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의 기도 (삼상 1:9-18)
  • 조회 수: 295, 2013.02.01 16:11:45
  •    어떤 신학자는 기독교(基督敎)를 기도교(祈禱敎)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특징가운데 하나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곧 기도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되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한나가 당한 고통'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는 그러한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하므로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한나의 그 기도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그러면 한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요?

    1. 한나의 기도는 참 신앙의 기도였습니다.
    1) 한나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믿고 기도 드렸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총지휘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다윗의 경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주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그는,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고 외쳤습니다.
     다윗은 전쟁의 승패가 무기나 전략, 훈련된 군인 또는 군대의 수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백성들이 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앞세우고 전쟁할 때에는 반드시 승리했지만, 자신들의 능력을 내세울 때는 항상 패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란 말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시는 분"이시며,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시고 주장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기에 하나님은 예배와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완전히 의지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의 참 뜻입니다. 한나는 참으로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믿고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만군의 여호와'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돌보시며, 반드시 승리를 안겨주시는 사랑의 아버지, 전능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캐나다의 핼리팩스의 어느 호텔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긴급 출동한 소방차들이 물을 뿌리고 투숙객들이 뛰어내릴 수 있도록 땅 위에 그물을 쳤습니다. 한 아버지가 자기 어린 아들을 창문을 열고 던졌습니다. 그 아이는 그물 위에 떨어져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 화재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구조된 사람은 매우 적었습니다.
     신문기자가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를 창 밖으로 던질 때, 무섭지 않더냐?"고 그러자 그 아이는, "무섭긴 요, 아버지가 저를 위험한 대로 던졌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아버지를 믿되 온전히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참으로 그분은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2) 한나는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고백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모든 주권을 갖고 계신 분이심을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오로지 그분의 뜻을 따를 뿐인 종인 것을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게도 한나는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결심으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내 주장을 내세우며, 내 고집대로 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내 생각대로 안되었다고 원망 불평하는 것은 참된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그것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사람의 참된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쁘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었다고 하여 결코 어리석게 원망 불평하지 맙시다.

      300명이 탄 여객선이 큰 파도에 파선하여 모두 다 죽고 선원 한 사람만이 나무 한쪽을 붙잡고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상륙했습니다. 그는 나무열매를 먹으면서 연명하다가 겨울을 지나기 위해 나뭇가지를 얽어 놓고 그  위에 낙엽을 쌓아 움막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수고하여 만든 움막이 불에 타 재만 남았습니다. 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두시는 것이 낫지 이게 웬일입니까?"하고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당신은 누구냐?'고 하니 "바다를 지나던 상선의 선원인데, 여기서 큰 연기가 계속 나서, 웬일인가 하고 와보았노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구출을 받았답니다.
     거지움막 같은 것을 태워 자기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은 생각조차 못하고 당장 움막이 타버린 것만 서러워하는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 얼마나 한심한가는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내가 가졌던 것을 거두시고 다른 것으로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 울부짖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을 믿고 기다려 봅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한나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 하고,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 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한나와 같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한나의 기도는 통곡하는 기도였습니다(10).
      10절을 보면 한나는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였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1) 가식이 없이 진심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참된 눈물을 진실한 사람만이 흘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위선과 가식을 버리고 진실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찾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참된 위로와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그 위로와 은혜를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통곡하며 기도한 것은?

    2)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옵니다.(33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338장)

       그렇게 한나는 눈물로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이는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밖에는 바라볼 이가 없고, 의지할 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통곡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통곡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하나에게는 소망의 은총이 임했습니다. 위대한 아들 사무엘을 낳는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인간을 [안트로포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돼지는 병들어 드러누웠을 때 외에는 하늘을 보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병아리도, 참새도, 소도, 말도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지만 유일하게 돼지는 땅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돼지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돼지처럼 병들어 드러누워야만 하늘을 바라보고 소리친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나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했고 불임증을 고쳤고 자녀 교육도 성공했습니다.
       
     우리도 한나처럼 하나님만을 바라봅시다!

    3. 한나의 기도는 목적을 바로 정한 기도였습니다(11).
      한나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주셔서 아들을 낳게 해주신다면 그 응답에 대한 감사로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목적을 바로 정한 것입니다.
     아들을 구하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브닌나나 이기고 복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혹시라도 오해를 해서는 안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말씀을 보고, "한나가 서원 하여 복을 받았으니 나도 서원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하고 잘못 생각하여 함부로 서원 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한나는 결코 경솔하게 서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을 보십시오. 한나는 그 기도의 아들 사무엘이 젖을 땐 후에 즉각적으로 서원을 이행하여, 그 귀여운 아이를 실제로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데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가 서원 한 것은 장삿속으로 하나님과 흥정을 한 것이 아닙니다. 행여라도 우리는 기도를 장삿속으로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한나처럼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소원하고 그렇게 헌신하며 섬기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크신 은총은 임할 것입니다.

    ⊙ 결론(決論)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한나의 기도'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한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 한나의 기도는 참 신앙의 기도였습니다.
      1) 한나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믿고 기도 드렸습니다.
      2) 한나는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고백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2. 한나의 기도는 통곡하는 기도였습니다.
      1) 가식이 없이 진심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2)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3. 한나의 기도는 서원 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나처럼 기도하고, 한나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듬뿍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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