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가 잘 되는 길(삼상2:22-30)
  • 조회 수: 237, 2013.02.01 16:48:29
  • 세상에 보면 참 잘된 자녀들도 있지만 참 잘못된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대표적으로 잘못된 자녀들 몇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초의 가정 아담과 하와 가정의 큰 아들 가인입니다. 그는 형제를 시기하다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의 아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비난하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할 때 약간의 금은 보화와 옷을 훔친 아간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중 압살롬은 아버지의 권력을 탐내다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잘못된 자녀들이 여럿이 있지만 아마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엘리 가정의 자녀들처럼 잘못된 가정도 드뭅니다. 얼마나 불행한 자녀들인가 성경을 통하여 보십시오.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터에 두 아들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삼상4:17) 두 아들은 그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한 날 같이 전사하였습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예수 잘 믿는 목사님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만 월남전에 참전하였다가 한 날 똑같이 전사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볼 때 그 목사님에 대하여 뭐라 말하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한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제사장인 아버지 엘리에게 들여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 되었습니까?(삼상4:18) 전사했다는 충격으로 즉사했습니다. 그것도 의자에 앉아 있다가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이면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자식이 잘못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모습을 본 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밴 며느리가 있었는데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되었습니까?(삼상4:19-20) 며느리 역시 아이를 낳고 죽고 말았습니다. 며느리는 죽어가면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이가봇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다라는 말입니다. 한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던 가정이 졸지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비참한 가정으로 되었습니다. 이 가정이 왜 이렇게 비참한 가정이 되었을까요? 왜 자식들이 이렇게 불행하게 되었을까요? 우리 가정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지 않고 잘되는 자녀를 가진 가정이 될 수 있을까요?

    1.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자녀들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잘되고 자녀의 미래가 보장받습니다(29).
    우리가 자녀에게 남겨줄 유산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재산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 놓는다면 그 자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잘 기르기를 원하지만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다른 것 많이 못해 주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만 확실하게 심어주어도 자녀 교육은 성공한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1-2)"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내가 돈이 없어 자식들 잘 못 기른다고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일찍이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자녀를 기른다고 슬퍼할 것이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자식이 따르지 않는다고 낙망할 것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 하나님이 잘 살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험을 보호해 주시는 산성이 되시고 하나님이 상급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는 비결을 아주 집약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잠언서를 보십시오.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가 잘되는 길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한 번 찾아 보시겠습니다. 잠언서 3장 1절부터 10절 까지만 읽어 보겠습니다. 제가 1절 읽으면 우리 성도님들이 2절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 자녀가 장수하고 평강하게 하는 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1)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 받는 비법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3)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6)
    우리 자녀들이 부자가 되는 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9)
    우리의 자녀들이 잘 되는 비결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까요? 단지 이론에 불과하고 실제가 아니라는 말일까요? 교회에서나 적용되는 말씀이고 현장에서는 전혀 불필요한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돌아가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시 삼상 2:3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이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경멸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오늘 나오는 엘리 가정이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지 않습니까?
    엘리 가정이 이렇게 불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이겠습니까? 2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 보다 아들들을 더 중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을 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아들들을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귀중이 여기면 자식이 잘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래 너 그 만큼 중요해 너 한번 잘 해보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떠할까요? 부모의 그 애뜻한 마음을 알아 줄까요? 아닙니다. 부모가 그러면 그 자녀들도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한 짓을 보십시오.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고 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합니다(2:13), 불량자가 되어 악한 자들의 행실을 좇습니다(2:12), 신성한 제사제도를 문란케 합니다(2:14),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합니다(2:14), 제물로 자기 배를 채웁니다(15,16).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16),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합니다(17), 성막에서 간음 죄를 범합니다(22), 아비의 책망을 무시합니다(24), 백성들의 범죄를 조장합니다(24). 그러니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이 시간 다짐합시다. 어떤 경우에도 내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것이 자녀가 잘되게 하는 최대의 비결입니다. 아무것 줄 것 없지만 이 신앙 만큼은 꼭 유산으로 남겨주게 하옵소서 기도해 보십시오.
