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의 효심(룻기 1 : 15 - 18)
  • 조회 수: 391, 2013.01.31 21:43:07
  •  16 - 17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미국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께서 조그마한 케잌 하나를 들고 이웃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 "사실은 오늘은 제 아내의 여든 여섯 번째 생일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케잌이지만 축하를 드리고 같이 나누어드리기 위해서 가져왔습니다." 그 케잌을 받아든 이웃집의 가족이 너무 황당하고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할아버지가 5리를 넘게 걸어오셨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가신 다음에 한 시간 후에 또 오셨어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멋쩍은 듯이 "그게 아니고요. 사실은 제 부인의 나이가 여든 다섯입니다. 제 부인이 내 나이가 여든 다섯이라고 꼭 이야기를 하고 오라서 해서 제가 다시 왔습니다."

     누가 나이를 들기를 좋아하겠습니까? 늙기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람이 태어나고 점점 늙어 가는 것은 하나님의 정한 위치인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60대 이상 되신 어르신들, 그때는 연탄불이 어디에 있습니까? 시골에 사신 분들은 솔가지를 꺾어서 콧물 눈물을 닦으면서 밥을 짓고, 세탁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추운 겨울에 꽁꽁 언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찬물에 빨래를 합니다. 손이 얼마나 시럽겠습니까? 그 손을 몇 번이고 호호 불면서 겨드랑이 밑에 손을 몇 번씩 넣었다가 꺼내었다가 하면서 빨래를 했습니다. 수돗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 먼 동구 밖까지 물동이를 이고 눈밭에다 더울 때나 물동이를 이고 가져다가 식구들의 식사를 지어서 이렇게 살았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시골에서 기억이 듭니다만 달이 뜨는 날은 한참 농번기라서 새벽에 달을 보고 들에 나가요. 한참을 일을 하다가 보면 한나절을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고 집에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또 가서 일을 하고 이렇게 길쌈을 매어가면서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요즈음 흔한 승용차, 나들이, 여행, 관광, 텔레비전, 생각도 못하지요. 저녁이면 기름을 아끼려고 식사만 끝나면 그냥 잠을 주무십니다. 이런 한 세상을 다 살아오셨는데 이제 요즈음 세상을 보니 얼마나 살기가 좋습니까? 그러니 빨리 가고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더 건강하고 이 좋은 세상을 더 보고싶어요. 우리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정말 고생하면서 살아오셨는데 효도는 못할망정 불효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못해드릴 망정 마음에 못을 박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만이라도 우리에게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이 주는 말씀인 나오미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은 완전한 부모는 이 땅에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부모는 딱 한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외에는 모든 부모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다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부모에게서 양육을 받고 자라면서도 상처를 입지 않는 자녀가 하나도 없습니다. 특별히 교도소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 물어보십시오. 한결같이 그들은 부모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어요. 부모를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이고싶은 분노를 가지고 있어요. 얼마나 커다란 상처로 부모를 입었으면 그런 마음을 품고 교도소에서 그 소중한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나오는 나오미역시 그들은 훌륭한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앞부분에 보면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내가 나오미였고 말론 기룐이란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살았습니다. 축복받은 땅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태어날 떡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장 복된 그 곳에 살고있는데 그들 가운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은 하나님을 등져서는 안 되는데 결국 먹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향해갔다는 상징입니다. 약속의 유대 땅을 떠나서는 안 되는데 모압 땅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인생의 경제적인 가뭄이 드는 것, 건강의 가뭄이 드는 것, 그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앙의 가뭄이 드는 것, 엘리멜렉이예요. 왜 떠났습니까? 흉년이 들어서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 흉년 속에서도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고 끝내 이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났던 것은 그들의 신앙이 식어졌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를 찾아서 세상을 향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학생의 믿음은 무엇으로 결정할 수 있는고 하니, 공부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청년의 믿음은 무엇으로 결정할 수 있는고 하니, 결혼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중년의 믿음은 무엇으로 결정할 수 있는고 하니, 신앙의 정도를 가는지 안 가는지 그것을 보면 그분의 믿음을 알 수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노년의 믿음은 노욕을 얼마나 부리는지 안 부리는지 그것을 보면 어르신의 믿음을 점검할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엘리멜렉은 결국 하나님을 잘 섬겨서 성지 같은 땅에서 살았지만 결국 흉년을 극복하지를 못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믿음을 져버리고 세상을 향해 가는 사람입니다. 더욱이나 성경에 보면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이방 여인을 데려다가 아내를 삼든지 자부를 삼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철저한 명령이었습니다. 모압과 이스라엘이 멀면 얼마나 멉니까? 걸어서 이민을 갔을 정도로 가까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제문제 때문에 여기까지 왔더라도 자부만큼은 이스라엘 민족 우리 동족을 데려와야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데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그들은 모압의 두 여인을 데려다가 자부까지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엘리멜렉이라는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오" 그런 엘리멜렉이 이제는 나의 왕은 돈이요. 나의 왕은 밥이요. 나의 왕은 세상이요. 그러고 세상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세상의 방법으로 살수밖에 없지를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만에 나오미로 말하면 남편 죽고 두 아들까지 다 죽었어요. 남는 것은 나오미, 두 며느리, 과부 셋만 남았어요. 이 결과에 대해서 나오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룻기 1:13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나오미는 알고 있습니다. 10년만에 남편이 죽었고 두 아들이 죽은 것이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치고 계신다는 것을 나오미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20-21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날 때는 가진 것이 많았고 그 정도이면 충분히 살수가 있어요. 더 잘살아보려고 세상을 향해 갔는데 10년만에 다 잃어버리고 이제는 불행한 인생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라는 뜻은 '기쁘다, 즐겁다, 행복하다,' 그렇게 살아야 될 나오미가 너무너무 불행해져서 고향에 돌아오니까 사람들이 몰라보는 거예요. "당신이 나오미가 아니냐"고 그때 하는 말이 "나를 나오미라고 하지를 말아라. 마라라 불러주시오. 마라라라는 뜻은 쓰다, 슬프다는 뜻이에요.

