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때에는(마 22:23-33)
  • 조회 수: 309, 2013.05.28 22:00:53
  • 예수를 음해하려는 사두개인들이 유대의 풍습인 계대 결혼제도(신25:5-10)를 근거로 질문을 하자 부활 후에는 현세와 같은 결혼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교훈하심으로써 자신을 해하려는 사두개인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폭로하시며 부활의 때에 있을 일을 설명해 주신다
    그래서 부활의 때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부활의 때에는 알지 못해 오해한 모든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Sadducees Saddoukai;o")들은   유대의 종교 및 정치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을 지지한 당파다.
    주전 2세기에서 예루살렘 멸망(후70)에 이르는 기간에 세력을 가졌던 당파로, 귀족계급에 속하고, 대제사장 및 예루살렘의 유력자들로 이룩되어 있었다. 바리새인과 대립했는데, 바리새인이 종교적인데 반하여, 그들은 아주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 수는 비교적 소수였으나, 교양도 있었고, 특히 제사장 계급을 독점하여 세력을 폈다.
    [사두개인]은 다윗,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적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 유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의로운] (차디크 qyDix')이라는 형용사에서 유래한다는 종래의 설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다만 다윗, 솔로몬에 쓰인 사독이 사두개인의 선조라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보수적, 현세적으로는 그리스 문화에 대하여 해방적이고 세속적이었다. 그 때문에 마카비 전쟁시대의 종교적, 민족적 혁신의 시기에는 냉대되었는데, 하스몬왕조 (그 초기의 지도자들은 마카비로서 알려진다)가 세속화됨에 따라 세력을 펴고, 이에 비판적이었던 바리새인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 경향은 뒤의 헤롯왕조의 친 로마 정책과도 영합하여,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적으로는 제사장 계급으로서 강화되었다. 공회의 의원도 많았다. 따라서 민중으로부터는 떠나, 인기가 없었다.
    그 신앙, 사상은 일면 보수적임과 함께 한편 극히 합리적, 현세적이었다. 그들은 바리새인이 부가하고 존중한 유전을 인정치 않고, 성문화된 모세의 율법만을 인정했다. 그 결과로, 부활도, 천사도, 영도, 일체의 존재를 인정치 않았다(막 12:18, 눅 20:27, 행 23:8). 또한 미래에 있어서의 보응도 부정하고,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음을 말하고, 의지의 자유를 주장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말해진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들은 예수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이러한 그들을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다(마 3:7). 그들은 예수에게 와서, 때로는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기를 청하고(마 16:1-4), 부활에 대해 질문을 제출하여 시험하려고도 했다(마 22:23-33).
    이들을 예수는 바리새인과 나란히 하여 비난했다(마 16:6, 11). 그러나 복음서를 통하여 바리새인만큼 비난의 대상으로 되어 있지는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바리새인 보다 옳은 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민중을 떠난 사두개인의 신앙은 예수의 시야에 들어오는 일이 적었던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 및 바울도 박해했다(행 4:1-22, 23:1-10). 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그들의 세력을 뿌리 채로 뒤엎어, 그후, 그들에 대해서 언급된 데는 별로 없다. 다만 바리새인의 가르침과 계속 대립되고 있었던 것이, 탈무드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쳐 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일곱 남편을 섬겼던 가상의 여인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그들은 만일 부활이 있을 경우 우리가 현재 존재하는 이와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부활이 있다면 이 여인은 내세에서 일곱 남편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것은 이 여인을 극심한 부조리에 빠뜨리어 그들 가운데 누구를 그녀의 남편으로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 큰 곤란을 겪게 할 것이다.  곧 그 여인은 그녀의 첫 남편을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마지막 남편을 선택해야 할지 또는 가장 사랑했던 남편을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해 모세의 율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제시된 모세 율법이란 자식 없이 죽은 자의 아내와 그의 동생이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계의 혈통을 잇게 하기 위한 법이었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의심스러웠던 점을 제시하고 있다.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28절).
     " 그 여인이 누구의 아내가 될지에 대해 말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부활이 없다'(고전 15:12)는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사실성이 객관적으로 계속 규명되어 가는데도 아직 회의와 불신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은 바로 이러한 자들의 효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부활에 대해 믿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무지함을 책망하시고 그들의 오류를 교정해 주시려고 부활에 대한 바른 견해를 피력하셨다.

