신을 지배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입니까? 아마도 당신이 당신의 후원자나 소그룹에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나눔으로써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후원과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세째 주 다섯째 날
    단원의 주제: 이 세상 나라들
    금주의 주제: 낡은 것들?
    오늘의 주제: 나라들의 종말
    다니엘서 2:44;신명기 5:8~9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일 먼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도 말씀하십니다. 다니엘서의 일부분은 느부갓네살이라는 사악한 왕이 꿈에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왕의 꿈을 해석하였으며, 사단의 “이 세상 나라들”이 진멸되는 장차 다가올 일을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은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당신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왕중의 왕으로 통치할 그때에 관한 많은 것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이 기억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0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하만국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으로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들 안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세상의 신들을 섬길 때에 우리는 신실한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옛 우상들을 버리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잘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소유물들, 권력들, 이 시대의 쾌락 등이 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어떤 이는 세속적인 것들에 전혀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매우 간단하게 살아야 하며, 모든 향락을 거부해야 하고 오락과 관계되는 그 어떤 것도 거절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유하고 번창하게 만들 것을 기대해야 하며, 이 세상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지나친 이들은 번창함이 크리스천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즉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를 부자로 만들어 이들을 보상하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온 당신은 소유물들을 어떻게 다루시겠습니까? 첫째, 그것들을 섬겨서는 안됩니다. 흔히 자동차, 집, 심지어는 취미 등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신명기 5:8에 어떤 형상들이 우상들로 사용됩니까?
    (1) 위로 하늘에 있는 것
    (2) 아래로 땅에 있는 것
    (3) 땅 밑 물속에 있는 것
    (4) 전부 다입니다
    (5) 아무 것도 해당사항 없음

    아시아에서는 나무, 철, 사기들로 만든 우상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뱀들을 섬깁니다. 많은 우상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하나하나가 첫계명을 깨는 것입니다.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가족이 예수님께로 나올 때 전 소그룹 구성원들은 그 우상을 없애도록 도와줍니다. 우상들이 불에 탈 때 모든 구성원들은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옛 우상들을 보존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지만 항상 그렇습니까? 우리는 우상들을 하네문(Hanemun) 이나 콴인(Quan Yin)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우상이 혼다, 가구, 테니스, 호화주택, 아니면 음식이라고까지 불립니다(빌립보서 3:19). 무엇이든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상입니다.

    우리는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견해로는 이것이 아브라함의 삶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는 이삭을 너무 사랑하여 그 소년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고통의 시간이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그의 아들을 섬겨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 너는 너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아도 된다. 오직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아들 섬기기를 중단하는 것이다. 아들이 너의 삶에 우상이 되고 있다.”

    당신의 삶에 하나님만큼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자녀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당신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 보편적인 흥미를 갖는 것과 이것들이 당신의 신이 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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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삶 속에 하나님께 완전한 헌신을 빼앗아 가는 신들, 우상들, 사랑하는 이들, 아니면 소유물들에 대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옛 것을 버리십시오.
    새로운 헌신으로 하나님나라에 들어오십시오!

     

     

     

     

    네째 주 첫째 날
    단원의 주제: 세상 나라들
    금주의 주제: 무엇이 새로운가?
    오늘의 주제: 소그룹에 관한 모든 것
    본문: 에베소서 2:19-22; 고린도전서 12:12-21

    당신은 에베소서 2:19-22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첫째 주 첫째 날에 이 말씀을 묵상했었습니다. 우리는 19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권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놀라운 진리에 대해 생각해볼 것입니다. 바울이 쓴 원어에 보면 “권속”이란 단어가 “오이코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이코스”란 단어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단어를 여러분의 “훈련의 해” 동안에 반복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번 주에 오이코스 가족이란 말에 포함된 두 가지의 특별한 뜻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이코스란 특별한 관계를 맺고있는 소그룹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시간씩 서로 대화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오이코스 곧 권속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작은 오이코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사실 최소한 일주일 동안에 한시간의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 속에서 항상 오이코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혈연의 관계는 없었을지라도, 당신은 마치 “가족”처럼 생각해 왔던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일주일 동안에 최소한 60분 이상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 4명을 기입해보십시오. 4명보다 많다면 한 줄에 두 명씩 기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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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12:13에 의하면, 성령님께서 당신에게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 )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에게 세례를 베푸셨다
    ( ) 성령의 마시게 하셨다
    ( ) 둘 다
    ( ) 정답 없음

    성령님께서는 당신이 예수님께 당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실 때, 즉시로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십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당신에게 세례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세례”란 말은 “온전히 잠김”이란 뜻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교회 설정”을 놓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사실상 그들은 성령님께서 이미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존속시켜 놓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교회(믿는자들의 모임)를 고르는 것과 소그룹에 속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는 것입니다. “몸”이란 “단체”라기 보다는 “유기체”를 뜻합니다. 마치 사람의 몸이 손과 발이 있듯이, 유기체란 구성원 하나 하나를 연결시켜 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도 “오이코스”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족”이란 결코 큰 모임이 아닙니다. “가족”이란 서로 매우 가까우며, 서로를 아껴줄 수 있는 작은 그룹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이코스”를 “기본적인 크리스천 공동체(Basic Christian community)” 또는 “셀 그룹(Cell Group)" 또는 ”목자 그룹(Shepherd Group)"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무엇으로 불리든지 간에 성령님께서 구성하시며, 다른 구성원들과 서로 연결된 “몸”이라는 친밀한 가족으로 만드십니다. 전반적으로 한 “오이코스”는 15명을 넘지 않습니다. 15명을 넘게되면 “가족”이 너무 커져서 참된 시간을 나누기 어렵게됩니다.

    마태복음 28:18-20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님께서 우리들을 그의 몸이 되도록 세례를 주셨으며, 우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특별한 증인들로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물 속에 잠김으로 이루어졌으며, 세상을 향해서 당신은 옛 삶에 대해서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1-10을 참조하세요) 만약 당신이 예수님께서 명하신대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가능한 한 빨리 받도록 하십시오. 이 점에 있어서 당신의 소그룹 인도자와 상의해보십시오.

    당신의 소그룹 모임에서 당신은 “주의 만찬”이라는 특별한 식단을 볼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애찬”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없는 여러 가지 뜻을 주장함에 따라 변질되어 버렸지만 사실상 아름다운 식단입니다. 이 점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시다면 여러분의 후원자나 “목자”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지난번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기억나시는데로 그 분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와서 나의 애찬에 참여하라!
    너희는 나의 영광을 위해 모여라. 내가 너를 위해 죽기 전날 밤, 나는 내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눴단다. 나는 그들에게 이 만찬을 기념하면서 나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들이 먹을 때마다 내가 그들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제 네가 아버지의 권속이 되었으니,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이 애찬을 통해서 기억하기 바란다. 내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서 소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라.
    아무도 이 애찬에 참여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네가 너의 엉망진창이었던 과거의 삶과 내가 십자가 위에서 바로 그러한 너를 위해서 행한 모든 일을 함께 기억하기 원하는 것이다. 네가 애찬에 참여할 때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자녀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너도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고백하라.

         - 예수 -
    (“ka mate ka ora"에서 인용. Houhanga Rongo, Howick, Auckland, NZ)

     

     


    네째 주 둘째 날
    단원의 주제: 세상 나라들
    금주의 주제: 무엇이 새로운가?
    오늘의 주제: 당신의 새로운 책임
    본문: 창세기 4:8-10; 갈라디아서 5:25-6:4; 사도행전 5:1-11

    창세기 4:9에서 가인은 그의 아우를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형제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우를 향한 질투가 그를 살인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질투가 생기기 전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의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폴란드의 사회학자가 인간사회에 대해 몇 달 동안 연구하였습니다. 그녀의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을 3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그룹은 “사람다운 사람(People People)"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평등하게 받아주며, 그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그룹은 “기계 같은 사람(Machine People)"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친절을 베풉니다. 그들 중에는 수리공, 하인, 또는 우리의 수표를 현찰로 바꿔주는 사람이나, 또는 가게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그룹은 “풍경화 같은 사람(Landscape People)"입니다. 그들은 길거리나 엘리베이터 등에서 매일같이 스쳐 지나가는 수백명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혀 불필요한 존재입니다. 신문은 매일같이 이 무관심한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살인, 강도, 그리고 강간사건에 대해서 보도합니다.

    하나님의 소그룹에 속한다는 것은 결코 시시한 일이 아닙니다. 어제 우리는 이 성경구절을 읽었습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12:21)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된 제자는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의식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년은 진흙탕에서 놀다 왔습니다. 그는 지금 당신의 문 앞에 서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 ) “가서 깨끗이 씻고 다시 와라!”
    ( ) “그냥 들어와! 진흙은 괜찮아”
    ( )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내가 닦아줄게”
    ( ) “못된 습관 좀 버려라!”


    갈라디아서 6:1에 의하면 크리스천으로서의 반응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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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그룹 모임에서 당신은 당신의 신분증과 약간의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당신 자리에 놓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음료수를 마신 후, 당신 자리에 와보니 가방에 있던 돈이 없어졌습니다. 누군가 훔쳐간 것입니다. 소그룹 구성원 외에는 아무도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구성원 중에 도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만약 아래의 선택사항 중에 당신의 답이 없다면 공란에 적으십시오.
    ( ) 그 소그룹을 떠나서 다시는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 ) 구성원들에게 좀도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 침묵을 지키며, 그 좀도둑을 도울 수 방법을 기도로 간구한다
    ( ) 구성원 모두를 수색한다
    (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당신은 우리의 가치관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까? 좀도둑과 함께 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그 그룹에서 떠나갈 것입니다. 범죄자에게 창피를 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것입니다. 정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을 수색하기 원할 것입니다. 범죄보다는 사람을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은 아마도 갈라디아서에 적합한 또 다른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필요성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어떻게 나타낼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도전은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사단의 가치관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를 것인가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온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8:3-11). 그들은 그 여인을 돌로 치기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주셨고 가서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사도행전 5:1-11)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몸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했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들의 곤궁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헌금을 속였고 성령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말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크리스천 동료들에 대한 무관심이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당신의 소그룹 모임 안에 있는 형제자매에 대한 가치는 당신이 심사숙고해 볼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각 사람의 점과 흠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가서 생각하기엔 너무 늦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추신: 사도행전 4:35에 보면 믿는자들이 구제기금을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발앞에 갖다 놓았고 사도들이 나누어주었습니다. 당신의 소그룹에서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크리스천 동료를 도와준다는 것은 어떤 경우 돈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이 아는 것 이상으로 문제가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인도자로 동참하도록 하십시오.

     

     

     

     

     


    네째 주 세째 날
    단원의 주제: 세상 나라
    금주의 주제: 무엇이 새로운가?
    오늘의 주제: “파이스(PAIS)" - 아들 또는 종
    본문: 마태복음 12:18; 14:1-2; 요한일서 4:13,17

    오늘 당신은 중요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한 단어에 대해서 공부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파이스(PAIS)"란 단어인데 헬라어로 성경에서 ”어린이“라 쓰여졌습니다. 영어 번역에서는 ”아들“이라고도 쓰여집니다. ”파이스“란 단어는 ”어린이“ 또는 ”아들“, 이 두 가지 뜻으로 동시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마태복음 17:18을 보면 “...파이스가 그때부터 나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킹 제임스 버전에 보면 “그 아이가 바로 그 시에 낳았다”고 되어 있으나, 뉴 아메리칸 스탠다드 버전에는 “그 소년이 즉시 낳았다”라고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번역에서는 파이스가 “아이” 또는 “소년”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파이스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어린이 또는 아들인 것입니다. 이 단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한 단어인 것입니다. 관계를 묘사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중요한 신분을 설명해주기 위해 쓰여진 단어인 것입니다. 파이스는 관계를 묘사합니다!

    자, 이제는 또 달리 쓰여진 곳에서 놀랄만한 진리를 찾아봅시다. 마태복음 14:1-2을 보세요. 여기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주 엉뚱한 단어로 파이스가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PAIS)에게 이르되...”

    여기에 파이스의 새로운 사용 용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예에서는 “아이” 또는 “소년”이라 쓰여졌으며, 이 두 번째 예에서는 “신하”란 뜻으로 쓰여졌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중적으로 쓰여지는 것에 바로 우리가 이해해야할 중요한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요성은 바로 우리 신분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킹 제임스 버전과 뉴 아메리칸 스탠다드 버전에서 파이스가 위의 두 가지 뜻을 함께 나타내는 4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3:13은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첫줄이 킹 제임스 버전이고 둘째 줄이 뉴 아메리칸 스탠다드 버전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PAIS)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종(PAIS) 예수를...”

    파이스란 단어는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아들 예수”는 바로 “종 예수”였습니다. 종이 되기 위해서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3:26은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첫줄이 킹 제임스 버전이고 둘째 줄이 뉴 아메리칸 스탠다드 버전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PAIS)을 세워...”
     “하나님의 그 종(PAIS)을 세워...”


    사도행전 4:27과 4:30에도 역시 이 두 버전이 서로 달리 번역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아들(PAIS) 예수를...”
     “거룩한 종(PAIS) 예수를...”

    이제 파이스란 단어가 쓰여진 구절 중에 가장 중요한 구절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에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 42:1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본 구절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8에서 본 구절이 인용되면서 헬라어로 쓰여졌는데, 바로 파이스란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보라 나의 택한 종(PAIS)..."

    여기에는 아들이 아니라 종이라고 적절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절들은 모두 예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의 “하나님의 아들”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란 개념 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구약성경은 그가 종으로 오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바로 종되신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누가복음 22:27에서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에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바로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자녀 됨은 우리를 종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삶의 중요성이 바로 우리 신분의 결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3,17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묵상해보십시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이로써...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실 때, 우리에게 새로운 속성을 주십니다.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를 중요한 존재로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영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귀하게 변하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이 사실이 우리를 아담의 자손으로부터 구별합니다.

    요점이 이해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자 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영을 주셨습니다. 만약 그의 영이 우리 안에 사신다면, 우리의 속성이 그의 속성, 곧 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우리의 삶은 바로 종의 삶인 것입니다.

     


    네쩨 주 네째 날
    단원의 주제: 세상 나라
    금주의 주제: 무엇이 새로운가?
    오늘의 주제: “오이코노모스(OIKONOMOS)"
    본문: 누가복음 12:42; 고린도전서 4:1-2; 베드로전서 4:10; 말라기 3:8

    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뜻이 담겨있는 헬라어 단어가 기억나십니까? (아래 빈칸에 그 단어를 적어보십시오. 기억나지 않으시면 44-45페이지를 참조하십시오)

    그 단어는 __ __ __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에서 우리가 종이 된다는 것은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특권에 대해 새로운 방향으로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이코노모스(OIKONOMOS)"와 ”오이코도메오(OIKODOMEO)"라는 헬라어는 둘 다 소그룹(OIKOS)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배우는 것은 우리의 사역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이코노모스(OIKONOMOS)는 누가복음 12:42에 보면 “관리자(Manager)" 또는 ”청지기(Steward)"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의 집(OIKOS)에 속한 종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직무를 주인으로부터 받은 자입니다. 오이코노모스는 종들에게 적절한 시간에 그들에게 할당된 음식을 나누어주는 자입니다. 물론 오이코노모스가 자기 돈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의 주인에게로부터 받은 자원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먼저 그의 주인이 공급해주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도표로 그려보면,

    주인
    (공급처)
    가족
    (종)
    오이코노모스
    (청지기)
    모든 자원은 주인에게로부터 온다.
    오이코노모스는 받은 자원을 나눠준다.
    종들은 필요에 충족함을 받는다.

     

     

     

     

    오이코노모스는 누구를 섬깁니까?
    (아래 빈칸에 표하십시오)
    ( ) 주인만 섬긴다
    ( ) 종들만 섬긴다
    ( ) 주인과 종들을 모두 섬긴다
    당신은 세 번째 칸에 표하셨습니까? 맞습니다. 오이코노모스의 중매자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주기 전에 먼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공급자는 바로 주인밖에 없다는 사실의 전제하에 봉사합니다. 그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도록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종, 파이스로써 봉사한다는 것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

    크리스천은 구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민감해야 합니다. 성경은 구제품을 적절한 시간에 지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제품을 받는 사람과 가까운 친분관계를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오이코노모스는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자동적으로 구제품을 지급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는 각 사람이 얼마나 필요로 하고 언제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알고있어야 합니다. 구제품을 받는 사람과의 친분관계는 하나님께 필요를 공급받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4:1-2을 읽으십시오. 구제품을 받는 사람들이 오이코노모스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적어보십시오. 이 구절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의 말로 다시 한번 적어보십시오. 당신이 적은 것을 인도자와 함께 다음 모임에서 나누십시오.

    1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이코노모스는 두 가지 면에서 확신되어져야 합니다: 주님과 섬김을 받는 사람들. 이것은 우리의 천국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오이코노모스란 단어가 쓰여진 세 번째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적절한 구제품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10에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은사란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재능을 말합니다.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우리는 삼천층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우리가 섬기는 자들의 삶으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식량이나 옷이나 신발이나 돈 등을 지급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급하는 식량은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4:32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천국의 오이코노모스로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소유물(돈, 재산 등)이 우리 주인에게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재산이 적절한 지급을 위해서 우리에게 믿고 맡겨졌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일로 쓰여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3:8은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둑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속담에 보면 아주 아름다운 정원에서 다른 화초들보다 높게 우뚝 솟은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화초들 중에 가장 높이 자란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느 날 정원 주인이 그 대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대나무야! 이제 내가 너를 좀 써야겠다.” 대나무는 말하기를 “나도 압니다, 주인님! 나는 당신의 정원에서 가장 높게 서서 당신의 집에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영합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아니, 네가 잘못 이해하고 있구나! 다른 화초들이 물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단다. 그래서 나는 너를 잘라서 속을 비운다음 저 냇물로부터 물을 끌어와서 다른 화초들을 살려야겠다. 나는 네가 필요하단다.” 당신은 이 대나무와 같이 쓰여질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필요로 하십니다.

     


    네째 주 다섯째 날
    단원의 주제: 세상 나라
    금주의 주제: 무엇이 새로운가?
    오늘의 주제: 오이코도메오
    본문: 로마서 15:2; 고린도전서 14:26

    다음의 헬라용어들과 맡는 뜻에 줄을 그어 연결하십시오.

    파이스(PAIS)    “집”, “가정”

    소그룹(OIKOS)    "자녀“ , ”종“

    오이코노모스(OIKONOMOS)  "청지기“, ”관리인“

    마지막으로 배워야 할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이코도메오”입니다. 이것도 역시 소그룹과 연관된 단어이며, 오이코노모스의 사촌뻘입니다.

    통상적으로 성경에서는 “세우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에는 빌딩을 짓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수는 건조물이 오이코도메오 되도록 영향을 끼칩니다, 곧 짓는 것입니다.

    위의 두 구절을 포함한 다른 구절들에서는 크리스천들을 “교훈하다” 또는 “세우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다른 사람들을 세워줌으로써 하나님을 섬긴다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합니다.

    로마서 15:2에서는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오리코도메오) 할지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당신의 소그룹 구성원들을 통해서 세우시기 원하십니다.
    제가 아직 크리스천 초년생이었을 때 아무도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내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경청의 시간을 가져야한다고만 배웠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단둘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며 내 평생의 일과로 남았고 당신에게도 권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오이코도메오 하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교로 떠났을 때,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잘못된 삶에 쫓기어 살던 어느 날 저는 기숙사 복도에서 기절을 했습니다. 어느 선배가 저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자기 침대에 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실하게 저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삶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나를 세워나간다는 것을 알게 한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나를 오이코도메오 했습니다. 그의 말뿐만 아니라 그 속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내 영으로 들어오셔서 저를 깨끗케 하시고, 고쳐주시고, 또한 격려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도 많은 외로움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고 온전한 삶을 회복해야할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내게 오십니다. 두 손이 내 아픔을 만짐으로 나의 상처가 치료받습니다.

    소그룹의 근본적인 목적은 그들의 구성원을 오이코도메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수의 무리가 모여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오이코노모스 라면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그 소그룹은 오이코도메오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26에서 서로를 세워줄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적어보십시오.
    1.
    2.
    3.
    4.
    5.

    이 구절에 의하면 소그룹이 모였을 때, 누가 조언자가 됩니까?
    ( ) 영적인 소수의 구성원들
    ( ) 모인 구성원 모두가
    ( ) 회개할 것이 없는 구성원들
    ( ) 위의 모두
    ( ) 정답이 없다

    당신이 두 번째 답을 선택했다면, 당신의 생각이 옳습니다. 헬라어에서 “각 사람”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매우 섬세합니다. 이것은 한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세우고, 교훈하는 일에 참여함을 가리킵니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당신의 소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서로 세워주고 세움을 받는 것이 천국시민으로서 당신의 궁극적인 과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이 일을 감당하도록 권능을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 주 첫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섬김의 준비
    오늘의 주제: 성령충만, 1
    본문: 갈라디아서 5:16-21; 요한복음 7:37-39

    여러분은 크리스천으로서 아직도 신앙생활의 기복을 경험하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옛습관과  태도들이 아직도 많은 경우에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생활의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로 인해 짜증스러워 하지는 않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너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어. 이것은 네 길이 아니야”라는 잔잔한 속삭임을 들었을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들었다면, 그것은 사단의 음성입니다. 사단은 당신의 낙심된 크리스천 생활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당신은 또 다른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는 더 이상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살 필요가 없어. 네 문제에 해결책이 있단다”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21을 읽으십시오. “육체의 일” 중에서 당신에게 직접 해당되는 일이 있습니까? (쓸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생각만 해보세요!)