     결국 나오미 부부는 실패의 상징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실패한 부부들이 참 많아요. 대표적으로 보면 노아입니다. 노아가 실수한 것은 방주를 지을 때입니까? 방주 안에 있을 때 실수했습니까? 아니에요. 홍수 재난이 다 지나가고 포도를 심어서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 풍년이 왔어요. 노아의 마음속에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나도 한잔 마셔보자 좀 취해보면 어떻겠나" 그러고 한 잔을 마신게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길가에 누어있는 수치를 드러냈는데 불행하게 함이 먼저 보았어요. 그러고 뛰어가서 자기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수치스럽게 부끄럽게 누어있다고 화를 내면서 형제들에게 소문을 냈어요. 셈과 야벳은 그 말을 듣고 아버지의 옷을 들고 가서 정면으로 걸어가지를 못하고 뒷걸음을 쳐서 아버지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워주고 방에다 잘 모셔드렸어요. 실수는 누가 했습니까? 아버지가 했습니다. 저주는 누가 받았습니까? 야벳과 가나안이라는 그 후손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거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완전할 수 없고 모든 부모도 완전할 수 없다. 자식 앞에 수치를 드러내고 부끄러운 수치를 드러낼 수가 있다 이겁니다. 아버지가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두 아들이 죽고 재산을 다 탕진하고 그럴 수가 있지를 않습니까? 그럴지라도 부모의 죄는 미워하더라도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미워하지를 말고 수치를 가리워주면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는 교훈입니다. 이게 성경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예를 들면 그렇게 훌륭한 '다윗'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이었지만 자녀들 앞에는 존경받은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가지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아버지 피난 가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다 데려다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후궁을 다 범했습니다. 못된 짓을 했습니다. 왜 압살롬이 그런 짓을 했을까요?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였지만 왕이라는 권세를 가지고 수많은 후궁들과 성적인 문란을 일으키는 것을 압살롬이 보고 그것이 마음의 상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상처였기 때문에 분노를 품고 아버지의 평소에 즐겼던 그 문란한 성적인 생활을 모든 백성 앞에 폭로했던 것입니다. 그 점에는 다윗이 회개를 해야됩니다. 한번 그 실수를 범했으면 다시는 그 실수를 범하지를 말아야 되지만 옛날의 모든 남자들이 거의 그래야 남자다운 줄을 알고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설령 아버지가 그랬을망정 아버지의 수치를 다 드러냈던 압살롬은 천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수치를 다 감싸고 아버지를 존경하며 아버지의 믿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찬양하고 섬겼던 다윗의 그 한 부분이 있어요. 사람이 언제나 완전할 수가 없어요. 솔로몬은 아버지의 믿음을 이어받아서 왕이 되었고 일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의 천천 만만의 가장 존귀한 영광과 축복을 솔로몬이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부모가 훌륭해야만, 부모가 존경스러워야만, 부모가 자식에게 실수 없이 잘 해주어야만, 부모에게 잘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왕이 잘못하고, 부모가 잘못하고, 주의 종이 잘못할지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앞에는 질서를 지킬 것이며 그들의 허물을 덮어주면서 사랑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그에게 복을 내려주신다고 하는 대단히 귀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나오미였는데 룻이라고 하는 좋은 자부를 만나 그의 가정이 다시 회복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대를 이은 복 받은 가문을 룻이라고 하는 이방의 한 여인을 통해서 다 망하고 깨진 그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재하는 것을 믿습니다. '효'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큰 축복인가를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룻은 이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효심이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그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모든 허물을 탓하지를 아니하고 다 덮고 이렇게 패가망신한 것, 나오미가 고백한 "내 탓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오르바는 자기 친정 집으로 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오미의 시어머니를 너무 불쌍히 여기고 차마 불쌍한 시어머니를 두고 돌아갈 수가 없어서 차라리 시어머니가 부자이고 잘 되었더라면 떠날텐데 너무 불쌍해서 떠날 수가 없어서 룻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의 가신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묵는 곳에 나도 묵고 그것이 어떤 고생의 자리라고 할지라도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어머니의 죽어 묻힌 그 곳에 나도 묻히기를 원하나이다 죽은 내 어머니를 버리고 내가 도망을 간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천벌을 내리기를 원하나이다.

