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쉐마(신6:4-9, 계3:6)
  • 조회 수: 173, 2013.01.27 20:26:06
  • 오늘 설교 제목은 '쉐마(들으라)" 입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항상 가르치며, 늘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고 말씀해 주신 분입니다. 우리를 선택해 주시고 우리에게 계속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들으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쉐마'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각처에 있는 우리들을 부르시고, 말씀을 주시며 그 말씀을 들 으라고 하십니다 계시록 1장 3절에 "말씀을 읽는자도 복이 있고 듣는자도 복이 있고 말씀을 지키는 자도 복이 있다"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입니 다.
      우리 교회는 6월 한달 동안을 말씀을 읽는 달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달에 말씀을 열심히 읽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말씀을 듣는자와 말씀을 지키는자, 실천하는 자도 곧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은 세상에서 주는 거짓 된 복이 아닙니다. 욕심을 낳고 죄를 낳고 사망을 가져다 주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생명을 낳는 영원한 복입니다. 이번 한달 동안 이런 기회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풍성히 누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눈을 주셨습니까? 아름다움을 보고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 때문에 참 행복을 잃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눈으로 귀한 것을 보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잘못 보고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를 주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소리를 듣고 복되게 살기를 원하 셔서 우리에게 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괴롭게 하는 많은 일들 가운데, 듣는 것 때문에 불행에 빠질 때가 참 많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세상의 소리로 우리에게 접근해 옴으 로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거나 염려하게 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은 언제나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해 옴으로 , 우리의 마음에 모든 염려를 멀리 하게 하며 평안하게 해주십니다. 용기없는 자에게 용기의 말씀을 주시고, 길잃은 자에게 새로 운 길을 찾을 수 있는 말씀을 주시며, 생명을 잃은 자에게 생명을 찾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리는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어지럽게 합니다. 메스컴에서 듣는 소리들은 세상의 소리들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편안한 자가 누가 있습니까? 한마디도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쉐마, 들으라는 이 말씀은 성경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계속 해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말씀을 들려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속에서 내 중심으로 말씀을 듣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심이 되어질 때, 진리의 말씀이 아무리 많이 전해져도 그 말씀은 잘 들려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듣는데로 말한다고 합니다. 들은 것이 내 속에 가득 차 있을 때 그것이 입을 통해서 표현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세상 의 이야기는 잘 듣고 또 그것을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천국을 이루는 말 씀을 듣고는 이 말을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합니까? 아마 대부분은 잘못하고 있을 것입 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귀가 열려진 것 같아도 영적인 귀는 막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속에 자아가 너무 충만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천국복음을 많이 말 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그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못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동산에서 그가 엎드려지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오만하고 우리의 자아가 강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복된 소리 가 들려져도 그 복된소리를 내 속에 전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한 천국 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말씀을 들을 때만 우리는 바르게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말씀 가운데 새롭게 성장해 가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오해하고 듣는지 한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안득기란 이름을 가진 학생이 담임선생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선생님께서 제일 앞에 있는 안득기에게, '너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안득깁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이름이 뭐야?' '안득깁니다.' 라고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성만빼고 이름만 말해봐라.' '득깁니다.''성과 같이 예기해 봐라.' '안득깁니다.' 이상하게 이름만 말하라면 듣 긴다고 하고, 성과 함께 말하라고 하면 안들린다고 하는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화가 나서 반 장에게 몽둥이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반장이 나가서 쇠파이프를 들고 왔습니다. 선생님이 친구를 때리는데 쇠파이프를 들고 오니까 '너 이 반의 뭐야?' 그러니까, 마침 껌을 씹고 있던 반장이 '예, 껌입니다.' 다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너 이 반의 뭐야.''껌입니다.' 그날 안득기와 반장은 몽둥이로 실컷 맞았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화가 덜풀려서 다시 불렀습 니다. 선생님이 다시 물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이 화가 나서 반장의 뺨 을 때렸더니 입안에 있던 껌이 튀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기준으로 듣기 때문에 대부분 정확하게 듣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마치 앞에서 예를 든 선생님처럼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듣고 오해하고 판단해 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6장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들으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 어떤 믿음이 생깁니까? 믿음의 절차가 쭉 기록 되어졌있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집니다.
