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23:39-44/ 초막절의 감사
  • 조회 수: 1486, 2018.05.24 15:40:47


  • `본래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라는 것은 영국 청교도들이 미 국에 도착한 그 전통에서부터 유래 한 것이죠. 그러나 성경에서 이 추 수감사주일과 가장 비슷한, 유사한 절기를 찾는 다면 그것이 바로 초막 절입니다.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초막절이라고 불리워 집니다. 해마다 이 명절이 되면 이 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나가서 본 래 옛날에는 그랬어요. 광야에 나가 서 빈 들에다가 초막을 짓습니다. 요즈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집 옆에다가 붙여서 초막 하나를 만 듭니다. 네 개의 그 프레임에다가 캔버스나 혹은 팬널 같은 것으로 사 방을 만들어서 벽을 만든 다음에 그 위에다가는 감람나무 혹은 종려나무 혹은 버들가지들을 얹어서 지붕을 만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호텔 같 은 데도 전번에 우리가 초막절 때 성지 순례를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호텔 옆에다가도 이 초막을 만드는 것을 봤습니다. 호텔 식당 옆에다가 만들어 갖고 그 식당에 들어가서 먹 는 사람도 있지만 식당 옆의 간이 초막 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식사를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리 고 성경도 읽고 예배를 드립니다. 특별히 시편을 읽기도 합니다. 이것 을 가리켜서 이런 초막을 가리켜서 히브리 사람들은 수코트 이렇게 부 릅니다. 수코트. 제가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을 만나 보니까 이 사람들 은 이것을 영어로 수카 이렇게 부르 더라구요. 수카. 그런데 히브리 사람 들은 수코트 이렇게 부릅니다. 그들 은 자기의 수코트를 잘 만들 뿐만 아니라 남의 집의 수코트도 돌아가 면서 방문하면서 서로 어울려서 파 티를 열고 한 주간 동안 일 주일 내 내 즐거워 하는 명절 가운데서도 아 주 기쁨의 절기라고 할 수가 있습니 다. 

    요컨대 이 초막절은 지나간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 와서 광야의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 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을 감사 하는 절깁니다. 그 광야를 행진할 때 낮에 구름 기둥 인도했죠 열사의 사막에서는 그 사막에서 태양을 견 딘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 니다. 그러나 이 구름 기둥이 일종 의 천막 역할을 해 줍니다. 피난처 가 되고 보호막이 되고 또한 그 구 름 기둥이 가면서 계속 이 백성들을 인도했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이 가야할 목표와 방향을 알려 주어서 그들은 걸음 걸음마다 하나님의 인 도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배 고팠을 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 기를 내려 주시고 마실 것이 없었을 때 반석을 깨어서 거기서 샘물을 솟 게 하신 그 하나님의 공급의 은혜를 그들은 기억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그 절기 초 막절에 맞춰서 이제 추수가 다 끝납 니다. 그러니까 농사 짓고 수확을 거두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 는 절기죠. 그러나 그것 말고 이 초 막절은 특별히 세 가지의 감사의 초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가 정에 대한 감사, 둘째는 믿음의 공 동체에 대한 감사 또 하나는 영원한 소망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첫째는 가정에 대한 감삽니다. 이 수코트 라는 것은 이 초막, 천막 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것입 니다. 그래서 수코트는 가족에 의하 여 혹은 가족들을 위하여 만들어 지 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시련이 있었 지만은 그들은 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에너지가 가족 때문에 가능 했다고 믿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 편,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녀 들, 가족 사이에서 나누어 지는 그 사랑의 힘이, 사랑의 에너지가 그 광야의 고난과 역경과 시련을 이길 수가 있는 그런 힘의, 용기의 근원 이 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현대를 가리켜서 소위 핵가족화의 시대 라고 불리워 집니다. 편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는 이제는 식구들이 많아 지 는 것이 부담스러운 시대가 되었습 니다.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 부 담스럽다고 생각하죠? 심지어는 부 모님조차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자 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부모는 자녀를 하나 늘어날 때마다 부담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확실히 많습니다. 가족을 이제는 짐 이라고 burden 이라고 생각하는 사 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런데 제가 탈무드에 읽어 보니까 아 주 재미나는 얘기가 있어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새의 날개 와 같다. 새는 날개를 부담으로 여 기지 않는다. 새는 날개 때문에 오 히려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비상할 수가 있다.

