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부모, 좋은 자녀, 행복하게 사는 가정 (신명기 5장 16절)
  • 조회 수: 147, 2013.01.27 19:41:21
  •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74세된 홀아비가 92세된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74세된 홀아비 자신의 지병이 악화되어 더 이상 92세된 노모와 살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안 자녀들은 아버지는 모시지만 할머니까지는 모실 수 없다고 버팁니다.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자신만이라도 살기 위해서 노모를 아버지 산소에 모시고 가서 목 졸라 숨지게 합니다. 특별한 예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한 면입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오, 좋은 자녀가 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말씀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시대입니다. 서로 가치관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부모나 기성세대를 무시하기도 하고, 불신하기도 하고,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효도를 이야기하면 케케묵은 낡은 도덕으로만 생각하는 일들이 많아져갑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드러 내놓고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런 정신이 얼마쯤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더합니다.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해진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러한 현상은 말세에 일어나는 한 징조이기도 합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자긍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변합니다. 생각도, 가치관도, 학설도, 환경도, 유행도, 시대도 ... 그러나 일점 일획이라도 변해서도 안되며 가감 할 수도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더라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하나님은 아무나 축복하시지 아니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만을 축복하십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그 가정에 거하신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녀들이 좋은 자녀 되기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지고, 부모님들 스스로가 좋은 부모 되기를 소원하는 계기가 되셔서 행복한 부모, 행복한 자녀가 됨으로 행복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큰 효도는 무엇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인데 부모로서 가장 큰 기쁨은 아무래도 자녀가 잘되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좋은 자녀, 사람다운 사람으로 기르기 위하여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하고 길러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어려서부터 순종하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에는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물론 부모가 훌륭한 부모, 자랑스러운 부모이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비천한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실수하실 수도 있고, 부모의 생각이 자녀보다 떨어질 수도 있고, 부모가 편애를 하거나 혹 나쁜 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도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30장 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중에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제4계명)와 "네 부모를 공경하라"(제5계명)를 빼 놓고는 모두 "하지 말라"는 부정명령입니다. 왜 이 두 가지만 특별히 긍정명령으로 강조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 명령 중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인간에 대한 윤리적 계명 중 부모 공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라는 것을 철저하게 지키면 하지 말라는 나머지 계명들은 자연히 안 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계명 다 하지 않는 자에게 내리는 형벌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계명은 수직적인 대신 관계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계명이고, 수평적인 대인관계에서는 부모 공경에 대한 것입니다. 레위기 19장3절에서는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사람과 짐승에게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사람과 짐승 모두 어미는 새끼를 낳은 후 지극한 모성애로 정성스럽게 자신이 낳은 새끼를 기릅니다. 종족 번식을 위한 본능입니다. 그런데 동물의 새끼는 성장한 후에 어미의 은혜를 곧 잊어버립니다. 자신밖에는 몰라요. 반면에 인간은 부모가 낳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며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을 닮은 성품이 있다는 것이지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모공경과 거리가 먼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짐승 차원으로 가까워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공경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 공경 잘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대접받기 위해서 보다도 자녀가 하나님의 축복받고 살게 하기 위해서 부모 공경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에베소서 6장2절-3절에는 부모공경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고, 이것을 지킨 자녀에게는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30장 19절에 보면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효도는 사망 대신에 생명을 택하는 길이요, 저주 대신에 축복을 택하는 길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부모대접을 받으려면 부모다워야지" "어른대접을 받으려면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 보다는 내 부모라는 사실이, 나보다 어른이라는 사실이 더욱 귀중합니다. 혹 우리의 직장에서 내 마음에 안 맞는 까다로운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 부모나 내 시부모가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순종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부모나 윗사람을 통한 훈련이나 통제가 당장에는 거추장스러울 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나를 다듬어 나가시고 나를 완성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순종하여 내 삶에, 내 인격에, 내 생활에 좋은 열매를 많이 남기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어버이 주일을 당하여 자녀는 부모공경을 다시 점검하고, 부모는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기를 다짐할 뿐 아니라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가 되신다면 주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며 의미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머리를 통하여 축복하십니다. 부모는 가정의 머리이면서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또 그러한 권한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 식탁은 순서에 맞추어 일일이 자녀들에게 축복기도를 해 줍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서 너에게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신 것 같이 축복하기를 원하노라" 딸에게는 "하나님이 사라와 리브가와 라헬과 레아를 축복한 것 같이 너희 딸들을 축복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해 줍니다. 에서와 야곱을 보십시오. 당연히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갑니다. 많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길이 야곱에게 닿도록 섭리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를 축복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보십시오. 야곱의 오른손이 먼저 닿은 차자 에브라임이 큰 자가 되고, 장자 므낫세는 작은 자가 됩니다. 결국 후일에 장자 므낫세가 동생 에브라임과 그 자손을 영원히 섬기게 됩니다. 부모의 축복은 자녀들의 앞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부모의 축복을 사모하는 자녀들, 자녀를 품에 안고 마음껏 축복하며 기르는 믿음의 부모님들 되셔서 주님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귀한 복들을 받아 누리시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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