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가 있는 어린이(사무엘상 2:18-26)
  • 조회 수: 176, 2013.02.01 16:42:30
  • 올해 15세가 된 이희아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두 손에 붙어있는 '네 손가락'이 전부다.
    선천성 기형으로 막대기처럼 가늘게 붙어 있던 다리도 세살 때 절단했기 때문이다.
    1967년, 간첩을 잡는 작전에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와 간호사로서 이씨를 돌보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희아가 기형이 된 것은 엄마가 임신사실을 모르고 감기 약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이렇게 불행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희아는 지난해에 동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동화책의 이름은 [네 손가락의 즉흥환상곡]이다.
    희아는 피나는 노력 끝에 전국 피아노 연주대회에서  '열 손가락' 다른 어린이들을 모두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오늘도 세계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9년째 건반에 매달려 사는 희아의 짧은 생애를 동화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지만 누구보다도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희아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의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오체불만족]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일본의 '오토다케'라는 청년의 경우도 그러하다.
    발이 없는 짧은 다리와 손이 없는 짧은 두 팔로 동경대학을 다니며 공부하는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미래는 주어진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므로 미래가 있는 아이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것에 따라 미래가 있는 아이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1. 미래를 만들어 가는 아이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사무엘이라는 아이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한 집에서 자랐으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
    사무엘은 미래가 있는 아이로 자라가지만 엘리의 아들들은 보장된 미래도 발로 차버렸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는 전혀 다르게 결론이 났다.

    먼저 엘리의 아들들의 모습을 보자.
    엘리는 제사장이었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전에 살면서 제사를 주관하는 일을 하였다.
    엘리는 항상 성전에서 살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들도 성전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홉니와 비느하스였다.
    그들의 미래는 보장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제사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또 하나님께 헌신되어야 할 그들이었다.
    그래야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그런 처지였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모습은 어떠한가?
    12절을 보자.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만 섬기다 보니 돈을 벌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시기를 제사 드릴 때,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 제물의 가슴 부위와 오른 쪽 뒷다리를 제사장 몫으로 하라고 명하셨다.(fp7:30-34)
    이렇게 구별된 몫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의 아들들은 더 많은 욕심을 부렸다.
    삶은 고기가 싫어서 생고기를 먹으려는 미식가로서 욕심을 부렸으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폭행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억지로 빼앗기까지 하였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철저하게 멸시하였던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성전 안에는 회막이라고도 불리는 성막이 있는데 거기에는 제사장 가문의 여성들도 한 부분을 맡아서 섬기고 있었다.
    엘리의 아들들은 여인들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들은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그 여인들을 꼬드겼으며, 동침을 하였다.
    이러한 행위들을 공공연히 했던 모양이다.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진 소문이 마침내 그들의 아버지인 제사장 엘리에게까지 들려졌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수업을 받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오직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여러분, 엘리의 아들들은 좋은 입장에 서 있으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갔을까?결국에는 제사장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궤를 이웃 나라에게 빼앗겼으며,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한 번 죽은 것이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하나님의 징벌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자초하였다.

    여러분, 좋은 위치와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자신의 미래를 자기 스스로 망쳐가고 있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망치는 성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2.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무엘

    이런 엘리의 아들들과 한 집에 함께 살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에 비교할 때,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사무엘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이들은 벌써 아버지를 도와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형뻘 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
    21절을 보자.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부모가 있음에도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성전에서 자라야 했다.
    환경으로 치면 엘리의 아들들에 비하여 훨씬 열악한 환경이다.
    그러나 26절을 보자.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에 비하여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형들을 제치고 엘리의 뒤를 이어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감당할 후계자로 자라가게 된다.

    그러면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과 함께 한 집에 살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
    지난해에 '한국교육개발연구원'에서 한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해서 4년제 일반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들어가는 교육비를 산정하여 발표하였다.
    99년 기준으로 공교육비 5천15만원과 가정 사교육비 5천29만원을 합쳐 약 1억44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발표하였다.
    이는 94년의 6천8백여 만원에 비해 대략 47% 정도 늘어난 규모라고 한다.
    갈수록 각 가정에서 부담하는 사교육비는 늘어날 전망이다.

    여러분, 사무엘의 부모님들이 사교육비를 많이 들였기 때문에 엘리의 후계자로 자랄 수 있었을까?
    반대로 엘리의 아들들은 아버지 엘리가 사교육비를 덜 지출해서 그렇게 미래를 망쳤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사무엘의 미래가 엘리의 아들들과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었을까?

    그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사무엘은 환경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한 사람을 교육시키는데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교사, 학생, 교재가 그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환경을 추가하여 교육에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교육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것이다.

    사무엘이 자라는 환경을 살펴보자.
    교사인 엘리가 사무엘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하지만 함께 교육을 받고 있는 엘리의 아들들에게 받는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잘못하면 왕따를 받을 수도 있으며, 교육을 계속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친구와 선배라는 환경에 지배당하기보다는 오히려 환경을 극복하고 있다.
    형들을 전혀 따라 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뿐인가?
    엘리는 자기 집에서 자랐다.
    그러나 사무엘은 부모님을 뵐 기회를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가지지 못했다.
    19절을 보자.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그러니까 어린 사무엘은 부모님을 1년에 한 번 정도 밖에 뵐 수 없었다고 할 것이다.
    거기에다 옷도 1년에 한 벌 정도 밖에는 얻어 입을 수 없었다고 할 것이다.

    여러분, 이런 정도면 부모님을 원망하며, 한번쯤 일탈행위를 할 수 있을 만하다.
    "나는 왜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는가?"
    "나는 왜 이렇게 기운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사무엘은 이런 환경에도 개의치를 않았다.
    사무엘의 환경은 그 어느 것 하나 좋다고 할 것이 없다.
    다른 아이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거론하고 환경을 탓할 시간에 사무엘은 교육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 두 번째는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랐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았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사는 것을 밤낮으로 즐기라는 말씀이다.
    어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어쩌다가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엘리의 아들들이 즐기며 살았던 삶과 비교해 보자.
    엘리의 아들들은 무엇을 생각하면서 자랐나?
    먹는 맛에 살았다. 미식가로서 음식을 골라 먹는 재미에 살았다는 말이다.
    또 간음하는 재미에 살았다. 필요하면 결혼을 하여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면 될 것을, 그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구속받지 않는 성생활의 재미에 빠져 살았다.
    혼외 간음을 즐기는 재미로 살았다는 말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을 재미 삼아 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자랐다는 말씀의 의미는 분명해 졌다.
    사무엘은 자라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즐기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 종류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결코 미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미래를 준비하는 어린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다.
    안되었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이를 들먹일 사람이 누가 있는가?
    먼저 부모가 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즐기므로 미래를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50대 어린이가 되었을 때, 70대 어린이가 되었을 때, 내 모습은 어떠할까?"라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자.
    그래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어린이 여러분들도 환경 탓이나 하지말고 부모님들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즐기도록 하자.
    그래서 환경도 이겨내면서 멋진 미래를 만들어 가는 멋있는 어린이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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