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도로 얻은 축복(룻 2:1-2)
  • 조회 수: 188, 2013.02.01 07:36:23
  • 우리는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결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살아가는 데 사실 배우자는 꼭 절대적인 조건만은 아닙니다. 또 자식을 낳지 않고 자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식도 내 인생 살아가는 데 내 인생에 어떤 목표를 위해서 살아가는 데 절대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조차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모는 나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이요 동시에 절대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부모를 공경하거나 섬기는 것이나 그 부모의 은혜를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인생의 본분이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도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면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당연한 본분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고 나아가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룻기에 나타난 룻이라는 여인의 부모 공경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들에게 어떤 은혜와 어떤 복을 주시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효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면 영적인 축복을 주신다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어떤 사람은 그 영적인 축복이 무슨 별 것이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모든 축복의 가장 근본적인 축복 복의 기초가 되는 복 이것이 영혼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3서 1장 2절의 말씀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육신도 잘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혼이 잘되는 복은 모든 복의 앞서서 우리가 반드시 받아야될 근본적인 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은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또 부모님을 잘 공경함으로 이 영혼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룻은 부모를 잘 섬김으로 인하여 얼마나 놀라운 복을 받았는가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오미'라는 여인은 본래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살았는데 그 이스라엘 땅 흉년이 심하게 들자 이방땅 모압으로 남편과 함께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성경에 보면, 율법에 보면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지인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을 떠나서 살면 안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살기가 어렵다고 성지인 이스라엘을 떠나서 저 이방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가정에는 이민을 가서도 계속된 불행이 닥쳤습니다. 나오미라는 이 여인의 남편이 모압 땅에서 객사를 했습니다. 또 남편만 죽었는가 하면, 그녀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을 모압 여인들과 결혼을 시켰는데 두 아들이 다 자식하나 낳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참 딱한 처지에 불행한 가정이었습니다. 한 집에 어머니도 과부요 두 며느리들도 과부인 채 세 과부가 함께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참으로 불행한 가정입니까?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젊은 두 며느리들이 과부가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서 늘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고향 땅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들을 불러놓고 말합니다. "너희는 이곳이 고향이니까 이곳에서 새로 결혼해서 잘 살아라 나는 내가 떠나왔던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련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두 며느리가 다 처음에 "아닙니다. 우리도 어머니를 따라 가겠습니다" 이렇게 두 며느리가 다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마음이 갸륵하지만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말립니다. 너희는 청상에 홀로되어 어떻게 나를 따라 타국에 가서 살겠느냐 너희는 자식도 없지 않느냐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라 이런 어머니의 간곡한 배려에 큰며느리인 오르바는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부둥켜안고 울고는 시어머니를 따라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인 룻은 가만히 생각하니까 나이가 들어 늙은 어머니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다 들어서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그대로 놔두면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붙들고 다시 하소연을 합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유숙하는 곳에 나도 유숙하며 어머니의 신이 나의 신이 되며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나도 죽겠사오니 나를 떠나라 하지 마소서" 이렇게 룻이 애원을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갸륵한 며느리가 어디 있습니까? 자식도 없고 남편도 죽었는데 그 시어머니를 끝까지 어머니를 봉양하고 따라서 어머니와 함께 죽고 어머니와 함께 가고 어머니의 신이 나의 신이 되겠다는 이렇게 갸륵한 마음을 가진 며느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하여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서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고향을 떠난 지 십수 년이 되었기 때문에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는 아무 재산도 집도 논밭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시어머니를 공양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룻은 남의 집에 가서 허드렛일을 해주고 양식을 얻어오고 추수가 끝난 밭에 가서 이삭을 주워다가 어머니를 섬기게 됩니다. 