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추절을 지키라(신명기 16:9-16)
  • 조회 수: 236, 2013.01.28 18:45:59
  • 1.감사의 가치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만큼  처참했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이런 불만의 세월이 오래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오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이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가 그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죽 듣더니 "하루에 일 만번씩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세요. 이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병상에서 매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의 아들이 감 두개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 드세요."하면서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가와가미 기이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내밀어서 "감사합니다."하며 받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의 굳었던 몸이 풀리며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전신의 마비증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나는 하루에 몇 번쯤이나 '감사'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까?  감사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도 그 가운데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사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감사의 문이 얼마나 활짝 열려져 있어서 감사가 마음 속으로 들어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불평의 문이 얼마나 굳게 닫혀 있어서 불평하려고 하는 말을 밖으로 내 보내지 않고 있습니까? 감사의 문을 활짝 열고 불평의 문을 굳게 닫아서 감사할 때 오는 영육 간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시고 강요하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아주 친한 사람을 만났다고 하십시다. 그 사람이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 준다든지 호의를 베풀면 아이들에게 뭐라고 가르칩니까? "고맙다고 해라, 감사하다고 해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의를 받았을 때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당연한 것처럼 받게 되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받았으면 고마움을 알고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고, 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도 있는 사람이라야 사회에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감사하라고 강요를 합니다. 그렇게 가르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하면서 살아야만이 행복한 삶을, 성공적인 인생을 복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 계속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결국 받은 은총도 다 잃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은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일년 내내 감사해야겠지만 특별히 절기를 정해놓고  그 절기가 되면 그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새기면서 깊이 감사하고,  이렇게 일 년 내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우리도 3·1절이라든지, 광복절, 제헌절, 식목일, 6·25동란 기념일이라든지 절기와 날짜를 정해 놓고 그 날의 그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늘 노력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배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않도록  절기를 정해 주시고 그 절기날에는 이렇게 이렇게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명령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명령인 줄 알고 나도 감사를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받은 축복을 지켜 나갈 뿐만 아니라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할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식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현재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장막절은 광야생활 중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 뿐만 아니라 장차 하늘 장막에서 누리게 될 미래의 은총을 미리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와같이 과거에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 현재에 주시는 이 땅의 물질의 은혜, 미래에 주실 하늘나라의 은총에 대해서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 3대 절기를 지키지 아니하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할 것을 감사치 않으면 그 생명이 끝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은총 속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만 가정에서 훌륭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부부지간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모든 범죄의 배후에는 불평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있는 삶에는 범죄가 줄어듭니다.

