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과 나오미(룻 1 : 15 - 22)
  • 조회 수: 386, 2013.01.31 21:41:09
  •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자녀된 사람들은 부모님의 은혜를 마음에 깊이 새겨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결혼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또 자녀를 낳지 않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자기 인생의 출발이요 시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부모를 주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버이된 분들은 자녀에 대하여 신앙의 본을 보이고 있으며 자녀 사랑의 방향이 바로 되어 있는가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룻과 나오미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입니다. 한국 가정의 역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긴장과 갈등의 관계로 악순환을 거듭하여 왔습니다. 옛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는 까닭은 자식의 사랑을 독점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젊은 날에 시집살이 때문에 남편과의 사랑이 좌절되었을 때 마음놓고 애정을 쏟아준 대상이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남편을 향한 사랑을 보상하는 내용물이요 모든 고통과 고독을 순환시킬 수 있는 도피구였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새로운 경쟁자로 며느리가 생길 때 내적 투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똑같은 시집살이를 또 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는 시어머니가 수난을 당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옛날과 반대로 노년에 의지할 곳 없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고 심지어 구박을 못이겨 자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룻기에 나타난 룻과 나오미는 고부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룻기는 아름다운 전원의 서사시로 이스라엘의 암흑기인 사사 시대의 말기에 등장한 한 촌부의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전쟁기록이 아닙니다. 룻기는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흔해빠진 정치사도 아닙니다. 룻기는 가정적 아름다운 사랑을 극적으로 묘사한 IS의 아름다운 전원시입니다. 그리고 이 짧은 내용 속에는 교리, 신학, 율법, 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며 고난 속에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고부간의 인정담이 기록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뜨겁게 적셔 줍니다.


    성경에는 여성의 이름으로 된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룻기이고 하나는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는 이스라엘 여자가 이방 남자에게 시집간 이야기이고 룻기는 이방 여자가 이스라엘 남자에게 시집온 이야기입니다. 에스더는 여성의 기지와 용기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낸 이야기이며 룻기는 한 가련한 과부를 희생과 효성으로 공경한 이야기입니다. 에스더는 유대 여성이 이방에 가서 왕후가 되어 왕의 사랑을 받은 이야기이며 룻기는 이방 여성이 유대 남자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죽게 되어 남편 사랑도 받지 못하였고 아무 희망이 없는 미래를 알면서도 시어머니를 따라 나선 이야기입니다. 에스더는 이스라엘 민족주의가 한창일 때, 이방을 증오할 때 기록된 책이며 룻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개방주의와 국제주의가 상승할 때 기록된 책입니다. 룻기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남자와 나오미라고 하는 여자가 결혼하여 잘 살고 있었습니다. 자녀를 낳다 보니 아들만 둘을 낳았습니다. 이 가정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흉년을 만난 베들레헴이었지만 이 가정은 물질이 풍족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남편인 엘리멜렉의 건강이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기관지 천식이었는지, 어쩌면 폐병이었는지 아무튼 공기가 좋은 곳으로 이사가야 할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휴양을 위해서 고향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갈때는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많은 물질을 싣고 많은 돈을 가지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모압에 가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가진 재물도 다 써버린 뒤 알거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엘리멜렉은 결혼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결혼 못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있어서 그 모성애에 발동이 걸리면 아무리 병약한 사람에게도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무튼 총각 때부터 몸이 약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는 이유는 아들을 낳자마자 그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큰 아들의 이름을 말룐, 둘째 아들의 이름을 길룐이라 했는데 말룐이란 뜻은 병자란 뜻이고 길룐이란 뜻은 허약이란 뜻입니다. 세상에 아들을 낳아 놓고 병자, 허약 이렇게 붙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히브리 사람이니까 가능합니다. 히브리 사람은 보는대로 사실화합니다.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둘째 아들을 낳다가 에미는 죽고 태아만 건졌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입니다. 그러니 그 태아가 얼마나 밉겠습니까? 자기 에미를 죽였으니까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붙였는데 그 뜻은 괴로운 자식, 가엾은 자식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의 건강이 나쁘니까 아들들의 이름을 그렇게 짓고 또 바쁜 마음에 서둘러서 아들들을 장가 보냈습니다. 큰 아들은 오르바라고 하는 모압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고 둘째 아들은 룻이라는 모압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습니다. 오르바는 작은 사슴이란 뜻이고 룻이라고 하는 뜻은 선한 벗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죽더니 얼마후 큰 아들, 둘째 아들 다 죽었습니다. 집안에 남자라고는 하나도 없고 과부 셋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집안에 어떤 나쁜 병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의약품이 잘 발달되었다면 살았을 것인데 결국 탸향살이 10년만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두 자부가 시어머니를 따라 나왔지만 두 며느리를 고국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각기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하였습니다.이 때 큰 자부 오르바는 돌아갔지만 둘째 자부 룻은 16절에서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각오가 단단하니까 거지 모습이지만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룻의 형편이 만약 여러분의 형편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세상에 이러한 며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타국이요, 남편도 없고 집도 없는 베들레헴으로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먹을 양식이 없어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워다가 그것으로 양식을 삼았습니다. 그의 효행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효성이 지극한 룻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보아스의 아내가 되게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으며 예수님의 조상 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마 1:5, 예수님의 족보에서 이방 여인이지만 당당히 룻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가련한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신 룻에게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으로 안겨 주셨습니다.


