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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택_신약 디모데전서 3:1-13/ 중직자의 자격 [절기]
  • 조회 수: 359, 2013.01.25 12:16:22
  • 디모데전서 3장에서는 교회의 직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독과 집사에 대한 직분을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은 장로, 집사, 권사 피택을 하게 되는 관계로 중직을 맡을 분들이 어떤 자격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감독이라는 당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장로와 바꾸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에서 감독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목사와 장로를 구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감독직이 교회에서 잘못 사용되어져서 마치 신분상의 계급처럼 행사하여 왔기에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직자가 아닌 회중가운데서 대표를 선출하여 장로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은 장로, 집사, 권사의 자격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말하려면 시간이 짧기 때문에 보편적인 몇 가지 내용들을 추려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대략 장로에 관련된 조건사항만 하더라도 15가지나 됩니다. 이 중에서 제가 언급하지 않는 내용들은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나도 상식적이기에 이런 것들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중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1. 선한 일을 사모하는 분들이 중직에 피택 되어야 합니다. 1절에 보니까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한다면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감독만이 아니라 모든 직분이 다 그러합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이라는 것이 자기의 야망이나 자존심이나 위신을 세우는 직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의 직분이 사람의 체면 때문에 주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의 중직은 사회적인 직책과는 달리 책임은 많고, 권리는 별로 안 됩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는 하지만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중직자가 떠안아야 합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사모하지 않으면 중직을 받자마자 시험에 빠집니다. 선한 일을 사모하지 않으면 중직을 맡은 후에 누구처럼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왜요? 힘들고, 어려우니까요. 그러나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런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중직을 감당해냅니다. 그래서 중직을 맡을 사람들의 첫 번째 조건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2.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법, 사회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교단헌법은 장로가 되려면 적어도 7년간, 안수집사, 권사는 5년을  흠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서 중직을 맡으려는 분은 신불신간에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성품적으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라야 함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받은 자가 중직의 자격이 있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선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직을 맡은 후에 교회 안팤으로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수준 이하의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흠이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을 중직자로 피택하고 난 후에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품위가 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그런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중직자가 되면 교회를 대표해서 여러 연합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데 그 중직자의 됨됨이는 바로 우리 항도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책망할 것이 없고, 흠이 없는.... 더 나아가서 칭찬을 듣는 그런 분을 중직자로 세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적극적인 신앙의 덕목을 가진 분이 중직자가 되어야 하겠죠. 신앙의 덕목이라 함은 오늘 본문에 나온대로 절제, 근신, 관용... 이런 것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절제의 반대말은 세상에 쉽게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취미에 너무 깊이 빠져 주의 일을 소홀히 하는 분을 중직자로 세워놓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은 너무 미혹적이죠. 이런 세상 것들을 적절하게 통제하여 세속에 빠지거나 나쁜 것에 중독되지 않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근신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을 잘 단속할 줄 아는 성품을 말하죠. 화를 버럭버럭 낸다든지 하면 근신의 덕목이 없는 것입니다. 말을 너무 많이 해도 안 되요. 관용이란 모든 사람에 대하여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하죠.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중직에 어울리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중직자들이 비관적이고, 비판적이고, 다투기를 잘 하면 그 교회는 1년 365일 내내 시끄럽습니다. 교회는 원래 다투기 딱 좋은 곳입니다. 너무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이래서 다투고, 저래서 다투고.... 다투는 성품을 가진 분이 지도자가 되면 교회가 시끄러운 것입니다. 닐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되었잖아요? 그 분을 세상이 존경하는 것은 그 분이 지도자가 된 후에 백인들을 다 품었어요. 흑인들을 착취하고, 괴롭힌 백인들이지만 저들을 다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아프리카가 정권이 바뀐 이후로 지금까지 조용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덕목을 갖추지 않으면 중직자가 될 수 없습니다.

     

    4. 마지막으로 믿음의 비밀을 가진 분이 중직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비밀이라는 것은 체험적 신앙,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그런 개인적인 간증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래 다니면 성경도 잘 알고, 교리도 잘 압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그 이상이죠. 기도의 체험, 말씀의 체험... 이런 것들은 사람들마다 다 달라요. 주관적이죠. 그래서 믿음의 비밀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중직자가 되려면 이런 믿음의 간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교회의 일을 결정할 때 인정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예기치 못한 환경에 부딪히게 되어 고민하게 되고.... 이럴 때에는 인간의 정과 합리성... 이런 부분들을 뛰어넘어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누가 결단해야 합니까? 목사가 결단해야 하고, 장로, 중직자들이 결단해야 하는 겁니다. 비록 어려운 일이라도 지도자들이 결단하고, 신앙으로 무장해서 교인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하는 순간에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따라서 중직에 세우려는 분들은 보통 신자보다도 믿음의 담력이 있어야 하고, 이런 믿음의 담력은 평소에 자기가 가진 믿음의 비밀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중직의 최고의 자격은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중직에 결코 합당하지 못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입니다. 디모데전서1:12-17절에 보면 바울 자신이 직분을 받은 것은 결코 자기의 의로움이나 선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직분을 받게 된 것은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과 자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죠. 그래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고 죄인중의 괴수인 자신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직분을 맡기신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그저 죄인 중에 괴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직이란 자격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조건에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더 좋겠지만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단 한걸음도 주님의 은혜와 도움심이 아니면 안 되는 자로 서는 자가 정말 중직에 합당한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모든 직분은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가를 증거 하는 자로서 서야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직분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직분은 주님과 동역하기 위해 인간 편에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구비한 사람이 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 발자국도 갈 수 없다고 절절하게 깨달은 사람이 그분의 부요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맡는 사랑의 일이다." 그러므로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간에 모든 직분은 은혜로 받는 것이고 그분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면 여러분들의 한 표 한 표의 투표를 통하여 우리 항도교회를 위한 신령한 일군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드리지만 하나님의 일군은 인정이나 의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있어야 하고, 칭찬을 들어야 하고, 뛰어난 신앙의 덕목을 가지고, 거기에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소원하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우리 항도교회에 반드시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중직으로 세워 이 중직을 세우는 일이 우리 교회의 잔치가 되고, 축하의 자리가 되고, 더 나아가서 은혜가 충만한 행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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