    제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들 을 꼭 한번씩 만나서 상담을 한 다 음에 주례를 합니다. 그냥 주례하지 않습니다. 꼭 한번 대화를 나눕니다. 그때 제가 어김없이 묻는 질문 가운 데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애를 몇 명이나 낳을 계획이십니까? 혹은 언 제 낳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요즈음 대부분의 그 커플들은 빨리 낳겠다 고 그러는 사람이 없어요. 3년 후에, 4년 후에 어떤 사람들은 5년 후에 낳겠다고 말합니다. 왜 그래요 하고 물어보면 좀 더 안정이 된 다음에 하는 것이 제일 대답이 많습니다. 그 때마다 제가 반드시 탈무드의 이 말을 인용합니다. 가족들은 부담이 아니예요. 자녀 하나 생긴다고 해서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를 보 면 얼마나 기쁨이 있습니까? 삶의 용기, 에너지, 영감, 힘을 얻고 살아 야 할 그 의지를 확인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오래 기다리 지 말고 닥치는 대로 나요. 빨리 나 요. 제가 이렇게 웃으면서 늘 권면 을 해 주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이 가족들의 존재,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됩니까? 가족 때문에 어려움도 있죠. 그러나 어려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축복, 훨씬 더 많은 사랑, 훨씬 더 많은 격려가 우리의 가정에서 나누어 지 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수콧 이라 는 것은 가족들의 shelter 사랑의 보금자리 그리고 안식의 피난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수코트를 만들어 놓고 이 수코트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고백 하고 축제를 벌이고 그리고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고통 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IMF시대 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가족마저 없었더라 면 우리의 홈이 없었더라면 나를 격 려해 주고 나와 함께 하는 내 남편 의 존재, 아내의 존재, 그리고 자녀 들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얼 마나 더 무력해지고 얼마나 우리는 더 낙심했었을까요? 이 시대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 다. 이게 첫번째 감사예요. 

    두 번째는 신앙의 공동체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수콧, 자기 가정을 위한 수코트를 만들지만 또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수코트를 방문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옛날에는 아주 광야 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거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천막, 수코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시나 고개, 회당 같은 데 방문을 해 갖고 또 시나고개에서 큰 천막을 만들기 도 하구요. 또 그렇지 못한 형편의 시나고개 회당에서는 회당 안에 들 어가서 종려나무 가지 혹은 감람나 무 혹은 버들가지들을 취해서 회당 안에다가 여러 가지 장식을 해 놓습 니다. 이것은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 들의 광야의 행진이 비단 나의 가족 의 행진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 이 함께 모여진, 더 큰 가족, 공동체 의 행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수코 트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수코트, 우리가 함께 머물 수 있는 커다란 공동체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께 더불어 광야길을 행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가족이 내게 위로가 된 것 못지않게 또한 주변에 같이 하나님을 고백하고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부 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 들어서 더불어 나눌 수 있었던 격려 와 위로 때문에 광야의 길을 우리가 걸어갈 수가 있었다. 이것을 회고하 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신약적인 시각, 신 약성서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바로 이 믿음의 공동체가 우리에게 있어 서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교회. 교 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서 사회를 향 해서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그 비판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 각하고 그리고 참 부끄러움을 동시 에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 랑하시는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이 땅에 단 하나의 교회마저 완 전히 사라져 버린 세상, 한번 상상 해 보세요. 교회가 부끄러운 요소도 많지만 교회가 줄 수 있었던 축복,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마다 드린 예 배에서 얻을 수 있었던 영감과 그리 고 삶에 대한 감동과 그리고 하나님 을 찬양하면서 내 속에 회복된 기쁨 과 평화와 안식의 체험들 또 교회 생활하면서 얻어진 수많은 행복한 메모리, 그 추억과 감동의 순간 순 간들, 성도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 면서 함께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따뜻한 교제 속에 누릴 수 있었던 그런 안식의 의미. 