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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누가복음 05:01-10/ 삶에 실패했을 때 [수요]
  • 조회 수: 819, 2017.02.18 18:48:31
  •  베드로는 고기잡이에는 일가견이 있는 전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 날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병들어 누워있는 장모의 약값도 마련해야 하고 가족의 생계도 꾸려 나가야 할 베드로인데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으니 그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는 참담한 절망을 느끼며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시고 복음을 증거하신 후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대로 하니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고 다른 배에 고기를 나누어 실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체험을 통해 인생의 대변혁을 맞았습니다. 그는 실패를 안고 있던 어부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놀라운 체험을 했고 위대한 하늘나라의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런 체험에서 몇 가지 중대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가 상식이 통하는 전통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전통적인 삶의 방법과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고난과 실패에 처했을 때 전통적인 삶의 방법과 지혜로는 그 문제를 풀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라면 누구나 행하는 방법으로 고기를 잡으러 늘 나갔습니다. 전통적으로 갈릴리에서는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왜냐하면 밤에 고기들이 얕은 곳으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물이 맑아 고기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 곳이 갈릴리입니다. 베드로는 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염려와 근심이 무거운 바위처럼 그의 마음을 짖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무치는 절망을 안고 배 곁에서 허탈한 심정으로 그물을 씻고만 있는 `처량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간의 모습입니다. `빈 배 곁에서 빈 그물을 만지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생을 살 때 상식적이고 수평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경험에 의한 수평적 대응을 하며 그러다 안 될 때는 한계를 느끼고 절망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이런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수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수평적 사고로 현실을 해석하고 비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직적 사고로 현실에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밤에 얕은 곳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수평적 대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직적 대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깊은 곳으로 가 그물을 내리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핀란드 헬싱키에 `바위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가 있습니다. 루터란 교회에서 헬싱키 시내에 교회를 세우려고 할 때 그들은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수평적 사고로 볼 때 시당국에서 교회를 위해 시내에 건축허가를 내어줄 터가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도시계획상 시내에 교회가 세워질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건축학도인 젊은이는 수평적 사고로 현실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시내 한 가운데 있는 큰 바위 위에 올라가 시내를 보며 교회건축을 위해 기도하다가 "바로 이곳이 교회터"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익은 계란에서 노른자를 파내듯 바위를 파내 교회를 지으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얻어 시의 허락을 받은 다음 그대로 시행,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지금 이 `바위교회'는 핀란드의 관광소가 되었습니다. 핀란드에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을 들러 인간의 지혜와 예술에 탄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요, 방법이었습니다.


    만일 세 젊은이가 수평적 삶의 틀만 고집했다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들은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 그 수직적 방법을 모색해 돌파구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맞은 고난을 우리는 오히려 수평적인 삶에서 수직적인 삶을 개발한 기회로 삼고 생활의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에 따른 믿음 없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빈 배를 저어 해변으로 왔을 때 그의 마음도 텅 비었습니다. 그의 그물은 끊어지기도 했으며 쓸데없는 해초로 지저분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오늘날 살아가면서 인생의 빈 배처럼 되고 훼손된 그물처럼 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물거품처럼 되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실패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획기적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실패의 현장에 찾아와 그의 배를 빌려 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실패한 인생에게 오셔서 "네 시간을 다오. 복음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말씀하십니다. 황폐해진 인생, 경제수단이란 그물이 찢어지고 행복과 기쁨이 텅 빈 그런 배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배를 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배를 몰았습니다. 그러면서 청중을 향해 외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다른 동료들이 보았다면 아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혹시 어떤 동료는"세상에 고기를 잡아 처자를 살려 먹어야 할 사람이 배에 웬 청년을 모시고 바다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니.....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저 사람 이제 갈 때까지 다 갔다"라고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은 오늘날 낭패와 실망을 당한 뒤 부인 따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한 인생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화려하게 사업하다가 패망한 후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주위에서는 "저 사람, 이제 돌았군. 한때 그렇게 명예를 뽐내던 사람이 부인 따라 교회에 가서 손뼉치며 할렐루야 하니 갈 때까지 다 갔다"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웃이 현실생활과 동떨어졌다고 비난하는 그 자리가 바로 수평적 인생에서 수직적 인생으로 바뀌는 자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수평적 인생 생활에 실패한 사람이 수직적 삶으로 출발하는... 그 훈련장이 교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시고 가졌던 빈 배에서의 종교적 체험은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체험이요, 한 인생을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증거를 마친 다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빈 배를 마련해 준 베드로를 향해 "자, 이제 되었다. 그냥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다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말씀입니다. 전통적으로나 상식적으로는 밤에 얕은 곳에서 고기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낮에 깊은 곳에서 고기 잡으라니 이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얼떨떨해서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기잡는 데는 베드로가 전문인입니다. 그는 어느 때 어디에 고기가 몰리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복음을 증거하시는 동안 베드로의 마음은 큰 변화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절망의 상황에서 상식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살 것이 아니라 계시적이고 신앙적인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베드로는 메시야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 때문에 베드로는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사고방식은 인간의 수평적 사고를 초월하십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님의 계시적인 이 수직적 말씀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인생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 뿐 아니라 계시적이며 신앙적인 수직적 삶의 방법으로 인생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상식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계시적이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순종하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낭패와 실망의 상황에서 예수님을 모신 베드로는 주님이 주시는 아이디어를 받아 획기적인 삶의 변화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수평적인 인생을 살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급까지는 세상의 상식을 쫓아 수평의 삶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만나셔서 그 분이 열어 가시는 수직의 삶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저희들이 지금껏 세상의 상식으로 살다가 절망하고 탄식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참된 신앙의 전기를 마련하고 수직적인 삶의 세계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지금부터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말씀으로 살겠습니다. 그동안 인본주의적으로 살았던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저희들의 삶을 개선시켜 주시고 힘과 소망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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