     우리는 현대 고부간의 갈등이 일반 상식화된 이 세상에서 룻의 이야기는 얼마나 귀감이 되는지 시어머니가 훌륭해서가 아니고 잘 해주어서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자기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 씨앗을 뿌린 사람이 시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룻은 그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잘 모시겠다고 고백합니다. 이게 효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룻의 지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한번 결혼했으면 끝까지 그 가문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르바는 가버렸지만 룻은 끝까지 남습니다. 요즈음에 현대 여성들 가운데 말짱한 자식 다 놔두고, 엄연히 살아있는 남편을 다 놔두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문란하고 결국은 나중에 그것이 폭로가 될까봐서 깡패를 시켜서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신문에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요즈음 신문에 폭행을 당한 아내에게 두들겨 맞고 사는 남편들이  많아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집에 들어가도 인격적으로 아내와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지를 못해요. 대화를 안 해주니 집으로 못 들어가고 공원 의자에 앉았다가 하루를 보내고 올 데 갈 데 없이 정말 불쌍한 그런 남성들이 얼마나 많다고 그래요. 요즈음은 여권이 얼마나 상실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좋지 않은 점으로 가고있습니다.

     그러나 룻을 보십시오. 이미 남편이 세상을 떠나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내가 이 가문에 결혼을 해왔으면 죽기까지 이 가문을 내가 지켜야 된다고 하는 정말 귀감이 되는 모습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에게 특별히 이런 부분에 있어서 꼭 부모에게 자라는 그 부분만이 아니라  이런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효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이 있기 때문에 가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녀는 매우 근면 성실한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하자마자 하루가 지난 이후에 그는 바구니를 들고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이 여인은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강한 여인입니다. 생활력이 강한 여인입니다. 베들레헴에 오자마자 여인들이 옷을 어떻게 입나, 머리 스타일은 어떻게 하나, 그것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바로 바구니를 들고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는 여인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현대여인들은 죽으라고 열심히 고생을 해서 남편들이 돈을 벌어다가 주면 자기 몸을 치장하는데 돈을 다 쓰지 말고, 오히려 가난한 가문을 부자로 세우고 다 망한 집안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생활력이 강한 여인, 바로 이게 잠언서 31장에 말씀한 현숙한 여인을 말합니다. 여러분,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고 음식을 해드리고 이게 잘해드린 효도가 아닌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도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그 환경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사람, 진실과 성실성이 있는 사람이죠.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신앙의 아름다움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 종교를 바꾸었어요. 나라를 바꾸었어요. 언어를 극복합니다. 나오미가 선교사노릇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룻이 선교사입니다. 이럴 때 나오미같은 믿음 생활을 하신 분은 회개를 하십시오. 부끄러워하십시오. 세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고 복 받은 가문에 태어났으면 성도답게 살아야 되지를 않겠습니까? 어머니를 가만히 지켜보니까 비록 한 순간에 판단을 잘못해서 모압까지 와 가지고 망했지만 하나님을 향하는 그 믿음만큼은 본 받을만한 어머니였습니다. 여러분, 효자도 부모가 만듭니다. 자식의 신앙도 부모가 만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왜, 이 못된 자아을 교회도 안 나가느냐, 기도도 안 하느냐, 왜 믿음 생활을 안 하느냐," 탓하지를 마세요 왜 자식을 보고 효자 노릇도 못 하느냐고 탓하지를 마십시오. 