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 추 절(레23:15-22)
  • 조회 수: 220, 2013.01.24 11:24:08
  • 한때 우리들을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이 요즘처럼 실감날 때가 없습니다. 홍수가 나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었을 때 TV에서 전화로 1,000원씩 ARS 모금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모으니 수십억을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북한 어린이 돕기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을때 마다 모으니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지금도 그렇지만 노조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모를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게 되고 법 까지도 바꾸게 되니 그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모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이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잘 모입니다. 블레셋이 침략해 들어오니 사무엘을 중심으로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우상과의 전쟁을 위해 갈멜산에서 누가 참 신인가를 판가름하기도 했습니다. 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아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하고 서로 나누는 삶도 살았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맥추감사 주일로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은 꼭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집이 멀어도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일본사람들에게 해방받은 것처럼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출을 받은 바로 그 날입니다. 그 날을 기념하여 백성들은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돌아갑니다. 두번째는 가을에 농사를 마치고 모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장막절 입니다. 그리고 맥추절은 봄 농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농사는 봄 농사가 더 큽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가을에 비가 옵니다.  10-11월에 비가 오면 그때 씨앗을 뿌립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 까지 보리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잘 자라 3-4월에 추수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초실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행사가 끝나면 초실절 행사를 하게 됩니다. 일년 농사 가운데 첫번째 추수, 그 보리를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농사도 하나님이 복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 후 50일이 지난날이 바로 맥추감사 입니다. 맥추는 밀 농사를 지어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이후에 5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해서 오순절이라고 하고,또 일곱 날이 일곱 번 지난다고 해서 칠칠절 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밀을 추수한다고 해서 맥추절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날들에는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이 다 모이는 것입니다. 이들이 모인다는 의미는 그저 이 동네, 한남동에서 한남동으로 모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 멀리 갈릴리 동네에서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걸려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모이라는 날을 위해 여행경비를 준비합니다. 우리는 여행경비를 준비한다고 하면 어디 놀러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예배 드리는 그 날을 위해 여행경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받은 것 가운데 십분의 일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나머지 십분의 구 가운데 또 십일조를 띠어 어려운 사람을 주고, 나머지 가운데 십분의 일을 띄어 여행경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집에는 아버지만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과 맥추절과 장막절이 가까이 오면 온 가족들이 같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준비하고 그것을 위해 정력을 쏟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맥추절 행사는 단 하루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성경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서 빨리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모여 예배 드리고 돌아갑니다. 이들은 왜 모여야만 하고 어떤 예배를 드려야만 할까요? 이로 인해서 백성들의 마음속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고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무엇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 엄청난 시간을 드려 오는 것입니다. 먼 곳에 사는 사람은 걸어 오면서 먹고 자면서 경비를 들여 올 것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왔다가 돌아갑니다. 단 하루를 위해서 말입니다. 무의미하게 왔다가 갔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일을 시키실 때 그냥 아무런 의미없이 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 주일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 그러한 복이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크게 네 가지 제사를 드립니다.
    첫번째는 소제를 요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소제는 제사의 종류 가운데 한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짐승의 희생을 드리는 번제가 있는 반면 요제는 곡식 가루로만 드리는 것입니다. 곡식의 가루로 제사를 드릴 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가루에 기름을 넣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또 한가지는 그 가루째 태워 드리는 방법입니다. 마지막 한가지는 오늘 성경에서 소개하는 방법입니다. 고운 가루로 10분의 2에바를 드리는 것입니다. 1에바는 23ℓ가 되니 10분의 2에바는 4.6ℓ입니다. 밀가루의 양이 그만큼이라고 하면 큰 주전자에 꽉 찰만큼 될 것입니다. 그것에 누룩을 넣고 빵을 만드는데  가루의 2배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제를 요제로 드리라고 했는데 요제는 제사를 드리는 한가지 방법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방법으로는 불로 완전히 태워 드리는 화제가 있고, 제물을 들었다가 놓는 거제가 있고, 제물을 흔드는 요제가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흔들기도 하고 뒤에서 앞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흔들고 내려 놓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번제를 화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일년된 흠 없는 양 일곱 마리, 수소 한 마리, 수양 두 마리 이것을 화제로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번제는 제물을 완전히 조각을 내는 것입니다. 껍질은 벗기고 머리도 빼고, 피도 내장도 빼고 난 후 깨끗이 씻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불로 완전히 태우는 화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소제를 요제로 드렸던 빵과 양 일곱 마리, 수소 한 마리, 수양 두 마리를 각을 내고 깨끗이 씻어 불로 태우라는 것입니다. 냄새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보십시오. 엄청난 연기와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냄새와 연기를 맡았을 것입니다.