이런 이 지극한 효행이 마을에서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방 모압의 며느리가 나오미를 따라 여기까지 와서 늙어 죽어 가는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한다는 이 소문이 차츰차츰 옆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때 그 마을에는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큰 부자요 덕이 많은 사람 보아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상처를 해서 아내를 잃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룻은 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이 보아스를 만나게 되고 룻의 소문을 들은 이 보아스도 룻을 만나서 룻의 효행이 놀라운 것을 알고는 이제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아스와 룻 그들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는데 마태복음 1장 5절에 보면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지 않습니까?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여러분, 이새까지 가면 이제 누가 나올지 아시겠습니까? 이새는 누구의 아버지입니까?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이새는 다윗을 낳으니라' 여러분, 이렇게 가다가 제일 마지막에 다윗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이렇게 쭉 나오다가 마지막에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고 더구나 하나님은 그의 혈통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낳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서 무엇을 말씀드리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룻은 그의 어머니 불쌍한 어머니 혼자 둬서는 안돼는 어머니 자기에게 귀찮은 어머니였지만 그 어머니에게 효행을 한다고 했는데 큰 부자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것 뿐 아니라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더더구나 우리들에게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은 이 성경책에 하나님의 말씀 책에 이방의 아무 이름 없는 한 여인이 효행을 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책으로 올라있고 하늘에 천국의 생명 책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그의 몸 그의 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효도를 하는 여인, 효도를 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임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신앙적인 축복을 받으려면 특별히 두 가지 관계에 조심해야 합니다. 두 가지는 신앙적인 관계에서 몹시 중요합니다. 그 두 가지 중 하나는 주의 종과의 관계입니다. 제 얘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몹시 조심스럽지만 주의 종과의 관계가 신앙 생활을 할 때는 굉장히 중대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주의 종은 주의 일을 전무 하는 하나님의 사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종이, 주의 종이 천사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보면 주의 종에게 목사에게 허물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약점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허물도 있고 약점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당신의 종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하다가 그 종의 약점과 허물을 보다가는 우리가 어쩌기 쉽냐면 신앙 생활하다가 사실 시험 들기 쉬운 것입니다. 때로 주의 종의 약점을 보고 낙심도 되고 실망도 되고 그래서 그 종에 대한 실망과 시험이 내 신앙에 실망과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 주의 종의 허물이 보이고 잘못이 보일 때 만약 그 마음과 그 눈에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종으로 보이지 않게 되면 그 신앙은 시험에 져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 신앙에 영혼에 사실 많은 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종 때문에 내가 신앙의 많은 은혜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그 종이 있는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로 가는 것이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것입니다. 내 눈에 하나님의 종으로 보이는 목사에게 가야 우리들은 사실은 은혜 받고 우리들의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 시험을 잘 이겨야 되고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다른 것 있지만 우리가 그 허물이 보이지 않도록 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덮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삯꾼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종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지 않고 영혼의 복을 받는 사람은 참된 복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우리 신앙에 참 중요한 시험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영혼의 복을 받는데 참 중요한 관계가 있는데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자 실은 앞에 주의 종과의 관계를 첨언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를 거역한 자 물론 주 안에서입니다. 부모를 거역한 자 또 부모를 비방하거나 부모를 버리거나 부모를 때리거나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고 신명기는 특별히 부모에 대해서 엄한 효를 명하고 있습니다. 