효자도 부모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도 부모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룻은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겠습니다. 우리 나이 드신 어르신들 노년에 쓸데없는 노여움을 부리지를 마시고 남은 여생을 철저히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사시다가 천국에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고귀한 정신을 사랑하는 자부들에게 손부들에게 손자들에게 잘 가르쳐주고 축복하다가 천국에 가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최고의 효도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 날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 적어보았습니다.

     1. 효도에는 내일이 없다.(부모님이 언제 돌아 가실지 몰라요. 내 직장 내 건강이 언제 어     떻게 될지를 몰라요. 요즈음은 하룻밤 사이에 안녕하세요? 교통사고가 많고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퇴직하고 어찌 될지를 몰라요. 하나님이 시간 주셨을 때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2. 물질과 함께 마음을 드리십시오.

     3. 공손히 간호를 하십시오.

     4. 하나님의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하십시오.

     5. 순종보다 더 좋은 미덕은 없습니다.

     6. 잘못이 있다고 거역하지 마십시오.

     7. 가정 분위기를 화목하게 하십시오.

     8. 항상 말을 정중하게 하십시오.

     9. 나의 잘못을 먼저 고하십시오.

    10. 항상 밝은 얼굴을 가지십시오.

    11.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12. 마음을 안심시켜드리십시오.

    13. 부모의 고통을 잊지 마십시오.

    14.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십시오.

    15. 감사를 자주 표현하십시오.

    16. 세상의 부모보다 더 좋은 분은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십시오.

    17 부모 공경하는 것을 자랑하십시오.

    18. 형제간에 화목하십시오.

    19 부모를 위하여 늘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꼭 기억하실 것은 하나님의 질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히 여기고, 그 분들의 위에 있는 권위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해도 다 용서하고 그 허물을 덮은 자가 큰 자이고 하나님이 축복하심을 믿습니다.

     룻은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이방 여인이 영광스런 다윗 왕가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방 여인은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들어오는 영광을 차지합니다. 마태복음 1:5절에 나와있습니다. 룻기 4장에 보면 모든 동네사람들이 나오미에게 창찬하기를 자네의 며느리는 일곱 아들보다 더 존귀하고 며느리일세. 룻을 보면 나오미에게는 너무너무 과분한 거예요. 일곱 아들보다 더 어머니를 잘 모셔서 영광스럽게 했던 자랑스런 며느리라고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영광스런 명예를 얻었습니다. 더 큰 영광은 성경에 여성의 이름으로 기록된 책이 두 권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스더 그는 유대인인데 그러나 이방 여인이면서 성경책에 기록된 것은 룻기서밖에 없습니다. 두고두고 성경책을 기록할 때마다 룻의 이름을 기억하는 존귀한 자 스타가 되도록 하나님이 세워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 부모의 허물들을 다 용서하십시다. 그것을 마음에 접어두면 안돼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왔다가 돌아가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 문밖에까지 왔다가도 문을 열지 못하고 되돌려보낸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과거에 어찌했을지라도 오늘 이 시간에 다 용서하고 부모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고생고생을 하신 노년의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화목하고, 사랑하고, 화평이 넘치는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게 5월의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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