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잔치 (신16:9-12)
  • 조회 수: 131, 2013.01.28 18:42:29
  •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칠칠절이라고 했습니다. 맥추감사절은 일 년에 벼농사와 보리농사, 농사를 두번 짓지 않습니까? 그래서 벼는 가을에 거두고 보리는 초여름에 거두는데 이 보리 농사를 짓고 일 년에 반을 보내고 나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절기가 바로 맥추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 찬송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맥추감사절은 사람의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잔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준비된 잔치가 하나님의 잔치이고 맥추감사절입니다.

    신16:10“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누가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치는 하나님의 잔치입니다.

    돌잔치나 회갑잔치를 가 보셨습니까? 요즘은 부페로 많이 하니까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한식, 양식, 중식, 후식까지 많이 먹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음식은 누가 준비합니까? 그 음식준비는 초청 받은 사람들이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주인이, 잔치에 초청하는 주인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잔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많이 준비하셨으니 초청된 우리들은 먹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절기에, 하나님의 잔치에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천지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언제 만드셨습니까?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 까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있었는데 사람을 제일 마지막 날에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주시면서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천지창조 때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세계를 맡아서 다스리고 사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시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수많은 무기와 군대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로 마지막 날에는 소리를 지르면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니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서 그 땅을 차지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을 받은 것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후 그때서야 필요한 것을 아시고 준비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기도하기 전에 나의 필요를 아시고 그리고 기도할 때에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것을 믿고 감사하는 성도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창2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들을 바쳤습니다.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쳤더니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하시는 말씀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창22: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눈을 들어서 보라고도, 수양이 있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서 준비된 예물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주신 자식을 가져가실 분도 아니시며 설령 가져가시더라도 또 다른 것으로 주실런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주위를 둘러 보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 스스로 돌아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창 22:14에“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믿고 일생동안 살아서 하나님은 그를 친구라 불렀고,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이 높여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준비된 것을 믿고 감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욥1장을 보십시오. 동방의 의인, 욥이 큰 고난을 당합니다.

    자녀들이 모두 죽고 재산을 다 빼앗기고 자신은 병이 듭니다. 그때 욥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하지 않았습니다.

    욥 1:20-21“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 23: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그래서 욥은 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그 놀라운 축복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앞에 나가 경배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배의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잔치에는 내가 예물을 가져오지만 그러나 그 잔치 속에는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잔치의 비밀이 있고 놀라운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믿고 즐거워 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마22장에 왕의 혼인잔치의 비유가 나옵니다.

    임금님은 아들의 혼인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얼마나 잘 차렸겠습니까? 성경에 보니 소 뿐만 아니라 온갖 짐승을 다 잡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님의 잔치가 있으니 다 와서 먹고 즐거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찮아 하고 불평하고 바쁘다고, 약속이 있다고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임금님의 잔치에 가게 되면 예물을 가져가게 되었으니 그 예물 때문에 부담스러워 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임금님 잔치에 오라고 하는 사람들을 능욕하고 죽이기 까지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애쓴 임금님으로서는 한편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금님이 초청하는데 오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나는 당신을 임금을 여기지 않는다, 나는 당신 없이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에덴동산에 아담이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다고 생각한 마음과 같습니다. 오늘 초청에 대한 응답은‘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깁니다. 나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할 때에 누구를 부르겠습니까? 지나가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겠습니까? 임금이 나를 불렀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나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부른 것입니다.

    임금은 내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의 것을 빼앗으려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내가 너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내 아들이다, 딸이다, 너는 천국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그 증거가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를 하나님의 잔치에 부르시고 예배케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임금의 잔치에 가야 할 사람들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향해서는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5장에 팔 복을 말씀했습니다.

    그 복은 천국을 준다, 위로를 받을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준다, 배부를 것이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을 약속하시면서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가난이 무엇입니까? 동냥하는 거지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무엇 때문에 애통합니까? 죄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떼어놓는 것,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할까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온유라는 말은 잘 길들여 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라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믿음이 길 들여진 큰 믿음입니다. 바로 그러한 믿음을 귀하게 여기셔서 땅을 기업으로 준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복이 있나니’

    주안에서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팔 복의 말씀을 마치신 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환하게 비춥니다. 즉 세상에서 인정 받고 존경 받고 칭찬받고 사랑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짠 맛을 냅니다. 여러분 곰탕을 먹든지, 설렁탕을 먹을 때 맛이 없으면 소금을 넣어 먹습니다. 그러면 그 국물을 먹으면서 소금맛 좋다고 합니까? 아닙니다. 곰탕이나 설렁탕이 맛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가난해 지고 남을 위해 살아가면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알아 주셔서 우리를 세상에서 높게 높게 들어 빛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난해져라, 애통하라, 온유해라, 의에 주리고 목마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실 때에‘내가 누구 관대 이스라엘 에게로 가며 누구 관대 바로에게로 가리이까’

    그러나 자격이 없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니 그 부르심 앞에 겸손하게 응답했을 때에 평생 목자로 늙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를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니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고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목동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에 믿음으로 나아가고 감사함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골리앗 앞에서 자신이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 들어 위대한 다윗 임금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바다의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났을 때 죄인이라고 했지만 주님이 부르셨을 때에 겸손하게 순종했고 실수하여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지만 그래도 주님 앞에 나와 회개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베드로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가장 아름다운 성전의 이름을 베드로 성전이라고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그의 이름이 귀하게 된 이유는 주님께서 부르실 때에 응답 잘 하는 성도에게 주신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맥추 감사주일을 지키는 여러분들이야 말로 베드로요, 모세요, 다윗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기쁨으로 참여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임금의 잔치에 오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임금은 화가 나서 군대에게 명하여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자를 죽이고 그 동네를 불사르도록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멸망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삼상25장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이름의 뜻은‘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왜 이 사람이 어리석은 자입니까?