    이런 행동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그러한 행동으로부터 자유하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좀 더 많은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를 원하십니까? (갈라디아서 5:22-23 참조)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다면, 당신은 이미 성령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성경은 당신이 성령님께 보여주는 네 가지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당신은 성령님을 거스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51에 의하면, 종교적인 의식은 행하지만 성령님의 인도에 둔감한 사람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분의 목소리를 정확히 듣고도 그 말에 귀 기울이기를 거부한다면, 그분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2. 당신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30-32에 의하면, 우리가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갖고 있으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3. 당신은 성령의 불을 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에 의하면, 우리는 “성령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더 이상 계시지 않다면 그것은 슬픈 일입니다.
    4.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에 의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음”이라는 단어는 진행형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충만과 충만과 충만을 받으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께 대한 우리의 반응과 행동을 연결시켜 보십시오
    충만  성령의 지도하심을 듣는 것을 거절
    근심  성령의 권위를 거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종류의 예배에 그냥 참여함
    거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당신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기 원함
    소멸  가족을 괴롭힘

    성령충만을 받는 법

    제일 먼저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성령충만이란 성령님이 계속적으로 당신의 삶에 들어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들어오실 때 바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강력하고도 극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며 바로 이때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경험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경험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때로는 혼동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단어나 구절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경험의 실제성은 결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은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으나, 그것은 결코 내가 온전하게 다 받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때때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 나는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드리려합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으로 나에게 오셔서 나의 모든 삶을 다스려주옵소서” 이러한 고백은 때때로 우리가 너무도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에게 실망할 때 나타나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우리가 금식기도 할 때 자주 나타납니다. 이러한 고백은 우리가 가슴 깊이 좌절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창세기 32:26에 의하면, 야곱이 그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의 일생동안 야곱은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어느 날 그의 자존심이 바닥까지 떨어져서 그는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며,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만지셨을 때 그의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보통 크리스천의 삶이 패배하는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힘으로 걷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당신은 실패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의 삶을 책임지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당신 자신의 노력을 포기하십시오. 성령님은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 같은 성품을 가져다주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 같은 성품은 모두 성령님의 작품입니다. 그것은 또한 그의 “열매”입니다(갈라디아서 5:22-23). 그 분이 그것을 만드십니다. 이 구절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아니고 열매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을 주의해 보십시오. 모든 이러한 품성들은 성령님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중의 몇 가지가 아니라 그 모든 열매들이 성령님에게 모든 것을 맡긴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요한복음 4:14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37-39에 의하면, 요한복음 4:14에 나오는 “물”이 누구로 상징되어 있습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음은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생활을 지배하시게 하는 3단계입니다.

    “오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이 구절이 여러분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면, 그 마음을 성령님께 고백하십시오! 성령충만함은 당신 자신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고백함과 당신이 그것을 전심으로 원함으로써 시작됩니다.
    “구하라”
    당신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받으라”
    당신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에 성령의 충만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은 능력과 기쁨으로 오시며 때로는 잔잔한 평강으로도 오십니다. 방법에 상관없이 그 분은 능력으로 오십니다.
    다섯째 주 둘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섬김의 준비
    오늘의 주제: 성령충만함, 2
    본문: 누가복음 11:11-13; 사도행전 9:17

    과학 시간에 공부하던 한 학생은 8 온스 짜리 유리 그릇을 물로 채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리고 나서 4 온스의 모래를 그 컵에 부었습니다. 물론, 그 물 반은 넘쳐흘러 버렸습니다. 학생들은 질량불변의 법칙에 대해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즉, 두 물질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공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원할 때,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합니다. 불신앙, 불순종이라는 물질들이 우리 마음을 채우고 있다면, 성령께서 통치할 공간이 거의 없는 셈입니다. 따라서 충만함이란 바로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냉소적이라면, 믿음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쓴뿌리가 있다면, 기쁨의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비었을 때, 성령님께서 그의 존재로 우리를 꽉 채우시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살면서도 성령충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당신도 그런 분들을 만나보셨나요?). 여기에는 간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을 양보하지 않으며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데 내게 가장 편안한 정도입니다. 나는 결코 지나친 열광주의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절제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때때로 그들은 완전히 자신을 비우기를 원치 않는 자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떤 교리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깊은 그곳으로 침잠 되지 못합니다.

    당신이 성령의 임재 안에 완전히 잠기면, 때로 당신이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바보같이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강직한 남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공중석상에서 흐느끼며 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경우에서도 자신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면, 성령충만은 여러분을 두렵게 할 것입니다.

    디온 로버트(Dion Robert) 목사는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의 큰 셀(Cell) 교회에서 목회를 합니다. 그는 에스겔서 47장을 읽던 어느 날 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에스겔서에서 선지자가 발목 깊이의 물가로 인도되었던 것과 또 무릎 깊이의 물가, 허리 깊이의 물가 그리고 그의 머리를 넘어서는 깊은 물,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에스겔 47:5)에 이르렀던 부분을 읽었습니다. 디온 목사는 그날 저녁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이렇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디온! 너는 깊고 빠른 물가, 그러니까 네 발이 닿지 않는 강으로 갈 준비가 되었니? 나를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깊은 곳으로 가서 내가 너를 나의 종으로 충분히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니?”라고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씨름하며,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날 밤 이후로, 하나님은 디온 목사를 서아프리카로, 유럽으로 그리고 심지어 미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당신은 왜 성령충만을 원하십니까? 당신이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주님께 외친다면, 당신은 성령충만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능력을 받음으로써 자랑하고 자신만을 위하고 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 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 죄는 당신 영혼에 있는 “유리컵 속의 모래알”과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슴속으로부터 오는 갈망이 바로 주님의 좀 더 효과적인 하나님의 자녀(PAIS)가 되기 위한 것이나, 혹은 주님께서 쓰실 도구가 되기 위함이거나, 또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성령충만을 원하는 당신의 요청이 존중될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당신이 성령충만할 때, 당신의 삶은 뒤집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그 매력을 잃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나님 나라의 좀 더 깊은 지역으로 옮겨져서 당신이 전혀 기대치 않던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과 내 인생에서 주님의 임재가 강하게 임했던 때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그 때는 주님의 임재가 너무 귀중하고 너무 강해서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1:11-13을 읽으십시오. 당신이 성령님을 구하면 하늘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하십니까? (이 구절을 묵상하시면서 당신의 생각을 적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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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당신의 깊은 상처의 멍에를 가져온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과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당신을 위한 특별한 말이 있습니다. 가끔씩 상처받는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떤 사람도 신뢰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고통이 너무 크죠! 하지만, 당신의 속사람은 치료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에게 어떻게 역사하실까요? 당신의 문제 해결은 바로 당신의 소그룹 가족 내에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한 사람 혹은 어떤 집단과 당신의 상처에 대해 의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당신이 성령충만하게 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연관시키시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9:17을 읽으십시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시력을 회복시키고, 성령충만케 하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아나니아가 가로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하며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를 하자 주의 성령이 눈먼 사울에게 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성령을 다른 사람의 손길을 통해 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소그룹 즉 “기본적인 크리스천의 공동체”에 애착을 갖게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대행자로서 하나님 나라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를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나니아가 필요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빌립을 내시에게 보내셨고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신 것입니다. 사실상, 사도행전에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신 사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성령으로 충만하려는 당신의 열망을 나누어 보십시오.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당신이 기도 속에서 안수 받기를 원한다면, 진리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 안수하게 하십시오. 어떤 특정 개인이 안수함으로써 어떤 특별한 “능력”이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우리 모두가 “은혜의 매개체”들입니다.

    복습: 다음의 낱말과 그 정의 찾아 줄로 연결시키십시오.
    PAIS   "양육“ 혹은 ”훈도“
    OIKOS   “아이” 혹은 “종”
    OIKONOMOS  "집“
    OILODOMEO  “관리자” 혹은 “집사”

     

    다섯째 주 셋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섬김의 준비
    오늘의 주제: 성령의 역사 1
    본문: 고린도전서 12:1-11

    우리가 성령충만을 고대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할 때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를 표현하는 몇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1절에는 신령한 것이라는 표현이 있고 4절에는 “은사”라는 표현이 있으며, 또 6절과 다른 절에는 “역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힘은 바로 성령에 사로잡힌 것을 말합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과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불신자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언제 어느 때 역사하실 지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분의 뜻과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우리를 채우시고 그 분의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에는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날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도 일어납니다.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사용됩니다. 이 때문에 당신의 소그룹에서 각 사람이 각자의 은사에 따라 다른 사람을 “양육”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은사를 받습니까? 7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바울은 말하기를 은사는 “각 사람”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원어에서는 이 짧은 문장의 뜻을 명확하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포함한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특정 집단을 택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성령충만을 받았다면,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아 은사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은사를 받는 자라는 말보다는 은사를 나누어주는 자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11절에 의하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당신에게 어떤 은사를 주시는 지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치유의 은사나 지식의 은사 등에 대해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긴장을 푸십시오!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과 교제를 하면, 사역은 당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점차적으로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쓰는 방식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당신의 개인 성격에 아주 합당한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엘리(Ellie)라는 중년 여인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조용하여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지 않는 여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녀를 “굉장히 영적”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조용히 사랑하고 성령 안에서 충실하게 살아갔습니다. 목사로서 나는 장례식에 자주 불려 다니곤 했습니다. 내가 도착했을 때면, 엘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소식을 듣고 그 곳에 와 있었습니다. 내가 애통하는 가족을 위로하고 있을 때, 그녀는 부엌에서 그릇을 닦고 커피를 끓였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머물게 될 친척들이 오는 것을 대비하여 조용히 침대보를 갈아 끼고, 빨래를 하곤 했습니다.

    그녀가 한 일은 “선한 이웃”이 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녀로 하여금 “서로 돕는”(고린도전서 12:28) 사랑스러운 영적 은사를 사용하도록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더 이상 목회를 하지 않을 때, 나는 핫라인(Hot Line)을 통해 긴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네이버 목사님! 우리는 당신 집 근처에 사는 어느 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내는 독감으로 아프고 남편은 침대 끝에 서서 그의 머리를 총으로 쐈습니다. 그녀와 이이들은 지금 너무 놀란 상태입니다. 지금 그 곳에 가주세요!”

    시신이 옮겨지고 아이들과 그 부인이 옆집으로 옮겨진 다음에 나는 융단과 잠옷에 묻은 피와 뇌의 파편들을 보았습니다. 그 가족들이 이것을 다시 보게되면 안된다는 것을 나는 즉각 깨달았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엘리이지요. 나는 즉시 그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는 탄산수와 걸레를 가지고 재빨리 왔습니다. 우리들은 불행의 흔적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함께 무릎을 꿇고 그 자국들을 닦아냈습니다.

    도르가(사도행전 9:36-41)와 같이 엘리는 고난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은사를 발휘했습니다. 그녀의 은사가 그녀의 “영성”을 나타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은사는 다른 사람의 본이 되는데 쓰여졌습니다.

    성령께서 당신에게 사역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발견하면, 성경을 찾아보아 다른 사람이 그러한 은사를 언제 사용했는지를 연구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데 당신이 쓰였던 방법에 대해 묵상하고 하나님의 도구(PAIS)로 쓰임 받는 특권에 대해 주께 감사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2:1-11을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아래에 나타난 생각들이 발견된 구절들을 찾으십시오. 왼쪽 항에 맞는 참조 절을 적으십시오.

    _______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_______ 지혜와 지식의 말씀은 은사이다.
    _______ 믿음과 치유는 은사이다.
    _______ 은사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어졌다.
    _______ 성령께서는 누가 어떤 은사를 가질지 결정하신다.
    _______ 은사는 방언과 통역을 포함한다.
    _______ 이 구절은 하나님과 그 역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_______ 이 구절은 주님과 봉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_______ 이 구절은 성령과 은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_______ 영적은사에 대해 무지하지 말라.
    _______ 우리는 과거에 능력이 우상에서부터 온다고 믿었다.

     

     

     

     

     

     

    다섯째 주 넷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섬김의 준비
    오늘의 주제: 성령의 역사 2
    본문: 고린도전서 12:31-14:1

    싱가폴에 있는 내 방 바로 앞에 수로가 있습니다. 날이 건조할 때, 그 수로는 텅 빕니다. 나는 가끔 4층 아래 있는 그 수로를 내려다보며 그것이 얼마나 주의 깊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봅니다. 콘크리트 평석이 단단한 기초와 옆면을 이루고 있으며, 빗물이 흘러내릴 배출구도 있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 수로는 거세게 흐르는 물로 위까지 가득 차 있습니다.

    수로의 가치는 해가 날 때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비가 올 때만 그 주위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뿐입니다. 

    그러나 수로가 없다면 전체 지역은 엄청남 진흙탕이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사를 “영적인 콘그리트 평석”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물줄기가 그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그 은사들을 사용하십니다. 바울은 본 장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영적은사를 그 목적과 따로 떨어져 생각한다면, 그것들은 전혀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은사의 쓰임이지 그것의 소유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1에 의하면,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이 진리는 우리가 은사의 원천을 평가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됩니다. 때때로 은사는 사람들이 은사의 실제에 대해 경이감을 가질 때 사용됩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드러내는 사람은 때때로 “초능력 크리스천”으로 보여집니다. 은사의 사용을 판단하는데 쓰이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이 나타나는 동기입니다. 그 동기가 사랑이면, 우리는 그것이 위로부터 온 것인 줄 알게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근원이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전서 14:29에 의하면,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3장에서 바울의 광범한 가르침은 은사가 사랑으로부터 말미암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사랑이 없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본 절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아가페”입니다. 당신은 이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신약에는 “사랑”으로 번역되는 3 단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필레오”인데 이것은 “형제의 사랑”을 뜻합니다. 두 번째는 “에로스”인데 이는 “자족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아가페”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는 사랑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나온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사랑을 받는 사람의 아름다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5:8에는 “아가페”로 쓰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는 매력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추함을 보지 않으시고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소그룹에는, 당신이 다루고 싶지 않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첫 반응은 아마도, “아휴! 나는 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고 싶다”는 것일 겁니다. 그 순간에 당신은 당신 소그룹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야말로 그 두 번째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은사가 당신을 통해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은사의 통로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아가페”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래에 기술된 상황들은 실제로 어떤 소그룹에서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1. 수쟌은 크레딧카드로 수천 불에 달하는 옷과 장신구를 샀다. 이 돈을 갚지 못하자, 그녀는 거주하던 동네에서 도망하여 당신의 소그룹에서 그녀의 비밀을 나누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 ) 그녀의 빚을 갚도록 돈을 꾸어준다.
    ( ) 빚을 갚게 두 직장을 갖도록 권면한다.
    ( ) 침묵한다. 그녀의 일이므로 스스로 해결하게 한다.

    2. 당신 소그룹의 한 부부는 17세의 딸이 있는데 그 딸이 남자친구와 밤을 같이 지냈다. 그 부부는 걱정으로 차 있다. 그들이 당신에게 조언을 부탁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 ) 하나님께 그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물러난다.
    ( ) 그 부모 대신에 그 딸을 만난다.

    3. 당신 소그룹의 한 구성원의 아이가 멍이 들었다. 아버지가 때린 것이 분명하다. 소그룹에서는 그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가끔 교만하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 ) 그 사람을 위선자로 강하게 책망한다.
    ( ) 그의 영적인 파산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 각자의 경우들에서, 사람들은 도움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깊은 영적인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도 혼자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잘못된 가치의 노예가 되어있습니다.

    당신은 “아가페”의 사랑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할 지 깨닫고 있습니까? 영적은사의 흐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혜의 은사, 서로 돕는 은사, 영분별의 은사들 그리고 다른 은사들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그 해결책의 근원이고 그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들을 돕는 대리인으로 우리를 쓰십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엉망진창”이라는 말이야말로 그들의 삶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때때로 영적은사는 인도와 도움을 제공해줍니다. 그들은 일정 기간동안 그들의 엉망진창의 상태에 개입해 줄 대리인(바로 우리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소그룹 모임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들을 포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가슴을 채울 때, 은사가 사용될 것입니다.

     

     

     

     

     

     

     


    다섯째 주 다섯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섬김의 준비
    오늘의 주제: 성령의 역사 3
    본문: 고린도전서 14:1,3,5,12, 24-26

    본 장에서 바울은 교회생활에 나타나는 초기의 문제를 고치려 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집에 모이면서도 어제 우리가 배웠던 “아가페” 사랑을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11:20-30에 보면, 그는 서로를 위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아픈 상태에 있다고 말합니다. 은사가 서로를 양육(oikodomeo)하는데 쓰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구절을 읽은 후에 시간을 내서 14장 전체를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다음의 생각을 당신 염두에 두십시오: 이 크리스천들은 “아가페” 없이 영적은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14장의 요점입니다.

    우리가 토론했던 은사에 대하여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은사가 다른 사람을 위한 사역에 관계없이 사용되고 있습니까? 치유? 서로 돕는 은사? 영분별?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아가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은사가 믿는자들을 사역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이 교회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돌아보지 않으면서 모이고, 그래서 영적인 은사를 남용했습니다. 특히 한 은사가 남용되었는데 그것이 방언의 은사였습니다.

    바울은 결코 방언을 금한 적이 없습니다(18절을 보십시오). 그의 깊은 관심은 이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사역과 관계없이 쓰이는 점에 있었습니다. 그는 방언이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것 없이 쓰여지는 것을 통탄하였습니다. 다른 은사들은 바로 사역을 동반할 수 있으나 방언의 은사는 반드시 통변되어야 합니다. 통변 없이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은혜의 대행으로서의 우리의 사역을 무시하는 흉측한 행위인 것입니다.

    이와 반면에, 통변과 함께 적절히 쓰이는 방언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데 아름다운 경험이 됩니다. 당신을 위해 성령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기보다는, 방언을 통한 사역으로 제삼자에게 오시고, 그리고 나에게 통변으로 오시어 마침내 당신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만남에서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끊어질 수 없는 끈으로 묶어주시는” 것입니다.

    1,5,12, 24-26 절에 의하면, 어느 영적은사가 가장 유용합니까?
    ( ) 치유
    ( ) 예언
    ( ) 방언

    정답은 “예언”입니다. 이 은사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어떻게 작용됩니까? 구약 성경 연구에 의하면, “예언자”라는 히브리 단어는 문자 그대로는 “대변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예언자에게 임하시면 그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을 합니다. 가끔씩 이런 말들은 미래에 나타날 사건들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이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성경이 쓰여졌습니다(베드로후서 1:21 참조). 오늘날의 예언도 미래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것은 좀 더 넓은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3에 나타난 교훈을 자세히 점검해 보십시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그리고 26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모일 때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언”이란 말은 덕을 세우며 안위하며 권면하는 은사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언이라는 독특한 은사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본 장에서 두 가지 의미를 다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아가페”의 동반 없이 개인적으로 쓰이는 영적은사는 오용이며 남용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26에 의하면, 믿는자의 모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은사를 가지고 있습니까?
    ( )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춘 몇 명
    ( )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
    ( ) 모든 사람 - 참여한 모든 사람
    ( ) 잘 모른다

    믿는자들의 집단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은사를 사용하기 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면서 첫 번째로 고려할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에 참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120명 혹은 1000명 아니면 그보다 많은 인원을 보았습니까? 본 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가정 모임” 또는 “소그룹”, 그러니까 많은 인원이 아닌 집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두 번째 사실로 26절에 있는 “너희”라는 단어의 원어는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외 없이 모인 모든 사람을 뜻하며, 그들이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영적인 은사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이스"로서의 우리의 소명은 값없이 ”아가페“의 사랑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우리 소그룹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24-25에 의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나 무지한 자들이 들어와서 당신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은사의 사역을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___________ 사람에게 __________을 들으며, ____________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_________ 일이 드러나게 된다.

    당신은 “모든”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본 절에 쓰였다는 것을 보고 놀라셨습니까? “모든.... 모든....”이라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예외 없이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많은 학자들이 많은 시간동안 이 분야에 관해 연구했지만, 이상의 것들이 여러분이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본 진리입니다.

     

     

     


    여섯째 주 첫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주님을 가까이
    오늘의 주제: 경청의 방
    본문: 갈라디아서 2:20; 로마서 7:22; 데살로니가전서 5:23

    한 일본 목사님이 어느 날 미국 목사님 한 분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집 뒤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곳에는 단칸방 별채가 있었는데 일본 목사님은 그곳이 자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정의 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경청의 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님의 종된 사람이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여야만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나 이웃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도 주님의 지시를 듣고 그 지시에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기도는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우리들의 간구나 소원을 알려드리는 시간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이번 주에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네가지 질문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먼곳 천국 보좌에 앉아 계시며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기도하실 때 천장이나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거리감 때문에 하나님이 왠지 저 먼 곳에 계시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까?

    갈라디아서 2:20에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고 항상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들의 관계는 정말 친밀합니다. 잠언 18:24에 보면 ”주님은 형제보다도 친밀하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은 항상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 시대에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길이 없었고 단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분의 임재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항상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신앙적 체험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의 어느 부분으로 그분과 교통하는가?”입니다. 로마서 7:22에 보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당신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다음 쪽 도표참조) 당신이 기도할 때 당신은 당신의 구세주시며 주인이신 분께 기도를 하는 것이므로 당신은 항상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당신이 그분의 나라의 일원임을 선포할 때 그분과의 진정된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질문1: 데살로니가전서 5:23에서 사도바울은 우리들의 어느 부분이 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합니까?