    적당히 하나님 믿게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잘 믿는 것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교회생활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행사하는 것을 우습게 아시지 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에 우선순위를 안두면 자녀들모 마찬가지입니다. 한 참 곁길로 간뒤 후회하면 그 땐 이미 늦습니다. 이왕 믿을 바에는 잘 믿는 아들 딸 만드십시오. 하나님 경외한다고 손해보는 것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도 보십시오.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아닙니까? 잘 못사는 나라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나라가 아닙니까? 지난 3월 20일 경향신문에 우리나라 최고위 공직자 100명의 종교를 조사한 내용이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 최고위 지도층 100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개신교 42명 천주교 20명 불교 9명 무종교 26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바보 천치이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뒤지고 못사는 사람이 됩니까? 16대 국회의원 당선자를 보니까 273명 중 개신교인이 91명이었습니다. 무려 33%에 달하였습니다.
    작년 한꺼번에 두 아들이 사법 고시에 합격한 분이 신문에 났습니다. 작은 시골 교회 장로님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기사를 읽어 보니 남자만 6형제를 두었습니다. 다섯째 아들은 행정고시와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하였습니다. 막내는 사법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기자가 자식들이 그렇게 잘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때 김진성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재촉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열심히 할 것만 당부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 앞에 기도의 본을 보이려 힘썼을 뿐이지요.』
    그들의 기도제목은 자식들이 꾸준한 신앙생활로 모두 장로 직분을 맡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까? 자녀를 큰 인물를 키우길 원합니까? 아이들에게 신경쓰는 것보다 더 큰 신경을 하나님에게 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상급이고 방패이십니다. 자녀를 학교 석차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신앙으로 평가하십시오. 부모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 한 자녀의 우선순위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고백이 있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세 상이 두쪽이 난다하여도 우리 가정은 여호와의 신앙을 가지고 살겠다는 다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2. 사명감을 분명히 가지게 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잘 살게 됩니다.
    그들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삼상1:3을 보십시오.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보 기도를 하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이 죄를 짖지 않고 바르게 살도록 교훈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바쳐야 할 예물을 밟았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였습니까? 14, 15절을 보십시오. 욕심의 노예가 되어 백성들이 제사드린 제물을 훔치는 도둑이 되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합니다.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을 멸시합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일을 맡겨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간음합니다. 사람들의 비난 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인 이들에게 왜 이렇게 사명감이 없을까요? 사명감이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세요. 이것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아니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백성들을 대신하여 중보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단지 교회에 올 따름입니다. 예배드리는 채만 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구원받았고 나의 삶이 얼마나 변하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입으로만 신앙 생활을 할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 체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능력을 행하고 고귀한 직분을 가지고 봉사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대형 교회를 짓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 위대한 능력을 행하고, 신학 박사 학위를 두서너개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체험적으로 실제적으로 생활 가운데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처녀 총각이 결혼하여 자기의 남편과 아내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저의 아내의 발소리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여 사니 이제 멀리서 올지라도 발소리만 들어도 기침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이런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적으로 형식적으로 이해 타산적 관계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실제적으로 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은 요즈음 말하면 이신론자, 실천적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진정 사명감이 생기겠습니까? 자신을 왜 하나님이 이 땅에 태어나게 하고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피부를 느끼면 죽음의 순간이 이룰 때까지 이 일만은 꼭 이루어야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이고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감입니다. 사명감 있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쓰임받으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아닙니다. 사명감있는 사람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명자가 되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가정이 교회가 달리 보입니다. 이미 나에게 사명을 이루기 위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내가 어떻게 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부모를 위해 교회를 위해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며 사명감은 생기게 되고 그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반드시 이 땅에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실력으로 평가하지 말고 사명감으로 평가하십시오. 모세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스데반의 생을 예수님의 생을 잘못된 인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예레미야처럼 독신으로 살면서 민족을 위해 눈물흘리며 평생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명감을 이루는 삶이라면 잘 사는 길입니다. 때로는 에스더처럼 다니엘처럼 외국에 포로로 잡혀가 고난 가운데 민족의 해방을 바라보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 길이라면는 포로의 고통을 당해도 그것이 잘 사는 길입니다. 때로는 바울처럼 갖은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 길이라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순교자 스데반의 인생을 보며 베드로의 삶을 보며 누가 불행한 인생, 잘 못 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든,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권력이 있는, 권력이 없든 그곳에서 주님의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잘 사는 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사명, 나의 자녀에게 주신 사명, 우리 가정에게 주신 사명, 우리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명을 알고 있다면 그 사명을 이루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 삶이 잘사는 삶입니다.