    들음으로서 믿음이 생겨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그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상당히 믿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도 듣는데서부터 시작되어 집니다. 온전히 들을 때만이 그 말씀과 함께 살아갈 수 있고, 온전히 들을 때만이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만이 온 집안 구석구석에 말씀으로 가득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성경 다독대행진을 하면서 말씀을 읽는 쪽 보다는 듣는 쪽에 많이 치우쳐 있습니다. 성경은 읽는 자도 복이 있고, 듣는 자도 복이 있으며, 말씀을 지키는 자도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2-3절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장 11절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자가 곧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2장 17절에는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2장 29절과 3장 6절, 그리고 3장 13절과 3장 22절에도 역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 13장 9절 이 말씀은 좀더 깊이 생각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사람들이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는데,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영적귀와 영적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많은 환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육적으로 눈먼자를 눈뜨게 한 것은 곧 영적 눈먼자를 눈뜨게 하시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 7장 31절에서 37절의 내용속에 보면 바로 귀먹고 어둔한 자를 고친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귀가 먹어서 말을 더듬었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그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고쳐주셨습니까? 손가락으로 귀를 뚫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의 손가락을 통해서 귀가 뚫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열리라'는 뜻의"에바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귀먹고 어둔한 자를 고치신 이후에 3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이 분명하더 라" 귀가 열리면 말이 분명해집니다. 영적 귀가 열리면 영적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영적 귀가 열리면 진리의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영적 귀가 닫히면 말을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영어회화를 하시는 분들은 경험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회화를 할 때 어떻습니까? listening이 안되면 speaking이 안됩니다. 그런데 listening이 되면 speaking이 잘 됩니다. 들을줄 알면 말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못들으면 절대로 말을 못합니다. 말못하는 사람들은 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귀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 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영적인 귀가 닫혀 있음에도 열린줄 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적 귀가 막혀져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찾아 오셔서 우리의 귀를 열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듣지 못하면 자라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고, 입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자들이여!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 눈을 열어주시고, 그 귀를 열어주시고, 그 혀를 풀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어질 때 우리는 볼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늘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진정 영적 귀가 열려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영적 귀가 열려질 때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하늘을 이땅에 심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만 영적 귀가 열려질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귀를 귀울여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현재 우리의 귀가 세상쪽인지, 말씀쪽인지. 어느쪽으로 더 기울여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름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소리는 언제나 우리의 속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 소리를 듣고 우리가 전하게 되면 역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파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이루는 일이지만 세상의 말은 천국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하늘을 이땅에 심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불러 주셨는데 우리는 어디에 쓰여지고 있습니까? 천국을 만드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천국을 파괴하는 사람들입니까? 천국을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남을 칭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남을 헐뜻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 헐뜻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남을 칭찬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듣는데로 말하고 듣는데로 생각하고 듣는데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듣는가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소리를 들었을 때, 온 인류에게 불행의 씨앗인 죄를 남겨주었습니다. 상황은 처음 이래로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난 한주간동안 여러분 모임속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가만히 생가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듣고 마음속에 새겨두었다가 내뱉은 말들은 어떤 말들이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귀를 귀울이면 사탄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 씀에 귀를 귀울이면 하나님의 귀한 신부름꾼이 되어집니다.
     
     
     
      구약시대 때 모세와 아론을 잘 압니다. 모세가 아론보다 위대했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모세보다 아론이 말을 훨씬 더 잘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나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아론과 함께 동행하면서 다 말하게 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아론보다 더 위대했던 것은 모세는 하나님의 말 씀에 귀를 귀울였던 사람입니다. 반면에 아론은 세상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고 의로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아론은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불평불만의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생명없는 우상을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아론입니다. 하나님이 아론을 사랑하 지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모세 이상으로 사랑하시고 모세 이상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세상에 귀를 귀울였다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이러한 경우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교회안에서도 불평불만의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해 나갈 때 백성들의 요구가 많았습니다. 불평불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모세가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였다는 것입니 다. 모세도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내려쳤습니다. 모세의 실수입니다. 목회의 길도 마찬가 지입니다.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불평과 불만이 많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소리에 반드시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는 교인들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것이 목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세가 했던 것 처럼 더욱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 곳곳은 목회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듣고 쫒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힘과 확신을 얻어 그들을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말씀을 듣는 훈련이 필요로 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듣고 이를 갈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았습니 다.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에 제자들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돌을 들고 쫒아가서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들음의 차이입니다. 내가 기준이 되어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나는 달란트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음의 차이었습니 다. 한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 기준에서 들었습니다. 그 결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받고 맙니다. 그러나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풍요로운 은혜를 체험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나가면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깊이가 있고 넓이가 있는 생명의 말씀이 택함받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귀를 기울이느냐는 정말 중요합니다. 무엇을 듣느냐는 바로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느냐, 세속적인 사람이 되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아니면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듣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어떤 것도 극복해 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모세는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요구사항이 많아지면 많아질 때 마다 그는 더욱더 기도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가 찾기만 하면, 귀만 귀울이면 성경을 통해서 언제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한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세상 적으로 너무 많이 기울여져 있는 우리의 귀를 말씀쪽으로 기울이는 기회가 되길 바 랍니다. 그리하여 말씀으로 충만하여 정말 하늘을 이땅에 심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 가 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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