    _____________________과 ____________________과 __________________________이

    질문2: 누구에게 이것을 기원한다고 하십니까?

    ___________________의 하나님

    질문3: 주님께서는 어느 곳에서 이런 일을 이루신다고 하십니까?
    □ 천국 보좌에서
    □ 내 안에서

    에베소서 3:20에 보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하십니다.

    “경청의 방”이라는 것은 특별히 만들어 놓은 공간이라는 개념보다는 우리의 자세, 삶의 가치를 뜻합니다. 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분은 항상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할 때나,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여 이웃에게 사역을 하려고 할 때도 우리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경청의 방” 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습니다.

    토저(Tozer)박사는 “하나님을 추구하며(The Pursuit of God)”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지적이기보다는 영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오직 인간들의 영만이 진정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영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이 아니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없습니다.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마음은 보통 사람들이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40-43쪽)

    앞으로도 계속 삼분법 도표를 참고할 것이지만, 우선 이 도표에서 가장 많이 쓰여진 “요새”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십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구원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우리들과 함께하는 옛 습관들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서 그것들을 제거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의 음성을 경청하기 시작하면 그분은 우리들이 옛 속성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사무엘상 3:8에 보면 사무엘이 어떤 음성을 듣고 누구의 음성인지 잘 모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결국 여러번 반복한 후에야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처음에 듣지 못했다해도 그분은 우리들이 알아 들을때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하실테니까요.

    이제 잠시 책을 덮고 묵상을 하십시오. 당신의 영 깊은 곳에서 주님께 “말씀하세요!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기도하시면 그분은 응답하실 것입니다. 음성을 들으시면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영 깊은 곳에서 성령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령의 불은 당신의 “요새”를 태우거나 당신의 갈 바를 지시하실 것입니다. 귀를 기울여 기다리십시오.


     

     

     

     

    여섯째 주 둘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주님을 가까이
    오늘의 주제: 하나님 음성을 듣는 법(1)
    본문: 누가복음 5:16; 6:12; 21:37; 22:39-46


    본문에서 우리들은 우리 주님의 삶 중에서 중요한 습관 하나를 보게됩니다. 누가복음 6:12에 보면 주님께서는 이제 막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중요한 결정을 하시려고 합니다.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동안 사역을 하실 때 이들 열두 제자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셨음을 유의하십시오. 비록 그들 모두 단점을 지닌 사람들이었지만 말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온밤을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신 후에 이러한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1:37에는 주님의 공생애 마지막 부분이 나옵니다. 낮에는 사람들을 가르치시느라고 바쁘게 보내셨지만 밤에는 감람산으로 기도하시려고 가셨습니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39-46을 보면 주님께서는 역시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는 장면을 대하게됩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육신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으셨지만 주님의 의지는 감람산 기도시간에 이미 처리되었습니다.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의 의지는 처리된 것입니다. 그분의 기도는 너무나 간절했고 그 고뇌는 너무나 컸기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군데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려고 한적한 곳을 찾아 가셨다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세례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을 홀로 계셨던 일, 마태복음 14:23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가신 일들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누가복음 9:28-35에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습관적으로 혼자 기도하셨다면 우리들은 더욱 더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처리되어야만 합니다.

    질문: 우리들은 하루에 얼마동안이나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데 시간을 할애합니까?
    □ 전혀 기도 안함
    □ 가끔 불규칙적으로
    □ 하루에 한시간 미만
    □ 하루에 최소 한시간 이상

    사람들이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가끔 골프를 배워보려고 시도를 합니다만 그 때마다 얼마 못되어 포기를 하곤 합니다. 왜냐고요? 몇 시간씩 하얀 공을 치고 다니는 것이 제게는 지겨운 일이니까요. 제 아내는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저는 책 읽는 것이 더 흥미 있습니다. 조용한 방에 책을 쓸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어떤 일들을 계속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경청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많은 변명들을 늘어놓을 것이며, 결국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왕중에 왕이신 주님의 인도함을 무시하고 육신의 정욕만을 좇아 살아온 지난날들을 회상해 보십시오. 무슨 생각이 듭니까?


    다음 공간에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원하시면 이러한 일들을 인도자와 상의해 보거나 다음 소그룹 모임에서 이야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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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성령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 모양으로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시는데 어떤 때는 우리들의 이성을 통해 상황 판단을 할 수 있게 하시며, 때로는 우리들의 의지를 통해 소원이 일게 하셔서 그분이 원하시는 일들을 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들의 영을 통해 고난받고 있을 때 마음의 평안을 주시거나, 마음이 평안하다고 할 때 어려움을 겪게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던 사건들을 회상케하는 우리들의 기억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 살 때 양심에 호소하셔서 꾸짖기도 하십니다.

    틀림없는 사실은 우리들이 그 분의 임재 속에 들어가면 분명히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솔로몬 왕은 잠언 4:4에서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맘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말합니다. 홀로 “경청의 방”에 들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시간을 할애하려면 먼저 우리 삶에서 우선 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경제 원리에 “이 물건을 사 버리면 저 물건을 살 돈이 남지 않는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잘 사용하는가 하는 것보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쪼개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하루의 일과 중에 다음 일들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쓰십니까? 기도할 시간을 얻기 위해 어떤 시간을 조정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일과들   사용하는 시간 (매일 또는 매주)
    □ 기도    ____________
    □ 취미 생활   ____________
    □ 직장/학교   ____________
    □ 텔레비젼   ____________
    □ 샤핑    ____________
    □ 구역 활동   ____________
    □ 휴식/수면   ____________
    □ 친구와 대화   ____________
    □ 가족과의 시간  ____________
    □ 독서/공부   ____________

     

     

     


    여섯째 주 셋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주님을 가까이
    오늘의 주제: 하나님 음성을 듣는 법(2)
    본문: 베드로전서 1:10-12; 16-20; 마태복음 22:29

    성경말씀과 “경청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먼저 누가 성경을 쓰도록 하셨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1 말씀에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떤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성경 저자들 안에도 계셔서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섬긴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의 삶속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야 함은 물론 “경청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에도 항상 함께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성경의 저자이심이 분명하므로 그 분이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음성도 성경말씀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듣는 주님의 음성은 성경말씀과 연결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듣는 음성은 성경으로 확인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성경과 상충되는 말씀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시켜 드릴만한 성경구절들 몇 개 여기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성경에 다음 구절들을 밑줄 치시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하느니라

    누가복음 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골방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항상 성경을 참고하여 성경말씀에 위배되는 어떠한 생각들이 들면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다보면 성경의 영감된 진리들이 우리들의 마음에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성령님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내가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그분의 생각이나 진리를 우리의 마음에 직접 비추어 주십니다. 이럴 때 나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됩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게되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와 찬양을 저절로 드리게 되며, 죄를 자백하기도 하고 소명을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통스럽던 문제들의 해답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을 누구에겐가 간증케하시고 그들에게 주님을 전하게 해주십니다. 또 어떤 때는 당신이 속해 있는 소그룹나 가족들을 위한 특별한 말씀을 주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과의 교제시간은 습관적이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진심으로 그러한 교제의 시간들을 기다리고 즐거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또는 믿음의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우리들만의 특권입니다.

    마태복음 22:29에 보면 주님께서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들에게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이유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들은 무엇이었나요?

     너희가 _________도, ______________의 ____________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다음 문장들 중에 어느 문장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 성경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둘 다 알아야 한다
    □ 기도할 때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면 성령님의 조명이 있다

    이제 성령님의 조명을 체험할 준비를 하십시다. 먼저 성경말씀 고린도후서 3:17 말씀을 읽고 성령님께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말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당신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에 관계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차례를 생각지 말고 그대로 적어보십시오. 성경말씀의 내용과 능력을 깨닫고 또한 그 말씀의 적용에 대해서 알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하십시오.

    랄프아저씨의 개인적인 권면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할 때에 성경말씀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당신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당신에게 주신 이유를 타인에게 배우기 위하여 많은 세월을 허송하지 않아도 됩니다. 타인에게 의존하여 몇 년씩 기다리지 말고 매일 매일 조금씩 배우십시오.
    성경공부를 “경청의 방”에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성경공부로 대치할 수는 없지요.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5:39-40을 통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을 공부하는 일은 당신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신학교에서 소비합니다만 이것은 집에서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Cover The Bible"이란 교재를 사용해서 하루에 15-20분씩 할애하면 가능합니다. 이 교재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쓰여진 것이며 하루에 5분 정도의 테잎교재를 매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모임에 속해있는 은사 받은 교우에게 당신이 공부한 것을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여섯째 주 넷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주님을 가까이
    오늘의 주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3)
    본문: 로마서 8:5-7; 8:27; 12:2

    본문을 깊이 생각하여 읽으면 성령이 우리의 선생이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성령께서는 성경말씀을 사용하시든지 또는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든지, 성경의 가르침과 상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배웠습니다.

    성경말씀을 깊이 연구한다는 것은 조명을 통해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지성으로 판단해야 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우리의 지성을 저버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성과 영(우리의 속사람)을 같이 쓴다는 뜻이지 어느 한쪽만을 쓴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서 당신의 지성이 비로소 올바른 초점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마음(지성)은 조명을 이룩하며 증거하는 당신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지성으로 계시를 받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영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조명은 불합리한 것이 아니고 초이지적 현상입니다. 영의 세계로 가는 일종의 현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종이 되기까지는 어두움의 권세가 당신의 지성과 혼을 지배했었지요(로마서 8:7). 이제는 하나님과 교통을 하게되므로 성령께서 영원한 진리로 인도해주십니다.

    당신의 영적생활을 점검해보십시다.
    맞다 틀리다
     □   □  나의 생활의 대부분이 영보다는 육신적 체험이다.
     □   □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의 영적생활보다 지적생활의 발전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   □  상황판단을 할 때 영적으로 하지 않고 지성의 명령에 따른다.
     □   □  성령이 인도하시는 지성보다는 지식적이고 계산적인 지성이 지배적이다.
     □   □  성경공부를 학문적 차원에서 더욱 치중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나 예배를 위한
      시간을 소홀히 한다.
     □   □  지적인 분석을 토대로 해서 결정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 지혜,
      책임감 등을 간구하며 기다릴 줄 모른다.
     □   □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통해 나의 길을 인도하시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신앙의 체험을 거의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1) 우리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단순히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내 “속사람”을 나타낸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
    2) 성령의 생각은 당신 자신의 생각이 아닙니다.
    3) 생각은 부음을 받는 것이며 당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4) 이러한 음성은 당신에게 독특한 의미를 줍니다.
    5) 당신에게 주어진 음성은 당신 자신의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6) 그러한 음성에서는 하나님의 권세와 임재를 느껴지게 됩니다. 그 음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14에서 말씀하시기를 끊임없는 성령의 말씀으로 연단된 자는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생각을 구별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계발될 때까지는 당신 생각과 하나님의 음성을 혼동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4: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검토해 보십시오. 분명치 않을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십시오.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가?” 또는 “성경과 일치하는가?”.

    이사야 6:8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 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또 30:21에서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내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라고 말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거쳐 많은 사람들이 “경청의 방”에서 있었던 일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일기장들은 기록했던 사람들에게 소중했기 때문에 보전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또 몇 세대로 이어지며 그 심오한 생각들이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경청의 방”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성령이 부어주는 생각들을 기록하십시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생소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음성이 하나님께로 왔는가? 아니면 내 생각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일단 다 적어 놓으신 후 당신이 기록한 것을 간절한 기도로 식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공책을 사용하면 됩니다. 또는 녹음기, 타자기, 컴퓨터 등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요한 웨슬리는 “경청의 방”에서 있었던 모든 일기를 자기만이 아는 비밀 부호를 써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의 일기장을 읽어내는데 많은 연구가 필요했었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고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 중에는 공개하기 쑥스러운 내용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기를 쓰시게 되면 반드시 날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수 없는 연습과정을 거쳐 숙달되기 때문에 경기 중에는 자동발생적인 동작으로 경기를 하게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도 그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천하기 위한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체험해보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 보십시오. 세월이 흘러간 후에는 그 결과에 대해서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주 다섯째 날
    단원의 주제: 종의 삶
    금주의 주제: 주님을 가까이
    오늘의 주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4)
    본문: 누가복음 10:38-42; 로마서 12:11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음식준비에 더욱 마음을 썼고,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경우에 처하면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 마르다
    □ 마리아

    우리들의 가치 기준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해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나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앉아 있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나의 생애 중 주님을 위한 사역을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주님의 권세가 나의 사역에서 쇠퇴 되어감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보니 내가 마르다처럼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마르다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나처럼 열심이 없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 속에 아가페의 사랑이 메말라 있었고 자연적으로 내 주위에 있는 영혼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나의 “경청의 방”은 고백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요한일서 1:9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보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하는 동안은 그와 같이 있지 못하게됩니다. 우리는 마르다 같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양쪽을 다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0:41-42에서 예수님께서 마르다가 마리아에 대해 불평했을 때 하신 말씀을 당신이 정리해서 적어보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누가복음 10:41-42에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다”하신 말씀은 무엇을 뜻합니까?
    □ 실제 필요한 일을 하는 대신 주님과 같이 있는 것을 종용하셨다.
    □ 손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 둘 다 맞다.
    □ 둘 다 틀리다.

    로마서 12:11에서 사도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또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며 ‘경청의 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도 열심히 하라”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아니면 그의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성령의 힘이 흘러나오는 통로의 역할을 하려면 주님과의 꾸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는 기도!

    서울의 조용기 목사님의 개인 비서인 리디아 스웨인 여사가 끊임없는 기도의 중요성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며칠을 두고 금식기도를 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미국에 있는 딸 때문에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분은 다만 자기 딸이 대단한 위험에 처해 있거나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밖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경청의 방”에서 주님께 기도하며 경청한 뒤에 “이제는 끝났다, 라디아! 나머지는 내가 처리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딸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딸의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3만 피트 상공에 떠있는 비행기 안에서 좌석벨트를 풀고 복도로 걸어가려 할 때 “벨트를 풀면 안된다”하는 단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자기에게 들려온 음성에 대해 심각히 생각하고 있던 순간 어느 남자가 비행기 문쪽으로 돌진하여 문을 열어 재치고 밖으로 뛰어내렸으며 매여있지 않았던 모든 물건들이 열린 문으로 빨려나가 버렸습니다.

    스웨인 여사께서는 제게 지난 수년동안 기도하기에 힘쓰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짐이 벗겨질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주의 일을 함과 동시에 주를 향한 열정을 잃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경청하는 것!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경청하는 책임은 중요합니다. 당신이 속해있는 소그룹 구성원 중에 어려운 일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그럴 때 “경청의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중에 그들의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 주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받도록 노력해보십시오. 그래서 얻어낸 대답을 간증할 수 있도록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저는 가끔 소그룹 모임을 떠나기 전까지도 어떤 사람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청의 방”에서 기도를 통해 문제해결에 대한 응답을 얻게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다음 모임에서 간증의 형식으로나 혹은 그 사람과 개별적으로 문제해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위해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당신의 품성을 성화 할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라는 말씀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는 일기장에 기록해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한 소명에 대해 숙고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라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당신 또는 다른 사람들의 신체적 질병에 대한 말씀을 주시기도 합니다. 단순히 이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치신 것은 그의 깊은 애정으로 고통 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연민의 정이 있다고 느끼면 중보기도의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소그룹 구성원 중의 한 분인 낸시의 며느리가 임신을 했는데 그 태아가 기형아로 태중에서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 차례의 진찰을 통해서 기형아임을 확인하고 낸시는 해산 직전까지 눈물의 처절한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낸시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며느리가 온전한 아이를 낳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가 아닌 제 삼자를 통해서 당신의 믿음을 완성시키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일곱째 주 첫째 날
    단원의 주제: 개인적인 문제들
    금주의 주제: 요새(Strongholds)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문제의 인식
    본문: 에베소서 4:17-24; 빌립보서 2:12; 고린도전서 10:13

    17쪽(첫째 주 넷째 날)에서 우리는 요새의 정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17쪽의 정의를 다시 보지 않고 아래에서 맞는 답을 찾아보시고 만약 할 수 없으면 17쪽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  ) 요새란 아직도 사단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내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  ) 요새란 어떤 권력이 장악하고 있는 강화된 방어태세를 갖춘 곳이다.
    (  ) 위의 둘 다 맞다.

    “--한 내적인 상태에 있는 크리스천”이란 구절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오직 크리스천에게만 ‘요새’가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요새가 없습니다. 그들은 사단에게 완전한 지배를 받습니다. 61쪽의 도표를 살펴보시고 요새가 믿는 자의 혼(마음, 의지, 감정)과 육에 있을 수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 나라에서 당신은 승리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은혜로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한 승리의 생활을 위해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요새들 같이)은 제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테두리에 갇혀있습니다. 이 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새 삶 가운데까지 우리와 함께 끌려와 있습니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습니다. (빌 2:12) 바울은 여기서 당신이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하는 기도를 하던 순간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패배감을 갖도록 하는 요인들로부터 우리가 이룰 매일 매일의 구원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삶에 “경청의 방”을 갖추어 놓았으므로 당신의 삶에 자리잡고 있는 요새로부터 당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새롭고도 강력한 방법으로 일 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로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한 “젊은이”가 될 것입니다.
    16쪽에서 우리는 이 표현이 이미 악한 자를 이긴 사람들에 관한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본 교재가 그러한 승리로 당신을 인도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당신의 삶 안에 있는 요새와의 싸움을 이겼을 때 당신은 밖으로부터 오는 공격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당신의 과거의 “서류철”을 하나 하나 조사하여 그리스도의 치료를 방해하는 요새가 될 수 있는 영역들을 노출시키고자 합니다. 지나간 고통과 죄의 모든 부분들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새로부터 놓임을 받기 위해서는 당신의 현재의 삶의 문제점들(죄, 상처, 저주)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다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옆의 그림을 살펴보십시오. 이 그림은 불신자로서 우리의 생활양식의 바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겪었던 일들은 현재를 삐뚤어지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총 집산 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기억들을 쓰레기가 가득한 가방처럼 어디나 들고 다닙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우리는 무엇을 벗어야합니까?
    너희는 ________________의 욕심을 따라 ______________________가는 구습을 쫓는 ____________   ________________을 벗어버리고.

    바울은 우리의 “옛 사람”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가기까지 옛사람의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안에 있는 요새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요새를 다룸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데 세 가지의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 단계로, 우리는 삼천층(the third heaven)에서 용서를 받습니다(요일 1:9). 그러나 우리가 용서를 받았음에도, 용서를 받은 것같이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로, 우리는 또한 선한 양심을 갖게됩니다(행 24:16; 고전 4:4)
    죄의 결과로 남아있는 상처들이 깨끗함 받고 치료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 세 번째 단계입니다.

    아래의 질문들을 자신에게 비추어 보십시오. 당신 자신의 삶에 요새로 생각되는 것들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일에 어려움을 느낍니까?
    ◘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까?  당신 자신이 자랑스럽습니까?
    ◘ 당신은 반항적입니까?  마음이 분노로 차있습니까?  고집불통입니까?
    ◘ 당신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습니까?  누군가에 대한 적개심이 있습니까?  독한 마음을 품고있습니까?  증오를 품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 당신은 불안합니까?
    ◘ 당신은 자살을 심각히 고려해보거나 시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 당신은 어떤 두려움이나 공포가 있습니까?
    ◘ 당신은 신당에 가본 일이 있습니까?  점을 쳐본 일이 있습니까?
    ◘ 당신은 부적을 소지해본 일이 있습니까?  우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 당신은 헤비메탈 음악이나 펑크록 음악을 듣고 흥분해본 일이 있습니까?
    ◘ 당신은 성적인 환상을 합니까? 자위행위를 합니까?
    ◘ 당신은 성적인 학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몇 살 때였습니까?
    ◘ 당신은 만성적인 질병이 있습니까?
    ◘ 당신은 하나님의 존재나 자신의 구원에 대해 심각한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까?

    오늘 공부의 마감으로 암송구절 가운데에서 고린도전서 10:13을 꺼내어 암송하십시오. 이 구절은 언제나 당신의 마음에 필요합니다.

     

     

     

     

     


    일곱째 주 둘째 날
    단원의 주제: 개인적인 문제들
    금주의 주제: 요새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혼연 (Soul Ties)
    본문: 창세기 2:24; 마태복음 19:5; 고린도전서 6:15-17

    “혼연”이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불건전한 연합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단순한 “추억”이나 “감정”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결합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혼연은 성행위를 포함한 감정적 혹은 육체적인 관계를 기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 친구, 혹은 형제, 자매에 대한 부자연적인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혼연은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새인 것이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삶에서 혼연을 통해 역사합니다.

    창세기 2:24과 마태복음 19:5에서 우리가 결혼할 때 어떤 혼연이 깨어져야 합니까?
    □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복종
    □ 부모는 결혼한 자녀들을 조정하거나 주도하지 않아야 한다.
    □ 둘다 맞다.

    혼연은 아래 두 가지 중 한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집니다.