    셋째는 속죄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수 염소 한 마리를 태워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화목제를 요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일년된 수양 두 마리를 각을 내어 제사장이 들어 흔들어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아무일도 하지 않는 안식일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일에만 최선을 다 하고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제를 요제로 드린다 -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을 요제로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제의 의미는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라는 것입니다. 흔든 것을 다시 내려 놓고 하나님께 드렸던 것을 다시 받아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소제의 의미는 곡식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있고 요제의 의미는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나는 하나님의 것으로 살겠습니다" 뜻입니다.
    번제를 화제로 드린다는 말은 번제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화제는 완전히 태우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후 속죄제를 드립니다.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죄, 부지중에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허물많은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부지중에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앞으로도 이런 죄를 짓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시기 원합니다"
    그리고 난후 화목제를 드립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성도사이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저를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두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늘 하나님과 함께 하고 도와주시고 내 속에 역사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제사를 드리면서 하루 온 종일동안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 즉 "하나님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온전한 헌신을 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인으로 부족하오니 내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 세상 속에서 살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맥추절 제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앙인의 신앙인 됨과 그 신앙적 삶을 살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날을 정하고 멀리서 많은 경비를 쓰면서 모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임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여서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내 힘과 능력을 드러내곤 합니다. 모여서 그 사람들의 힘이 얼마나 있는지를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맥추절에 모여 내 힘과 주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오늘 맥추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세상사람들과 신앙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성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지식을 가졌는가, 권력을 가졌는가가 기준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성공의 기준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에 제사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은 서울대학교입니다. 누구든지 그 곳에 가고 싶고 그곳에 가면 다 축하해 주고 부러워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서울대 안에도 좋은 학과가 있고 그렇지 못한 학과가 있어서 학생들 끼리도 서로 갈등을 많이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가지면 가질 수록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악해지면 차등이 생깁니다. 세상은 있는 사람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낙심할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감동 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데레사 수녀, 슈바이처, 손양원 목사님 이러한 분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습니까? 이분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를 드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사는지, 내가 누구를 위해 쓰는지 즉,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가정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남편, 하나님이 주신 아내, 하나님이 주신 자녀, 하나님이 주신 부모로 생각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하나님은 정말로 그렇게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알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사탄이 와서 말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이유는 네 일이 잘 되어서이다. 만약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때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 이것은 욥에게만 한 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게 돈이 있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헌금도 많이 할 것이고, 내게 권력만 있으면 내가 하나님 앞에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욥이 시험을 받습니다. 재물을 다 빼앗기고 가족을 다 빼앗기고 자신의 건강까지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자신의 몸이 병들어 기와로 자신의 몸을 긁습니다. 친구들이 조롱하고 비난하고 부인까지도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욥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신자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신 자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주께서 아시나니 나를 이와 같이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주님이 내 가는 길을 알고, 내 삶을 알고, 내 앞날을 알고, 내게 주실 복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고, 이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이 욥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이런 성도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민족을 보았습니까? 땅을 보았습니까? 명예를 보았습니까?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살았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보기는 했지만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 삶 자체, 살아온 시간들이 하나님과 함께 한 시간이 성공적 삶입니다.