그런데 그 교회가 하나도 없 이 사라진다. 교회가 사라진 세상. 한번 상상해 보세요. 교회가 없이 내가 지금 인생을 산다. 상상이 되 십니까?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노 후에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겼 습니다. 나는 평소에 특별히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했다. 교회를 무시했 다. 그러나 내 조국 독일이 어두워 졌을 때, 그리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었을 때 내가 경멸하고 무시했던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 었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노후에 인생의 석양녘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 회로 다시 돌아온다.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가족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지만 그 못 지않게 또한 우리의 가족들이 모여 서 형성하고 있는 커다란 가족, 하 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교회. 교회를 주신 하나님 앞에 찬양과 감사를 드 리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감사가 있어요. 그것 은 영원한 소망에 대한 감삽니다. 초막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집을 떠나는 연습을 합니다. 요즈음 편리 한 시대가 되서 이스라엘에 가도 초 막절을 지킬 때 먼 광야나 사막까지 나가지 않고 자기 집 옆에다가 그냥 초막을 만들고 그렇게 편리하게 지 냅니다 만은 그러나 본래 옛날 초막 절을 지키던 방식은 들에 나갑니다. 빈 들에 나가요. 그 동안 한 주간동 안 나가서 야영camp를 하는 것입니 다. 집을 떠나는 것 이예요. 집을 떠 난다. 일시적이지만 집을 떠난다. 우 리의 정, 우리의 욕망, 우리의 안정 의 중심이었던 집을 잠시 떠나갈 때 그들은 집을 떠나는 연습을 excise 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느 한 순 간 우리는 집을 떠나는 날이 옵니 다. 내 영혼이 육체의 집도 떠나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 며 메모리를 축적해 왔던, 행복한 기억을 축적해 왔던 우리의 사랑하 는 식구들, 가족들을 잠시 떠나서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 께서 예비하신 집이 있다. 예비하신 집이 있다. 그렇습니다. 옛날 애굽 땅의 안일한 집들을 버리고 광야로 놓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광야에서도 집을 예 비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 가나 안 땅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구 한 집의 소망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 던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저 는 이 영원한 소망이야말로 천국의 소망의 그림자라고 믿습니다. 바울 은 고린도후서5장1절에서 이렇게 말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있는 이 장 막집이 무너지면 육체를 가리키는 것 이예요. 이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나니라 그 랬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저는 크리스 챤 가정의 행복은 이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그 행복은 뭐냐 하면 우 리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나갈 때 사 랑하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우리는 이렇게 인사할 수가 있습니다. 여보 내가 먼저 떠나서 미안해요.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그 영원 한 만남, 그 영원한 재회 그리고 영 원한 소망 그리고 영원한 처소에 대 한 소망.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 랑하는 제자들의 곁을 떠나면서 내 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그 처소 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로 하여금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 많은 고통을 당하고 많은 것을 잃어 버렸 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견고한 아니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 할 소망, 하 나님 나라의 소망 그리고 천국의 소 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 니다. 그렇다면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 절을 지킬 때 초막절 바로 직전에 또 지키는 절기 하나가 있어요. 7대 명절이 있습니다. 여섯 번째 명절이 뭐냐 하면 속죄절이예요. 속죄절. 속 죄절 다음에 초막절이 옵니다. 속죄 절은 고통의 절기예요. 초막절은 최 고로 기뻐하는 절기, 버들가지를 취 하고 종려나무 가지와 그리고 감람 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하나님의 그 인도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축제의 기쁨의 절기 노래의 절기라면 이 속 죄절은 고통의 절깁니다. 속죄절에 그들은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하 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제 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위 해서 드려지는 제물 피 흘린 제물.