    아담과 하와의 예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 하나만 빼고 에덴 동산의 모든 실과를 다 먹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탄이 와서 모든 것을 다 먹도록 허락하셨느냐고 물으면서 한 가지 먹지 못하도록 한 선악과에 대한 불평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지금까지 모든 것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사라지고 한 가지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범죄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죄의 배후에는 이런 불평이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은데서 범죄가 시작되어집니다. 크리소스 톰이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는 오직 한 가지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면 불평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면 범죄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를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강요하시고 감사하지 않는 자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릴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끊어버리기 전에 스스로 끊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해서 예배드리고, 이 땅에서 주시는 모든 물질도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건강주시고, 삶의 환경주시고, 달란트를 주셔서 얻은 것이기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라는 감사가 늘 넘치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예배드리고, 신앙 안에서 충성하려고 애를 써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가 있지만 내가 구원받은 것도 모르고 내게 주신 모든 은총도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면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끊어버리기 전에 스스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끊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고 그 사랑을 늘 받으며 살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시고 감사할 것을 강요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깊이 다시 한번 깨달아서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맥추절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중요한 감사를 가르치시기 위하여서 절기를 지키라고 했는데 특별히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다음 주일을 우리는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맥추절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맥추절은 맥추절 말고도 세 가지의 다른 이름이 있는데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고 난 후 처음으로 추수하여서 첫 추수한 곡식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때 추수한 곡식이 보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보리를 드렸는데 그래서 맥추절이라고 합니다. 언제 드렸는가 하면 유월절을 지키고 난 후 7주가 지난 후에 드리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7주 다음 날 드리기 때문에, 즉 49일 다음 날 50일 째날에 드리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맥추절, 초실절, 칠칠절, 오순절 등 네 가지의 이름이 있지만  같은 절기의 이름입니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우로지택을 통하여서 보리 농사를 잘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하여서 그 해 지은 농사의 첫 곡식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맥추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이 구원에 대한 감사, 영적인 감사라고 하면, 맥추절은 구원받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하여 얻은  물질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 절기입니다. 유월절이 하늘에서 내려 온 은혜에 대한 감사라면, 맥추절은 땅에서 얻은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유월절은 양을 먹고 무교병을 먹는 절기인데, 맥추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에서 주신 축복, 물질의 축복이 감사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 것처럼 이 땅에서 주신 이 땅에서의 건강, 조국, 가정, 자녀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여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맥추감사절의 동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과 맥추절과 장막절을 지키는 근본적인 동기가 어디에 있는가하면 오늘 본문 12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너는 애굽 땅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오늘 주신 바 은혜를 비교해 보면서 이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때를 기억해 보면 그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한 백성입니다. 그때는 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비교해 보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종살이하는 종에게 무슨 소유가 있었겠습니까? 심지어는 자식을 낳아도 내 자식이 될 수가 없어서 나일강에 버리라면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식을 악어의 밥이 되도록 강에 버리는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마음껏 자식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내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가축을 키워도 내 것이 아니라 바로의 가축이었습니다.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고, 분배받은 땅에서 농사하여서 내 것이라고 거두어서 그것을 손에 쥐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감격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이런 감격을 하나님 앞에 감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사의 동기는  애굽 땅에서 종되었을 그 때와 오늘 받은 이 축복을 비교해 보면서 드리라고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을 20년 전, 30년 전, 40년 전, 50년 전과 비교해서 살펴보세요. 그 때 우리나라의 사정과 우리 개인의 삶을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오늘의 삶이 어렵다, 힘들다고 하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40년 전, 50년 전만 해도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까? 구호물자에 옷을 맞추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 옷을 입고 있습니까?  30년 전, 40년 전 그 때는 보릿고개라는 춘궁기가 있었습니다. 밥만 먹여주면 남의 집에서 일을 해 주는 시대였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월남전에 참전을 했습니다. 위생상태가 좋지 못해서 장티푸스가 돌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구멍난 양말을 깁는 것이 어머니들의 일 중 하나였습니다.

    추석이나 설이 되어야 겨우 자녀들에게 옷 한벌, 신 한켤레를 사줄 수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때의 자전거는 지금의 자동차 보다 더 귀했습니다. 이웃집에서 흑백 텔레비젼을 사면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마치 극장가는 것처럼 그 집으로 몰려가던 때가 어제같지 않습니까? 20년 전만해도 돈을 벌기 위해서 중동 땅, 그 열사의 땅으로 생명을 걸고 나갔습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통일벼와 정부미를 먹었습니다. 그 때는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아이들의 체격이 왜소했습니다. 지금 아이들을 보세요. 얼마나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지. 못먹는 것과 잘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20년 전만 해도 중학교에 진학 못하는 아이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런 비교들을 어찌 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지금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여서, 병들어서, 여러가지 어려운 삶 때문에 힘든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20년 전, 30년 전, 40년 전, 50년 전과 비교해 보면, 계산해 보면, 헤아려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너무 많이 받고 있습니다.

