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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계시록 3:7-13/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주신 말씀 [계시록]
  • 조회 수: 907, 2013.02.02 16:05:28
  •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데 지역에서 동남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내륙에 위치한 도시에 있었습니다. 그 곳은 "작은 에덴"이라고 불릴 만큼 문화적으로 화려한 꽃을 피웠던 도시였습니다. 특히 이곳은 포도가 특산물로서 유명한 고원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곳은 서방세계와 동방세계가 문화와 무역을 쉽게 하기 위해 이를 연결시켜주는 도로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로마로부터 드로아, 버가모, 사데를 지나오는 당시 최고의 교통요지로 주목을 받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이 지역은 상업과 공업이 매우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던 지역이었습니다.

     

    빌리델비아 지역은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의 7개 지역 가운데서 가장 도시 역사가 짧은 곳으로서 버가모의 임금이었던 "아탈루스 2세"가 자신의 동생을 위하여 건설한 도시로서 처음에는 "필라델포스"라고 불렀습니다. 이 "필라델포스"라는 말은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필라’는 형제 사랑, 델포스는 형제를 의미하죠. 그래서 합성어가 되어 필라델포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에로스. 스톨게, 필리아, 아가폐... 헬라어로 4 가지 사랑 중에서 에로스는 연인의 사랑, 스톨게는 친구 간의 사랑, 필리아는 형제 사랑, 아가폐는 헌신적 사랑....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 간의 우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필라델포스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후에 필라델피아.... 이렇게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지역은 원래 지진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인데 A.D 17년에 일어난 큰 지진으로 인하여 주위의 크고 작은 도시 10개가 같이 파괴되었을 때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에 의하여 새롭게 도시가 건설되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이 무너진 도시를 건설해준 로마 황제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였는지 이 도시를 "네오가이샤라" 라고 불렀습니다. 이후에 도시 곳곳에 황제의 신상을 세워 그를 경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 도시에서 얼마나 황제숭배사상이 강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황제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도시에서 삶의 주님을 예수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먼저 빌라델비아 교회에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다음 구절을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전의 교회에 오신 무서운 심판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교회에는 무시무시하고 엄중한 심판주로 나타내신 것과는 다릅니다. 다른 교회에는 주님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왜? 교회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니까... 그러나 빌리델비아교회에는 위협적이지 않죠. 오히려 위로를 주는 주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에 편지를 하시기를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고 말씀하시고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이라 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다윗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열쇠라는 말은 권위 와 통치권자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옛날에 집안에서 쓸 물건을 창고에 넣어두는데 그 창고 열쇠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때가 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그것을 물려주는데, 그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집안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은행의 통장을 쥐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은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모든 권세를 가진 이라고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분 주님.... 이 말은 빌라델비아교회가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는데 주님은 충분히 그럴만한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인간이 있어요. 최선을 다하여 우정을 지키고, 맹세를 지키고, 배신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는데 알고 보니 그럴 가치가 없는 인간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교회가 충성하고, 섬기고, 주로 삼은 주님은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실 수 있는 그런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서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1. 열린 문의 축복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8절에 나와 있는 “열린 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열린 문이란 어떤 문을 의미할까요? 그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회가 아닐까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환경과 기회를 탓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의 문을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켰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서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무슨 말일까요? 열린 문, 가능성의 문에서 이들은 하나님 앞에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 어쩌면 좁은 문을 향해 늘 선택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지요.


    언제나 변명자들은 환경을 탓합니다. 이러이러 해서 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이 주님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변명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차한 변명자가 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 해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배반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는데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적은 능력이라는 말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사회적인 신분으로도 보잘 것 없는 미약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서도 나를 간절히 사랑하고 섬겼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자가 헌금 한 것 하고, 가난한 사람이 헌금한 것 하고 물리적인 면에서 같이 보지 않았습니다. 부자의 헌금은 부자에 입장에 맞추어서 해석하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그 가난한 과부의 입장에 맞추어서 해석해 보니....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이 정말 정성스러운 헌금이더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빌라델피아교회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다른 큰 교회들에 비해 볼 때에는 보잘 것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델피아교회는 그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모든 것을 다 한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바라보며 그런 교회들처럼 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최선을 다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그 당시에 부자는 신앙생활 하기가 조금 쉬웠을 것입니다. 적어도 신앙 때문에 먹는 문제에 대해서 어려움을 당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없는데 예수를 믿으면 너와는 아무 거래도 하지 않겠다... 이러니까 얼마나 신앙을 지키기가 어렵겠습니까? 아마도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은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말씀에 순종했다는 뜻이죠?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예컨대 신앙을 버려야 물품 거래를 할 수 있다.... 신앙을 버려라. 황제를 숭배하라, 황제는 신이다, 황제에게 기도하라.... 그러면 황제가 너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다는 것이죠, 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데 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참 이런 빌라델비아교회를 보며 우리는 가슴 아픈 성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조금만 이익이 상충되면 교회를 떠나겠다, 다른 교회로 옮기겠다.... 작은 교회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말이 교회를 옮기겠다는 말입니다. 안 그래도 교인이 없는데 교회를 나가겠다 그러면 얼마나 위협이 됩니까? 천 명, 이천 명... 이런 대형교회에서는 이런 위협이 통하지 않는데 작은 교회에서는 교회를 옮기겠다 그러면 위협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 위협을 주고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이 복 받을 일입니까? 툭 하면 교회 옮기겠다.... 위협합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배워야 합니다. 제가 이전 교회 목사님한테서 배운 게 있어요.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되어 믿음이 약해 교회에 나오지 않으려는 경우는 찾아가고, 가르쳐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러나 중직자 중에 누가 교회를 옮기겠다 그러면 그냥 가게 버려두라 그럽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아는데 교회 나오고 안 나오고의 책임은 순진히 자기 책임이다. 중직자 수준에서 교회 안 나오겠다, 교회를 옮겨버리겠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나온들 하나님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냔 것이죠. 그리고 중직자가 같은 지역에서 다른 교회에 옮길 때에는 절대로 본 교회에서 항존직 받은 내용을 이명서로 써 주지 않습니다. 그 교회에서 다시 항존직을 받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불만 가져 그 교회로 옮겼는데 그 교회에서인들 올바로 섬기겠느냔 것이죠. 물론 요즘 시대에는 이런 조치도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만.... 하여튼 어렵다고, 기분 나쁘다고, 교회에 안 나온다든지, 교회를 옮기겠다든지.... 이렇게 목사를 위협하고, 교회를 위협하는 것은 그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만 두시겠습니까?