    1) 당신의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예배와 신뢰함을 대체한 다른 사람에 대한 헌신.
    이것은 당신과 당신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들 (상담자, 배우자,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 아들 혹은 딸 등) 사이에 형성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에 대해 혼연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명하심으로 이 문제를 다루셔야 했습니다.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이것을 준비했습니다. 일단 그의 행동으로 혼연이 끊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중지시키셨습니다. 더 이상 계속해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주님을 그 분이 마땅히 계셔야만 할 중심의 보좌에 다시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2)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 사이에만 있어야 할 밀착된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허용함.
    당신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결혼의 계약관계에 속하는 육체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당신이 결혼했다면 이것은 오직 당신의 배우자를 향한 감정과, 자극적인 키스를 포함한 육체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한 환상은 비록 접촉이 없을지라도 혼연일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관계에 빠져있다면 당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고린도전서 6:15-17에서 매춘부와 성관계는 그 일이 지난 후에도, 아마 그 일을 기억하지 않게 된다해도, 계속 남아있는 혼연이 됩니까?
    □ 예
    □ 아니오
    □ 모르겠다

    혼연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일

    1) 죄를 범함.
    당사자 개인에게 죄의식이 형성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우리를 괴롭히는 요새를 형성하게 됩니다.

    2)영적인 속박이 이루어짐.
    우리는 우리와 혼연이 형성되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적으로 묶여있습니다. 예를 들면, 간음은 내적인 혼란을 가져오는 요새(Stronghold)를 만들어 당신의 배우자와의 결합을 어렵게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이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다윗이 밧세바로 더불어 범한 죄는 그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때때로 혼연은 오래 전에 사랑했던 그리고 아직도 환상 속에 되살아나는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관계일지라도 주님 앞에 전심을 갖는 일보다 중요하다면 그것은 요새(Stronghold)입니다. 당신은 끊임없는 패배를 맛볼 것입니다.

    어떻게 혼연을 깨뜨릴 것인가?

    혼연은 죄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요한일서 1:9). 혼연은 하나씩 개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자백을 포함합니다. 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그 죄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얻었던 쾌락까지 끊어버리는 선언을 해야합니다. 당신의 자백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은 당신 자신에게 중요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1).

    그리고 나서 씻음이 있습니다. 그 죄를 예수님의 보혈 앞에 갖고 나와 용서함을 받고 당신의 영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깨끗케 하셨음을 알게될 때까지 “경청의 방”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마지막으로 묵상이 따릅니다. 무엇 때문에 그 혼연이 형성되었던가? 외로움이었던가? 성에 대한 호기심이었던가? 무엇이 당신을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촉발시켰는지 파악한 후에 그 요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사단이 다시는 당신을 유혹할 수 있는 자리에 돌아올 수 없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14을 묵상하십시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위의 말씀의 묵상은 당신이 상상력 가운데 당신과 혼연이 형성되어 있던 사람과의 관계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예수께서 그 혼연을 깨뜨렸음을 선언하십시오. 당신의 손을 가슴에 얹고 혼연이 형성되었던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을 고백함으로 되돌려주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으로부터 당신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을 취하여 찾아오십시오.

    기도: 나는 자유롭다. 나는 용서받았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__________(관계된 사람의 이름)로부터 영원히 씻음 받았다.

    당신 혼자서 할 수 없다면...

    많은 경우 혼연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민감하면서 또한 기도를 통한 분별력과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사역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질적인 혼연의 문제가 있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당신의 영적인 여정을 위해 동반자를 찾아내십시오. 당신의 후원자, 소그룹 인도자. 혹은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목회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천국길 여정에 우리를 돕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적절한 사람과 나누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브리서 3:13)

     

     

    제7주 제3일
    단원의 주제: 개인적인 문제들
    금주의 주제: 요새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우상숭배
    본문: 출애굽기 20:3-5; 요한일서 5:21; 갈라디아서 5:19-21

    너무 자주 우리는 십계명 중 첫계명을 제일 지키기 쉬운 계명으로 간주하고 그럴싸하게 겉치레를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담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들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싱가폴의 중국계 인구 중에는 많은 우상숭배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가정에 불상이나 콴인(Quan Yin), Hanemun 등의 상을 모신 신단이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때로 어리석게도 이런 우상들을 여행기념물로 사가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그렇게 극도로 싫어하시고 우상 섬기는 죄로 인해 그 자손들에게 벌을 내리실까요? 그 답은 로마서 1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서 그 능력과 위엄을 만민에게 들어내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 다음의 논리적인 순서는 내가 그 앞에 무릎 꿇고 그를 경배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의 권위 앞에 양도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이러한 불법의 상태에 계속 남아있겠다는 인간의 강한 결심이 바로 우상을 만드는 동기가 됩니다. 자신이 만든 우상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알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조종할 수 있고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와 소원 성취케 하도록 우상에게 아첨을 합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것입니다 (로마서 1:23). 모든 우상은 그 우상을 만든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오만한 표현입니다. 이런 행위는 결코 형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첫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어떤 중국인이 저에게 여러번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을 거역하는 일이 두려워 크리스천이 될 수 없어요. 저희 부모님은 우상을 섬깁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우상의 저주가 지옥에 떨어뜨린다는 것을 기억하게됩니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상을 섬기는 가정에서 자라나 가정의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차 우상을 파괴하고 신단을 태워버리는 예식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또한 부적을 수집하는데 옷장 서랍에 넣어두고는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소그룹 구성원들은 이런 것들을 모두 없애고 “집안을 청소할 수 있는” 허가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함께 그것들은 발견되어 부서집니다.

    우상이 있는 곳에 요새가 있다

    한 가족이 우상을 구입하면 그들은 그것에 신이 들도록 절에 가지고 갑니다. 그리하여 가족들은 그 악령과 함께 먹고 잡니다. 악령의 권세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하고 두려움과 미신을 가져오며 그 가족들을 묶어 놓습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비록 친척간에 소요를 일으킨다 하여도 자신의 소유권 안에 우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구약 전체는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이 노하시는 사건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우상을 허용하는 것을 영적인 간음을 하는 것으로 보십니다.

    우상을 아주 위험한 것으로 만드는 것 중의 한가지는 그 속이는 힘입니다. 사단은 우리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에 안달이 나 있습니다. 우상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속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목전에 그 우상들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가를 자신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악령이 득실대는 물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그들이 깨닫는다면 그들은 마치 뱀의 공격을 받은 것처럼 그것들로부터 움찔하고 물러날 것입니다.

    모든 우상이 자명한 것은 아니다

    웹스터 사전의 우상에 대한 정의 가운데에는 이러한 것도 있습니다. “과도한 애착이나 경외나 열중하게 하는 대상.”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일은 동양 뿐 아니라 서양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흔한 죄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 일 뿐 아니라 속임꾼입니다. 사단은 영리하기도 합니다. 세련된 사람들에게는 사단이 다른 종류의 우상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과도한 애착의 대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좋은 차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집일 수도 있습니다. 우상은 또 여행이나 스포츠 (직접하든지 구경하든지), 야망, 취미, 예술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이런 우상은 안전할 뿐 아니라 편안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사단은 마약, 술, 노름, 혹은 혼음을 권합니다.

    문제를 정정당당히 대하자

    만약 당신이 당신의 삶 가운데 있는 우상의 요새(Stronghold)를 그럴싸하게 꾸며댔다면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처리해야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의 능력은 당신에게 유용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경청의 방”에 가서 주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사악한 것으로 볼 수 없도록 당신의 눈을 가렸던 어떤 것으로부터도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시도록 구하십시오. 당신 자신에게 솔직하십시오. 당신은 과다한 애착심의 굴레에 묶여있지 않습니까?

    사단은 당신을 유혹할 총천연색 사진의 우상들이 가득한 커다란 상품목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중의 하나를 고를 때마다 사단은 당신을 조종할 악령의 권세로 그것을 축복하고 당신은 고약한 요새(Stronghold)의 희생물이 됩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적 아말렉과 싸움을 시작할 때 그들이 축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아말렉 족속의 모든 사람과 물건을 다 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선한자들과 섞이도록 허락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부패케 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대신, 사울왕은 보물을 남겨두고 아각왕을 살려두었습니다. 사무엘은 극도로 화가 났습니다. 자신의 불순종 때문에 사울은 왕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아각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의 가슴속에 혹은 삶 가운데 우상이 있다면, 당신은 사단으로 하여금 들어와서 당신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놓을 수 있는 요새(Stronghold)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당신은 삶 가운데 결코 승리를 볼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평안은 언제나 당신을 비켜갈 것입니다. 당신의 경배의 대상물, 우상을 완전히 부셔버리십시오.

    몇 년 전 우리 가족은 선인도자로 월남에 가게되었습니다. 어떤 아시아 출신의 나이 많은 선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소유물을 가슴에 두지말고 손에 들고 있으시오.” 우리가 그곳에 머문지 몇주 되지 않아서 사이공은 함락되었습니다. 많은 선인도자들이 소유물 중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받았던 충고를 기억했습니다. 당신에게 몇 가지 충고를 주고자합니다. 당신의 우상을 부셔버리십시오. 당신의 가슴에 있는 것을 대신 손에 가지고 있으십시오. 우상이 당신을 조종하도록 타협하지 마십시오.

    이제 “경청의 방”에 갈 시간입니다. 당신은 어떤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까?

     

    제7주 제4일
    단원의 주제: 개인적인 문제들
    금주의 주제: 요새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이 땅의 보물
    본문: 누가복음 16:19-31; 마태복음 6:19-23

    누가복음 16:19-31에서 부자는 죽은 후에 생전에 자신이 가졌던 소유물 중 얼마를 즐겼습니까?
    □ 모두
    □ 아무것도 즐기지 못했다.

    어느 날 저는 싱가폴의 가장 오래된 시가지 중 한 곳을 거닐며 싱가폴의 문화에 대해 배우고자 했습니다. 어느 한 가게를 보니 사람들이 대나무 가지와 종이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실물의 절반 정도 크기인 벤즈차의 모형이 제 눈길을 끌었는데 그것은 종이로 된 좌석과 운전대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섯자 정도 높이의 밝게 색칠이 된 성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가구도 있었습니다. 가게 안에는 또 거의 실물 크기의 육감적인 자태로 옷을 입고 아주 곡선미가 있는 금발의 종이 인형이 있었습니다.

    이 장난감같은 물체들은 방금 세상을 떠난 가난한 택시 운전사를 위해 쓰여질 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택시 운전사의 시신이 화장될 때 이 물체들도 그의 “사후”의 필요를 위해 가까이서 소각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부자들을 바라보며 살다가 자신도 부자들이 누리는 쾌락을 조금이라도, 비록 사후 귀신들의 세계에서라도, 누려보겠노라고 굳게 결심을 했었습니다.

    세계 주요 종교 중 하나는 천국을 우리의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시키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관능주의가 억제 당함이 없이 영원히 실천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장래에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6:19-23에서 예수께서는 “이 땅의 보물”과 “천국의 보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보물”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우리가 귀히 여겨야 할 이 미래의 “나라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만약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안다면 우리는 이 인생을 특별한 방법으로 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의 보물은 쉽게 열거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소중히 여긴다”는 말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십니까? 사람들은 각자 다른 것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내 마음이 가 있는 곳보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혹은 누구를 당신은 지금 제일 소중히 여기십니까?
    33쪽에서 이미 살펴봤던 목록을 다시 한번 복습하십시다. 81쪽에 이 목록이 나와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방금 하나님 나라에서 사후의 세계에 들어섰습니다. 앞에서 당신이 기록했던 것을 되돌아가서 보지 말고 다시 한번 목록에 있는 것들에 우선 순위를 매겨보십시오. 우선 순위가 가장 높은 것을 1로 하고 제일 낮은 우선 순위를 18로 하십시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당신이 지금 살고있는 삶이 끝이 날 때 당신이 무엇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에 대해 주의깊게 생각하십시오.

     

     

     

    나의 가치 체계, 제2부
    나는 방금 세상을 떠났다. 이것이 지금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다.

    (  ) 번창하고 부유함   
    (  ) 흥분시키는 것들을 하는 것  
    (  ) 어떤 큰 것에 성취하는 것  
    (  ) 갈등없이 사는 것   
    (  ) 다른 사람들과 평등한 감정  
    (  ) 나의 가족을 안전하게 하는 것  
    (  ) 자신의 선택권의 자유   
    (  ) 행복함, 만족함   
    (  ) 내부의 갈등으로부터 벗어남  
    (  ) 절친한 친구들을 가짐
    (  ) 범죄로부터 안전함
    (  ) 생활의 즐거움(여행, 영화 등)
    (  ) 하나님의 뜻을 따름
    (  )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짐
    (  ) 인정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  ) 다른 사람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
    (  )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
    (  ) 세력을 열망함

    마태복음 6:22-23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보물을 따라 갑니다. 영원히 있을 것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개인적인 소유물에 애정과 충성심을 주는 것을 피하십시오. 마가복음 10:21은 예수께서 젊은 부자 관원을 보시고 “그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사랑하셨다”는 말을 당신 영혼 깊은 곳에 스며들도록 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이 젊은이가 이 세상의 부를 소중히 여김으로 얼마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가를 아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부요해지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불필요한, 마음을 혼란시키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이나 주님의 사업에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6:24에 나온 단어 “돈”은 헬라원어로 “재물의 신”입니다. 중국우상이 그 안에 마귀의 실재를 심어놓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돈 우상은 그 안에 재물의 신의 주권을 심어 놓았습니다. 돈은 조심스럽게 다루고 현명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눈을 가려 실재를 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정한 헌신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룻과 제가 41년동안 지키고 살려고 애썼던 한가지 원칙을 당신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써 당신이 이것을 사용하시도록 나눕니다.

    주인께 복종하는 것은 종의 직무이다.
    종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은 주인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종은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제7주 제5일
    단원의 주제: 개인적인 문제들
    금주의 주제: 요새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그냥 하라”
    본문: 고린도후서 6:1-2; 빌립보서 1:6; 2:12-13

    고린도후서 6:1에서 바울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까?
    □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린도후서 6:2에서 “구원의 날”은 맨 처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받은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 예
    □ 아니오
    □ 잘 모르겠다

    만약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답하기가 어려웠다면 빌립보서 1:6과 2:12-13에 있는 이 중요한 구절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당신의 구원은 세 가지 단계 안에 있다

    1) 십자가에서.
    당신은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2) 날마다.
    당신은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있습니다.
    3) 앞으로.
    당신은 죄의 실재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오늘 묵상하고 있는 구절들은 당신에게, 오늘을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당신이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받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에게 “오늘은 구원의 날입니다.”

    “죄”란 단어는 당신의 삶을 지배하기 원하는 자랑스런 “나”를 가리키는 것이지 자랑스런 “나”로 인해 이루어지는 단순한 “죄” 혹은 행동만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의 보좌에 모시고, 당신의 가치관, 습관, 생활양식에 존재한다고 인정한 요새(Stronghold)들을 그분께 드리면 당신은 그 분의 능력에 의하여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당신의 삶 가운데서 경험하는 하나 하나의 승리는 모두 당신이 당신 주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적인 전투에 개입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만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회생시키기 위해 주님의 능력을 가져올 수 있는 치료 받은자들이 될 것입니다.

    나는 일생 동안 나의 체중과 싸워왔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똑같은 문제가 있다면 당신을 동정합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제 의사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종의 비만증이 저에게 생겼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당신은 이제 비만증이 당신을 파괴하도록 놔두든지 아니면 하루 한시간씩 운동을 하고 당신의 음식을 바꾸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현실에 부딪히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운동과 랄프아저씨는 수년동안을 서로 못본척하고 지나쳐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결과를 맞을 때가 된 것입니다. 저는 운동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내 자신을 밀어 붙이며 운동장의 트랙을 걷는 한심한 첫시간, 24살 정도로 보이는 한 가냘프고 작은 체구의 젊은 아가씨가 얼마나 빨리 저를 지나쳐 가는지 저는 마치 움직이지 않는 물체와 같았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그 아가씨가 여섯 발자국  내지 여덟 발자국  쯤 제 앞에 갔을 때 그 아가씨가 입고 있는 밝은 빨강색 티셔츠의 등에 인쇄된 글을 봤는데 “밑져야 본전이다!”(Just Do It!)고 써있었습니다.

    나는 “주님, 주님은 과거에 천둥과 번개 속에서 조용하면서도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티셔츠의 등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경청의 방”으로 들어갈 시간입니다.
    아마도 여러날 동안 당신은 성령님께서 당신의 주위를 환기시키신 요새(Stronghold)에 대하여 당신 자신과 논쟁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전에도 시도해봤지만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 오는 패배감은 정말 싫어!”하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자, 누가 그런 생각들을 당신의 마음속에다 심어 놓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령님께로부터 왔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 뿐 아니라 사단의 속삭임도 분별하는 법을 배우십니까? 당신의 생각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까?

    귀를 기울여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시는 것이 들립니까? “과거 승리하기 위해 애쓰던 너의 문제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네가 하려고 하는데에서부터 왔단다. 이제 그것을 중지하고 네 삶을 산제사로 내게 주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있고 내가 주관할 때 구원은 너의 것이란다.”

     

     

     

     

     

     

     

     

     

     

     


    제8주 제1일
    단원의 주제: 사생활
    금주의 주제: 태도(Attitude)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행복은 선택이다
    본문: 마태복음 5:3-12

    당신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개인적으로 자기의 의견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칸에 표하시오)

    □ 나의 삶의 환경에 요건에 의해서
    □ 아름다운 저택에 살 때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경외하는 사람과 있을 때
    □ 마음에 맞는 친구와 즐거운 식사를 가질 때
    □ 삶에 압박감이 없을 때
    □ 해변가에서 긴 휴식을 취할 때
    □ 나의 성취한 것에 대해 만족감을 가질 때
    □ 기타: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당신은 언제 고급식당에서 웨이터가 당신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세요.”하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단순한 인사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지요. 이런 것들이 당신을 불편하게 합니까? 왜냐하면 단순한 한끼 식사가 장시간의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웨이터가 한 이 말이 맛있는 요리 한접시에 행복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그렇게 하게된 것일까요?

    레드 하퍼(Redd Harper)씨는 가끔 오클라호마 거리를 따라 걷다가 어떤 사람이 쓴 표정으로 있을 때 그에게 곧잘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그 사람은 대답하길, “신문에 못 보셨나요? 그 외국인이 여길 쳐들어와 원자탄을 터뜨려 우릴 날려버린다고 하잖아요.” 레드씨는 웃으면서, “당신 일이나 챙기세요! 만일 그들이 나에게 폭탄을 떨어뜨린다면 아마 나를 천국까지 날려버릴거예요.”

    이 세상 나라 에서 우리는 주어진 환경 안에 행복이 있다고 믿도록 조심스럽게 세뇌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행복을 “관계”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3-12에서는 행복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디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삶의 중요성을 찾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그들이 사랑했던 것은 잃어버린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과거의 삶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들의 삶이 온전히 주님께 드린 자들을 뜻합니다.

    온유한 자는 허약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방비한 상태의 양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철저히 자기의 목자만을 의지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예수만이 의롭고, 예수님이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발견함으로 행복합니다.  예수는 그들의 의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어떤 규칙을 만들어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내주하시는 예수님과의 교재를 즐깁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데 타인을 동정하며 애정을 베푸는 것에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불순한 생각이나 행위로부터 죄의식을 갖고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 것은 상황이 비참한 사람들에게 “평강의 왕”(예수)에게 데리고 오기 때문입니다.

    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나 예수를 인하여 욕을 당하고 거짓으로 그들을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듣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각 사건을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이 예수의 참제자임을 확증해주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살 때, 우리의 환경이 더 이상 우리의 행복을 조정하지 못하며 오히려 주님 안의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이해를 넘어선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여기 옆에 그림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십니까?
    □ 반이 차있는 물잔을 봅니다
    □ 반이 비어있는 물잔을 봅니다

    당신은 생각하시기에 반이 차있는 물잔을 보는 사람보다는 반이 빈 물컵을 보는 사람이 행복해지는데 문제가 된다고 보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아니면 왜 안그렇습니까?

    어떤 분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때로 행복합니다. 또한 다수의 사람들은 외적으로 지속적인 행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것이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당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보십시오.
    □ 사람들은 내가 웃는 모습을 결코 볼 수 없다. 나는 아마 내 생각에 행복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 나는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한 사람으로 비친다
    □ 나는 다양한 편이면서 분위기를 탄다. 내 자신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모를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길 원하십니까?
    □ 기쁨으로 사는 행복한 사람
    □ 항상 심각하며 쓸쓸한 사람
    □ 기분파적인 사람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행복 또는 불행) 잘 모르겠으면, 이런 문제를 당신의 소그룹에서 또는 당신의 후원자와 나누어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두려움이나 공포나 걱정의 영을 갖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시민으로서 하나의 권리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단의 공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태도의 근거에는 영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삶은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경청의 방” 안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제8주 제2일
    단원의 주제: 사생활
    금주의 주제: 태도(Attitude)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이성간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문: 마태복음 5:27-30; 고리도전서 6:9-10; 요한복음 8:12

    마태복음 5:27-30에 의하면 음욕을 품는 것이 실제로 성관계를 갖는 것보다 죄가 덜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 두 가지 행위는 똑같이 중한 죄입니다
    □ 간음이 더 심각한 죄입니다
    □ 음욕을 품은 것이 더 심각한 죄입니다
    □ 음욕을 품지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간통(adultery)과 사통(fornication)과의 차이점에 대해서 아십니까? 간통은 결혼한 남녀 사이의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말하며 사통은 결혼하지 않은 두 남녀가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9-10에는 귀에 거슬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간음하는 자와 사통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유업”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같이 나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성과의 옳지 않은 관계를 갖는 사람은 비참한 종말에 이르게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욕이나 간음이나 사통 등에 대해서 관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실 때는, 음욕을 마음에 품거나 행하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행위들을 허용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세운 타락된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세월을 통해 제 마음은 크리스천들의 비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그런 성적인 불륜으로 이끄는 어떤 상황이나 생각들로부터 유혹 받은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음욕을 품지 낳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감정적인 삶의 한 부분이며 그런 감성을 억누른다는 것은 사람들을 신경성 환자로 만드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께서 이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신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볼 수밖에 있습니다.