    과거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때를 기준으로 하여서 지금 너의 삶을 한 번 살펴보고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찾아보면서 감사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20년, 30년, 40년, 50년 전의 과거 모습을 살펴보면서 감사할 것을 찾아가면서 뜨겁게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2)받은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드리라고 했습니다.  받은 복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한 번 평가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한 번 헤아려 보세요. 계산해 보세요.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 489장을 보세요.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 보아라 두려움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세상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 하리니 염려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한 번 헤아려 보십시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는가를 한 번 살펴 보십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했는데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한번 헤아려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안되는 어려운 산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번 달에 받은 월급이 얼마인지, 지출은 얼마인지, 가지고 있는 재산은 얼마인지 이런 것은 잘 계산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은총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계산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것을 받아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을 계산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 계산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내게 주신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 보세요.  우리 몸 속에 있는 핏줄이 실핏줄까지 다 계산하면 12만 ㎞가 넘습니다. 지구를 세바퀴 돌 수 있는 길이입니다. 그 가운데서 머리에 있는 핏줄 하나만 터져도 건강과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긴 핏줄을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강우량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뭄때문에 산야의 수목들이 말라가고, 채소의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강물이 마르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가뭄이 한달만 계속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농작물이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해도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은총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농사 뿐만 아니라 직장,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소유하는 것인데 이런 것을 한 번 헤아려 보세요. 받은 것만이라도 헤아려 보고 감사를 드립시다.

    많이 받았으면 많이 감사하고, 적게 받았으면 적은대로 힘을 다해서, 힘대로 감사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애굽의 종살이 하던 그때와 오늘의 삶을 비교해서 감사하고,  오늘까지 내게 내려주신 은총을 헤아려 보면서, 계산해 보면서 그 은총에 넘치는 감사를 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여서 과거와 비교해서 감사하고, 지금 누리고있는 은총을 헤아려 보면서, 계산해 보면서 감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할 수 있는  감사의 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3)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할 때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심령을 원하십니다. 기계적으로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봉사든, 예물이든, 믿음이든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출애굽기 36장에 성막을 지을 때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을 가지고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많이 가지고 와서 모세가 이제 그만 가지고 오라고 만류할만큼 모든 백성들이 기쁨으로 예물을 가지고 와서 성막을 지었고 그 성막 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릴 때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일천 마리의 제물을 드렸을 때에 하나님은 자원마음과 정성을 기뻐하시고 부귀와 장수와 영화를 다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천둥번개를 치면서 너희가 회개하고 믿지 않으면 벼락으로 너희들을 다 멸하겠다고 한 마디만 하시면 어느 누가 벌벌 떨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강요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부수고 들어 오시지 않습니다. 문을 열 때까지 두드리고 계십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로 감사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드리는 예물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물을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주하셨습니다. 그러나 두 렙돈의 작은 예물이지만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린 가난한 여인의 예물을 받으시고 축복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서,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영락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어디에서 감사해야 합니까?

    그러면 감사를 어디에서 할 것입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역대하 7장 12절 이하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봉헌할 때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하나님의 성전에 있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바로 성전 아닙니까? 교회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 제단에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와 감사의 예물은 반드시 내가 섬기는 제단에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자기 마음대로 분배하거나, 다른 곳에 드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내가 제단 쌓는 곳에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는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해서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을 열납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의 오순절, 신약의 맥추절에는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시니까 120명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구원받은 영혼들이 3천 명, 오천 명으로 늘어나서 영적으로 추수가 되어져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맥추절이 되면 물질과, 시간과 몸을 드려 감사하고 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여서 영적인 예물로 드리기 위해 전도하는 절기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맥추감사절은 받은 바 물질을 힘을 다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뿐 만 아니라 영적인 예물, 구원된 영혼의 알곡을 하나님께 드려야 영육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맥추감사절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이 한 주간 동안은 특히 받은 바 물질의 은혜, 현세적인 축복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면서 받은대로 힘을 다 하여서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준비할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을 주님 앞에 드리기 위하여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여서 진정한 맥추감사절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제학자 존 카오스키는 '신생국가의 경제성장'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경제생활이 과거에 비하면 괄목할만큼 나아져도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데 생활수준이 아무리 나아져도 타인과 비교하고 있는 한 언제나 빈곤은 메워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전보다 향상된 생활로 절대빈곤은 없어졌다 할지라도 남보다 못한 상대빈곤은 언제나 남아있으므로 불만은 없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와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교하려면 과거와 비교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와 비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0년, 30년, 40년, 50년 전과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전반기에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만큼 붙들어 주신 은헤가 아닙니까? 그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헤아려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영육간의 축복을 헤아려보고 게산해 보아서 힘을 다 하여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영육 간의 축복을 늘 받아 누리시는  영락의 온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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