    이제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오미는 불행한 여인으로 보여집니다. 나오미란 이름의 뜻은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나신 곳, 베들레헴,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나오미 가족이 모압으로 간 것은 흉년 때문에 간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베들레헴에서도 부자였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남편이 병약하니 병을 고쳐 보려고 공기좋고 전망좋은 모압으로 갔다고 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을 떠날 때 풍족한 중에 떠났다고 1:21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불행은 베들레헴을 떠난데서 온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내 계산으로 살아갈 때 몰아닥치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에 은혜가 소멸되고 짜증스러운 삶이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보다 인간의 계산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롯과 큰 딸이 근친상간하여 생긴 아들이 모압 족속입니다. 그래도 베들레헴은 은혜의 장소요, 축복이 예정된 동네였습니다. 베들레헴이란 이름의 뜻이 떡집이란 뜻인데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주님을 떠나면 주려 죽습니다. 능력의 주님을 멀리 하면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멸망당하고 맙니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흉년은 곡식의 흉년, 물질의 흉년이 아니라 말씀의 흉년, 은혜의 흉년, 사랑의 흉년이 들때입니다. 인생은 두길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비참한 거지꼴로 10년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동네 사람들이 거지가 되어 돌아온 나오미를 보고 "당신 나오미 아니오? 진짜 나오미 맞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여러분 이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마세요. 기쁨과 즐거움이란 뜻의 나오미는 여기에 없소. 나는 지금 기쁨도 즐거움도 없는 사람이요. 내가 떠날 때는 수많은 물질을 수레에 싣고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갔지만 전능 하나님께서 나를 텅 비게 하셨오. 이제부터 내 이름을 마라라고 불러주시오"라고 했습니다. 마라라고 하는 뜻은 '괴로움, 비참함, 쓰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 내용을 한국식으로 번역을 했는데, 나오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내 이름을 나오미 즉, 기쁠 희자, 순할 순 자 '희순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치시고 괴롭혔으니 이제부터 나를 쓸 苦 자, 순할 順 자, 고순이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편에서 자기 자신을 고순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한 것을 보면 대단한 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왠만한 여자 같으면 자기 처지를 침이 마르도록 변명한다든지, 동네 사람들이 보지 않게 숨어서 들어오든지, 캄캄한 밤중에 올 것인데 과부가 된 며느리를 데리고 대낮에 동네 안으로 들어오면서 "여보시오, 나를 라마로 불러주시오" 하는 당당한 모습을 봅니다. 비극 속에서 자기를 볼 수 있었고 또 성숙한 인격자가 된 나오미를 보게 됩니다. 통이 크고 마음이 넓고 비극 속에서 다져진 인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룻에게 보여주는 시어머니의 배려 또한 놀랄만합니다. 이방 여인 청산 과부를 데리고 와서 믿음의 대를 이어갈 남편을 정해 주는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젊은 룻에게 지시를 합니다. 어떻게 하든 그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 주려고 애쓰는 매력적인 시어머니를 발견합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어려우면 남을 생각지 못합니다. 또 자기 비극을 곁에 있는 사람도 같이 짊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못된 인간들의 마음입니다. 자기가 넉넉하고 행복할때만 남을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입니다.

    17세기 어느 수녀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칭찬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나오미는 자기가 괴로워도 남을 위해 좋은 길을 생각해 줍니다. 룻이 신앙의 사람이요 베들레헴의 부자인 보아스를 만나게 될 때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를 칭찬해 줍니다. 그래서 룻이 보아스에게 마음이 끌리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남을 비방하면 싫어지고 칭찬해 주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온갖 작전을 짜고 지시를 합니다. 목욕을 어떻게 해라, 머리에 기름을 어떻게 발라라, 향수를 쳐라, 또 보릿가리 뒤에 몇시에 숨어 있다가 보아스가 이불 속에 들어가면 그 발치로 들어가라는 등, 작전을 지시합니다.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대로 그대로 했더니 성공했습니다.

    나오미가 어떻게 이런 폭넓은 마음을 가진 인격자가 되었으냐 그것은 그에게 닥친 비극 때문일 것입니다. 나오미가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했다면 이런 인격을 가질 수 있었을까 생각됩니다. 비극을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그런 못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비극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 선택받은 사람은 비극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붙들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바로 이 후자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난을 통하여 그 고난이 영혼의 모든 찌꺼기를 걸러내 주고 세척해 주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 고난이 자기의 인격을 다듬어 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죄를 지었을때도 결코 고난을 주시지 않고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관심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영혼을 눈뜨게 하기 위해서 고난도 주시고 그의 가진 물질도 빼앗곤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때는 곧 은혜의 때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환경과 좌절이 와도 고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사랑으로 승화하는 것입니다. 룻과 나오미 같은 신앙과 인격으로 행복한 가정, 축복의 가정을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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