    저는 때때로 신학교의 한 그룹의 학생들을 위해 세계일주의 “여름특강”을 엽니다. 그들은 점잖은 젊은이들로 대다수가 결혼했으며 선교현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5주 후 종강 파티 때에 제가 학생들에게, “무엇이 우리가 같이 하는 동안에 직면한 가장 큰 영적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나는 그 기간 내내 음욕과 싸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허용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이것을 분명히 정의합니다. 음욕을 품는 자와 그런 일을 행하는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입니다.

    저와 동행한 학생들이 아시아에서 버스를 이용할 때마다, 옷을 꼭끼게 입어서 몸이 완전히 드러나 보이는  여성들에게 그들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더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생소한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단순히 한 감정의 대상으로 보아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와 동행하던 이 젊은 신학생들에게는 그들이 한 인격체가 아닌 단순한 감정의 대상으로밖에 보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음욕이라는 것은 항상 이러한 사실에 근거합니다. 간음이나 사통도 동일합니다. 이러한 불륜의 성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참가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만족을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향락의 도구로 생각하며 그들을 이용하거나 혹 오용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여자가 자기 몸을 드러내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옷을 입고 버스를 탔을 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보셨을까요?

    하나님의 눈을 통해 보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 저 분은 당신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저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저 여성은 옷을 점잖게 입을만한 자존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아마 자신을 비하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자기 몸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랑받고 존경받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그녀에게 소중하게 여기는 한 남성으로부터의 진정한 사랑을 받고 또한 당신ㅇ르 신랑으로 섬기며 존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기 원합니다. 저는 그녀의 이름을 모릅니다. 단지 그녀에게 하나님을 향한 강한 의지를 불어 넣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네 눈이 그 사람의 진정한 면을 볼 수 없거든 눈을 빼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바꾸십시오! 예수님께서 이전에 다섯 번이나 결혼했으며 지금은 자기 남편이 아닌 남자와 동거하는 한 여성을 만났을 때 만족의 대상으로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7-26). 예수님은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주관하실 때,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경청의 방”에 들어갈 시간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을 외우시기 바랍니다.

     

     

     

     

     

     

     

     

     

     

     

    제8주 제3일
    단원의 주제: 사생활
    금주의 주제: 태도(Attitude)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약한 형제를 어떻게 대처하는가?
    본문: 로마서 14:1-15

    상황:
    당신이 담배를 오랫동안 피워왔던 새신자가 있는 한 소그룹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믿으며, 그런 습관은 용납될 수 없다고 봅니다. 소그룹에서 이 문제를 갖고 토의할 때, 그 새신자가 “담배 피우는 것은 나쁘다고 보지 않아요. 다만 사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시겠습니까?

    □ 생일 선물로 그에게 담배 한 보루를 준다.
    □ 그것은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 담배를 끊기로 종용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소그룹에 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 그 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하며, 전혀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 그의 후원자가 되어 매주 만나 “The Arrival Kit"으로 함께 공부한다.

    종교적인 문제들 중에 하나는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 것”을 제시하는 법적인 제도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할 아무런 권리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여기 서술한 사통과 간음이 해당되겠지요. 그런데 다르게는 “옳은 것”이 있는데 “경청의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상처 입은 영혼을 돌보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어떤 부분은 성경에서 권유하지도 금하지도 않는 “불분명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점에서 어떻게 타인에게 행동해야 될까요?

    두 가지 원리

    첫 번째 원리는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4:6) 나는 왕의 자녀(파이스)입니다. 나는 크리스천 친구들 사이에 속박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내 머리를 길게 하거나 짧게 하거나 자유하며 절기를 지키거나 무시해도 또한 자유합니다. 로마서 14:12에 의해서, 나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설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계수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예를 들어, 내가 주님의 주신 축복을 나태하게 오용했다면 나는 하나니께 그 점에 대해서 대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런 “불분명한 부분”에 대해서 정죄할 권리가 없습니다.

    두 번째 원리는 나의 믿는 형제에 대해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5)
    만일 내 자유대로 산다면 이미 나는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때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형제나 자매를 위한 사랑의 행위로서 나의 자유를 포기해야 될 경우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몇년전, 플로리다의 펜사콜라에서 목회할 때, 저는 자주 젊은이들을 바닷가에 데리고 가서 회식을 즐기곤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만나 여러 차로 나눠 타고 수영하기 좋은 장소로 가곤 했습니다. 그런 회식을 나눈 다음날인 주일날 아침에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 떠나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기 위해 문쪽으로 갔습니다.

    우리 교회에 “마마 마요”(Mama Mayo)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80세가 넘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그런데 그 주일날 아침, 그 할머니가 나와의 악수를 거절하며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길까지 좇아가서 물었습니다. “마마 마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할머니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아마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안 듣게 될 것입니다. 나는 감히 나의 목사님이 대중 앞에서 그런 반바지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보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때 내게 교회 강당 앞에서 차에다 음식을 싣고 있는 반바지 차림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깨달을 사이도 없이 나는 이 연로한 성도로 당황하게 한 것입니다. “마마!” 나는 슬프게 그녀를 불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저는 전혀 마마 마요를 당황하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마마 마요 앞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는 바닷가에 도착해서만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내게는 마마 마요 할머니가 자유로이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나의 생각보다 훨씬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마요 할머니의 가족들이 그녀의 장례식을 집례해 달라고 부탁 받던날이 기억납니다. 그 날 저는 그녀의 관 옆에 서서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절제한 것에 대해 얼마나 기쁘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소그룹에 속하므로 당신은 이런 불분명하게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 서로 이해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분들을 “천국의 사포(Sandpaper)"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당신으로 하여금 나를 위한 삶과 남들 또는 주님을 위한 삶이 어떻게 구분이 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경청의 방”으로 들어갈 시간입니다. 다음의 질문들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평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원합니다.
    □ 내가 먹는 음식 중에 다른 사람에게 시험이 되는 것이 있습니까?
    □ 내가 마시는 것 중에 다른 사람에게 시험이 되는 것이 있습니까?
    □ 내게는 평범한 습관 같은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놀랄만한 것이 있습니까?
    □ 나는 현재, 일정한 삶의 방식을 요구하든지,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빼앗아가는 어떤 사람이나 단체에 의해서 희생 당하고 있습니까?
    □ 내가 너무 다른 사람에게 민감합니까? 그리고 내 삶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소그룹에 속한 영적인 어린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처합니까? 예수 안에서의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만듭니까?

    기도:
    “주 예수님, 다른 사람들에 대해 민감하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한 나의 삶이 축복이 되게 하소서. 주님이 나를 통하여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기 원하시는지 내 영으로 알게하시기 원합니다. 당신의 다른 사람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나에게 배나 부어주시기 원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내 뜻대로 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뜻대로 하게 하소서! 아멘!”

     

     

     

     

     

    제8주 제4일
    단원의 주제: 사생활
    금주의 주제: 태도(Attitude)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당신의 “우선순위(Pecking Oder)"
    본문: 고린도전서 9:19-23; 갈라디아서 3:28; 야고보서 2:1-10

    “우선순위”란  닭들이 먹이를 먹는 순서를 관찰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표현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대장 수탉이 먼저 모이를 먹고 그 후에 정해 놓은 순서에 따라 나머지 닭들이 모이를 먹습니다.

    이 세상에도 사람들 사이에 이와 같은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있습니다. 종종 하얀 피부의 사람들이 유색인들을 낮게 봅니다. 제가 아는 어느 한국 친구는 일본 도쿄에서 아파트를 구할 때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한국인은 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세상의 언어들은 대개 세 개의 어휘들로 나누어 집니다. 곧 어른에게 하는 어휘, 친구에게 하는 어휘, 그리고 아래 사람에게 하는 어휘입니다.

    제가 한국 여행 중에 사역상의 직함이 “참모 비서(Executive Secretary)"였습니다. 미국에서는 매우 높은 직책인데 한국 목사님들께는 다소 분간이 되지 않는 직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보다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결정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간혹 이런 말을 들을 때 당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당신의 딸이라면 그 사람과 결혼시키겠어?” 사단은 우리가 서로 갈라지는 것을 기뻐하며 그의 나라는 이런 특정한 “우선순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희생자입니다.

    어느 사회학자의 결론

    사단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가에 대해서 공부한 뒤 폴란드의 유명한 사회학자의 보고서에서 인간은 다음과 같은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1. “사람”같은 사람
    인간 관계를 형성하면서 동질이나 그 이상으로 대하기 원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있을 때 대단히 편하며 확실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리와 똑같은 부류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우리보다 여유가 많아서 우리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친근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2. “기계”같은 사람
    우리들은 이 같은 사람들과  사회적이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교제를 나누길 원치는 않치만 그들의 도움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은행 사무원이나 우리 차를 고치는 저입공들이 그런 부류에 속하겠지요. 그들에게 친절하며 정중한 것, 더 나아가서 그들의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은 일종의 “겉치레”이며 단지 그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그들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돈을 빌려달라든가 아니면 어떤 부탁을 할 때면 우리는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우리를 위해 일하는 “기계”같은 그들이 우리와 동등한 부류가 되는 것을 막을 것입니다.

    3. “풍경”같은 사람
    첫째와 둘째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며 그들을 알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그들을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거나 길가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로서 단순히 지나쳐 버리는 “풍경”의 일부분으로 취급합니다. 우리에겐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왕국에는 “우선순위”가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다시 생각하면서 다음 빈칸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9:19-23
    “내가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_______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내가 _____________ 같이 되었고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_____________ 같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______________이나 __________________이나 ____________이나 _____________나 ________나 _____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야고보서 2:2-4
    우리 소그룹 안에서의 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성경이 경고하고 있습니까?
    “만일 너희 회당에 ___________를 끼고 _______________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_____________을 입은 _______________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____________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________________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______________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다음 문제들은 “경청의 방”에서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소그룹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어떻게 그들을 대하고 있는지 한번 적어보세요. 그들을 사람, 기계, 풍경 중 어느 것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당신 안에 계신 예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시길 원하는지 알아보세요.
    아래에 이름을 적고 “사”, “기”, “풍”으로 표시하십시오
    1. 당신의 직계 가족의 이름을 적고 표시하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2. 당신의 직장이나 학교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표시하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3. 당신의 소그룹 구성원들을 적고 표시하십시오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_____________________사 기 풍

     

     

     


    제8주 제5일
    단원의 주제: 사생활
    금주의 주제: 태도(Attitude)를 다루는 법
    오늘의 주제: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본문: 에베소서 4:30-32

    31절에 언급된 태도가 어떻게 성령을 탄식케 한다고 생각합니까?
    □ 그는 그런 태도의 동참자가 아니다.
    □ 그는 그런 태도의 출처가 아니다.
    □ 그가 우리 안에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런 태도로 인한 상처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
    □ 이러한 태도가 우리의 기쁨과 평화를 망친다.
    □ 위에 말한 모든 것이 옳다.

    “탄식하다”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마음 아픈” 또는 “고뇌”로 해석됩니다. 당신은 그런 감정을 구별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삶 속에서 그런 커다란 슬픔을 느껴본 때와 그 아픔 속에 잠겨본 때를 기억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진정 사랑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과 맺었던 친밀한 감정 때문에 당신은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헤어짐 때문에 당신은 고통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이 내 영으로 노출될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도 우리의 아픔을 함께 당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근심케하는 일들을 당장 없애버리라”고 말합니다.

    여섯 가지 악한 습관

    말씀에 나오는 6 가지 태도에 대해서 검토해봅시다.

    모든 악독(Bitterness)
    이것은 산과 같은 독으로 주위 모든 것을 부식시킨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입었던 피해가 계속적으로 되살아 나면서 형성된 증오감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전혀 답이 없습니다. “누가 나의 증오심 때문에 피해받고 있는가?” “나에게 피해를 입힌 자도 어떤 상처를 받았는가?” 모든 경우 답은 다 같습니다. 그 쓴뿌리는 상대방이 아닌 바로 악독한 마음이 들어있는 자를 공격합니다. 사단의 속임수는 이런 사실들을 깨닫지 못하도록 우리의 쓰디쓴 감정을 막아버립니다. 그런 쓴뿌리의 결과에는 육체적인 감쇄현상, 정서적인 방해, 그리고 비논리적인 사고방식 등이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성령께서 슬퍼하시며 그 일에 무능해 보이는 것입니다.

     노함과 분냄

    노함은 강하고 파괴적인 열정으로 묘사합니다. 성냄은 상처를 주기위해 파괴하려는 욕구를 말합니다. 그것은 악독보다 위에 있으며 어떤 파괴하고자 계획된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잠재해 있던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 나오는 것입니다.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

    떠드는 것은 헬라어로 으르렁대듯이 소리지르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덤벼들 때에 내는 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쓴뿌리가 “상처”를 주려는 과거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있습입니다. 이렇게 드러난 행동이 “훼방”입니다. 훼방은 타인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안에 있는 쓴뿌리가 말로 표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말의 사실여부에는 상관없이 그것의 의도는 상처 주고, 잘라내고, 파괴하는데 있습니다.

     모든 악의

    악의는 다른 사람의 가치를 파괴하려는 사단적인 의도를 뜻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망치는 모든 일에 전념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런 감정들의 배합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세상 나라들에서 사람들은 이런 태도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는 것을 즐기다 보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주제에 기초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습니다. 나쁜 생각에 나쁜 것들이 더하여져 사회는 점점 더 타락해지며 심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마음속에 어떤 쓴뿌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까? 저는 지금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학대를 받아 많은 상처를 받은 한 여인이 생각납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공장을 유산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아들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임의대로 그것을 팔아 돈을 챙긴 아버지한테 상처받은 한 청년도 기억납니다. 남을 속이는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고용주는 자기를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일한 종업원을 연금을 주지 않으려고 해고합니다. 어디를 보나 거기에는 상처받을 이유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당신은 속에 상처가 있습니까? 누구 또는 무엇 때문입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당신은 이러한 파괴적인 힘에 삶의 한계를 느끼십니까?
    당신은 당신을 붙잡고 있는 이런 요새들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십니까?

    31절에 지시는 아주 명백합니다. “이런 것들을 없애버리라 -- 바로 실행하라”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자기 연민으로 그 안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됩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을 우리들에게 하길 원하시면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탄식하시고 우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결정을 내릴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도우시는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이것은 문자적 용어로 성령님이 “위로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첫발을 내딪였을 때, 그는 더 이상 모른 척 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 중심에 성령님을 모실 때 모든 상황이 바뀝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의 태도로 인해 누가 피해를 입고 있는가?” 당신 자신을 그 명단 제일 위에 올려놓으십시오. 혹 “나는 이렇게 느낄 자유가 있어, 나는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이 모든 상처를 감당할 수 있다”라고 당신 자신을 정당화하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혹 사실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스스로 치료받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 누가 파멸되고 있습니까? 당신이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당신의 친구들, 가족들에게 이런 쓴뿌리의 영향이 당신을 만날 때마다 확산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기억해야할 두 가지 특이한 예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들 둘다 부당한 죽음을 당하면서 한 영을 나누었습니다. 두분은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성령님을 “도우시는 자”로 초청할 때에 당신은 그 예수께서 당신의 상처에 그의 사랑과 용서하심으로 응답하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도움이 필요합니까? 당신의 소그룹 구성원들이 함께 들어줄 것입니다. 당신의 인도자와 나누십시오. 자! 이제 “경청의 방”에 들어갈 시간입니다.


    제9주 제1일
    단원의 주제: 권세 직면
    금주의 주제: 영적 전쟁
    오늘의 주제: 하나님의 마음
    본문: 베드로후서 3:9; 이사야 30;18; 에스겔 18:23, 33:11; 로마서 2:4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악의 세력과 불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가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도하셨던 방식에 관해서 읽으면서 미소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1:8-10에 아브라함이 그의 집을 떠나 먼 여행길에 나선 것은 “하나님의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라고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네가 드디어 도착하였느니라. 이곳이 바로 네가 정착할 곳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마도 그곳을 한번 살핀 후 이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여기요? 이런 곳으로 인도하실 줄은 정말 뜻밖입니다. 제가 왜 떠나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가 아닙니까? 그 때문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다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 목적과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제가 둘러본즉 이곳은 아주 추악한 곳인걸요. 저 언덕 위로는 성기의 모습을 조각한 것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이 가나안족들은 우상에게 제사하기 위해 처녀들을 바치고 갓난 아기들도 번제물로 바칩니다. 전 하나님께서 한적한 산 속이나 바닷가로 인도하실 줄 알았습니다. 정말 이곳이 맞습니까?”

    이상한 하나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좀 더 알았다면 그가 당연히 그런 곳으로 와야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에스겔 33:11은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가나안 족속들에게 보내셨는가? 그 분의 독생자를 우리에게로 보내신 이유와 같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친절하시고 자비하신 모습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의 몸,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을 가장 캄캄하고 추악한 곳으로 옮겨왔던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 왔습니다. 악한 인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9에서 불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다고 말합니까?
    ( ) 그는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인내하십니다.
    ( ) 그는 회개치 않는 자들을 불심판하는 날을 고대하십니다.
    ( ) 위의 둘이 다 맞다.
    ( ) 위의 둘이 다 틀리다.

    당신은 아주 엄청난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을 만날지 모릅니다.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신약에 와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주 순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엉뚱한 거짓입니다. 에스겔과 이사야에 기록된 것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이러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18) 이 권세있는 진리가 천국을 침투해갑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불신자들을 향한 열정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낄것입니다. 로마서 2:4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친절, 용납, 그리고 인내의 풍성하심으로...” 그이유는 “하나님의 친절하심은...회개의 열매를 내시기” 때문입니다.

    "The Arrival Kit"의 목적은 하늘나라의 가치관을 좀 더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의 친절하심이 회개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첫 번째 우선순위로 생각되는 것에 1번을 쓰고, 두 번째 순위에 2번...으로 표하십시오. (정확하게 우선순위를 정하기는 힘들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답을 나눠보십시오)
    ( ) 그의 독생자(예수)가 사랑과 존귀의 대상이 되는 것
    ( )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
    ( )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 ) 우리의 매일 매일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
    ( ) 우리를 유혹에서 건지시는 것
    ( ) 모든 사람을 정의로 심판하시는 것
    ( ) 우리에게 그의 의를 나타내시는 것
    ( )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것

    위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이건 정말 말도 안돼!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단 말인가?”하고 말하진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많은 생각을 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우선순위는 의문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생자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첫 번째로 선택하셨습니까?

    이 진리는 성경에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분명희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타오르는 열정은 모든 사람에게 그의 사랑, 용서, 그리고 교제하심을 알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맞다고 생각하는 모든 답에 표하십시오)
    ( ) 불신자들과 멀리하고 크리스천들과만 교제한다.
    ( ) 사단의 권세의 저주 아래서 구제받아야 할 사람들과 함께 산다.
    ( )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한다.
    ( )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기며 주변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외면한다.

    오늘 이 교재는 바로 이 사실을 직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크리스천의 우선순위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데 두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을 우리의 첫 번째 가치관으로 세울 때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것임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이제 “경청의 방”으로 들어갈 시간입니다.

     

     

     

     

     

     

    제9주 제2일
    단원의 주제: 권세 직면
    금주의 주제: 영적 전쟁
    오늘의 주제: 사단의 마음
    본문: 요한복음 8:44; 고린도후서 4:3-4; 요한일서 5:19

    운동 경기팀이 경기를 앞두고 상대팀이 다른팀과 경기한 비디오 테잎을 봅니다. 상대팀을 알면 알수록 더 강하게 그들과 대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단의 지배 아래서부터 구원하시길 원하고 계신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십자가의 군대로서 우리는 사단의 전략을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사단에 관해 가장 강하게 묘사한 것이 요한복음 8:44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불신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종교의 모습은 갖추었으나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난폭하고 또 잔악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대적의 성품에 관해 우리를 경각시킵니다. 먼저, 그는 모든 악한 사람들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헬라어로 “마귀”란 말은 “다른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이; 계획적으로 사실을 변형시키는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적은 살인자입니다. 그 안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는 잔악한 속임수로 가득한 자입니다. 그는 “제 것으로 말하나니”라는 말을 보십시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거짓의 아비”의 자녀들은 결코 진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거짓의 아비는 불신자들에게 무엇을 하는가?

    고린도후서 4:34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5:19에서 그의 악의 세력이 얼마나 멀리 퍼졌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 세계가 그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전 세계는 하나의 큰 감옥소이며 모든 사람은 그 안에 있는 영적 수감자들입니다. 사단은 그 감옥의 교도소장이며 그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져 그리스도의 빛이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눈을 가리고 넓은 널판지에 가서 서는 게임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두 사람이 그 널판지를 조금 들어 올려서 흔든다음 몰래 다시 내려 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낮게 앉아서 널판지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목소리가 아래서 들리기 때문에 착각을 일으킵니다. 마지막으로 눈가림한 사람보고 뛰어 내리라고 하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줄 알고 긴장하여 뛰어내리는데 사실은 바로 2센티도 안되는 높이인 것입니다.