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들은 용서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확인 하면서 그 다음 절기 초막절로 나아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신약적으로 적용 하면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마치 구약시대 하나님이 애굽 땅을 이스 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떠나가게 하 시고 떠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유 월절이란 또 의식을 지나가게 하셨 죠. 어린 양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이 흘려진 어린 양의 피, 대신 제물이 되어서 죽은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그 백성을 보호하시 고 구원하시고 해방하셨습니다. 그 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나 갔습니다. 광야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었고 가나안의 소망을 갖고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적으 로 적용하면 무슨 의미예요? 십자가 가 있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 그 십자가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을 믿으십니까? 아니 이 십 자가 때문에 오늘 내가 하나님의 백 성이 되어 광야 같은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나는 오늘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합 니다.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죽음 저 건너편에 견고한 소망 그리고 영 원한 소망을 붙들고 있는 것을 인해 서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초막절이 있 기 전에 있었던 속죄의 절기, 그들 이 피 흘리는 제물을 주 앞에 바치 며 하나님 앞에 회개했던 절기, 그 절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축제 의 절기로 나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 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 인도를 받 을 수가 있다는 것, 어려움도 많지 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 기쁨과 소 망을 가지고 살 수가 있다는 것, 구 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다는 것. 이 감사의 중요한 원인은 하나 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된 주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 념하는 성찬을 이 마무리 시간에 갖 고자 합니다. 이제 조용히 기도하시 겠습니다. 기도하시면서 마음을 준 비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 생을 기념하는, 그의 몸을 기념하는 떡, 그의 흘리신 보혈을 기념하는 잔을 이제 받으실 마음의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용히 함께 기도 하시면서 오 하나님 이 떡을 받고 이 잔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함께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날 밤 사랑하는 제자들과 한 테이블 에 앉아 떡을 나누시면서 이것은 너 희를 위해서 내가 희생할 나의 몸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찢 기고 깨어진 그의 희생의 몸을 기념 하는 떡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은 이 주의 만찬 혹은 성찬의 자리 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종류 의 사람들에게 이 테이블에 나오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 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알 지 못하는 분들, 교회는 나와 있지 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정말 하나 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다 면 이 떡을 받는 것이 아무런 의미 가 없습니다. 그 분들은 이 떡을 사 양해 주십시오. 그냥 옆으로 패스해 주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여 러분도 속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 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주님이 나 를 위해 희생을 한 그 사실 때문에 새로운 삶이 나에게 가능할 수 있었 다는 것을 주 앞에 감사하게 되시기 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 도인 이지만 내 삶 속에 해결하지 못하는 죄, 포기하지 못하는 죄가 있다면 그 죄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교제가 단절되어 있다면 이 사람도 이 떡을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더러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 희생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 러므로 성경은 이 성찬에 나오는 사 람들에게 자신을 살피라고 말씀하십 니다. 깊은 통회 자신을 살피는 회 개 속에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하셨 다 죄를 포기하고 십자가의 피 흘리 심을 통해서 주께서 나를 용서하신 다는 확신을 갖고 감사와 감격과 결 심으로 이 떡과 이 잔을 받아 주시 기 바랍니다. 