    신앙 안에서 분명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 시대를 살고 간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의 가정을 보십시오.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 있는 통나무집 앞에는 이런 푯말이 꽂혀 있다고 합니다. "이 집은 작습니다. 그러나 이 집은 위대한 집입니다. 이 집은 작습니다. 그러나 이 집의 후손들에 의해 오늘의 미국은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이 집의 주인이었던 조나단과 사라 부부는 12명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 1명은 일찍 죽고 나머지 11명은 건강하게 자라서 모두 사회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그리고 5대에 걸친 가계를 통하여 그 가문은 한 사람의 부통령과 3명의 주지사. 3명의 대도시 시장, 13명의 대학 총장, 139명의 변호사, 33명의 판사, 116명의 목사 및 선교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8명의 의사, 66명의 교수, 82명의 고위관리를 배출하였습니다. 사명감이 투철한 하나님을 잘 섬기는 한 목사님의 가정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죽음 앞에 서 있는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딤후 4:6)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8)
    사명자의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예수님의 고백을 보십시오. "다 이루었다." 얼마나 위대한 고백입니까?
    이 고백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고 우리 자녀들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3. 기독교적 가치관이 분명한 자녀들이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는 당시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이며 대 제사장이었습니다. 98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스승으로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삼상1:3,9)하였습니다. 자신도 들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듣고 달려온 사무엘에게 시기하지 않고 올바르게 지도할 만큼 사심없는 신앙이었습니다(삼상3:1-9) 슬픔에 찬 한나에게 하나님의 평안과 자비를 구할 만큼 사랑과 긍휼이 있는 지도자였습니다(1:17)
    그런데 엘리와 그의 자녀들은 말년에 인생이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노년에 백성의 존경 못받지 못했습니다(2:22,23;3:13) 두아들과 엘리 비명횡사하였습니다(삼상4:5-11,4:18) 물질적 긍핍하였습니다(31-34, 36). 제사장 직분을 잃어 버렸습니다.(35)
    무엇보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되면 안될 줄 압니다. 저는 목회자로 참 이 모습을 보면 저는 이런 삶을 다시 한 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들을 살펴보았지만 마지막 한 가지 더 이유를 살펴본다면 가정에서 기독교적인 삶이 실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진정 크리스천이 아니라 직업 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버지인 엘리까지 그렇게 매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아들들은 분명 그렇습니다.
    제사장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못했고 사명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간음하고 하나님의 제물을 도둑질해 갔습니다. 그를 신앙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불량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12). 그러니 자연스럽게 가치관이 혼동되고 바른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지 못했습니다. 자녀를 불량배처럼 살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인생 살이에 있어서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물질을 쌓으면 가치있다고 생각하여 성전의 제물까지 훔쳤습니다.
    그들은 쾌락을 즐기는 것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간음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정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 중심 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인생을 사는 것이 참으로 인정받는 가치있는 삶입니다.
    세상 중심보다는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참 행복을 누리는 가치있는 삶입니다.
    현세 중심보다는 내세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입니다.
    쾌락 중심보다는 섬김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영원한 만족을 누리는 삶입니다.
