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신6:4-9)
  • 조회 수: 168, 2013.01.27 20:17:24
  • "선생님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하고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서기 70년, 로마의 성난 군대가 그동안 포위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을 향해 물밀듯이 몰려 들어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 요아난 벤 자카이라는 존경받는 위대한 랍비이자 스승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몰래 성을 빠져나가 로마 장군을 만나서

    "마을의 작은 집 한채가 있는데 그 집만 파괴하지 않겠다면 성문을 열어 주겠습니다"

    "무슨 집이요?"

    "예, 그 집은 바로 도서관입니다."

    장군은 동의를 했고 요하난은 돌아가 성문을 열었고 백성들 사이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으나 백성을 향해 요하난은

    "울지 마십시오. 로마 군대는 모든 것을 다 약탈해도 저 오두막의 책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소, 우리 자녀들은 오두막의 책을 통해 하나님을 배워 반드시 우리의 조국을 회복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한 사회를 지키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이 바로 서고 존경받을 만한 스승이 있는 사회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푸른교회는 스승의 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스승의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나 어버이 주일 같이 우리 한국 교회가 공식적으로 지키는 절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푸른교회는 특별히 교육을 중히 여기고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하는 교회'를 설립 목적으로 정한 교회인 만큼 푸른교회는 오늘, 오월 셋째 주일을 스승의 주일로 지키고 이를 통해서 참된 기독교 교육의 의지를 다지고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를 기리고자 합니다. 우리 푸른 교회와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올바른 기독교 교육뿐임을 기억하며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사명과 역할에 푸른교회 교육부서의 교장인 제가 모든 성도님들을 대표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부모의 교육적 역할

    "들어라!"라는 명령으로 시작되는 이 본문은 하나님의 준엄한 가르침의 명령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교육의 대헌장인 '쉐마'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교육적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래서 7절을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뭐라고 그럽니까?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강론하라고 그러고 있습니다. 이 가르치고 강론하는 일을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셨는데 "네 자녀에게"라고 했으니 먼저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부모가 먼저 자녀를 책임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국가와 사회의 인물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부모를 '호림', 하나님의 말씀을 '토라'라고 하는데 호림과 토라는 둘 다 교육을 뜻하는 '야라'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부모나 교육은 그 어원이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란 히브리어로 보면 "가르치는 자, 교훈하는 자, 어떤 모양으로 만드는 자"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가정은 단순히 집만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가져서 가정일 뿐 아니라 회당이요, 학교요, 배움의 터전이었습니다. 집에서 글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배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 일을 부모가 감당을 하고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훌륭한 부모란 바로 훌륭한 교사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솔선수범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술 담배를 하면서 자녀들에게 금주, 금연하라는 교육이 얼마나 허약한 가르침인지 알고 계십니까? 자신들은 비윤리적으로 살면서 올바르고 정직하라고 가르치는 가르침이 얼마나 자녀들의 경멸거리가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자신들은 주일에 아무거나 사고 팔고 사먹고 즐기고 놀면서 자녀더러 주일엔 꼭 교회 가라고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부 자기 자녀들을 부모가 철저하게 신앙으로 책임을 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전도'라는 말이 없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는 내가 책임을 지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차적인 부모의 책임이며 사명입니다. 낳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학교 보내고, 과외 시키는 것이 부모의 일차적인 책임이라고 믿는 우리의 풍토와는 너무나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자녀들은 부모를 부모 이전에 먼저 스승으로 대합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만이 전부가 아니라 나를 사람되도록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도록 가르쳐 주신 스승으로 존경하고 받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버지를 소개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의 스승이셨던 나의 아버지는...."

    만약에 그냥 "나의 아버지는...."이라고 말하면 유대 사회에서는 버릇없는 불학무식한 자로 낙인찍힙니다. 그 만큼 부모의 교육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존경

    이스라엘은 작은 학교인 회당을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열 가정만 되면 회당을 만듭니다. 그리고 큰 회당이나 작은 회당이나 회당의 교사는 가장 똑똑하고 진실하고 유능한 사람을 택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과거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분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는 밝고 건강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돈으로 모든 평가하는 천박한 사회가 되더니 선생님의 권위조차도 그런 식으로 평가하고 신랑감 후보로 몇위인가를 따지고 그러다가 선생님을 월급장이로 이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교육이 낙후되고 훌륭한 선생님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교사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합니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랍비(선생님)가 온다고 하면 어머니들이 전부 자기 아기를 다 들쳐업고 나옵니다. 우리 아이를 축복해 달라고 말입니다. 남자들은 모자를 벗어 랍비에게 경의를 표하고 심지어 아버지와 랍비가 물에 빠지면 반드시 랍비를 먼저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선생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선생님을 불신하고 심지어 선생님이 야단치면 112에 신고하는 한심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사회가, 특히 학부모인 우리가 우리 자녀들의 교육 현장을 황폐화시키고 스승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 앞에서 지도자인 선생님의 흉을 아무 스스럼없이 내뱉습니다. 텔레비젼에도 선생님의 부끄러운 모습이 아무런 여과 없이 보도됩니다. 이제 교육 현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떤 나라에 임금님이 가장 위대한 사람을 찾아서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추천되었는데 재력가, 의사, 법률가, 학자 등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틈에 아주 늙고 초라한 백발의 할머니가 끼어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 잘못 온 것이 아닌가?"

    그러자 신하들이

    "마마, 여기 있는 이 훌륭한 재력가, 의사, 법률가, 학자들은 모두 바로 이 분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입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임금님은 이 할머니에게 자신의 왕관을 벗어 씌워 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 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푸른 교회는 교사 선생님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교육이 세상을 살린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교육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교육입니다. 4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참 마음으로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유대인들의 교육의 근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아무리 크게 성공했다해도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 신앙을 잃어버린 사람은 배신자로 간주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성공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의 당당함이 결국 이스라엘을 1등 국가로 만드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8절과 9절을 보면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문설주와 문에 붙이는 율법 상자를 '메주자'라고 하는데 유대인의 집들에는 말할 것도 없고 히브리 대학의 강의실에는 모든 강의실에 이 메주자가 붙어 있습니다. 히브리 대학은 세계 10위권에 드는 매우 오래되고 유서 깊은 대학입니다. 이 대학에서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습니다. 그런 대학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을 공경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배운 사람들이 바로 서면 나라가 삽니다. 그러므로 바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사명은 너무나도 큰 것입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것을 네 손목에 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테플린'이라고 하는데 이 것을 통해 유대인들은 나의 손과 발과 입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겠다는 결단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 중에 어느 나이 어린 병사가 부상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군목이 곁에서 임종을 지키고 있는데 끊어져 가는 목소리로

    "목사님, 어머니와 절 가르쳐 주신 고향마을 주일학교 선생님께 어릴 적부터 가르치신 대로 진실한 크리스챤으로 살다 죽었다고 전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군목은 그 어린 병사의 유언대로 이 사실을 전했는데 얼마 후 그 병사의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지난달 수십 년이나 해오던 주일학교 교사직을 사표 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사로서 하는 일이 너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의 편지를 받고 그 동안의 제가 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다시 교사의 일을 계속하려 합니다.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된 교사가 되려고 합니다."

    푸른 교회 선생님 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일이 하도 작아 큰 열매가 안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이 사역이 교회를 교회되게하고, 교회로 하여금 참된 생명체가 되게하는 가장 소중한 사역임을 깨닫고 여러분의 생명을 바쳐 헌신하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21세기에 주인공인 어린 학생들을 훌륭하게 길러 이 나라와 교계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인물을 배출하는 교회되기를 다시 한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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