    먼저 떡을 받으시겠습니다. 예수 께서 이 떡을 나누시면서 이렇게 말 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나의 몸이라 이것을 받을 때마다 나 를 기념하라 하나님 이제 이 떡을 받고자 합니다. 이 떡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 를 깊이 기억하며 감사와 감격과 결 단 속에 주님의 몸이신 그 몸을 기 념하는 이 떡을, 그의 깨어진 몸을 기념하는 떡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조 용한 기도 계속되는 기도 속에서 이 떡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으시고 옆의 사람에게 바로 패스하시고 준 비가 안 된 사람은 그냥 옆으로 패 스해 주시면 됩니다. 떡을 받으시고 바로 옆으로 이렇게 패스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드시기 바랍니다. 떡 을 받으신 분들은 기도하시면서 드 시기 바랍니다. 드시고 성찬기를 옆 의 사람에게 계속 패스해 주시기 바 랍니다. 맨 가장자리에 있는 분은 뒤 쪽으로, 자기가 떡을 드신 다음 에 자기 뒷편으로 패스해 주십시오. 이 십자가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그 의 죽으심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구 원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살아계 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아 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 음에 모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이 가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 리는 감사함으로 그리고 감격함으로 이 떡을 받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받을 때마다 나를, 십자가에서 희생 한 나를 기억하라 기념하라. 드십시 오. 떡을 받기를 원하는데 혹시 못 받으신 분 있으시면 손을 들어 표해 주십시오. 떡을 받기를 원하는데 못 받으신 분 있으면 손을 들어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 지시고 사례하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의 죄를 위해서 흘리는 나의 언 약의 피니라 이 잔을 받을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이제 떡을 받으셨다 면 떡을 받으신 분들은 잔을 받으시 기 바랍니다. 이 잔은 예수 그리스 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흘 리신 그의 보배로운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잔을 받으실 때 역시 똑같은 감사와 감격과 결단 속에서 이 잔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잔 을 드신 다음에 바로 그 자리에다가 드시고 원위치 시켜 주시기 바랍니 다. 기다리지 마시고 미리 기도하신 다음에 잔을 받는 즉시 드시고 그리 고 그 자리에다 잔을 원위치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기도하 시면서 잔을 받아 주십시오. 바로 드시고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들어 주시고 옆의 사람이 드시고 바로 그 잔 위에다 놓으시고 또 옆의 사람에 게 패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진노와 그의 저주를 피할 수가 없었던 나, 내 삶을 파괴하고 그리고 나로 하나님과 단절시켰던 죄, 그러나 주께서는 나의 죄를 짊 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고 성경은 말합 니다. 이 포도 잔의 붉은 포도, 이것 은 그리스도의 그 보배로운 붉은 피, 그 피가 흘려짐으로 여러분과 저는 우리 죄 대신하여 심판과 진노 를 대신 감당하신 그리스도의 은혜 를 힘입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 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 감사 합니다. 내가 주님 흘리신 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오 늘을 살아 갑니다. 감사함으로 이 잔을 받습니다. 
    바로 잔을 드시고 옆의 사람에게 패스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 사해야 할 많은 조건과 이유가 있지 만 가장 중요한 감사는 십자가에 대 한 감삽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 총에 대한 감사, 바로 예수 그리스 도의 희생에 대한 감사, 그가 나 위 해 대신 죽으심으로 그리고 그 분이 나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 셨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니 이 보다 더 한 감사의 조건과 이유가 어디 있을 까요! 주님 이제 제가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감사에 합당한 삶 을 주 앞에 드리기를 원합니다. 이 런 결심을 주 앞에 드리십시오. 떡 을 받으신 분으로서 잔을 받기를 원 하는데 못 받으신 분 혹시 계시면 손을 들어 표시해 주십시오. 떡을 들으신 분으로 잔을 받기를 원하는 데 못 들으신 분 손을 들어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찬 위원들도 다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 잔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아직도 자격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늘 우리 는 주 앞에 부끄러운 자요 그리고 주의 이름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 는 우리의 삶을 인해서 부끄러워 합 니다. 그래서 회개하며 다시 한번 주 앞에 나옵니다. 주님 그러나 은 혜로 저희들을 구원하셨듯 다시 한 번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 시고 우리로 이 잔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살도록 도우시옵소서. 흘리신 피, 그 피가 나를 속하셨사오니 오 늘도 그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 고 주 앞에 순전한 자로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여생 살아 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피의 권세로 어둠의 세력을 정복하고 삶의 고난 을 이기고 당당히 승리로운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옵소서. 감 사하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 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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