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아, 들으라(신 6:1-9)
  • 조회 수: 54, 2013.01.27 20:12:48
  • 우리는 5월을 맞으면서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였습니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사람을 살해하는 경험을 얻고 싶어서' 65세의 할머니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이 학생은 할아버지도 교사였고, 아버지는 현직 교사로 교육자의 집안에서 자랐고, 대학진학반인 특진반에서도 우등생으로 1, 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는데 우리는 한층 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한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세상교육은 참인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미쳐버린 시대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고, 이런 세상 속에 우리 자녀들을 맡기고 있다는데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귀신에게 붙잡혀 혼돈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예수 믿는 성도로서 어떻게 자녀를 키울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자녀를 키우는 한사람으로서 세상이 얼마나 바뀌어졌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어른에 대한 공경심은 그래도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른도 몰라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월간 '아버지와 가정'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버지들의 82.9%가 권위와 위엄이 있는 아버지보다는 친구 같은 아버지를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좋은 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중에 76.6%의 아버지들은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나 39.7%의 아이들만 자기 아버지가 권위와 위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7%의 아이들은 집에 무서운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무서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그 생각자체가 더 무서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의 권위가 무너져버린 가정에서 참다운 자녀를 생산해 낼 수 없습니다. 부모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자식은 어떤 공동체에 소속돼도 상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패륜아가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릅니다.
    옛날에 한 아버지가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자식을 데리고 조상의 산소로 갔습니다.
    조상의 산소 앞에 선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를 백배사죄하고 가지고 간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종아리를 칠 때마다 아들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마침내 아들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그 아들이 이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도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밤낮 사고를 저질러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타이르고, 협박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매섭게 생긴 회초리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놓고 아들이 보는데서 자신의 바지를 걷어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고 하면서 자신의 다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놀란 아들은 뛰쳐나가면서 '엄마, 엄마 아빠가 미쳤나봐. 빨리 와봐'라고 소리치더랍니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부모된 우리는 많이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요즘은 자식이 집안의 왕이 되어버렸습니다. 핵가족이 되다보니 아마 이런 현상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덮어놓고 맹목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을 망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매를 아낄수록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것은 불효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 절망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서는 자녀에게 매를 아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24절에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초달'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말합니다.
    잠언 23장 13절에서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29장 17절에서는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22장 15절에서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미련한 것을 내쫓지 못하는 부모는 결국 그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날에 몇 가지 물건을 살 일이 있어서 까르푸에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날이라서 그런지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온통 아이들에게 커다란 로봇이나 장난감을 사주는데 경쟁이 붙은 것 같았습니다. 매스컴을 보면 20~30만원에서 몇 백 만원이나 가는 장난감을 덥석덥석 사주는 부모들도 있다고 그럽니다. 이런 선물을 사주고 아마 이날 부모로서 할 일을 다한 것처럼 뿌듯한 마음을 가진 부모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녀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이 세태가 두렵기만 합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습니다만 오늘도 함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함께 은혜 받고 자녀를 위해 울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1. 하나님 경외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2절에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세상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기능인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미 교육현장에서는 인간의 기본 윤리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고품질의 지식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진 냉혈동물화 되어가고 있다는데 깊은 우려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했습니다. 선민이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어떤 교육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철학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웅변가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사람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습니다. 성도의 성도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여길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도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평생토록 해야 할 일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본문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마음'은 사랑과 정서의 기관인데 이 곳은 하나님을 모시는 좌소입니다. 이 마음은 인격의 지성소입니다. 인간의 내적 본질을 의미합니다.
    '성품'은 영혼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인데 우리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힘'은 체력과 지력, 권력 등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능력을 의미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을 쏟아놓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부모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자식과 손자들까지 평생토록 하나님만 사랑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요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조건 학교 점수가 좋아야 하고, 돈만 벌 수 있는 것이라면 그쪽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며 돈버는 기계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연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수많은 세속문화와 세속적인 예술로 우리들의 아이들을 죄악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를 맞아 전인격을 동원하여 하나님만 사랑토록 부모의 관심과 기도와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2. 말씀교육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6절부터 9절을 보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의 기분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감정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사랑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들으라', '새기라', 가르치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녀를 맡길 때 제일 안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 있어서 최상의 안내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걷도록 길을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저자는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127절)라고 하였고, 131절에서는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게 하든지 부모와 한 절씩 읽어나가든지 우리의 힘을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는 능력입니다.
    시편의 한 저자는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시119:101-102)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의 위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맞아서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고, 말씀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자녀라면 아무리 성적이 좋고, 재능이 우수해도 소망이 없습니다.
    요셉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비록 노예로 팔리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어도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결과는 애굽의 총리의 자리를 얻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녀는 축복덩어리입니다. 그 자녀는 어디에 가도 하나님의 축복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를 오직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믿음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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