    눅17장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안수하셔서 고쳐주셨더라면 문제는 간단 했을 텐데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당시 문둥병자들은 사람들을 만나면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문둥병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닌데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려고 한 떼를 지어 갑니다. 주님이 하라 하시니까 많은 수치와 두려움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가는 것입니다. 확실히 보여 주는 것도 없습니다. 안되면 어떻게 해준다는 보증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가다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돈이나 명예나 권세가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물질, 몸등 그것이 크던지 작던지, 비록 병든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사는 것임을 감사하고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이런 성도에게 복을 주실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며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22절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 까지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추수를 하되 그중 일부를 베지 말고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해서 말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2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를 위한 내 피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로 하여금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사랑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자신의 명예때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은 내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을 통해 남을 위해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 복 받고 잘 살고 높임받고 존경받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인의 참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함과 함께 나누어 줄줄 아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성도의 주머니는 항상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돈주머니가 회개하지 않고서는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무엇이 가치있는 인생입니까? 부자가 되는 방법 중 하나는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가진 것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볼펜이 만약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진료할 당시 쓰던 볼펜이라고 한다면 이 볼펜의 값이 어느 정도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치입니다. 오늘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사는 것,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어진 것을 '더 많이' 가 아니라 있는 것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감사하고 나누어 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엘림 미션센타 개원 2주년 예배를 오후 예배 때 드립니다. 엘림 미션센타를 아시는 분도 계시만 모르시는 분들도 계셔서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벧엘 교육관을 산후 '서울 개인택시 선교회'가 장소를 빌려 달라고 해서 그들에게 빌려 주었고 지금은 그 선교회가 살림이 늘어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본 국과는 관계없이 우리 나라에 와서 다국적인 신앙공동체를 통해 믿음을 갖고 있다가 본국에 돌아가면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총회 전도부에서는 정책을 바꾸어 각 나라별로 모이는 예배모임을 갖도록 추진을 하고 있던 중 우리 교회에 부탁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당회가 결정을 하고 세운 것이 필리핀 근로자들을 위한 엘림미션센타입니다. 사실 필리핀 민족은 6.25때 우리나라에 와서 전쟁을 도운 민족으로 우리 민족은 그들에게 빚이 있습니다. 우리 교육관에서 가장 좋은 장소가 바로 그 장소일 것입니다. 위치도 좋지만 수리를 잘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곳에 엘림미션센타였는데 바로 그 날이 오늘, 맥추감사주일 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 감사주일에 바른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삶의 변화된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만 드리는 것이 최선이 아닙니다.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본의 여류작가 가운데 미우라 아야꼬가 쓴 "빛은 있는 동안에"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나환자 병원에 A 라는 여인이 이었습니다. 나이는 50세가 조금 넘었고 맹인이었으며, 손발이 마비되어 혼자서 일어서거나 돌아 누울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거나 몸을 씻는다는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꼭 한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숨쉬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최악의 삶에서도 다른 환자들에게 강하고 뜨거운 사명으로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용암같은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새벽에 일어나면 자원봉사자들이 가져다 놓은 점자 성경을 입술로, 혀끝으로 읽습니다. 부드러운 혀는 헤어져 피가나지만 그는 아름다운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따스한 햇빛이 창문을 열 때면 방문객들을 맞게 되며 사지가 멀쩡한 그들과 위로의 말을 합니다. 하루는 물레방아 돌듯 너무나도 무미 건조한 삶에 염증을 느껴 우거지 상을 쓰고 찾아온 자매는 자신의 무기력한 삶에 넋두리를 토해내며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자매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더듬거리는 발음으로 분명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의무이며 외로운 임무이다" 이 말 한마디에 자매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무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후회하고 권태와 염증을 느끼며 걸어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술과 담배로 자신의 인생 마저 단축시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여인의 삶을 보시기 바랍니다. 있어서가 아니라 있는 것 까지라도 최선을 다해 남에게 줄줄 아는 것, 이것이 맥추절의 정신이고 맥추절을 예배하는 성도의 자세인줄로 믿습니다. 무엇 때문에 속상해 하고 불평하며 무엇 때문에 사람을 무시하십니까?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임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크던 작던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입니다. 감사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여기고 나누어 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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