    그 게임을 하고나서 내가 속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다시 생각해 보니 사단이 바로 모든 불신자에게 쓰는 속임수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마음의 눈가림을 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성공과 행복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속임수였음을 깨달을 때에 얼마나 놀라게 됩니까?

    사단과 그의 마귀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지우게 될 것을 압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들도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 사단의 이름 중에는 “파괴자”란 것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감옥에 넣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진리를 알지 못하게 눈을 가리우는 일에 열심을 다합니다.

    불신자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전쟁이다

    사단은 자기에게 포로된 자들을 싸우지 않고 쉽게 내보내지 않습니다. 단순히 구원의 계획만을 설명하는 것은 효과적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볼 수 있어야 거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사단은 불신자들의 마음을 가리우기 위해 속이는 영들을 보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래 빈 칸에 크리스천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눈가림을 받은 2명의 가족이나 친구의 이름을 적으십시오.

    1.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위에 읽은 내용에 반영하여 이들의 눈가림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 ) 그들은 완전한 암흑에 있다. 100% 소경.
    ( ) 전에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 했을 때 불친절하게 거절 당했다.
    ( )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완전한 속임을 당했다.

    이들에게 당신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알려야 하는 책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하다고 결단짓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사단이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약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당신은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제6주, 다섯째날에 배운 원리로 돌아갑시다. 거기에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끝가지 견디는 기도는 투쟁하는 기도입니다. 다음 며칠간 더 많이 이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당신의 친구를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시오

    “경청의 방”의 노트책을 사용하십시오. 한사람 앞에 한 페이지를 사용하십시오. 첫줄에 불신자의 이름을 쓰고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아는데로 그가 속고있는 것들, 악한 습관, 잘못된 신앙관 등을 적으십시오. 적은 날짜도 함께 기록하십시오. 이 한 장의 종이가 당신의 전쟁터가 됩니다.

    매일 “경청의 방”에 갈 때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전에 적었던 영적 세력들을 대적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영의 세력에서 그 사람을 자유케 하실 때까지 계속 기도하십시오. 속이는 영의 세력이 더 보이거든 추가해서 적으십시오. 또한 주님께 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랑과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를 위해서...

    사단은 전능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그의 감옥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많은 신자들에게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영적전쟁을 시도할 것을 가르쳐왔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끝까지 인내하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변화를 간증했습니다.

    이제 “경청의 방”으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제9주 제3일
    단원의 주제: 권세 직면
    금주의 주제: 영적 전쟁
    오늘의 주제: “끝까지 하는 기도”의 능력
    본문: 시편 30:4-5; 시편 126:5-6; 에스겔 22:30

    실화

    라일라와 남편은 우리 소그룹에서 “끝까지 하는 기도”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 속 깊이 있는 아픔을 이야기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72세입니다. 어머니는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였습니다. 제가 태어난 후 아버지와 이혼하고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멀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결혼하여 첫 아기를 낳은 후 남편과 함께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몹시 분노하십니다. 그래서 아직 나의 간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경청의 방“ 노트책에 그의 어머니을 위한 페이지를 마련했습니다. 매일 ”끝까지 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소그룹이 텍사스의 타치렌치(Touch Ranch)라는 곳으로 수양회를 갔던 그 아름다운 주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 아침 아름다운 해뜨는 모습을 보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기 아직 어둑한 곳에 라일라가 있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제가 인사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밤새 있었어요, 랄프아저씨!“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영적인 상태가 마치 무거운 쇠처럼 내 마음을 누루고 있습니다“라며 울었습니다. 조용히 난 그녀에게 시편 126:5-6을 읽어주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약 한달 후 강단에서 설교하려할 때 라일라와 그녀의 남편과 딸이 늘 앉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아름다운 까만머리의 72세 노인이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라일라와 내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예! 이분이 우리 엄마예요!“하고 속삭였습니다.

    그 후 한달동안 라일라와 그녀의 엄마는 처음으로 그들의 삶의 깊은 정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영화배우 시절의 모든 아픔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라일라는 하늘나라의 삶에 대해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주일 아침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고백하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부인해 오던 이 여인의 어두움 속으로 침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딸의 기도로 싸운 영적전쟁의 결과였습니다.

    엄마

    기도 시작한 날  기도가 필요한 상황    응답받은 날
    2월4일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음  3월12일
    2월4일   과거의 아픔을 나룰 수 없음   3월5일
    2월4일   나의 남편과 딸을 거부함    3월1일
    2월4일   집에 성경을 두지 못하게 함   3월15일
    3월1일   우리에 사랑을 받아드리시도록   3월5일
    3월12일   나의 간증이 좋은 씨앗이 되도록   3월15일
    3월15일   우리 소그룹을 방문할 수 있도록  4월1일
    4월10일   랄프의 설교를 듣기로 허락하도록   4월20일
    4월20일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5월25일
    5월25일   크리스천으로 성장하도록

    라일아의 “경청의 방” 노트책의 한 페이지

    5월29일   우리 소그룹에 일원이 되도록
    아무도 사이에 설 자가 없는가?

    에스겔 22:30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예루살렘은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적군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아무도 지켜줄 자 없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이 성경말씀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적이란 이스라엘의 악한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갔습니다. 27절에 그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들을 멸하거늘” 예루살렘은 전혀 공격을 방어할 수 없는 사람들로 비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에스겔 22:30)

    수백년 동안 지금까지 우리는 “대 민족학살”이라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 사건은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아픔을 가져왔습니다. 잔인한 군인들이 연약한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강간했습니다. 1993년에 전 세계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이 똑같은 짓을 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만 보았습니다. 테레비젼에서 보도되는 비참한 장면들을 보며 온 세계는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몇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것을 막기위해 나서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22:30은 당신이 알고 있는, 사단에 의해 파멸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단의 흉악한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벽”이 없습니다. 천국시민인 우리가 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외면할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단절됩니다. 잃어버린자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바로 “사이에 서 있는 방어벽”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무자비한 공격을 막아주는 강한 힘입니다.

    본절은 “... 막아 서서... 못하게 할 사람을... 찾다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멸망함은 크리스천들이 이들을 사랑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청의 방”에서 갖는 시간은 믿지 않는 자의 부패된 마음과 생각과 하나님의 은혜를 연결시켜 줍니다. 고린도전서 7:13-14에서는 가르치기를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라고 가르칩니다. 거룩하게 된다는 말을 직역하면 “성별되어 거룩케 됨”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크리스천이 불신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바로 “사이에 서 있음”으로 중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단으로 말미암아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의 상태를 외면하는 것은 무척 심각한 일입니다. 캄보디아의 수많은 사람들이 “크멀 라지(Khmer Rouge)의 정화”라는 명목으로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뼈들이 죽음의 터를 뒤덮었습니다. 제 친구가 그곳에 다리뼈들이 땅에 꼿혀있는 모습을 본 끔찍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뼈들은 이들을 지키지 못한 온 세계의 냉정함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들을 책임지는 삶이 곧 천국의 삶입니다. 당신은 그 사이에 서서 사단의 파괴를 대적해 싸울 준비가 되었습니까? 다시 “경청의 방”으로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9주 제4일
    단원의 주제: 권세 직면
    금주의 주제: 영적 전쟁
    오늘의 주제: 우리의 중요성
    본문: 로마서 10:3; 고린도후서 4:3-4

    우리 인생의 첫날부터 우리는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도 집안 사람들의 마음의 자세나 행위를 흉내냅니다. 이것을 아는 사단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 파괴할 계획을 세워 공격합니다.

    로버트 멕기(Robert McGee)가 쓴 “중요성의 추구(Search for Significance)"에서는 사단이 우리를 파괴하기 위해 세가지 거짓을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1.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이해하게 한다.
    2. 하나님의 사랑이 조건적이고 우리의 행위에 달려있다고 믿게한다.
    3. 하나님께 인정 받기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 받도록 유도한다.

    보통 이 세가지의 거짓말은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새겨지게 됩니다. 행동과 말로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너의 가치는 너의 행위에 달려있다” “사랑을 받으려면 똑바로 행동해야 한다” “내가 만족하지 못할 땐 사랑할 수 없다” 많은 경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상 받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접시의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을 때, 학교 성적을 잘 받았을 때, 운동을 뛰어나게 잘할 때, 등등. 나중에도 우리가 성공했거나 많은 돈을 벌었을 때 우리를 인정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행위가 미달될 때는 사랑을 잃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치도 함께 잃게됨을 느낍니다.

    사단은 지금까지 살아온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같은 개념을 심어왔습니다. 인류의 첫 가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엄마 하와는 “나도 하나님과 같이 중요하게 되겠다” 아버지 아담은 “이브, 나도 중요하게 되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두 아들은 그들의 행위로 중요성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로부터 배웠습니다. 가인이 그의 형제인 아벨보다 인정 받지 못했을 때, 그는 살인하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곧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모든 불신자들은 자기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중요성을 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다른 한 사람에게로부터 인정받으려 합니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신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려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항상 두려움 속에 삽니다. 중요성을 느끼지 못함은 가치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단의 능력이 불신자에게로 바로 미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지식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의 가치를 달성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천가지 선택의 대상들이 세상신에 의해 주어집니다. 그는 묻기를, “유명하게 되고 싶으냐?” “부자가 되고 싶지?” “유식한 학자가 되길 원하니?” “유명한 운동선수로 만들어 줄까?” “큰 사업가는 어때?” “저명한 음악가?” 경쟁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선택을 줍니다. 마약, 술, 자포자기, 등등. 이와같은 사람들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끼리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조성합니다. 사단이 제시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교, 신비주의, 폭력단, 선동, 정치적 대립, 등등,

    계속해서 사단은 “너의 멋진 육체를 사용하여 인기를 얻고 모델이 되렴! 여가선용에 열심을 다해서 바쁘게 움직여라! 그러면 그것이 휴식보다는 도리어 네 삶의 우상이 되리라! 증권시장에 깊이 빠지던지 궁중요리를 즐겨라! 최고의 수영선수나 테니스 선수가 되라! 정욕을 마음껏 즐겨라! 새로 나오는 쇼를 보아라! 무엇이든지 단지 삶의 한 순간의 의미를 더해주는 일들을 찾아서 즐겨라!”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사단은 막으려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전해주는 것이 당신의 의무입니다.

    말레지아의 아이포(Ipoh)에서 17세의 소년이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하네문(Hanemun)이라는 원숭이 신을 섬겼습니다. 그의 아버지 챙(Cheng)은 아들에 대해 듣고 분노하여 그 아들을 몹시 때리고는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밤에 갈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집문턱에서 잠을 자기로 맘먹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신발을 집 바깥 신장에 넣어둡니다. 이 소년은 모든 신발들을 깨끗이 닦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밤에는 신발을 닦는 것은 물론 아버지의 차도 닦았습니다. 일주일동안 밖에서 자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화난 아버지에게 봉사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울면서 아들을 받아드리고 또한 예수님을 믿게되었습니.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통해서 불신자들을 무조건으로 받아드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기 원하십니까? 자! “경청의 방”으로 갑시다.

     

     

     

     

     

     

     

     

     

     

     

     


    제9주 제5일
    단원의 주제: 권세 직면
    금주의 주제: 영적 전쟁
    오늘의 주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
    본문: 빌립보서 2:4-8; 사도행전 20:24

    1975년 1월, 룻과 저는 12살 난 우리 아들 랜덜(Randall)을 전쟁에 찌들은 베트남에 데리고 갔습니다. 4월에 사이공이 점령당함으로 말미암아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동안 그곳에 “형제(The Brother)”라 불리우는 사람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의 명성이 멀리 동쪽시에서 우리가 있던 서쪽까지 전해졌습니다. 렉 레이머(Reg Reimer)와 저는 그를 찾아나섰습니다.

    우리는 넓은 빈민가에 차를 세워놓고 렉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그는 말하기를 ”이 골목으로 쭉 가서 진흙을 조심하고 한 1분동안 걸어간 후 다시 물어보시오. 누군가 인도할 것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꼬불 꼬불한 길을 지나며 물었습니다. ”‘형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곳 빈민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한칸 방보다는 조금 컸지만 아주 조촐한 판자집이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 농부의 옷을 입은 ”형제“를 만났습니다.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구사했으며, 그는 불란서의 소보네(Sorbonne)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였습니다. 전에는 천주교 신부였고 큰 성당에서 사역하다가 이렇게 나와서 빈민촌에 와서 살고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종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셔서 그의 사랑의 마음이 되게하셨습니다.“

    그는 여러해에 걸쳐 시편을 히브리말에서 베트남어로 번역하는데 종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정성껏 한줄 한줄 베트남말로 노래할 수 있도록 번역했습니다. 책장에서 그는 아주 낡은 하나의 사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병들고 더러운 곳에서 살고있는 뛰어난 사람과의 만남이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그는 매일 밤 8시에 베트남어로 시편을 노래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 후 몇번 룻과 함께 다시 와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도 내가 목회하던 교회에 가끔 와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빌립보서 2:4-8로 항상 돌려졌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어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할 방법이 달리 없습니다.”

    이제껏 하나님의 사랑을 한 마을에 이처럼 완전히 침투시킨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약으로 삶을 연장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함께 와서 기도하며 영원하신 아버지께 예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단지 그리스도를 나타내려고 결신한 분이었습니다.

    나중에 베트남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교 동역자들은 우리가 싱가폴로 이주한 몇주 후에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베트콩들이 “요주의 인물”들의 명단을 갖고 있으며 그 시내에 들어오는데로 그들을 학살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명단에는 그 신부님도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가끔 “형제”가 어떻게 끝을 맺었을까 궁금히 여겼습니다. 고문을 당했는지, 목베임을 당했는지, 총살 당했는지. 군인들이 들어왔을 때, 그가 우리와 같이 예배하던 교회 건물에 서 있었을까? 죽으면서 그가 즐겨 부르던 시편을 노래했을까?

    언젠가 천국에서 그를 만나리라. 그 때는 우리가 어떻게 죽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리. 그는 그가 순교당하기 전에 이미 죽어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죽고, 야망에 대해 죽고, 자신의 명성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사도바울과 같이 그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주님께서 그를 기억나게 하실 때마다 나는 기도합니다. “주님! 나도 그와 같은 마음을 갖게하여 주옵소서. 그와같이 추한 곳에서 살지는 않을지라도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도록!” 나와 함께 기도하시지 않겠습니까? "PAIS"는 언젠가 한번 아무 거리낌  없이 그와 같은 결정을 해야합니다. 당신은 제7주, 제4일의 말을 기억합니까?

    종의 일은 그의 주인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의무는 종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10주 제1일
    단원의 주제: 힘에 대항 함  
    금주의 주제: 씨름시합
    오늘의 주제: 어두움의 주관세력
    본문: 에베소서 1:20-21, 6:10-18; 로마서 8:38-39

    에베소서 1장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신 셋째하늘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2:6을 보면 우리들 역시 그곳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두 번째 하늘에 거주하는 자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그곳에 사는 이들보다도 훨씬 크다고 하였습니다.(21페이지 예화를 참조하세요)

    에베소서 1:21에서 바울은 누가 두 번째 하늘에 살고있다고 기술하였습니까? (맞는 답에 표하세요)
    ( ) 모든 정사
    ( ) 모든 권세
    ( ) 모든 능력
    ( ) 모든 주관자(여러 지역)
    ( ) 모든 직함
    ( ) 모두 맞다

    이들 성경구절에서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하늘에 있는 일들에 관해 가르칠 장면을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말씀에 들어가 보면 우리는 첫 번째 하늘에 살고 있는 자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분투 노력, 문자 그대로는 “씨름시합” 하는 중에 있다고 한 다음, 우리의 적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며 열거해 놓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12에서 바울은 누구를 두 번째 하늘에 살고 있는 자로서 기술하였습니까? (맞는 답에 표하세요)
    ( ) 정사
    ( ) 권세
    ( )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 )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 ) 모두 맞다

    두 가지 일람표를 비교해보십시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셋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있을 때  적들은 둘째 하늘에서 우리 밑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선 우리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그들의 능력과 통제하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6:13에 의하면 우리는 언제 이들 악의 영들과 씨름합니까?
     “이는 ________한 ________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이 기간은 번민과 아픔이 엄습해오는 일정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나오는 출처는 주변 세상이 아니라 둘째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가난과 고통의 상태가 정해져 있습니다.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속해 살면서 두 번째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로부터 공격받으리라 우리는 예상합니다. 이 적들은 누구입니까? 다음 용어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상대하는 적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사: 정치적 서열과 권력에서 제1순위에 있는 자
    권세: 다른 사람에게 강제적 힘을 쓸 수 있는 세력을 가진 자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세상의 정사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한 무리의 유해하고 타락한 피조물들.

    초자연적인 피조물들 외에 또 사단이 16절에 “악한 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계급이 분명하게 규정된 권세를 가진 자들 위에 불가시적인 힘들을 지시 조정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힘들은 마치 우리를 향해 쏘아대는 활활 불타는 화살들과 같아서 우리에게 번민과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주목할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이 힘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입고있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투가 끝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당신은 승리 가운데 서있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속해 살면 고통이 없으리라고 성경은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베드로전서 4:12-13)고 기록했습니다. 고통 당한다는 것은 나쁜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은 사단과 그의 영적세력들이 세 번째 하늘나라의 권능아래에 있으며 우리는 성령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 성경구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이탈시키기에 충분히 강한 모든 상태에 밑줄을 치십시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다음의 중요한 진리들을 인식하십시오.
    1. 우리는 세 번째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앉아있지만 지금 현재 첫 번째 하늘에 위치해 있는 예수님 나라의 일부에 아직 속해 살고 있다.
    2. 우리를 공격하여 멸망시키려고 힘쓰는 영적세력들이 두 번째 하늘에 있다.
    3. 에베소서 6:13에서 가리키는 “악한 날”이라 불리는 시기는 예고 없이 사단의 세력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때이다.
    4. 우리는 언제 악한 날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임전태세를 하고 있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사단의 전략인 기습적인 일격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5. 우리는 공격받을 때 기필코 굳게 설 수 있도록 해주는 전쟁무기와 방호복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공부한 서론에 뒤이어 나머지 단원은 갑옷과 무기를 습득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이것들은 단지 특별한 때에만 입는 것이 아니라 매일 입는 의복으로서 착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10주 제2일
    단원의 주제: 힘에 대항 함  
    금주의 주제: 씨름시합
    오늘의 주제: 전진하는 그리스도인 병사
    본문: 에베소서 3:10-11

    파수대에 서 있는 보초병들처럼 우리는 항상 영적전투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해 입히려고 대항하여 오는 많은 것들의 배후에는 사단의 적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매일 “경청의 방”에서 떠나면서 의식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갑옷을 입으십시오. 전투에 임하십시오. 갑옷을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전쟁은 개개 병사가 아니라 군대가 싸워 이긴다

    에베소서 6:10-18의 말씀을 천천히 정독하십시오. 바울이 개개인이 아닌 공동체 집단에게 쓰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각 구절에 서 대명사는 “너희”, “너희들의” 또는 “우리”라는 말로 항상 복수형입니다. 한 병사가 홀로 전쟁터로 행진한다고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러운 일이지 않습니까? 다른 어느 전쟁처럼 영적전쟁도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전력을 다해 대처해야 할 과업입니다. 전쟁을 치르는데 필요한 병참술을 생각해 보십시오. 병사들이 함께 훈련을 받지 개별적으로 따로 받지 않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던가 참호를 파든지 간에 그들은 항상 집단의 일부로 조직화되어 일을 수행합니다. 104페이지에 열거된 사단의 세력들을 다시 보십시오. 모두가 복수 형태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력도 역시 조직화되어 여러 집단으로 전투에 참여합니다.

    아래 기술된 에베소서 3:10-11의 말씀을 정독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혜를 사단의 세력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방법을 설명하는 한 단어에 밑줄의 치십시오.

    “이제는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여러분이 밑줄 친 단어에 복수적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인하여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삶에 가장 높은 비중을 두게됩니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어떻게 사단의 청부업자들에게 알려지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을 넒혀봅시다. “각종(manifold)"이란 말은 흔히 쓰이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다양한 색채를 지닌“이란 뜻이다 (요셉의 의복은 채색옷이므로 ”각종“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가 소그룹에 참석하는가?

    물론 참석한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거기서 끝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임재하고 있습니까? 물론 그렇다면 여러분의 예배시간은 그런 사실을 찬양한 다음 서로의 덕을 높이기(oikodomeo) 시작합니다. 강한 영적 통찰력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마음으로 흘러나와 그것을 함께 나누면서 어려움 속에 고전하고 있는 어느 구역원을 격려하게 됩니다. 한 자매님이 구역을 위해 감동시키는 강한 진리의 한 시편 구절을 읽어나갑니다. 골수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어느 구역원 주위로 모여서 그에게 안수하고 함께 기도할 때에 치유가 허락되는 느낌이 구역으로 들어옵니다. 그런 다음 구역원 중 한 분이 이렇게 조용히 말하는 시간이 뒤따릅니다. “저는 오늘 저녁 저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소그룹에 오게 되었어요. 저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저의 위독한 영으로 이 몸에 상처를 입혀왔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전적으로 주님께 일임하도록 기도해주시고 제가 분담하는 바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주세요”

     

    그 외에 또 누가 있는가?

