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 감사하라(시 136편)
  • 조회 수: 225, 2013.01.26 16:31:34
  • 시편 136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장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26번이나 계속해서 말씀하시면서 감사에 대한 특별한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고 계십니다. 감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감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6가지의 감사의 내용은 본문을 여러번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는 참으로 알기 어렵고 이 속에 그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저희 중에서 인도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하신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악의 세력과 세상의 이런 저런 권세들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통치하셔서 참으로 우리를 해하는 악의 세력은 것 같으나 실제로는 우리의 구원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그런 세력은 하나님이 멸하지 않으시고 잘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단단히 기억할 것은 주님이 없는 가운데 내게 주신 것을 주의 것으로알지 못하고 내 것으로 착각해서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는 그 마음이 자기를 죽이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잘못 된 생각을 꺾고 바로 고치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사람들은 사람이 높고 존귀해지면 가치를 알고 대우도하고 환영도 하지만 낮고 천해지면  버리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없이 비참하게 천해졌고 죄와 사망으로 인해서 영원한 죽음 가운데 처했을 때 우리 주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출하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한분께 전 소망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이 주면 있고 안 주면 전혀 없습니다.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은 잠깐 입니다. 한 순간에 없앨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는 그 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셨고 능력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어서 확실히 믿어지는 이 믿음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36편에 기록되어 있는 이 계약은 너무 범위가 넓고 크고 영원하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마음 속에는 다 담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감화 감동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하는 광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영감은 감동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이 큰 계약의 사실이 믿어지지 아니하고 또 이 계약대로 살기는 심히 어렵습니다. `여호와게 감사하라.`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만 계시면 우리는 그분을 두려워하거나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

     

    혹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없는 가운데서 지음을 받았으니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 그러나 지음을 받은 것만 가지고는 감사할 이유가 못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죄로 인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인생으로 나지 아니한 것이 행복합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모른다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것이 더 불행하고 비참합니다. 짐승으로 난 것보다 사람으로 난 것이 더 비참합니다. 짐승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그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인 영이라는 실존이 없고 본능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다가 죽으면 원소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고통도 근심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한번 태어나면 다시는 없어질 수는 없는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히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자하심을 받지 못하면 비참하고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한 사람으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무엇이 감사하며 무엇이 기쁜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주님의 대속공로로 인해서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좀 깊게 생각해 보면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없으면 만물중에 인생이 제일 비참한 것입니다.

     
    다른 짐승에게는 물 한방울의 자유가 없는 불꽃 가운데서 영원히 타야 될 형벌을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이 비밀을 깨닫고 자기가 인생 된 사실이 하도 불쌍해서 몇 일 동안이나 울고 울면서 고행을 하면서금욕생활을 하면 인생이 속죄될까? 영원한 형벌을 면죄 받을까?하여 고행위주의 금욕생활을 했지만

    이것은 전부 다 헛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면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나타난다고 하면 우리가 기절할 만큼 두렵고 떨리기만할 뿐이지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구약성경에 계약을 선포하시고 신실히 이행하시는 그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어 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영원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대신

    받으신 그 형벌이 대형의 대속입니다. 우리는 속죄를 입었습니다. 내가 행하지 못한 것을 주님이 다 행하셔서 우리를 의롭게한 그것이 칭의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대로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 가우데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 조건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억울해서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기도 하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기도 했지만 한 낫 인간적인 장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벧엘 들판에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축복의 언약을 하셨고, 그의 가는 곳이면 어디나 동행해 주셨고 말년에 가서는 잃어버렸던 요셉까지 찾아 애굽으로 건너가서 살다가 자손들에게 축복하면서 그의 인생을 끝낸 신앙의 조상이었 습니다.  그가 별세하기 전에 아버지를 방문한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기도한 구절의 말씀을 보면.....

     
    ▶▶ 첫째 야곱은 기도와 찬양으로 인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인생을 마칠 수 있을 때에 감사의 인생의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48장-15-16절을 보면`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가르친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씀에서도 그의 신앙고백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내 조부 아브라함 섬기던 하나님,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신앙의 전통을 존중했던 흔적이 여기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나의 남으로 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라고 부르면서 그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고 번성하게 해줍시사고 기도했습니다.

