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바와 룻(룻기 1:14-18)
  • 조회 수: 208, 2013.01.31 21:37:21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6)"는 소식을 듣고, 모압 땅을 출발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나오미는 길을 행하던 도중에 두 자부에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재혼할 것을 권합니다. 그것은 젊으나 젊은 그들의 장래를 염려한 나오미의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이 말은 모압 출신인 두 자부들에게 모압의 신 그모스와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 중에 어느 한 쪽을 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자부들에게 분명한 신앙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15절에서 나오미가 오르바에 대하여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갔다"고 말한 것은 바로 나오미의 권유가 신앙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권유였음을 나타냅니다.
     어쨌든 나오미의 이와 같은 권유는 오르바와 룻에게는 은혜의 길과 멸망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녀들은 모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또 친정 집으로 돌아가서 모압의 신 그모스를 섬기다 멸망하는 멸망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두 자부가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큰 자부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하직을 고하였고 둘째 자부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붙좇았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오르바의 이름은 성경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반면 룻의 이름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적 교훈이 있습니다. 위클리프 성경사전에 보면, 랍비의 문헌을 인용하여 이 오르바가 바로 골리앗의 어머니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골리앗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군대를 벌벌 떨게 하다가 다윗의 물매 돌에 맞아 쓰러졌던 블레셋의 거인입니다. 삼상 17:4절에 보면 그의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었다고 했는데, 성서백과 대사전에 보면, 1 규빗을 52.5cm로 환산한다면 자그만치 3.15m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농구선수 이명훈의 키가 2.25m인데 그렇게 크게 보이는데, 3.15m라면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겠어요? 문제는 놀랍게도 오르바가 그 골리앗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룻은 그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위클리프 성경사전에는, "오르바가 룻과 함께 그 시어머니 나오미를 40보를 따라가다가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갔는데, 공교롭게도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괴롭힌 날수가 40일이었고,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들의 자녀교육의 하나인 '세마'를 낭송할 때 그 이야기도 낭송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르바의 길인데, 그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또 하나는 룻의 길인데, 그것은 은혜의 길입니다.
     이 시간 저는 이 오르바의 길과 룻의 길을 놓고 본문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1. 오르바는 선택을 잘못하여 은혜와 복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르바가 그렇게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은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르바에게도 룻과 똑같이 은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그녀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그 은혜의 길을 버리고 멸망의 길을 선택함으로서 스스로 멸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동일하게 은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은 오직 그들이 욕심에 이끌려 그 은혜의 길을 저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울왕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그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모든 후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가문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그리고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초대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점으로 보나, 다윗보다도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처럼 하나님께 버림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욕심에 이끌려서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복된 기회를 안 주셔서 그가 그렇게 역사상 가장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영원히 타는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택되는 복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된 것은 그가 욕심에 이끌려서 은혜의 길을 버리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멸망하는 모든 악인에게도 은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주십니다. 문제는 자신들이 오르바의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사람도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왜 나에게는 은혜의 기회를 안 주셨습니까?"하고 변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항상 은혜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이 됩시다. 결코 욕심에 치우쳐 은혜의 길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오직 믿음으로 은혜의 길을 선택함으로 큰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아가며, 마침내 영원한 천국을 차지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르바는 중도에 포기하여 앞서 한 수고가 다 헛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 15절을 보면, 처음에는 오르바도 친정 집으로 돌아가라는 나오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어이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 오르바가 그만 약하여져서 인간적인 계산에 따라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고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르바는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결심하였고, 또 힘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만 중도에 포기함으로서 은혜와 축복의 자리에서 떨어져나가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줍니다. 오르바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나오미를 따라 나섰지만, 나오미를 따르겠다고 눈물도 흘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신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전에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하고, 충성봉사를 하였어도 중도에 포기한다면 그것은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 10:38-39절에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과거에 얼마나 '열심'이 있었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공로를 세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다고 해도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아무리 많이 하였다고 해도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결단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믿음이 있다고 해서, 또 좋은 신앙 이력을 가졌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도록 더욱 경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이력에 의존하지 않고 항상 경성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러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룻은 끝까지 신앙으로 붙좇아 승리와 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나오미의 거듭된 사랑 어린 권유에 결국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친정 집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붙좇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붙좇았다'는 말은 '희생을 각오하고, 뜻을 같이하여, 전심으로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룻은 희생을 각오하고, 뜻을 같이하여, 전심으로 나오미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럴 때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커다란 영예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이렇게 전심으로 주님을 붙좇아야 하겠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마음과 뜻을 주님과 같이하며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란 오직 자신의 모든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붙좇는 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을 붙좇는 자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을 고집하며 형식적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온 마음과 생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오직 그와 같이 생각하고 그와 같이 행동하는 자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 결론(決論)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오르바의 길과 룻의 길을 통한 본문의 교훈을 살폈습니다. 그러면 그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1. 오르바는 선택을 잘못하여 은혜와 복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2. 오르바는 중도에 포기하여 앞서 한 수고가 다 헛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 룻은 끝까지 신앙으로 붙좇아 승리와 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르바처럼 하지말고 룻처럼 신앙으로 주님을 붙좇아 승리와 복을 차지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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