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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사도행전 06:01-06/ 성장과 정체의 갈림길 [사도행전]
  • 조회 수: 483, 2016.03.29 13:55:25
  • 오늘 말씀은 초대교회가 처음으로 일곱 집사를 세운 얘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집사의 선발기준을 말씀드릴 때 단골로 거론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진짜 중요한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습니다. 최초의 교회인 이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 안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교회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했는데, 바로 그것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되고 전통이 된 겁니다. 처음 120명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는 불과 몇 달 만에 엄청난 숫자로 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교회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절에 그 발단이 나와 있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그랬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타국에 있다가 본토에 들어온 유대인들로서 헬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고, 반면에 팔레스타인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유대인들은 자기들 고유 언어인 히브리말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히브리파 유대인들이라 불렀습니다. 초대교회는 히브리어를 쓰는 유대인들과 헬라어를 쓰는 디아스포라들이 함께 섞여 있었는데 물론 숫자적으로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처럼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서 히브리파 유대인을 원망하는 소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왜냐? 당시엔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매일 도왔는데, 그 대상에서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은 제외된 거예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구제와 봉사를 담당한 사람들이 모두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던 거예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같이 지냈던 히브리파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가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헬라파 사람들을 소외시켜 버린 겁니다. 그런데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사도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또 해결했을까요?
            
    먼저 문제의 원인을 자기들에게서 찾았습니다.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잘못은 자기 탓이지 남 탓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겐 그런 겸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잘못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지요. 말씀 드렸지만 당시 사도들에 대한 교인들의 존경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한다는 것은 권위에 보통 손상을 입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과했던 겁니다. 또 하나, 제자들은 지혜롭게 이 일을 처리했습니다. 믿음과 성령충만한 사람 일곱을 세워서 그들에게 일을 분담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집사를 뽑지 않고 교인들이 직접 일곱 집사를 선출해 주기를 제안했습니다. 자기들이 임명해도 됐을 텐데 왜 그 일꾼 세우는 권리를 포기했겠습니까? 사도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한 쪽으로 편향된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들보다 더 공정한 시선을 갖고 있는 교인들에게 그 일을 위임해야겠다 결정한 겁니다. 그랬더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했다 그랬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지요? 일곱 집사가 뽑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었냐 하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명실공히 교인의 대표자들인 겁니다. 그런데 오늘 선출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까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집사로 선출된 일곱 명 전원이 헬라 식 이름이었습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다 헬라식 이름이었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히브리파 사람들이 헬라파 사람들에게 몰표를 준 거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바로 이게 초대 교회의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 그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들 모두는 국내파였습니다. 온갖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지만 천 수백 년 동안 그들의 땅과 전통을 지켜왔던 사람들입니다.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얼마나 눈물겨운 것이었을까요?

     

    반면에 헬라파 유대인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해외파였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국내파들이 해외파를 받아주기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파들은 그들 표를 몰아서 초대 집사 7명을 모두 해외파에서 선출했습니다. 같은 국내파에서 선택할 생각일랑은 아예 하질 않은 겁니다.

     

    이런 일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너희들은 우리가 고생할 때 외국에서 잘 먹고 잘 살았잖아. 너희가 조국을 위해 한 일이 뭐니, 그런데 이제 와서 불만을 터뜨려?” 그런 앙금이 남아 있을 만한데, 그런 걸 모두 잊은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그들을 자기들 전면에 세워준 겁니다. 이게 바로 초대교회의 위대함입니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국내파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원 해외파를 선출했을까요? 먼저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누가 더 하나님 일에 적합한가를 생각했던 겁니다. 그들은, 해외파들의 사고가 국내파인 자기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고 유연하다는 사실을 안 겁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좀 배타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줄곧 팔레스타인 땅을 지켜 오면서 다른 인종들을 받아들이는데 아주 인색했습니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래 한 교회에서 구제를 하면서도 해외파들은 제외시켰겠습니까?  오늘 구제사건의 불평을 통하여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편협했고, 이기주의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꾼을 전원 해외파에서 선출한 겁니다.

     

    이 모든 것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다같이 7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에 복종하니라” 해외파 집사들이 활동을 개시한 이래 이제까지는 생각도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허다한 제사장들의 무리가 초대교회에 합류하게 된 겁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주범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교회의 전면에 나서 있는 동안 그들과 제사장 그룹은 견원지간 이었습니다. 서로 상대를 수용할 만한 그릇이 못 되었던 거예요. 그러나 헬라파 집사들이 나선 뒤에는 제사장들이 집단적으로 교회 공동체에 들어온 겁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헬라파 유대인들이 해 낸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습니다. 헬라파의 존재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그 중요한 만큼 그들이 있도록 밀어준 히브리파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만약, 절대 다수인 히브리파가 소수인 헬라파를 밀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다수파가 자기들과 똑같은 히브리파들을 선출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어요? 아마도 복음은 팔레스타인 땅 안에만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 둘의 협력 하에 복음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던 겁니다. 이게 초대 교회의 위대성입니다. 이런 협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독교 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도 히브리파, 헬라파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히브리파들이 언제까지 히브리파고, 헬라파는 언제까지 헬라파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언제든지 자기 위치를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맨체스타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를 생각해 봅니다. 그는 골로 인정받는 선수가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역할로 각광을 받습니다. 골을 넣는 선수가 5km를 뛸 때 그는 10k, 20k 이렇게 뜁니다. 그러면서도 골을 넣지 못합니다. 가끔 골을 넣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그런 그를 보고 아름다운 선수라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축구로 말하면 골을 넣은 헬라파가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렇게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묵묵히 밀어준 히브리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수비수이고 도우미들이었습니다. 골을 넣은 헬라파들에게 맘껏 박수를 쳐주면서 기뻐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훌륭한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정적으로 일하시면서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주의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여러분 모두가 히브리파 유대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나아 보이면 언제든 넘길 줄 아는 신실한 청지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고 박수 쳐주는 위대한 히브리파가 교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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