    잘 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공부 잘하고 출세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되면 무엇하겠습니까?
    요즈음 우리 나라 교육을 보면 미국을 쫓아가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책 담당자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미국 교육의 현 주소가 어떠합니까? 인본주의 교육 아닙니까? 물질 지상주의 교육아닙니까? 쾌락 지향주의 교육이 아닙니까? 미국의 아이들이 매 8초마다 1명이 학교를 그만두고 중퇴하고 있으며, 매 26초마다 1명이 가출하고 있으며, 매 47초마다 한 명은 학대를 받고 있고, 매 67초마다 1명은 10대로서 아이를 낳고 있고, 매 7분마다 한 명은 마약 관련으로 체포되고 있고, 매 36분 마다 한 명은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입고 있으며, 매일 13만 5천명의 어린이들은 학교에 총을 가지고 간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서운 Aids감염율이 청소년 3000명당 한 명 꼴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 유학보낸다고 다 잘 되겠습니까?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자녀가 참으로 잘사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하면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사는 것의 척도는 아닙니다. 환경 미화원으로 살든 농부로 살든 탄광 광부를 살든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의미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길입니다. 뭐가 가치있고 뭐가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는 자식에게 이런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엘리는 자기 자녀의 행실을 소문을 듣고 나서야 알 정도였습니다.(삼상2:24) 그 만큼 자녀에 대한 무관심하였습니다. 자식의 잘못을 알고도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주의하여 관할 할 내용이 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불법을 습관적으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 제사장인 아버지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다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23절 보십시오. 엘리 제사장이 백성들에게 소문이 다 퍼진 후에 백성들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이정도로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만큼 징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삼상3:13) 성경 삼상3:13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위장된 사랑과 방임주의, 무조건 사랑이라는 이상한 병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 기죽이지 않기"가 유행합니다. 어른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잘못된 행동과 고집을 묵인합니다. 기를 죽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사가 체벌을 가하면 검찰에 고소해 버리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신의 자녀 반을 망원경으로 감시하는 부모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진정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영국의 대부호 케어리(Carey)씨는 두뇌가 아주 명석한 두 아들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아들의 이름은 조지(George)와 윌리엄(William).두 아들은모두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다. 어느날 케어리씨는 두 아들을 불러 장래희망을 물었다.
    조지의 대답은 아버지를 기쁘게 했다."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부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윌리엄의 대답은 아버지를 실망시켰다."저는 인도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영혼을 구원하겠습니다" 케어리씨는 둘째아들을어리석은 녀석이라고 비난했다.
    세월이 흐른 후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갈렸다.조지는 대부호요 정치가로 명성을 얻었고,윌리엄은 인도선교사가 됐다.대영백과사전은 두 사람의 이름을 모두 수록하고 있다.윌리엄에 대해서는 두 면을 할애해 자세히소개했다.그러나 대부호인 조지에 대한 소개는 단 한줄 뿐이었다.`윌리엄케어리의 형'.
    형식적으로 밥먹을 때 기도하고 형식적으로 주일이면 예배당에 억지로라도 나와야 하는 하나님을 알게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삶을 지배하는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이 계시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실 때는 장로님 집사님인데 날마나 술에 취하여 부부가 싸우고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겠습니까? 자식들에게 단지 하나님은 악세사리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를 때 잠시 틈내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녀의 전부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잃을 다 할지라도 하나님만 잃지 않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진학을 위하여 방학시켰다가 대학 들어가서 잘 다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 가정은 하나님이 중심의 가치관, 교회 중심의 가치관, 성경 중심의 가치관 내세 중심의 가치관이 분명치 않았습니다.
    자녀가 잘 되는 길이 있습니다.
    1.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자녀들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잘되고 자녀의 미래가 보장받습니다(29).
    2. 사명감을 분명히 가지게 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잘 살게 됩니다.
    3. 기독교적 가치관이 분명한 자녀들이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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