    이 사람은 큰 부자였는데 도적들이 나발의 양들을 자꾸 도적 질을 하여 그의 재산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쫓겨 도망다니는 다윗의 무리들이 그들을 막아주어 나발은 그의 사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발은 다윗의 무리들에게 당연히 고마운 마음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먹을 것이 없을 때 나발에게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니 나발은 다윗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찾아온 사람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왕과 같이 먹고 지냈습니다. 이에 다윗은 칼을 차고 400여명의 군사들과 나발에게로 달려가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너무나 놀래서 남편에게 말을 해도 남편은 술에 취해서 듣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얘기를 하니 나발은 놀란 나머지 그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 버렸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열흘후에 하나님이 치시매 죽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해야 할때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이 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국민일보에 보니 어느 할머니 한분이 일생동안 벌은 돈 10억을 사당동의 총회 신학대학에 기증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할머니는 기증을 한 후 첫마디가 “마음이 홀가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기증을 했는데 왜 마음이 홀가분 한지 자세히 읽어보니 자신이 80년대 초반에 20억을 어느 은행에 넣어두고 그 이자만으로 살아왔는데 어느날 10년 후에 그 돈이 다 없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그 은행직원, 그렇게 잘 알고 믿었던 직원이 그 돈을 다 써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법정투쟁까지 벌였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아무 결론을 얻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그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돈 벌면 좋은 일 해야지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게 되었고 돈이 있을 때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은 재산을 신학교에 바치면서 교육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하면서 이제는 홀가분 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내가 오늘 이날까지 얻은 것이 내가 잘 나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은혜 주셔야 우리는 이 은혜속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부르심 앞에 감사함으로 나가서 영광돌리는 성도, 하나님은 그런 성도를 높이십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러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임금님은 길거리에 나가서 손님을 청해오라고 하여 잔치를 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잔치를 먹을 때에 11절에 임금의 눈에 띤 한 사람에게 임금은 말했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이곳에 들어 왔느냐”

    임금님은 초청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임금님은 사람을 초청할 때 꼭 예복을 보내서 그 예복을 입고 오도록 했는데 그는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더 좋은 옷, 세상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옷을 입고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왜 임금이 보낸 예복을 입지 않았는지 그것을 묻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롬13:14에“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름의 옷을 입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 예복을 입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천국에 가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임금은 그것을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내쫓아 버렸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면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하늘나라에 갈 것이며 이 땅에서도 그 옷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은혜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라고 생각할 때‘그래 수억 원의 헌금을 하는 사람이겠지, 공부 많이 한 사람, 대통령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실 거야’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을 제일 사랑하시고 높이시고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가지 않고 천국에 가고, 예수 믿으면 성령님을 모시고 살게 됩니다. 마술사 시몬은 성령을 사고 싶어서 많은 돈을 가져 왔지만 사지 못했습니다.

    돈 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는 것, 예수를 믿는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복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주신 예복,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옷, 예수를 믿어 얻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고, 즐겁게 여기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주앞에 나올 때 그냥 나오지 않고 예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예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14장 마지막절에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봉사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덕을 쌓고, 의롭게 살라 말씀하지만 그 모든 봉사와 헌신과 수고와 그리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일까지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는 것입니다.

    수억의 헌금을 바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다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은 것이라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바칠 때에, 예수님을 주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 성도에게 하늘의 복을 충만히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 16:10“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헤아려서, 정확하게 헤아려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신 16:11“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온 가족이 드리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레위인, 자신의 직업과 수입이 없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 했습니다. 또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사랑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잔치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주신 은혜에 따라 예복을 입고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릴 때에 하나님은 그러한 성도에게 은혜주시고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의」라는 소설책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마르셀러스’ 라고 하는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이 사람은 황제의 경호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경호원일을 하면서 마음속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의 일은 예수 믿는 사람을 모두 붙잡아 죽이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아 죽이는 자는 승리자이고, 또 붙잡혀서 죽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실패자인 것 같은데 얼굴 모양을 보면 다르게 보였습니다.

    죽는 사람의 얼굴은 훤하고 죽이는 사람의 얼굴은 인상이 찌푸려져 있었습니다. 로마황제의 얼굴을 보면 왜 그렇게 편안한 기색이 없는지 그는 마음에 의심을 가졌습니다.

    알고보니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어 그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교회에 들어와 보니 카타콤에서 몇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찬양을 주도 하는 사람은 수금을 키며 앉은뱅이 여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얼굴이 환하고 기뻐하면서 찬양하는 모습에 모든 성도들도 기뻐하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마르셀러스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의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기적을 일으키신다면 마땅히 저 여인의 병을 고쳐 주셔야 할 것 아닌가’그 여인은 15살 때 소아마미가 되어 그의 병이 더 깊어져 많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 지금도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왜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이 하나님을 그렇게 찬양하는데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그녀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나님이 무슨 좋으신 분입니까?’

    그랬더니 그 여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선생님 만약에 제가 병이 나아서 건강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산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가 어떠함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체가 성공이고 기적이며 이 자체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의 황제도, 건강한 사람도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이 아픔을 통해 주님을 더 찬양하는 것을 저는 더 기쁘게 여깁니다.”

    얼마나 그녀가 아름답고 귀하게 보이는지 이 말을 들은 마르셀러스의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다 부자일 수 있습니까? 다 좋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습니까? 다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모양과 그 형편에 따라 우리를 복되게 하시고 은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며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해서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 감사함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키시고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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