     

    이런 측면에서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께 칭찬받기에 합당하며 그만한 칭찬을 들을 가치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런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해 주님은 몇 가지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 항도교회 성도들도 이런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1. 열린 문을 네 앞에 두노라..... 지금까지도 그렇게 했거니와 앞으로도 내가 너를 위해 열어놓은 문을 어느 누구도 닫을 자가 없을 것이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가 형통하려고 하면 주님이 우리 앞에 문을 열어놓아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닫으면 열 자가 없고, 주님이 열면 닫을 자가 없으리라.... 모든 일의 성취가 다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왜 점쟁이에게 돈을 갖다 줘요. 그들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취직의 문, 합격의 문, 결혼의 문, 승진의 문..... 모든 가능성의 문은 주님이 열어야 열리는 줄 믿습니다. 지금껏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다 했던 것도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는 그런 심정으로 주님을 꼭 붙들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주님 앞에 진정한 예배자로 서리라.... 이런 빌라델비아교회이기에 주님은 그 앞에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입니다.

     

    이 빌라델비아교회를 보면서 우리가 주님께 약속해야 합니다.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오히려 환경이 더 열악해져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이 환란이 변하지 않아도.. 나는 계속 예배자로 서 있겠습니다. 이 현실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나는 계속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기묘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무한하신 지혜와 섭리와 사랑으로 판단하셔서, 가장 적합한 환경을 내게 주신 줄 믿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크시고 깊으시고 정확하신 뜻을 내가 알고 의지하기에 내 인생은 실수가 아니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요, 사고도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이오니, 나를 부르신 이곳에서, 이곳이 비록 아픔의 현장이요, 산산 조각난 가정이요, 가난과 빈곤의 현장이라도, 사방이 막힌 숨 막히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이곳이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예배의 처소라면, 나는 예배하겠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그리심 산에서도.. 이제는 예배드릴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부르신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기묘자 되신 주님을 신뢰하기에 저를 부르신 이곳에서, 주님을 예배하게 하소서!’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항도교회가 되면 주님께서 우리 항도교회에도 이런 형통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기를 기대합니다.

     

    둘째,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여러분.... 작은 시험을 이기는 자는 큰 시험을 면하게 됩니다. 흔히 편하게 살려고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오면 인내하지 않고 이리 저리 피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찰라요, 한 순간일 뿐입니다. 결국은 작은 어려움 면하려다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고, 고난의 연속에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주님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신앙의 승부수를 던진 이 승부사들에게 더 이상의 승부는 없다... 너희는 진정한 승리자들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다 겪게 될 그 모든 험난한 시험에서 너는 빼 주겠다.... 이게 주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비겁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변명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매 순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정면승부를 해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맞서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의 길을 선택하고 어려움이 오면 그 어려움을 맞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가 당할 더 큰 어려움을 피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흔히 그러잖아요. 늦가을이 되면 독감 접종을 하는데 독감 접종을 하면 작은 감기가 지나가죠. 그럼으로 독감 같은 큰 감기를 면하게 되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위해 정면돌파 하면 그 다음에는 크 시험을 면하게 하는 축복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셋째, 원수들이 굴복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어디 가나 유대인들이 문제입니다. 이 유대인들이 빌라델비아교회도 얼마나 괴롭혔는지... 이 유대인들을 빌라델비아교회 앞에 고개 숙이게 하고, 굴복하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빠지면 안 되죠. 이 기둥이 되겠다 하는 것은 교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항도교회 중직자처럼 쓰시겠다는 말입니다. 역으로 바꾸어 말하면 중직자들은 다 이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최선을 다 해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교회는 일곱 교회 중 책망 없이 칭찬만 듣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두 교회 다 보잘 것 없는 교회입니다. 지금의 미자립교회 수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에 맞게 최선을 다 한 교회가 되어 주님이 보실 때에는 1등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1등 하고, 주님이 보시는 1등이 다릅니다. 지금 우리 서구의 교회들 점수를 매겨보면 사람들은 영락교회, 송도제일교회, 부민교회.... 뭐 이런 순으로 등수를 매길 것입니다. 사람도 많고, 돈도 많으니까 하는 일도 많고... 해서 그렇게 점수를 매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인간이 매기는 점수이고, 하늘나라에서는 우리 항도교회가 1등교회로 게시판에 붙여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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