    영적 존재가 여러분과 함께 모여있습니까? 시편 91:11에 이르기를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런데 유태인 작가가 쓴 다음 논평을 읽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수천의 천사가 모이고 또 모인 즐거운 집회, 즉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초태생의 교회에 왔습니다. 그들은 의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여러분 주위로 촘촘하게 한데 모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

    사단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이 모이는 것을 내버려둔다던가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리라고 한 순간이라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모이는 곳에는 악의 영들이 존재해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 주인을 대신하여 나타나 우는 사자처럼 배회하면서 무장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찾아 삼켜버립니다. 그들은 복수 상태로, 즉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 거기에 숨어있습니다. 이들에게 발을 내딛을 틈새를 주기만 하면 곧 여러분에게 더러운 술책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나 매우 독특한 일이 생기는데, 곧 영원하신 뜻이 이제 막 나타나려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성령의 은사가 흘러나오면서, 두 번째 하늘로부터 나와서 여러분의 소그룹에 참석하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다채로운 지혜가 알려지게 됩니다. 여러분의 영적은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지키려는 약속의 무지개와 같습니다. 눈을 부시게 하는 강한 빛이 해를 입히려온 귀신들의 어두움을 꿰뚫어 나갈 때에 이들은 고통 속에 소리지릅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소그룹에 참석해 왔다면 제가 수년동안 경험해 온 바를 여러분도 틀림없이 체험했으리라 믿습니다. 소그룹 시간이 끝날 때 즈음에 모두가 온화함과 안도와 기쁨의 느낌을 갖게됩니다. 대부분 우리 소그룹은 모든 주위 사람이 서로 함께 포옹하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저는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하면서 모임 후의 뒷정리를 하는 제 아내를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러한 일이 생기는 시기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성취하신 바로부터 어두움의 주관세력이 도망쳐 나갈 때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공격받는것을 느끼기 때문에, 낙의 세력들은 결코 돌아다니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거나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름 받은자들, 곧 교회이므로 마귀들은 그저 도망쳐 나가 버립니다.

    서아프리카 공화국 상아해안의 수도, 애비잔(Abidjan)에 있는 셀 교회의 방문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교회에는 3만명 이상의 소그룹 교인들이 있는데, 부활절 때에 그들이 모시고 온 비신자들과 함께 모여서 예배와 설교의 특별시간을 가졌습니다. 디온 로버트 목사님이 조용히 강단에서 이르기를 “이제 저희들이 기도하여 성령님께서 와주시기를 초청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특별한 접촉감화를 필요로 하시면 그 분께 요청하십시오. 여러분께서 혹시 치유함을 받기를 원하시면 앞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그 분께서 앉아있는 그대로 여러분을 치유할 것입니다. 그 분께 요청만 하십시오” 일분 정도의 죽은 듯한 침묵이 흐른 후 몇 사람이 그들 삶에서 주님께서 행하신 바에 대해 찬양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어머니 속에 있을 때 마귀에게 헌신당한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땅바닥에 엎드리어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랑의 손길에 이끌리어 기도를 통해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저는 귀신들이 도망쳐 나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여러분도 이 진리를 깨닫기 원합니다. 그것은 인생을 전환시키는 일입니다. 전투는 군대에 의해 싸워지는 것이며 여러분의 소그룹은 하나의 분대입니다!

     


    제10주 제3일
    단원의 주제: 힘에 대항 함  
    금주의 주제: 씨름시합
    오늘의 주제: 전쟁을 향한 진군
    본문: 에베소서 6:14-17

    우리의 무기는 방어용이다

    에베소서 6:14-17에서 바울은 1세기 로마 군병이 입는 전투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투에 임하기 전에 이러한 갑옷을 착용하였습니다. 우리가 대면해야 할 적들은 악한 영적존재들이므로 우리가 입는 갑옷도 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13:12에서 바울은 그것을 “빛의 갑옷”이라 일컬었습니다. 그것은 세 번째 하늘에서 우리에게 보내어진 것이므로 우리의 적은 그것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들 품목의 어느 하나도 사단의 무기류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단은 우리의 방호를 꿰둟만한 어떠한 무기도 갖고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안전합니다!

    에베소서 6:14-17에서 보면 갑옷의 각 부품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왼쪽 난에 있는 항목과 이것들이 보호하는 오른쪽 난의 신체부분을 선으로 연결하십시오)

    진리의 띠  발
    의의 흉배  머리
    평안의 복음  등
    믿음의 방패  허리
    구원의 투구  팔/손
       가슴

    갑주가 없는 신체의 한 부분을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등을 보호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등을 적에게 돌려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18에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어두움의 세력에 맞서서 우리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산 영역을 차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라고 큰소리로 말하실 때 그것은 우리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보장입니다. 아브라함 큐퍼(Abraham Kuyper)는 “그리스도께서 ‘그것은 내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할 인생의 어떠한 영역도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일람표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우리가 입은 갑옷이 곧 그리스도 자신이지 않습니까? 그 분께서 “내가 진리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분만이 우리의 의이시고 모든 장벽을 허물어뜨리신 평화입니다. 그 분은 우리들의 끊임없는 구원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자신들 앞에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을 갖다 놓습니다(갈라디아서 2:20). 우리들의 보호막은 결코 침투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전투에 보내신 주님 자신이 방패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나누어 파송시켜 전쟁에 참여케 합니다. 모든 영적전쟁의 궁극적인 목표는 잃어버린 자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 하나님의 나라가 피레(지금의 요단)라 불리는 지역에 임하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누가복음 10:3)고 말하심은 흥미롭습니다. 양은 아무런 자기 방어수단을 갖고있지 않음을 아십니까? 양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 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거 겁나는 일입니다.

    겁이 납니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양들은 목자가 그들을 보호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있음을 우리 역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분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그 분 역시 우리의 갑옷입니다. 그 분께서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쳐부수기 위한 것이다

    사단의 군대에 맞서서 싸울 우리의 주요 무기는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리키지만 특별 상황에 관한 성령에 의한 조명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군사장교가 병법을 설명하는 책자를 공부하지만 그가 전투 중에 있을 때 병법 책자뿐만 아니라 지휘사령관의 지침명령에 의거해서 결정을 내립니다.

    동일한 일이 영적전쟁에도 적용됩니다. 사단이 지배하는 지역에 들어가 비신자들을 구출하여 그리스도께로 데려올 때 우리는 성경뿐만 아니고 성령으로부터 직접 오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로 데려 오려고 제가 힘쓰는 한 대학생을 생각해봅시다. 그 학생이 이르기를, “저에게 성경에 대해 말하지 마세요! 전 그것을 믿지 않아요!” 믿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그의 마음은 사단의 기만으로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그가 믿든 안 믿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학생과 이야기하면서 저는 의도적으로 성경말씀을 곁들어 넣었습니다. 요한복음 3:16 말씀을 그 학생에게 암송해 주었을 때, 그는 성령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가 어렵다. 하나님이 매우 능력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인류를 염려하시는가?” 그는 진리를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어두운 영혼 속에 약간의 여명의 빛이 비추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단의 귀신세력들이 고통으로 소리지름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을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인용하고 또 인용하면서 결국 그 학생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도를 하도록 도왔습니다. 그가 믿지 않았던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어두움을 꿰뚫는 검이었습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부탁한 바 “모든 기도와 간구로써 범사에 성령으로 기도하라”를 실천해봅시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투 행위 자체입니다. 갑옷과 검은 갖고 있어야 하지만 기도를 통한 전투에 의해서 두 번째 하늘을 침투하는 것입니다. “경청의 방”이란 말이 본 교재에서 자주 언급되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데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성경에 에베소서 6:18의 구절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에 밑줄 치십시오.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 안에 있지 않을 때의 기도를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것은 권태와 피로를 남겨놓는 단조롭고 예식적인 행위가 될 수 있지만 전쟁이 지금 진행중이라고 의식하면서 기도하면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몸으로 막는 것”(99페이지 참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영적은사로 말미암아 그런 기도가 보다 더 위력 있을 때에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 “경청의 방”으로 갈 시간입니다.

     

     

     

     

    제10주 제4일
    단원의 주제: 힘에 대항 함  
    금주의 주제: 씨름시합
    오늘의 주제: 세 가지 차원의 전쟁
    본문: 고린도후서 10:3-5; 마태복음 16:18-19

    오늘 성경말씀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전쟁은 혈육에 속한 세상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가 쓰는 무기는 모두 초자연적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3-5,9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헬라어가 있는데 원하시면 성경의 여백공란에 주석을 써놓아도 좋습니다.

    4절 말씀에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는 모든 침략자를 막는 두터운 벽으로 지어진 성과 같은 “성채”를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마귀의 장애물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5절 말씀에 “이론”이란 단어는 “상상” 또는 “공리공론”을 가리키며 인간의 사색적 생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어 NIV 버전 성경에서 사용한 “pretension(높아진 것)”은 헬라어로 “높은 탑”이란 뜻입니다. 어떤 학자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고대의 바벨탑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사람들은 하늘에 이르는 길을 닿게하는 탑꼭대기를 세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거하며, 또한 우리는 끊임없는 전쟁터에서 살고있습니다. 마태복음 16:18-19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교회를 언급하실 때 음부의 권세 바로 위에 교회를 위치해 놓으시고 셋째 하늘에서 이미 매고 풀린 것을 첫째 하늘에서 매고 풀면서 거기서 싸우는 전투에 결코 우리가 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의 저서인 “전쟁 기도(In Warfare Prayer)"에는 세 가지 일반적 차원의 영적 전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1. 기초차원의 영적전쟁
    이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입니다. 싱가폴에서 이런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흔히 상대합니다. 신자만이 이런 유형의 압제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권위와 능력을 가집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몸체의 끊임없는 사역기능이어야 한다는 점을 예수님께서 분명케 하셨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있음이 단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텍사스주 휴스톤시에서 어느 성령충만한 정신과 의사와 동석한 자리에서 저는 처음으로 귀신에 사로잡혀있는 어떤 여자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 정신과 의사는 정서적인 발작증세와 영적인 문제점들의 차이를 완전히 알고 있어서 그 여성을 저에게로 데려와 구원시키도록 하였습니다.

    2. 주술적 신비차원의 영적전쟁
    전 세계 도처에 예외 없이 사단은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두루 빠져 나오기 힘든 하나의 감옥소 독방으로서 주술적 신비를 마음속에 심어 놓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여자들은 임신하기 위해서 염소의 피를 마신 다음 그들 자녀들에게 귀신을 숭배하라고 가르칩니다. 브라질에서 저는 부모에 의해서 다리 하나가 절단되어 있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 절단된 다리는 귀신에게 드리는 희생 제물로 쓰여집니다. 싱가폴에서는 도교승려의 피를 받아 마시는 귀신에 홀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선 통일교도나 신비주의 매개자들에 의해 세뇌교육 받은 사람들과 상대해 보았습니다. 제가 크리스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온 한 학생이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는 14살 이후로 계속 사단에게 동물희생제사를 드려왔습니다. 사역하면서 여러분이 만일 전투경험이 없는 군인이라면 교회의 목사나 전도사에게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에게서 도망치진 마십시오. 그들은 필사적으로 꼭 해방될 필요가 있습니다.


    3. 전술적 차원의 영적전쟁
    이것은 와그너 박사의 용어인데 토속적 영들에 대항하여 기도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점에 관해 논의하여 기록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24페이지에서 다니엘 10:12-13 말씀을 두 번째 하늘에서 일어나는 전투의 실례로써 살펴보았습니다. 어두움의 주관세력과 능력은 지정학적 여러 영역, 여러 집단의 사람들, 또는 특정한 죄들을 지배 관리하는 악령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어떤 지역들을 통치관할하고 있음은 민감한 그리스도인에게 명백히 포착되어집니다.

    실례로, 싱가폴에서 중국어 “기아수”는 전주민의 영을 가리키는데 흔히 쓰여집니다. 심지어 그 이름으로 쓰여진 연재만화까지 있습니다. 그 단어의 뜻은 “나 자신을 위한 모든 것 통털어서”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화로움에 기반을 둔 매우 악한 소망입니다. 우리가 싱가폴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국민 위에 군림하는 특정된 어두움의 세력은 “기아수”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암스텔담 도시에는 오천명의 매춘부들이 상점 진열창에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방콕시에는 그 숫자의 수배에 달하는 매춘부가 있는데 그 대부분이 부모들이 팔아 넘긴 사춘기의 소녀들입니다. 이들 도시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력은 매춘입니다.

    미국에선 여러 어두움의 세력들이 다른 지역들에 걸쳐 지배 군림합니다. 그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성연애이고, 뉴올린즈에선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는 주신제이며, 워싱톤에선 군력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로져 폴스터(Roger Forster)씨와 그의 동료들은 런던에서 “예수행진”이란 모임을 조직하여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영토를 차지하러 오셨다고 어두움의 세력들에 선포하였습니다. 이곳 싱가폴에서는 여러 소그룹들이 함께 심야기도회를 하는데 때로는 공영 주택단지를 조용히 도보행진하며 거기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들에 맞서서 기도합니다. 도시의 어느 구역으로 들어가면 그곳을 지배하는 귀신 세력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그룹은 이들 세 가지 차원에서 기도의 영으로 깨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비신자들의 삶 속에 있는 견고한 진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고 그것에 대하여 그룹으로 모여 기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99페이지 참조). 이웃 지역으로 함께 도보하거나 운전해서 복음에 접해보지 못한 거주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영적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들 개개인이 얼른 깨닫지 못하는 눈먼 비행과 악습이 종종 우리 주변 문화에 흔히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 문화가 어두움의 주관 세력과 능력들에 의해서 깊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가장 처리하기 힘든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중국 속담에 “물이 어떠한지를 결코 고기에게 묻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영적 예언자들의 음성이 옛날 이스라엘 시대에 중요한 만큼 오늘날도 중요합니다.

    내 자신의 중요성을 인정받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 당신은 누구에게 영향을 끼치려 노력합니까? 우리가 입는 것, 사는 곳, 운전하는 것, 일하는 법의 매우 많은 것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과 능력들의 영향을 받아 침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는 많은 것들이 공중권세의 어둠의 세력들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 한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 모든 생각을 “경청의 방”으로 가지고 가십시오. 거기서 무엇을 듣고 계십니까?

     

    제10주 제5일
    단원의 주제: 힘에 대항 함  
    금주의 주제: 씨름시합
    오늘의 주제: 앞으로 향한 전진
    본문: 골로새서 2:15; 베드로전서 3:22

    제가 십대소년 시절이었을 때, 내트 세인트(Nate Saint)씨가 인디애나(Indiana)주 포트웨인(Fort Wayne)시에 가까운 베어필드(Baer Field)지역으로 와 저희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분은 좌석 두 개가 달린 비행기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제가 비행 조정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그 분이 저희 교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혼여성과의 교제를 단절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그 여자가 선교 조종사의 아내로서 섬기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고 그 분이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 저는 짐 엘리옷(Jim Elliott)과 에드 맥컬리(Ed McCulley)씨를 만났습니다. 짐은 제가 여태껏 만난 친구 가운데 참말로 가장 성령충만한 분이었는데, 그가 졸업할 때에 저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깊은 감명을 남겼습니다. 에드는 미식축구선수로서의 그의 자질과 저의 주변에서 신형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닌 유일한 학생이기 때문에 기억하였습니다. 내트 세인트씨도 공군에서 재대한 후 그 당시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피트 플레밍(Pete Fleming)과 로저 유데리안(Roger Youderian)씨와 더불어 아우카(Auca) 인디안 부족에게 복음전도하러 남미 에콰도르에 갔습니다. 사람을 사냥하는 이들 야만인들은 복음에 접해본 적이 없었으며, 어느 외국인도 그들 가운데서 생존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여러 번 아우카 밀림지대의 상공을 날아다닌 후, 내트씨가 둥근 원형을 그리며 비행하면서 한 장소에 줄에 매단 선물 바구니를 내려놓고 이들은 쿠레이 강의 모래강변에 착륙했습니다. 이들이 우정의 선물을 갖고 호의있게 야우카 부족에게 접근했을 때,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들 시신들은 강물에 던져져 물고기 밥이 되었고 귀한 젊은 아내들은 졸지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워싱톤시 근교에 있는 조그만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운전해 가던 중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리벙벙해서 저는 차를 도로변에 세워놓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 룻도 울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 내트씨와 그의 아내 마지(Marge)와 더불어 데이트를 하곤 했었는데 이러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수년간의 빌리 그래함의 전도사역을 포함한 목회활동을 즐기고 있었고 상류층 인사들이 모인 근교에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저와 아내를 부르셔서 선교전지에서 섬김의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도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마음문을 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닫혔던 마음이 이 사건을 통하여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교지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이들 훌륭한 남자들의 과부들은 남편들이 시작한 전도사역을 마무리 짓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금발 머리의 어린 딸을 데리고 과부들 중 두 자매가 그 지역에 들어가 그들 남편을 살해하였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모든 부족이 복음화 될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엘리자벳 엘리옷(Elizabeth Elliott) 여사는 남편 짐 엘리옷을 죽인 바로 그 사람을 미국으로 데려와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던 은혜를 간증하였습니다.

    짐 엘리옷씨는 우리가 대학을 떠나기 전 저의 학급연보에 자필로 써놓았는데 그의 미소짓는 사진 옆에 “잃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하여 간직할 수 없는 것을 주는 자는 어리석지 않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영어의 “순교자(Martyr)"이란 단어가 헬라어의 ”증인“이란 단어에서 파생되어 온 것을 아십니까? 증인과 더불어 힘에 대항할 때 그것은 값진 대가를 치르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많은 순교자와 증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여행을 거의 마칠 즈음에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파묻혀 안주해 살면서 이르기를 ”이것이 내가 가는 데까지 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는 정말로 없습니다. 그 여행은 멈추는 지점이 없으며 곧장 계속해서 영원 안으로 향합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였느니라“(골로새서 2:15)

    골로새서 2:15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여러 세대 동안 아우카 인디안 사람들을 지배 통치했던 정사와 권세를 벗어내어 버리기 위해 성령께서 이들 선인도자 부부를 사용하셨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시고 아래 공란에 기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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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살고있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가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사단은 전쟁을 이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단은 자기가 어떻게 패배했던가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정신적 고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지상에서 우리 삶의 기쁨은 앞에 놓여있는 것을 낙으로 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비신자들에게 죽음이란 비극이지만 우리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함이다”(빌립보서 1;21). 제거하는데 가장 어려운 예증들 중의 하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쏘지 않으며 무덤은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고린도전서 15:55).

    베드로전서 3:22은 밑줄을 긋고 싶은 많은 구절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고 상기시킵니다. 에콰도르에서 순교하였던 다섯 남자들은 아우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리고 왔던 마지막 전초전을 지금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셋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으며, 우리들 역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고린도전서 2:6-9 말씀을 읽으세요.

     

     

     


    제11주 제1일
    금주의 주제: 순례의 길
    오늘의 주제: 여행 도중의 정거장
    본문: 디모데후서 2:8-13, 4:7-8

    소아시아 전역에 걸쳐 수년동안 사역을 한 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배를 타고 로마에 끌려가 믿음에 대한 시험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처형의 날에 임박하면서 그는 이제 곧 들어갈 영원한 미래를 기대하며 과거를 회상하였습니다. 연금 상태에서 그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는데, 우리가 묵상해 보아야 할 두 가지 인용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모데후서 2:11-13에서, 바울은 행위를 그에 따르는 결과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빈칸을 채우시고 당신이 처한 상황을 검토해보세요:
    우리가 주와 함께 _____으면, 또한 주와 함께 _____ 것이요
    우리가 _____으면, 또한 주와 함께 _____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_____하면, 주도 우리를 _____하실 것이라.
    우리는 _____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_____시니, 이는
    주께서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심이니라.