앞에 말해서 하나님의 종과 관계가 좋지 않으면 신앙 생활에서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경험상 알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모와의 관계가 멀어진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져 버리고 부모와의 관계가 끝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끝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부모에게 잘 못하면 그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도 목사지만, 신앙 생활 잘 한다고 하지만 부모님에게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도 바르게 신앙생활 한다고 말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가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와 그 자식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래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죄악이 만연한 시대에 믿음으로 잘 살아서 방주를 예비해서 그의 식구들만 구원을 받은 아주 노아는 본래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노아가 실수를 합니다. 어떤 실수를 합니까?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해버렸습니다. 취해서 노아가 발가벗고 아무 것도 입지 않고 방에서 자고있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실수입니까? 여러분, 의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잘 믿는 노아였지만 무슨 연고인지는 모르지만 술을 많이 먹고 발가벗고 누워서 잠이 드는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이때 둘째 아들인 함이 아버지가 발가벗고 하체를 다 드러내어놓고 누워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나가서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흉을 봅니다. 아버지가 이럴 수가 있느냐고 아버지가 세상에 창피하게 발가벗고 다 하체를 드러내놓고 누워있다고 아버지 흉을 보고 아버지를 비난하고 아버지를 경멸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말을 듣고 담요를 가지고 와서 그리고 일부러 아버지의 하체를 부끄러운 수치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뒤로 갔습니다. 앞으로 가지 않고 옷을 들고 뒤로 가 가지고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었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창세기 9장 이후의 성경을 보십시오. 이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냈던 함은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고 허물을 덮어줬던 셈과 야벳은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노아가 잘못했습니까? 잘못하지 않았습니까? 잘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비의 허물을 말하고 들추어내는 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비의 허물을 가려주고 덮어준 자는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부모를 주시고 그 부모에게 허물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덮어주고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덮어줌으로써 사는 것입니다. 나를 덮음 받아서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있는 것 다 드러내고 있는 것 다 만약에 내어놓는다면 우리는 사실 부끄러워서 살 수 없고 우리는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는 존재가 우리들인 것입니다. 죄악이 이 땅에 온 이후로 우리 인간은 다 드러내놓고는 살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우리들을 다 덮어주셨습니다. 이불을 덮어주셨습니다. 옷으로 덮어주셨습니다. 코도 풀어주시고 똥꼬도 닦아주시고 우리의 모든 허물 우리의 모든 약점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들을 우리의 부모님들은 다 알고계십니다. 전부다 우리 미미한 약점까지도 다 부모님은 알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덮어주고 자기의 아픔처럼 자기의 허물처럼 자기의 부끄러움처럼 이렇게 부모님은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그럴듯하게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럴듯하게 뭔가 된 것처럼 우리가 포장해서 살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덮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벌을 받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다 덮어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지 아십니까? 다 아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 우리의 잘남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우리를 덮어주셔서 우리가 구원받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갈 때 바른 사람이 되어서 천국 가는 줄 아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천국 갈 때 온전하게 우리가 착한 사람되어서 내가 고쳐져서 천국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셔서 그 피로 우리의 모든 더럽고 부끄러운 허물을 피로 덮어서 우리를 천국가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자기 의로움으로 자기가 잘해서 천국 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베드로도 그랬고 바울도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서 허물이 가려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보여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덮음 받지 않으면 우리는 못산다 세상말로 우리는 천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키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부모님이 우리 기저귀를 갈아준 것을 어떤 사람이 셈했는데 하루에 두 번씩 그럼 일년에 얼마입니까? 칠백 번. 여러분, 칠백 번 아닙니까? 그럼 세 살 때까지 하면 얼마인지 아십니까? 3*7=21 이천 번 삼천 번을 똥걸레를 빨고 똥꼬를 닦아주고 우리의 모든 것을 그렇게 하셔서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모의 은혜 받지 않고 큰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부모의 은혜 받지 않고 큰 사람 있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는 부모의 은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대들었습니다. "아버지 돈도 벌지 못하시고 항상 저희들 자식들 고생시키고"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고 대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저 혼자 저절로 컸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라는 것은 가장 성장의 기간이 길어서 남의 도움이 아니면 도무지 사람은 클 수가 없습니다. 