     

    ▶▶ 둘째 야곱은 12아들에게 축복을 하면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49장 전체는 야곱이 열두 지파에게 축복한 내용이 기록된 장입니다. 각자의 정도에 따라 그들에게 맞게 각각 축복해 주었던 것입니다. 축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축복은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직임입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는 일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 입니다.

     
    ▶▶ 셋째 야곱의 자녀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화목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게되자 떨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겨 요셉을 고생시켰던 것이 잊혀지지 아니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는 요셉이 가만히 있었다 해도 아버지가 별세하고 나면 결국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알아 차린 요셉은 아버지가 별세하자 형들에게 찾아가서 위로한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의 걱정이기도 했는데 요셉이 너그러이 형들에게 대해 줄 때에 하늘 나라에서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창세기 50장 19절에 보면 염려하는 형제들에게 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이 모습을 보면서 야곱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까? 화목의 귀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1. 화목이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불화가 있는 곳에는 사탄이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성령은 화목의 장소에서만 역사하는 것입니다.

     
    2. 화목이란 용서의 열매입니다. 용서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는 화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화목케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하셨으니 화목은 하나님의 아들된 표시인 것입니다.

     
    3. 화목이란 노력과 협력의 열매입니다. 노력없이도 화목은 없고, 협력이 없이도 화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요셉과 자기를 팔아 넘긴 원수같은 형제들을 화목의 대상으로 삼은 요셉의 모범은 우리도 본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자녀들이 화목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기도와 찬양으로 감사했습니다. 야곱은 감사함으로 12아들들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화목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종말지울 때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인생은 인간의 자기 자신의 최대의 작품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멋이 있는 인생을 건설하시기 바랍니다.

      
    ▶▶ 요셉의 감사     사람들은 참으로 감사가 너무나 인색한 것을 봅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괜찬습니다. 이와같은 좋은 말이 있는데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향하여 감사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을 향하여 하라고 명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살전5:16~18 절에 있는 말씀으로 항상 기뻐하라 , 쉬지말고 기도 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 그 계명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5: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3: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 인줄 알리라.


    눅1-: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감사는 주님의 명령 입니다.

     
    1)항상 기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볼 때 무조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 할 수가 있습니다.

     
    2)감사와 찬송은 천국까지 가서도 하는 것입니다.

    계7:11.12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나의 구속받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하나님의 믿음의 이 땅을 유업으로 얻는다는 확실한 신앙 가지고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셉 에게는 아무 죄도 없이 옥에 갇혔으나 불평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요셉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예표라고 합니다. 그는 그와 같이 잠잠하고 감사로 영광을 돌렸던 것 입니다.

     
    1)그의 깨끗한 신앙과 행위를 보신 주님께서는 요셉의 일생 동안 동행 하셨습니다.

     
    2)이와 같이 사건 속에서 범죄지 않고 감사로 영광 돌릴때 주님이 동행 하시게 되며 사건은 더이상 사건 일수가 없고 승리만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극한 상황속에서 마음속 깊은그 속에서 감사 할 조건을 찾으시면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3)감사와 영광을 확실히 아는 하나님의 신지식 위에 굳게 세워 주님께 고백 할 때 우리에게 모든 사건은 더 이상 사건 일수가 없고 문제가 문제 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4)요셉은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옥에 갇혔어도 감사하고 종으로 팔렸어도 감사하고 원수된 형들을 봤으니 오히려 감사하는 그의 삶 앞에 더 이상 어느 것도 시험 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 창세기 39장 23절 ◁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 하박국의 감사

     
    인간의 성숙도는 얼마나 감사하며 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선진국 일수록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을 익숙하게하며, 신앙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일수록 감사를 잘 합니다. 감사는 신앙 성숙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살전 5:18)

     
    오늘은 하박국 선지자를 통하여 성숙한 감사를 배우고자 합니다.


    1.성숙한 성도는 환난날에도 감사합니다.(16절) 하박국 선지자가 겪고 있는 상황은 결코 감사할 조건이라고는 없는 환난을 기다리면서,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그의 입술은 감사의 노래로 채워졌습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4-15) 고 했습니다.