    당신이 여행하는 동안 많은 정거장이 있다

    러시아 수도 모스코바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빠른 대량 운송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번 이용하는 법을 완전히 익히면, 대도시 주변을 돌아다니는 일이 쉽습니다. 처음에 이용할 때 흠칫 놀랐는데 이는 모든 길잡이 표지가 시릴 알파벳(희랍정교를 믿는 슬라브 민족의 알파벳, 현 러시아 알파벳의 모체)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 글자를 읽는데는 두세 시간 정도의 공부가 전부였습니다. 정거장에 있는 보도 사이를 다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제가 마침 운동하려할 때 제 앞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어떤 숙녀의 상의에 “밑져야 본전이다! (Just Do It!)라고 쓰여진 표어를 계속 생각해보았습니다. 결국 결심하기를 수백만의 모스코바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나 역시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데 탈락되어서는 안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일단 기차를 타면 벽 위에 선명하게 인쇄된 지도가 다음 정거장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기차가 멈추어야 할 횟수를 세어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당신의 여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당신은 새로운 용어를 배워야 되고 여행하면서 어느 정거장에 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소그룹 인도자들은 지도와 여행안내서를 준비하여 신자들이 어디에서 잠깐 멈추어서 영적 능력을 개발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기에 그러한 것들을 열거해 놓았습니다. 당신은 이미 어디에서 중단했는지를 스스로 평가해보면서 이제 잠깐 머물러서 붙잡아야 할 어떤 정거장들을 볼 것입니다. 사역을 위해 무장시킬 그러한 정거장에 이르는 여정을 이제 계획해보십시오. 당신의 후원자 및 소그룹 인도자는 하나님 나라의 특정 생활 영역에서 여러분이 힘써서 발전시켜 나갈 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그 문제에 관하여 그들에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표시방법: 이미 방문하였던 정거장 앞에는 “+”, 아직까지도 방문할 필요가 있는 정거장 앞에는 “-”로 표시하십시오.
     여행안내 평가양식(“+” 사실; “-” 아직 사실이 아님)


    ( ) 정거장 1: 구원의 확신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타인에게 당신의 경험과 성경 말씀을 함께 나눔으로써 전하였다.
    ( ) 정거장 2: 가치체계의 변화
    당신은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여행에 부적합한 개인적인 가치관을 분별하고 있으며 당신의 생활방식에 덧붙일 필요가 있는 다른 가치관들을 첨가하고 있다.
    ( ) 정거장 3: 소그룹에 우선권을 둠
    당신은 하나님 가족 안에 있다는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으며, 소그룹 참석에 높은 우선 순위를 둠으로써 동료 구성원들을 힘써 세운다.
    ( ) 정거장 4: 크리스천 가치관들로 짜여진 여행
    당신은 “무장의 해”에 있는 여러 가지 여정들을 알고 있으며, 평생 섬김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런 여정들을 마칠 각오를 하였다.
    ( ) 정거장 5: 극복해야 할 완고한 성품
    당신은 자신 생활 가운데 있는 고질적이고 완고한 성품들을 식별해내고 구역원들이나 목사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것들을 깨뜨려 없애는 경험을 하였다.
    ( ) 정거장 6: 시종일관되게 실습하는 성경적인 청지기 직분
    하인의 임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며, 주인은 하인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는 것임을 당신은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소그룹의 사역을 보조하고 십일조 헌금을 하는데 충실하다.
    ( ) 정거장 7: 하나님 음성을 듣는 시종일관된 시간
    당신은 매일 조용한 “경청의 방”에서 하나님 음성을 듣는 시간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하나님께 의논하며 기도하는 법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도함으로써 삶의 여러 상황들에 대처한다.
    ( ) 정거장 8: 즐거운 활동이 되는 예배
    당신은 개인 또는 합동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
    ( ) 정거장 9: 일관된 생활 태도로서의 봉사직분
    당신은 타인의 필요성에 민감하여 심지어 비천한 일까지도 다른 사람을 섬길 의지를 갖고 있으며 섬기는 사람들에게 모두 공평하다
    ( ) 정거장 10: 은혜 선물을 위한 하나님의 통로가 됨
    당신은 성령충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사역을 위한 영적은사의 통로가 되는데 완전히 자신을 내놓고 있다.
    ( ) 정거장 11: 정기적으로 쓰는 영적은사
    당신은 시종일관으로 성령충만을 체험하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성령은사를 갖고 동료 신자들을 세우고 복음에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도한다.
    ( ) 정거장 12: 성실한 작업 및 연구활동
    당신의 작업 및 연구활동은 가장 높은 차원의 성실성을 보여준다.
    ( ) 정거장 13: 어린 하나님 자녀를 위한 사역
    당신은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의 후원자가 되며, 구역 안에 고통받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필요한 것들을 예민하게 알아차려 그들을 위해 돌보고 기도한다.
    ( ) 정거장 14: 영적 전쟁의 실습
    당신은 타인의 생활 가운데서나 여러 지역에서 사단의 세력에 적대하여 권위를 가지고 그것에 대항하는 법을 배웠다.
    ( ) 정거장 15: 가족과 더불어 크리스천 관계 확립
    당신은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당신의 생활을 밝히 보여주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가까운 가족 및 먼 가족의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 ) 정거장 16: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조력함
    당신은 타인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어 가져본 적이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인도하여 그 분을 소그룹의 한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 ) 정거장 17: 폭넓은 생활방식을 발전시켜 나감
    당신은 동료 구역원들과 함께 공유집단을 형성하는데 개인적으로 참여하여 복음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손길을 뻗치었다.
    ( ) 정거장 18: 젊은이들을 무장시켜 복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임
    당신은 또 다름 구역원이 요한복음 3:16 말씀을 함께 나누는 법을 익히도록 도와주며, 그가 어떤 잃어버린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소그룹 안으로 끌어 데려오는 것을 보았다.
    ( ) 정거장 19: 공유집단 사역을 경험함
    당신은 두세 개의 다른 구역원들과 함께 참여하여 복음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위해 공유집단을 형성하고 이런 사역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자가 구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 ) 정거장 20: 소그룹 안에서 인턴이 됨
    당신은 소그룹을 이끌어 갈 소명이 있음을 느끼고 인턴으로서의 훈련절차에 들어갔다.
    ( ) 정거장 21: 특정사역에서 인턴이 됨
    당신은 소그룹을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역원 사역에서 인도자를 보조하든지 아니면 음악, 상담, 복음전도, 인도자 등을 포함한 소그룹의 다른 분야에서 사역하여 무장해 왔다.
    ( ) 정거장 22: 인도자 사역에 관여함
    당신은 목자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여러 사역으로 인도할 책임을 지고 있으며, 또한 어느 특정사역을 이끌어 나가 어느 구역을 인도하거나 지역장으로서 섬기는 차원에서 당신을 대신 할 인턴을 무장시켜왔다.
    ( ) 정거장 23: 표적집단 사역에 관여함
    당신은 주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위한 특정 그룹에 들어가 공유(이익) 집단에 개입함으로써 그들을 사역의 표적으로 계속적으로 삼아왔다.
    ( ) 정거장 24: 교구 목사를 부르심을 받음
    당신은 일상업무를 재조정해서 교구목사 인턴으로서 훈련받기 위해 교회로부터 승낙 받아 일년동안의 집중훈련을 위한 무장역제도(Touch Equipping Stations System)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 ) 정거장 25: 소그룹을 개척할 부르심을 받음
    당신은 교구목사의 생활을 경험하고 목회실의 승인을 받아 현재 사는 문화지역이나 세상의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일을 개척할 부르심을 받고 당신의 파송교회의 보조를 받아 개척교회 침의 일원으로서 보내심을 받았다.
    제11주 제2일
    금주의 주제: 순례의 길
    오늘의 주제: 당신은 제사장입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1:6; 사도행전 2:44-47; 에베소서 4:11-16,29,32

    아빠가 목사인 4살 짜리 손자에게 할머니가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어느 날 손자에게 “너 크면 무엇이
    되고 싶으니?”라고 물었더니 그 손자가 대답하기를 “저는 아빠처럼 설교하는 사람이 될래요. 할머니, 저는 지금 설교자이지만 설교할 수 없어요”

    그런 식으로 당신은 사역자로 부름 받음에 대하여 생각합니까? 에베소서 4:11-12 말씀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인도자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모든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 개개인이 동료 그리스도인을 돌보고 복음에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도처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서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단의 기만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그리스도 사역에서 성직자라 불리는 신성한 사람들과 헌금을 모으고, 설교를 들으며, 일상잡무를 하는 평신도들 사이에 어떤 구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놀라운 일은 성경에서는 성직자나 평신도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으며 교회가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기의 성경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여러 은사들을 주셨는데, 그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 복음사역을 위해 쓰도록 준비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가장 명백한 신약성경의 가르침들 중의 하나는 모든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사역자이며 성직자라 불리는 엘리트 집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교회생활 속에 성직자, 평신도의 구분개념을 서서히 불어넣었는데, 거의 300년에 걸쳐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본래 모습을 변질시켜 왔습니다. 사단은 그의 목적을 성취시킴으로써 소위 교회에 좌석만 지키는 평신도가 되어버린 수백만의 사람들이 실제로 수행했어야 할 그리스도 복음사역을 무력화 시켜놓았습니다.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초대교회의 첫 몇주 동안에 3120명의 신자들이 회당장에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이 드러난 때는 그들이 집집마다 옮겨 다니며 서로를 격려하며 세워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식사를 같이하며,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였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도들은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도록 준비시키는데 초점을 두었고, 실제사역은 모두 개개 신자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수세기에 걸쳐, 아무도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데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틴 루터 시대(서기 1517년)에 성직자-평신도 구분을 배척하는 그룹들이 형성되기 시작되었는데,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어떤 이는 화형에 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며, 혹은 다른 나라로 추방되기도 하였습니다. 존 웨슬리 시대에는 소그룹을 조모임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성령의 강력한 활동도구가 되어왔습니다. 소그룹 운동은 수세기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통교회의 역사를 보다 폭넓게 다루려면 “Where Do We Go From Here?" 책자를 참조하세요. 저작판권 페이지에 쓰여진 주소 또는 많은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싱가폴 구역교회(Cell Church)에서는 구역장과 구역을 관장하는 지역장이 함께 모든 새신자에게 침례를 줍니다. 주님의 만찬이 원위치인 구역모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이들 행사를 관장하는데는 특별히 임명받은 성직자를 요구치 않았습니다. 전세계에 걸쳐 수백 개의 교회가 이제 신약성경의 모범으로 되돌아갔으며 여러분도 이제 축복 받아 그런 교회의 한 일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은 성직자이고 제사장이다!

    성경에는 당신을 제사장으로 묘사하는 여러 가지 구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1:6 말씀에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라 하였습니다. 제사장이란 직함을 PAIS에 첨가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요, 종이요, 제사장입니다.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제사장은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을 ,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을 대표합니다. 베드로는 서신으로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살아있는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베드로전서 2:5,9,10).

    제사장은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해야 하므로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는 계명을 지킨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 하시므로 우리의 의가 된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이 사역할 때 그는 왕같은 제사장이며 왕 가운데 속한 의복을 입습니다.

    당신은 제사장입니다. 이는 당신이 중보자로서 계속적으로 섬길 것을 뜻합니다. 서부 텍사스 주에 사는 한 나이든 카우보이가 한번은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보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면, 왕이나 대통령 되기를 원하는 정도의 낮은 자세로 몸을 굽히지 마시오”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 가운데서 신령한 은사를 가지고 한 손으로 하나님과 접촉하며 다른 손으로 타락한 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인도하는 것보다도 더 위대하고 영원한 가치를 찾아볼 수 있습니까?

     

     

     

     

     

     

     

     


    제11주 제3일
    금주의 주제: 순례의 길
    오늘의 주제: 무장의 해
    본문: 디모데후서 2:15

    디모데후서 2:15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사용할 줄 알며, 숙련되고 자격 있는 부지런한 일군으로서 전심전력을 다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라”

    무장하여 효과적으로 섬기는 생활보다 더 하나님나라의 당신 생활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당신의 구역이 하나님 군대의 일원임을 우리는 이미 알았습니다. 군인들은 처음에 기본훈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수년동안 나는 어느 조그만 마을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업을 가르쳤는데, 그 마을에는 새로이 입대한 군직원을 위한 기본훈련학교가 있었습니다. 나는 종종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기내에는 한두 명의 민간인만 있을 뿐 나머지 승객은 신병막사로 가는 젊은 남녀들로 차있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는데, 통상적으로 긴 머리에 앙상한 턱수염을 한 채로 냄새나는 의복을 입고있었습니다.

    그 비행기는 마을을 떠나 한번 더 군직원들로 채워지는데, 이번에는 젊은 남녀들이 수개월간의 훈련을 마친 후 다른 장소로 옮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대조적인지 말쑥하게 차려입은 군복, 짧은 머리 및 그들의 엄숙한 거동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동일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군인이 전투에 나설 때, 좌측 또는 우측에 있는 동료가 서로 힘을 합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동료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당신 주위에 있는 군병력에 의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신은 주님께 “자격 있는 일군으로 전심전력을 다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라...”는 분명한 다짐을 해야 합니다.

    구역교회(Cell Church)에서 그리스도 사역을 위해 당신을 무장시키는 일은 매우 진지합니다. “무장의 해”(119페이지 참조)라는 프로그램에 다년간 연구와 정성을 쏟아왔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당신의 여행을 위해 2개의 선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선로는 총괄적 성경공부(Cover the Bible)인데 성경 66권을 전반적으로 검토합니다. 이 여정에는 5분간 육성 녹음된 해설을 매일 경청하는 것과 대략 3페이지에 달하는 학습지침을 공부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단지 일년만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에 대하여 얼마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가로 당신은 기뻐할 것입니다.

    두 번째 선로에는 도착장비(Arrival Kit)가 포함되는데, 이것은 당신을 도와 가치관들을 선별하여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도록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4가지 “무장역(Equipping Station)"이 뒤따르는데, 이것은 쉽사리 또는 어렵게 접근될 수 있는 비신자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준비시킵니다.

    당신은 적절한 시간 내에 이들 4가지 무장 기준을 완전히 습득할 목표를 설정해 두어야 합니다. 다른 것들보다도 “무장의 해”에 최우선순위를 두십시오. PAIS로서 당신의 일은 보다 효과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따로 마련해 두신 특수사역을 점진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제11주 제4일
    금주의 주제: 순례의 길
    오늘의 주제: 후원자가 됨
    본문: 로마서 12:10,16; 13:8; 14:13; 15:7,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로마서 15:14)

    소그룹 안에서 후원을 주고받는 사역의 근거를 이 성경말씀에 두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도움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으므로 우리 교회는 주고받는 후원관계(Sponsor-sponsee Relationship)로서 구역원들간에 개인적인 상호 관련성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후원 받는 사람은 사역여행 중인 동료 구역원에 의해 인도 받습니다. 후원하는 사람은 안내자로서 다른 구역원을 돕고 격려할 책임을 집니다. 후원하는 모든 개개인은 후원자를 갖고 있습니다.

    처음 소그룹에 들어가면 후원 받는 사람이 됩니다. 도착장비(Arrival Kit)를 통하여 여행하면서 정규적으로 후원자와 회합합니다. 일단 이런 과정을 마치고 나서 후원자가 되어 어떤 다른 사람이 그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당신은 유익을 얻게될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역의 살아있는 연결고리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후원을 주고받는 양자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 두어야 합니다. 당신의 구역장이 후원자가 될 기회를 줄 것이며 이런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에게 큰 특권입니다.

     


     

     

    당신은 후원자가 됨으로써 성장한다

    후원자가 된다는 것은 당신의 영적성장에 중요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을 돌봄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은 후에 아낌없이 사람을 위해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게다가 후원하는 일은 구역의 생명에 결정적이고 이는 구역원들 사이에 세워진 관계에 의해 지탱됩니다. 후원하게되면 어떤 구역원이 참석치 못하거나, 곤경에 처해 있거나 또는 죄에 빠져 있을 때 확실하게 자동적인 후속절차가 뒤따를 것입니다. 당신이 후원하는 사람에게 사역하는 동안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신 편에서 당신의 사역을 도와 줄 후원자를 찾게될 것입니다.

    후원자가 된다고 해서 가르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확립은 후원자가 일차적으로 이루어 놓아야 할 일이다. 후원자는 인도자가 될 필요는 없으며 단지 염려하는 친구로서 족합니다. 후원을 주고 받는 자들 사이에 정기적인 접촉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소그룹 모임 밖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양자 모두에게 가장 편리한 시간과 장소를 택하고 필요에 따라 전화로 연락하십시오.

     

    후원을 주고받는 사람의 관계를 위한 제안

    1. 기도회나 구역 및 축하 모임에서 서로를 지지, 격려하십시오.
    2. 서로를 도와 “경청의 방”에서 하나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3. 당신의 후원 받는 사람이 “무장의 해”의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하십시오.
    4. 구원받지 못한 친구들을 함께 방문함으로써 서로를 도우십시오.
    5. 당신의 후원 받는 사람과 마음을 움직이는 입문서(Touching Hearts Guidebook)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복음을 받기 쉬운 사람들을 접촉 방문하도록 시간을 마련하십시오. 그런 다음 공유집단(Share Group) 또는 표적집단(Target Group)의 일원으로서 힘써서 함께 일하면서 B 유형의 비신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십시오.
    6. 매 6개월마다 적어도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믿는 자의 가장 중요한 일은 잃어버린 자를 구세주 앞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연쇄적 기도고리는 연결체의 역할을 한다

    후원을 주고받는 이들은 연쇄적인 기도고리를 통해서 그룹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연결되어집니다. 염려되거나 곤궁한 일이 생기면 기도고리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하십시오.

    어떤 구역원의 생활 가운데 위급한 일이 일어나는 때가 있을 경우 그분의 후원자에게 전화 한 통화를 하면 연쇄적인 전화 연락망을 통해서 그런 사실을 그룹의 모든 사람에게 알릴 것입니다. 사역팀 목사로서 나는 종종 병원 침실에 도착해서 비로소 구역의 여러 멤버들이 이미 참석했음을 알았습니다. 관찰 주목하는 비신자들에게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우리의 아가페 적인 사랑과 서로를 위한 염려입니다. 수세기 전 플리니(Pliny)라는 비신자는 그 당시의 소그룹들을 바라보고 나서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 지를 보라. 그러면서 서로를 위해 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연쇄기도는 후원을 주고받는 모든 사람을 연합시킨다.

     “...너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로새서 2:10)

     

     

     

     

     

     

     

     


    열한번 째 주 다섯 째 말
    금주의 주제: 순례의 길
    오늘의 주제: 희어진 들판
    본문: 마태복음 28:18-20; 사도행전 1:8; 로마서 15:19-23

    본문을 읽으시고 아래 문장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제자를 삼을 임무를 부여하셨다

    여기에는 확실히 당신도 포함됩니다. 우리의 주된 임무는 믿지 않는 다른 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에 쓰여진 “족속(Nations)"이란 말은 지정학적인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적 집단을 가리키므로, 그것은 광동인, 크핵인, 후이인, 수단인, 우즈벡인, 몽고인 등을 가리킵니다. 사단은 모든 족속(인종집단)이 복음을 듣게되면 종말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인간을 두꺼운 감옥인 그들 문화의 장벽 속에 가두어 두려고 힘씁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증인이 없는 많은 지역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리스도 복음을 이들 지역에 사는 족속들에게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에 보면,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들이 있던 곳 예루살렘에서 제자 삼기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예루살렘시 주변에 있는 유대지역의 백성으로 가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후 유대인에 의해 멸시받던 사람들이 사는 인접해 있는 사마리아 지방으로 갔으며, 마지막으로 “땅 끝”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소수의 사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예수님과 동행했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임무이었습니다.

    이런 위임 명령에는 저와 여러분이 포함되므로 다음 언급된 장소에 해당되는 인종집단을 기입하십시오.

    예루살렘(당신이 사는 도시):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유대(당신이 사는 지역):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마리아(인접국가):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땅 끝....
    (당신의 생각에 사이에 나라에 있는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입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

    주님께서 당신을 지명하여 다른 장소로 가서 복음에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과 더불어 주님의 사랑을 나누라고 시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곳은 도보 거리 내에 있거나 아니면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을 지 모릅니다. 당신은 갈 의향이 있으십니까? 예를 들어, 텍사스 주의 휴스톤시에는 92개의 상이한 인종집단이 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그리스도인과 단 한번의 접촉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싱가폴에 있는 한 소그룹은 고층 건물 주택에 사는 많은 주민들을 보았습니다. 이곳은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 도보거리 내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기 시작해서 그들의 “유대”지역에 곧바로 새로운 소그룹을 시작하였습니다.

    또 다른 소그룹은 한시간 도보거리에 떨어진 전혀 그리스도인이 없는 지역으로 갔었는데 그들은 그곳을 “사마리아”라고 불렀습니다. 주말마다 방문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복음전도를 위한 소그룹을 만들었는데 곧바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새로운 소그룹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그룹이란 지도상의 테두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사역을 위한 하나의 운동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정지윤(Chong Chee Yuen)과 루비(Ruby)는 싱카폴에 있는 커뮤니티 침례교회의 일원인데 지윤씨는 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구역교회(Cell Church)에 속해있을 때까지 싱가폴 북쪽지대의 지역목사로서 일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와 루비는 홍콩으로 가서 구역교회(Cell Church)를 세움으로써 국내 구역교회의 사역을 가장 먼 곳으로까지 확장시켰습니다. 구역교회가 세계 도처에 세워졌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복음을 땅 끝까지 들고 다녔던 구역멤버들 즉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2.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과업에는 끝이 없다

    바울은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가 개척해 놓았던 교회들을 만족스럽게 되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그는 또 하나의 목적지를 갖고 있었는데 곧 그가 생각하는 땅 끝인 스페인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기로 항상 힘썼노니”(로마서 15:20)라고 기록할 당시 바울은 특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구역교회 식구들이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는 3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방식은 다른 구역 구성원들과 함께 협력하여 잃어버린 자들 찾아 정기적으로 구역원 수를 배가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식은 구역원 개개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지역사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지역장이 되고 나아가 지역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방식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을 부르셔서 그가 구역교회 개척팀의 일원이 되어 땅 끝까지 파송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생기면, 우리가 그 일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네 번째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을 성실한 청지기 직분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종이란 뜻의 오이코노모스(oikonomos) 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구역교회의 증인을 늘리기 위해 보내신 사람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양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어느 구역 멤버가 말한 바처럼 “나는 다른 사람이 이처럼 믿음의 순전한 삶을 살도록 나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순전하게 사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잠시 몇 분의 시간을 내어 오늘의 성경말씀을 한번 더 읽어보시고 “경청의 방”으로 들어가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때에 주님께서 당신이 할 바에 대하여 이야기하십니다. 아래 칸에 당신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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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등록일 
새로운 삶 2016.03.01
notice 생명의 삶 2016.02.17
notice 생명의 삶 2016.02.17
5 경건의 삶 2016.02.17
4 경건의 삶 2016.02.17
3 리더.부부의 삶 2016.02.22
2 리더.부부의 삶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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