다 어머니의 도움 아버지의 사랑 그 속에서 우리가 컸습니다. 우리가 세 살 때까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컸다고 할지라도 그 세 살 때까지만 받은 은혜는 우리가 평생 갚아도 한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부모님을 덮어서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부모님은 나이가 드시면 어린이로 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진지 드시면서 식사하시면서 수저가 자꾸 떨립니다. 그래서 국물을 흘립니다. 감각 신경이 무뎌져서 콧물이 나와도 부모님은 모릅니다. 후각이 둔해 가지고 머리를 안 감고 옷에서 냄새가 나도 부모님은 그것을 모르고 입고 다니십니다. 눈물이 자꾸 줄줄 나옵니다. 맛있는 것도 자꾸 먹고 싶다고 합니다. 사달라고 합니다. 또 괜히 욕심을 부리시기도 합니다. 저는 아버님이 제가 학교 다닐 때 병환이 깊으셔서 누워 계셨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제가 항상 한이 되고 마음에 죄송합니다. 아버님이 여러 가지로 합병이 있어 가지고 당뇨가 항상 깊어 가지고 음식에 주의하고 고통을 당하셨는데 약을 하나 쓸 수가 있습니까? 어려웠습니다.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보면 어머니는 새카만 꽁보리밥을 드십니다. 우리들 납부금을 대느라고 어머니는 별의별 일을 다하시면서도 꽁보리밥을 드십니다. 그런데 보면 아버님은 항상 하얀 쌀밥을 드시던지 찰밥에 먹고 단무지나 생달걀을 뜨거운 밥에 비벼서 그렇게 드시지 않으면 밥을 아예 안 드립니다. 저는 그것이 화가 났습니다. 속으로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는 지금도 생각하면 한이 되는데 아버지에게 대들었습니다. "아버지 왜 어머니는 보리밥을 먹고 아버지는 쌀밥을 먹어야 됩니까? 왜 어머니는 죽도록 고생하고 아버지는 무위도식하십니까? 아버지가 우리한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돈을 벌어다 주었습니까? 공부를 가르쳐주었습니까?" 아버지에게 마구 대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바로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못된 것이 아버지가 쌀밥 드신다고 대든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쌀밥이 문제겠습니까? 육십이 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한번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신다면 정말로 잘못했다고 하고 모든 것을 다 해드리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아버지 한번만 다시 볼 수 있다면! 저도 아버지를 엄청나게 거역하고 살았습니다. 돈 벌어야하는데 돈은 안벌고 공부한다고 하고 다른 자식들은 다 공장에 가서 돈을 버는데 저는 돈은 안 벌고 공부만 한다고 했으니 아버지께 제가 한번 양말 한 켤레를 사드린 적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그때는 저를 사랑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렵게 살았던 아버지 시대에는 정말로 살기도 바쁘고 생존 자체가 너무나도 힘든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들이 오늘 사는 시대하고 달랐습니다. 저는 그렇게 아버지에게 만약에 아버지가 지금 한번 계신다면 그때 그렇게 너무나도 어렵고 가난할 때 쌀밥을 그렇게 좋아하시고 단무지를 그렇게 좋아하시던 그런 아버지가 계셨다면 지금 실컷 사드릴텐데 마음대로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텐데 이런 생각이 늘 마음에 맺혀있습니다.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아무 것도 못해보고 돌아가신 아버지. 그저 무력하고 착하기만 해서 돌아가신 아버지. 그러면 여러분, 어머니에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지금 살아 계십니다. 물론 어머니에게 하려고 제 마음으로는 힘을 씁니다만 잘 안됩니다. 또 후회할 것입니다. 지금 살아 계실 때 안하고 나면 반드시 한이 되는 것처럼 후회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님들 우리에게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어렸을 때 너를 덮어준 부모를 이제 네가 덮어줄 차례다 네가 이 부모의 허물을 덮을 수 있다면 너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에게 복 주시는 줄 아십니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나의 나 된 것은 부모님의 은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면 그 복을 가지고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해지고 그 교만이 패망의 앞잡이 이고 다른 사람에게 아픔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여러분, 부모님의 은혜 진실로 아십니까? 하나님은 그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목사와 부모는 우리에게 축복의 시험거리 축복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 이 은혜의 축복, 신앙의 축복 받으려면 목사에게 잘하십시오.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잘하십시오. 그렇지 않고 복 받은 사람은 목사에게 잘못하고 복 받은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잘못하고 복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자식이 없는 시어머니, 늙은 시어머니, 재산 없는 시어머니를 룻은 잘 덮어서 섬김으로 이렇게 크고 놀라운 복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고불변의 이름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서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제 꼭 부모님 덮는 이 사랑으로 효행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효도를 하면 육적인 축복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룻만큼 불행한 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번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그렇게 발버둥 할만 합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를 찾아서 갈 수도 있습니다. 룻은 룻기에 보면 굉장히 예쁜 여인이었습니다. 나도 다른 남자 찾아서 어머니인 나오미의 말대로 자기 인생 한번 잘 살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자기의 행복을 자기의 실리를 포기하고 대의를 따릅니다. 내가 재미있게 잘살겠다 이것은 자기의 실리요 자기의 행복을 따르는 것이지만 효는 대의입니다. 의리를 지킵니다. 대의를 지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자기의 행복을 찾겠다고 부모를 외면하고 자기의 실리를 찾겠다고 의리를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참 행복이 있을까요? 