     
    감사의 제사가

    환난날에도 드려져야 할 것이며,

     
    감사하면

    환난중에도 건져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록한 것입니다.


    2.

    성숙한 성도는 없을찌라도 감사합니다.

    (17절)

     
    17절 본문을 보면

    6가지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으나

    실상은 모든 것의 궁핍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승산도 없는

    전쟁의 위기가 감돌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인들 넉넉하겠습니까?

     
    의.식.주의 궁핍은

    물론 제물로 드릴 양과 소도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한 부분이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 하박국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없을 지라도`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은 풍부

    하기 때문에 감사한일 보다

    믿음이 있을때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있으면

    모든것을 가진것입니다.

     
    3.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18-19절)

     
    진정한 감사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한 감사인 것 입니다.

    `나의 힘이 되시고`

    `높은곳에 다니게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하박국은 믿었기 때문에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메튜헨리)을

    하박국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느냐는

    능력의 문제이며, 그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실뿐 아니라,

    그능력이 바로 하나님자신임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했던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 하박국 3장 19절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넘치는 감사

     
    1.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긍정이며,

    이웃의 봉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다(Thank you!)는

    말을 자주 쓰는데 한국 사람은

    인색한 것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미국의 통계에서

    50개의 자주 사용 하는 단어 중에

    감사가 28%를 차지하여 으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감사를 모르고,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가르침에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버릇들이기 전에 아무말도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듯이 감사라는 것이 얼마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하고

     
    이를 자주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절기만 되면

    어른들을 찾아 뵙고

    감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나쳐서

    뇌물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미풍양속입니다.

     
    한 해 동안 도와주시고

    사랑해주신 분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시136)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의 추수를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으며,

     
    추수감사절을 매년 지켜오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분명히 깨달아 감사드려야 합니다.

     
    2.

     
    무엇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해 너무나도 옹졸한

    신앙 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을 기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넘겨뜨리고 악이 창궐한 이 세상에

    진리와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베푸시고(눅23:34),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이행할 권능을 주시고(빌2:13),

     
    우리를 위해

    간절한 기도의 소리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용서받은 자는

    또한 용서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끝없는 용서의 교훈은

    주님의 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감사하지 않는 이는

    결국 그 은혜를 빼앗겨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또한

    주님께 감사드리게 되는 것은

    그 분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 날에

    인도자가 되시고(시48:14),

    절망의 날에 희망이 되시며,

    멸망의 날에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애굽의 고난에서 구원받은 것을

    민족의 해방절로 지켰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바로 찬양을 동반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섯 가지 제안을 실천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결과

    구원의 역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4.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영과

    육신의 양식에 복을 주시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억지의 감사가 아니라

    무언가 더 소중 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에

    우리는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만들거나 빼앗을 수 없는

    가장 큰 것들을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치 않고

    서는 아무에게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티 바덴과 같은 감사는

    감사의 조건을 먼저 찾는

    우리에게 경종을 주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 시편 65편 1-2절 ◁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적극적인 감사1

     
    `감사는 행복의 문올 여는 열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럴려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희랍인들은

    믿기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면

    행복의 여신은 떠나 가고

     
    불행의 여신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학생들이 공부를 합니다.

    수학공부를 하고

    국어공부를 합니다.

     
    여기 한가지 더할 것은

    감사하는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일에

    고마워 할 줄을 모르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너희는 감사하라` 그랬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인생의 중요한 훈계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에 너무 만족해지면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만사가 너무 쉽게만 이루어지면

    그것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의 가흑한 경쟁은

    우리 마음에서 감사의 심정을 빼앗고

    우리 입술 에서 고맙다고 하는

    말을 자꾸 앗아갑니다.


    어느 교수님이

    어느 국민학교를 갔더니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미 실안 교육을 하더랍니다.

     
    고미실안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물어 보 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쓸데없는 말들이

    풍성하기보다도 이러한 아름다운 말들이

    오고 갈 때 사회에는 기쁨의

    꽃이 피고 화목의 향기가 만발할 것입니다.

     
    고마워 해야 할 때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

     
    인간으로서의 지격이

    좀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까?

