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이 키우신 아들(삼상 2:18-21)
  • 조회 수: 165, 2013.02.01 16:44:59
  •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믿음의 조상들을 만나 게 됩니다. 이들의 믿음이 다 훌륭하여 우리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표상이지만, 굳이 이들의 믿음을 서로 비교하여 본다고 하면, 이삭의 믿음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만 못하고, 야곱의 믿음이 아버지 이삭의 믿음만 못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들의 믿음이 아버지의 믿음만 못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은 연단과 고생을 심하게 한 사람은 야곱입니다. 이처럼 야곱이 연단을 가장 많이 받은 이유는 한마디로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 욕심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세상 욕심이 많을수록 믿음이 순탄하게 자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야곱의 욕심을 꺾기 위해 그에게 많은 연단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연단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재산을 많이 모았고 또 자식으로 인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말년을 잘 보냈습니다. 사실 야곱에게는 아들이 12명이다 보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이런 아들도 있고 저런 아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 아들들 중에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크게 출세하여 그 당시 강대국인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 아들때문에 말년을 호강하며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창세기 45:21-23절을 보면, 요셉은 가나안에 기근이 심하여 여러 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아버지 요셉을 애굽으로 모셔오기로 작정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왕 바로의 허락을 받아 최고급 수레를 아버지께로 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야곱과 그의 식솔들이 애굽으로 오는 동안 먹을 곡식과 떡과 양식을 암나귀 열 필에 실어보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의 식솔 70명이 이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와서 애굽왕 바로의 영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요셉 덕분에 애굽에 사는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영화롭게 잘 살았습니다. 창세기 50장을 보면, 야곱이 향년 110세로 일생을 마쳤을 때에 그 몸 속에 향 재료를 넣는데 40일이 걸렸고, 애굽사람들이 야곱을 위해 70일을 곡했으며, 야곱을 고향에 매장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떠날 때에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병거와 수많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상상해 보건대 야곱의 장례 행렬은 상상이 안될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아마 이 세상에 야곱처럼 대접을 잘 받으며 장례를 거창하게 치른 사람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잠언 23:24절을 보면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이 본인은 물론 부모의 영광이요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야곱처럼 자식이 잘되면 늙어서 호강하게 되고 자식으로 인해 대접을 잘 받게 되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부모님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내 자식이 잘 될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이 훌륭한 인물이 될까?” 늘 노심초사하며 자식을 기르고 또 자녀들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자식을 셋이나 키워보지만 자녀가 잘되는 것은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줄 믿습니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부모밑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오고, 잘못된 부모밑에서 잘못된 자녀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대체적으로 교도소에 들어오는 젊은이를 조사해 보면 대부분 잘못된 가정이거나 잘못된 친구와 어울리다가 탈선하여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훌륭한 부모 밑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자녀들로 성장되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부모는 훌륭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자녀들이 잘못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중의 맏아들인 [에서]는 신앙이 없었고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방여인을 둘이나 취하여 제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항상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그렇게 믿음이 훌륭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 살면서 보고들은 것이 많았을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빗나간 아들이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에서는 결국 이스라엘 자손을 늘 괴롭히며 원수 노릇을 하던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 또한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얼마나 훌륭한 선지자입니까? 그러나 사무엘상 8장을 보면,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 사사로서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의 자녀인 요엘과 아비아에게 사사직을 물려주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으니 그들도 역시 훌륭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아비의 행위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고 돈을 좋아해서 뇌물을 받아 취함으로써 판결을 바르게 하지 않았습니다(삼상 8:3). 왜 사무엘의 아들들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그 이유가 매우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예외가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로 응답을 받았고,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 통곡하며 기도함으로써 그의 눈물과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주셨습니다. 이처럼 굉장한 체험이 많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적극적 권장하여 온 나라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도록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 당시 우상숭배가 얼마나 심했는지 므낫세는 과거에 멸망당한 이방민족보다 더 심하게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을 저지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앗수르 군대의 침공을 받아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로 비참하게 원수의 나라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제는 나라도 망하고 자신도 죽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사실 그동안 므낫세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역대하 33:13절을 보면,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줄 알았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훌륭한 아버지 밑에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존경받는 목회자 또는 존경받는 장로님을 아버지로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은 불신자로 살았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자녀가 잘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신앙이 좋다고 해서 또는 어머니의 신앙이 좋다고 해서 그의 자녀들의 신앙이 다 좋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기른 것은 3개월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몰래 키웠지만 석달이 되자 도저히 숨겨서 기를 수가 없어 모세를 갈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그리고 누이 미리암으로 하여금 아이를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강에 나왔다가 우연히 그 아이를 발견하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양자로 키우기로 했습니다. 마침 이를 지켜본 미리암이 공주에게 자기 엄마를 유모로 소개하여 요게벳이 모세의 젖을 먹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를 젖먹인 기간이 얼마나 길었겠습니까? 또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애굽의 왕궁에서 보낸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모세를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무엘도 어머니 한나의 젖을 뗀 후에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어져 길러졌습니다. 그 당시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고 몸이 비둔하여 제사장의 직무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두 아들 역시 바람둥이로 하나님을 모르는 아주 못된 불량자였습니다. 주위 환경이 이런 형편이다보니 어린 사무엘이 자라나기에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주위에 훌륭한 하나님의 종으로 키워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을 누가 키웠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한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한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2:20절에서 한나는 사무엘을 가리켜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드린 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미로서 어린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보낸 후에 사무엘을 위해 늘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나는 이 아들을 기도로 키웠습니다. 사무엘상 3장을 보면, 나이 어린 사무엘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광경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이때까지 영적 암흑시기였으나 비로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삼상 3:20). 사무엘을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키워주신 것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도님들 중에 보면 자녀가 어리다고 해서 교회에 데리고 나오지 않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죄악의 때가 묻고 마음이 강팍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어렸을 때 할수록 좋습니다. 어린아이일수록 은혜 받기 쉽고, 신앙생활하기가 좋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연령의 85%가 18세 이전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18세 이전에 구원받은 사람이 많고, 성인이 되는 18세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매우 적다는 뜻입니다. 이만큼 나이들수록 구원받는 것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전에 나와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누가복음 2:40절을 보면, 예수님의 어렸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해지고 지혜가 충족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하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죄악이 관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바르게 살아가기가 어려운 이 때에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키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닐 수가 있습니까? 그 아이들이 나쁜 곳에 가지 않도록 발을 묶어놓고 지킬 수 있습니까? 해결책은 하나 뿐입니다. 아이들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이 키워주시는 자녀가 될 때 사무엘과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나처럼 자녀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자녀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 우리의 자녀들이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양육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어거스틴이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 모나카의 눈물의 기도가 어거스틴을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예전부터 눈물의 기도가 있는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성령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된 우리의 할 일은 오직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축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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