없는 것입니다. 제가 늘 우리 교회에서 반복해서 하는 말이 우리는 잊지 말고 우리의 골수에 사무쳐야 합니다. 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돈도 가치입니다. 재미도 가치입니다. 좋은 차 타는 것도 가치입니다. 자식들 공부 잘하는 것도 가치이고 다 가치입니다. 명예도 가치이고 얼굴 잘 생긴 것도 가치이고 건강도 가치입니다. 그것만 가치입니까? 사랑도 가치입니다. 효도도 가치입니다. 의리 진실 믿음 영생 이런 것도 가치입니다. 그런데 전자 앞에서 말한 가치는 상대적인 가치입니다. 돈은 좀 더 있으나 덜 있으나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의 절대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파트가 좀 넓거나 좁거나 그것이 행복의 절대 조건이 아니고 내가 잘났거나 못났거나 즉 잘난 사람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뒤에 말한 후자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실을 잃어버리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려도 그 사람 인생에 참 진실이 없다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진실하지 않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지 않고는 천국의 영생을 얻지 않고는 믿음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내와 남편이 재산을 많이 쌓아놓았다고 해도 그 아내와 남편 사이에 사랑이 없고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효도하지 않고는 부모를 저버리고 우리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는 상대적인 가치보다도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됩니다. 그러나 어리석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 상대적인 가치를 얻으려고 절대적인 가치를 포기해버립니다. 그래서 불행합니다. 그래서 불행이 쉬지 않습니다. 얼마나 그런 사람이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는 사랑이 없이는 영생이 없이는 효가 없이는 우리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명예 건강 아무리 많은 것 다 가져도 그 가정은 불행이 예고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룻은 잘 택했습니다. 불쌍한 어머니와 인연을 끊고 자기는 좋은 남자 만나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자기의 실리를 버리고 대의를 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이 실리를 자기 행복을 버리고 큰 대의를 따라가는 사람 절대적인 가치를 버리지 않고 붙드는 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끝까지 대의를 따른 룻에게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를 하나님이 준 것을 봅니다. 룻에게 부자요 덕이 많은 보아스라는 좋은 사람을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일약 귀족의 지위를 얻게 하십니다. 더더구나 다윗의 조모가 되어 왕족을 이룹니다. 어찌 상상이나 했던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효행 하는 사람 효행했던 룻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분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부모님 모시거나 부모님 찾아뵈면 불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 행복 내 개인적인 이익을 찾겠다고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팽개쳐버리면 그것이 불행이라는 것을 아십시다. 나의 이익이나 행복을 앞세우면 대의도 잃고 행복도 잃어버리지만, 대의를 앞세우면 대의를 이룬 것은 물론이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축복도 또 다른 많은 은혜의 보너스로 우리에게 수백 배 수천 배 갚아주실 것입니다. 룻을 보아서 알게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간단히 하나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되고 오래 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면 어떻다는 말입니까? 네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땅에서 장수한다' 저는 옛날에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을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정말 좋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요. 오래 사는 것은 좋죠? 저는 이 말을 좀 바꿔서 봅니다. 네가 부모를 정말로 잘 공경하면 불치의 병이 안 걸린다 오래 산다 병마에 시달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오래 살게 장수하게 해준다. 저는 이 말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내 건강에 힘을 기울이는 것만큼 부모님의 건강에도 힘을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을 믿고 그렇게 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모 공경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 공경이 심히 땅에 떨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핵가족화 하면서 우리는 부모들을 점점 멀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부모들이 우리 마음 같지 않습니다. 제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운 것은 어머니가 좀 아름답고 멋있고 건강하고 좀 고상하게 늙어 가시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리도 절뚝거리고 얼굴도 다 쭈글쭈글하고 마음에 조금만 안 맞아도 섭섭한 말씀만 하시어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여러분? 그 부모, 우리의 시험거리입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덮어서 부모님을 공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 복을 받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우리가 그런 공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 공경해서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도리 하나님의 법인 줄 알고 오히려 세상이 패역하고 부모를 잃어버릴수록 우리들은 세상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빛된 삶을 힘써 행해서 부모님에게는 물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우리 온누리 모든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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