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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골로새서 01:13-14/ 세상 나라와 하나님 아들의 나라 [주일낮]
  • 조회 수: 732, 2017.03.05 15:47:21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볼 때 거대하고도 근원적인 제도적 변화단계를 세 번이나 거쳤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 첫 번째 단계는 에덴낙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후 에덴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이 세상입니다. 이는 마귀와 인간의 합작품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세 번째 제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를 외치시면서 하신 말씀이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제도에 사는 사람들을 건져내사 그의 나라로 옮기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세상에서 경험한 이 세 가지 거대한 변화에 관해 살펴봄으로써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단계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가를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에덴낙원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을 지으신 후 그곳에 낙원을 만들어서  아담으로 하여금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절대 신뢰, 절대순종의 의무만 가지면 영원히 살 수가 있었습니다. 에덴동산 안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죄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고...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병드는 것이나 아픈 것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마귀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눈물과 고통, 시련과 괴롬도 없고 죽음도 물론 없었습니다. 사람은 원래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고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졌기에 낙원제도 속에는 오직 행복과 아름다움과 풍성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낙원제도 속에는 율법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정녕 죽으리라'.... 법이란 이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이 법만 지키면 그들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전 인간에게 세운 사회적 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되었습니까? 마귀가 낙원에 들어와서 아담과 하와를 꾀었습니다. '너희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너희도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하게 되고‘’‘' 아담과 하와는 이런 마귀의 꼬임에 빠져 낙원의 율법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마귀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제도인 것입니다.


    2. 이 세상


    세상제도...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 고통과 괴로움, 슬픔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제도는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 세상제도는 하나님을 등진 아담이 마귀와 짝을 지어 합작품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마귀가 주권자이고, 모든 것은 마귀의 지배 하에 있습니다. 마귀의 지배하에 인간이 이루어가는 이 세상은 미움이 꽉 들어차고 상호불신하고 경쟁하고 물고, 뜯고, 찢는 싸움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존재적으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덕적 상실에 대해 로마서 1장 28절로 32절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사실 이 세상나라의 시작은 인간의 아들들 가운데서 태어난 니므롯... 즉 영웅호걸들에서부터입니다. 이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영웅이죠. 힘이 쎄고, 잔인하고, 쾌락적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부족을 통합하고 나라를 만들고... 그리고 그들끼리 정복전쟁을 벌리면서 강대국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왕국의 이면에는 음란과 술 취함, 쾌락, 술수와 권력쟁투... 등의 온갖 죄악들이 쌓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명의 시작도 하나님의 아들들에게서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창세기 4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과 세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란 자연이 아니며 인간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시스템, 제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부조리, 불합리, 불의.... 이런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탓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마귀와 인간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놓은 결과인데 왜 하나님을 탓하죠? 오히려 마귀를 탓해야 하죠. ‘이 마귀야 너 때문에 내가 되는 일이 없다.’


    마귀가 지배하기에 이 세상은 병과 저주가 횡행합니다. 가는 곳마다 병과 저주가 있습니다. 가난이 있고 낭패와 실망, 실직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패와 죽음이 이 세계를 다스립니다. 개인이 부패하고 생활과 국가와 제도가 부패하고 그리고는 죽음이 종국적으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오늘날 세상입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만든 적이 없으시니 세상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낙원제도를 만드셨지, 세상제도를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세상제도는 바로 마귀와 인간이 합작해서 만든 것입니다.


    아들의 나라


    이런 세상에서 죄악으로 신음하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망가뜨린 세상제도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여 제 2의 에덴이라 할 수 있는 아들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 나라는 죽어서 가는 영원한 천국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아들의 나라는 영원한 천국과 이 세상과의 사이에서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닌 나라이죠. 왜? 이 나라에는 필연적으로 전쟁이 있습니다. 마귀의 공중권세가 있는 이 세상에 그 아들의 나라를 세우니 당연히 마귀가 가만히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적인 전쟁 승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 하면 이미 이 세상의 권세는 예수님 앞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악한 귀신들이 떠나가고, 이 악한 귀신으로 말미암아 각종 질병으로 신음하는 자들, 압제당하는 자들이 치유 받고, 자유가 되며, 해방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까지 물리치시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은 아담으로부터 말미암은 원죄의 저주에서부터 우리가 해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만이 천국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아들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은 천국이며, 이 완성된 아들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이 아들의 나라에 참여하여 마귀의 잔존 세력들을 척결하며 그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세계 곳곳에 전파되며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택하신 자들이 그 수에 다 차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해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자비와 긍휼, 은총을 다 거두어 가심과 동시에 그의 아들의 나라 완성을 위해 이 세상을 멸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종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개인적으로 맞이하는 종말입니다. 쉼 없이 영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믿음으로 살다가 우리 이 육체의 옷이 다 헤어지면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물론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이기에 당연히 두렵죠. 미지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인데... 그러나 이는 연습도 없고, 두 번 해 볼 수도 없는 경험이니 우리는 단지 믿음으로 이 순간을 담담히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나 결코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우주적인 종말을 믿지 않지만 저는 철저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이전 교회에서도 이런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끝까지 강해하며 설교했습니다. 거의 46회에 걸쳐서 주일 오후예배 때마다 설교해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다만 저는 언제 이 우주적인 종말이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정하고, 사랑이 식어가며... 복음의 빛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보면 이 우주적인 종말도 과히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신앙의 옷깃을 여밀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불신의 시대 가운데 살면서 더욱 이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무장해서 주님 나라 이 땅에 완성될 때까지 영적인 전쟁에 임하여야 하며 긴장을 늦추지 말고 더욱 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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