     
    감사해야 할 일인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고 한다면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좀 부 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근본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에는

    몇 가지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보십시오.

    병원에는 웬 환자가 그리 많습니까.

    내가 건강하다는 것이 참 감사 합니다.

     
    ▶자녀가 없어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귀여운 지녀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직업이 없어서 헤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에겐 직업이 있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떠서 먼저 할 일은

     
    맑은 날씨를 주시고

    좋은 햇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저에게

    이렇듯 건강한 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도록

    새생명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제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도

    있는 것을 감 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결코 외로운 것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마음에 지닌 다면

    인생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산마다 계절을 따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감사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볼 때

    인생은 기쁨의 샘터요,

     
    아름다운 화원이

    될 수가 있을 것 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 시편 107편 1절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적극적인 감사2

     
    또한 우리는

    감사할 때에 소망 중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살 때

    어렵고 힘들 때가 찾아옵니다.

     
    돌짝밭 이상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견디어 가는지

    마음이 심히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하기 보다는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땅에 것만을 보는 사람은

    거친 들판 산자락 밖에는 보지 못하지만

     
    좀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파란 하늘을

    볼 수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흔히

    세 가지의 눈이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는 직시 하는 눈입니다.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시각적으로

    자꾸 시시각각 변합니다.

    현실은 아름다운 것뿐만은 아닙니다.

    현실은 여러 가지 모순도 있습니다.

    부조리도 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현실을 편견없이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눈의 안경에 무엇이 묻었다고 하면

    그 묻은 것을 닦아내고 직시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내 눈에

    안경에 묻은 것이 있으면

    닦아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

    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현실을 투시한 눈이 필요합니다.

     
    투시한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뚫어본다는 말입니다.

     
    초능력을 가지고

    건물 뒤에 있는 사람을

    본다고 하는 뜻은 아닙니다.

     
    사물이나

    상황에 핵심이 무엇인지

    그 것을 통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실은

    늘 아름답게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현실은 거짓이나 가식에

    가려진 포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것을 투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지성이란 무엇인가.

    참과 거짓을 가리는 힘이다.

    진리와 거짓을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실의 밑바닥에 깔린 것이

    무엇인가를 투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을 멀리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멀리 보는 눈을 가져야만 합니다.

     
    비전과꿈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l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미국 최초의 추수감사주일이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에의해서 지켜졌습니다.

     
    저들이

    추수감사 주일을 지킬 때에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저들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굶주림과 질병으로 많은 동료들이

    죽어 가는 실정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영국의 박해를 피해서

    1620년 9월 16일 메이플 라워를 타고

    6S일간을 항해하고

    뉴잉글랜드 땅에 도착했는데

    그 추운 겨울을 지나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죽고 오십 명만이 남았습니다.

     
    그 슬픔과

    환난 속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침으로

    추수감사주일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첫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때

    저들의마음이 어떠했을까?

     
    세상으로 보면 낮선 곳,

    황량한 곳, 거친 곳,갈이 배를 타고

    그러나

    저들은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대서양을 건너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니닙께서 우리 의 앞길을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어렵지만은

    이 시련을 반드시 극복하도록 저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 하면서 감사절을 지켰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집니다. 요셉은 절망적인 상황을 얼마나 크게 겪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끝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했습니다. 어릴 때에 꾸었던 그 꿈들을 다 이루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애굽 국무총리에 오른 다음에 자기를 찾아온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은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곤고한 처지에 놓여있습니까. 좌절과 낙심될 상황에 놓여있습니까? 결코 좌절하지 말고 세상만을 바라보지 말고 요셉처럼 히니님을 의지하시면 흑독한 고난 속에서도 그 슬픔과 시련 속에서도 감사절을 지켰던 청교도들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처한 환경에 좌절하지 말고 소망 중에 내일을 바라보면서 적극적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지금은 심히 어려워도 하나님이 우리의 앞날을 열어 주시고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 볼 것은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 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매사 적극적인 믿음. 적극적인 기도 생활과 더불어 적극적인 감사생활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과 물질로 감사하기를 힘쓸 때에 주시는 축복이 더욱 넘칠 것 입니다.

     
    ▷ 시편 107편 1절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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