     '너희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고로'(29 절)라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와 불신앙은 많은 오해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부활 자체를 부인해 버리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육체에서 구별되는 영혼의 존재와 작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정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인가'하고 묻고 있다. 
    우리가 전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면, 즉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면, 이 모든 불신과 무지로 인해 제기되는 신앙의 회의적인 문제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의 권능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다운 지식의 근원이 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활과 그 이후에 이루어지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기록된 성경 말씀을 알지 못했다(29 절).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신앙의 기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저들의 전통과 유전을 귀히 여긴 나머지 성경을 경시하고 그 뜻을 분별하여 사는 데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성경은 분명히 성도의 부활과 그 이후에 삶에 대하여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부활에 관한 교리는 기독교만이 갖는 독특하고도 신비한 내용이다.
    부활(Resurrection ajnavstasi")이란 다시는 죽는 일 없는 썩지 않을 영체로 다시 살아나는 일(롬 6:9, 고전 15:42-54)을 말한다.
    죽은 자의 부활이란, 야이로의 딸(막 5:21,35-43),베다니의 나사로(요 11:1-44), 또는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눅 7:11-17)등의 경우에 예표 되었다. 야이로의 딸,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의 경우는, 살아났다가 다시 죽어 썩어질 몸으로 살아난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은, 이미 죽는 일이라든가, 썩는 일 없는 영의 몸으로 부활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것은 다만 영적인 부활만이 아니라, 몸의 부활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부활체를 가진 부활인 것이다.
    현재의 인체는 혈기( psyche yuCh;)로 인간의 생명을 머물게 하는데는 적당한 몸이지만, [하나님의 영]을 모시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부활체는 이것과 반대로, [썩지 않을 것]으로서 영원히 사멸하는 일이 없는 조직으로서 형성되어 있을 부활체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그 뜻대로 생명의 장단을 정해주셨다. 그것과 한가지로 무궁한 생명을 주시는 일이나 부활체를 주시는 일 모두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서, 현재의 몸의 불완전성이 모두 제거된 영체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육체와 부활체는 다른 것으로서, 하나님은 그 뜻대로 믿고 부활한 자에게 불멸의 완전한 영광의 몸을 주시게되는 것이다(롬 6:9, 고전 15:42-54).
    에스겔은 이러한 사실을 예언하였으며(참조, 겔 37 ; 11, 12), 또한 다니엘도 분명히 이 사실을 언급하였다(참조, 단 12 ; 2).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신앙의 열렬한 신봉자였는데, 사두개파의 사람들은, 부활사상을 부정하고 있었다(행 23:8). 그러나 바리새파의 사람들은, 의로운 유대인만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 그것에 대하여, 전 인류의 부활을 믿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바루크서 50:2-4, Ⅳ 에스드라 7:32).
    신약 중에 기록되어 있는 부활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하여 말해져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마지막 때의 전 인류의 부활, 즉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신자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거부한 불신자의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성경대로'(고전 15:4) 다시 살아나셨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와 같이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성경을 알지 못하거나 또 지식적으로 알더라도 그것들을 믿지 않거나 그것들의 참된 의미와 의도를 알지 못하는 자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가장 큰 불행이다.

    불신자의 경우는,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이므로,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련이 있다고는 꼭 말하기 어렵지만, 부활이라는데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이다. 

    죽은자는 모두 부활한다(고전15:12-22)
    인간은 영과 몸과의 유기적 통일체인데서, 죽음에 의해 영과 몸이 분리된 후, 다시 영체와 결합하여 비로소 완전한 인간으로 되는 것이다. 몸은 썩을 것에서, 썩지 않을 것으로 부활하여 재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사후 부활한다.
    그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고전 15:12-16). 성경이 예언하고(고전 15:47),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리 말씀하신것(마 16:21,17:9, 23, 20:19, 27:63), 예수 그리스도를 장사한 무덤은 비어 있었고(눅 24:1-9),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요 20:19-29, 고전 15:58).
    그것을 본 제자들은 능력 있는 자로 변화되고(행 2:32, 4:2-22, 5:40-42), 교회는 세워져 발전되었다. 어찌 죽은 자, 썩어 없어진 자를 위해 생명의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그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순교까지도 흔쾌히 하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또는 그리스도이신 것의 증명이었다(롬 1:4). 그것은 우리의 구원 위한, 십자가 상에서의 속죄의 완성이며, 증거로 된 것이다(행2:32-36, 롬 4:25). 이것은 또한,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부활할 일의 보증이다(롬 6:5, 8:11, 고전 15:20, 살전4:14).
    부활의 몸은, 썩지 않을 영광의 영적 몸, 부활체이다(고전 15:42-54).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가, 신천 신지에 들어가기 위해 부활하는 것과 한가지로(요5:29, 계 20:5-6, 21장).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는,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한다(요5:29, 계 20:11-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때,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마 27:52, 53),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최후에 부활할 것의 전조로 여겨진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일요일로서(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 주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뜻에서, [주의 날(주일)](계 1:10)로 불리운다.
    부활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나스타시스  ajnavstasi"]가 거의 전부이고 (마22:23,28,30,31, [에게르시스 e[gersi")와 마27:53) [엑사나스타시스 ejxanavstasi"]가(빌 3:11) 1번씩 씌어져 있다.

    2. 부활의 때에는 세상적인 것과는 다른 신령한 몸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한 그들의 오류를 시정하시고, 또한 그들이 부활과 미래 상태에 대해 가졌던 그릇된 사상들을 교정하시며 더 나아가 이 교훈을 기독교의 참되고 영원한 진리의 기초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느니라'(30 절).
    우리의 현실적인 삶의 세계에서는 결혼이 필수적이다. 다른 제도들은 중지되거나 변형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제도는 결코 폐기될 수 없으며,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세계에서는 이 현실 세계에서와 같은 혼인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변화된 성도들은 이제 이성과의 결혼이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 중의 모든 것'이 되시는 곳에는 또 다른 배우자가 불필요한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의 육체는 영화롭게 될 것이며, 육체의 온갖 정욕들이 자리 잡지 못한다. 그곳은 사망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더 이상 출생도 없으며, 자손이 없어질 염려가 없기 때문에 혼인도 없다. 세상에서의 모든 결혼은 이제 성도들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의 영원한 혼인으로 대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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