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를 옷입고 살자(골3:15-17)
  • 조회 수: 357, 2013.07.25 12:45:34
  • TV를 보면 건강세미나 프로그램이 많이 나옵니다. 거기에 나오는 건강에 대한 내용을 집합해 보면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살고 운동을 적당히 하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건강 세미나에 많이 나옵니다. 언젠가 제가 불교방송을 한번 보았는데 건강과 연관된 이야기를 불도와 연관하여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서도 강조하는 말은 먼저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마음을 편안히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육신의 건강문제도 좌우가 되며 사람의 행복이 마음가짐에 있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많이 가르치는 건강의 비법은 우리 마음의 기쁨이며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성경에 감사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단순히 마음을 편안히 가지며 마음이 기쁘다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마음이 기쁘고 편하다는 감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상당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편안해서 감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장 잘 말씀해주는 본문이 우리가 함께 읽었던 골로새서 3장 1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감사에 대하여 세 가지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첫번째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이에 대한 전제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를 주장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감사가 옷이라고 한다면 이 옷의 원료는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평강은 세속적인 기분이나 만족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한 그 상태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어떤 여성이 자신의 몸 때문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먹고 다이어트를 해보지만 아무리 해도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성은 우선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날씬해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얘, 너 참 힘들겠다. 옷이 그렇게 끼어 얼마나 불편하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친구를 만나면 인사가 다 이렇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이 여성이 마음을 바꾸어 이제 헐렁한 옷도 입고 먹을 것도 먹으면서 하는 다이어트로 방법을 바꾼 것입니다. 그랬더니 친구들의 인사가 바뀌어 "얘, 너 살이 빠진 것 같아. 옷이 헐렁하네." 사실은 살이 빠진 건 아니지만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인사를 들으니 기분이 참 좋더랍니다. 그래서 마음에 좋은 기분으로 살겠다고 생각하면서 헐렁한 옷을 마음대로 입고 지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이러한 내 마음에 기분이 좋다는 상태의 감사차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사는 먼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장하게 하라'는 말은 심판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를 심판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편안하다'는 개념과 '평강'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세 가지 큰 영적인 본질을 가지는 데 첫째는 바로 죄사함을 받은 자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사함을 입은 그 기쁨이 바로 평강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의 확신에 따른 기쁨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그 기쁨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기쁨의 근원이 되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적인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헌신할 때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메데 바사의 고레스왕이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 번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라의 역사서를 꺼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을 읽는 중에 그는 놀라운 대목을 발견합니다. 자기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기록을 보았던 것입니다. 왜 고레스왕은 잠이 오지 않았으며 번민했을까요? 그리고 왜 역사서를 읽었을까요?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레스왕은 그 역사서에 있는 기록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기로 하고 유대인들에게 해방을 주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한 고레스왕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이렇게 죄사함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 나라의 일하는 기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평강이 있는 감사, 그리고 나서 평강을 누리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수년 전 우리 교회의 어느 집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집사님은 지금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 분이 딸 입시를 앞두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딸이 합격만 되면 하나님께 과외수업하면서 드는 그 경비를 감사헌금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하며 기도를 했는데 불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 내외가 하나님 앞에 기도는 했지만 그 기도는 조건부 기도였습니다. 딸의 불합격으로 이제 그 기도는 무효가 되었고 조건부로 서원을 했지만 감사는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합격은 했지만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드리고 나니 하나님 앞에 그렇게 마음에 평강이 오더라는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평강이 있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풍성한 가운데서

        두 번째 감사의 조건이 나옵니다. 16절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앞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말씀을 전제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한 가운데서 감사하며. 말씀에 부합한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풍성히 거하여'라는 이 말씀은 편안하게 거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편안해야 됩니다. 즉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불편하면 안됩니다. 말씀이 풍성히 거한데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음악행사가 대단히 많습니다. 각종 쟝르의 음악회가 있는데 얼마 전에 상당히 흥미있는 음악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은 음악회가 규모나 시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거기 불려지는 노래가사를 읽어보니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 멜로디가 얼마나 잘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사는 제가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사를 보니 이게 복음송인지, 하나님의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또 가사를 연결해 보니 유감스럽지만 말이 안되고 그 의미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가사가 아니었습니다. 전부 인간적인 편에서의 감정 표현이고 인간의 결심의 노래이지 거기에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가사가 하나도 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찬양 중에도 이 점을 무시하고 함부로 부를 때가 많습니다. 가사의 의미를 새기지 않고 마구 노래만 부르기 때문에 그 가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성경구절에 곡을 붙인 가스펠송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선호합니다. 그 가사가 말씀 자체이기 때문에 마음에 와닿는 게 다릅니다. 그렇지만 가사가 그렇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편안해야 됩니다. 말씀이 편안히 거하는 데서 감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 번째 감사의 원료가 있습니다. 17절에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성도의 인감도장입니다. 예수님의 인감도장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성도가 갖고 있는 하나님의 인감도장입니다. 여러분, 인감도장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떤 직함을 가진 사람의 인감도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의 인감도장을 우리에게 주셨고 무슨 일을 하든 이것으로 쓰라는 것입니다. 감사도 그의 이름을 힘입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예수님의 인감도장을 너무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 하더라도 내 사욕으로 남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돈 많은 부인이 로마여행을 했는데 어느 상점에 가보니 아주 값진 포도주가 있었습니다. 구라파에서도 귀족이 아니면 못 먹는 그런 포도주였는데 이것을 사가려고 하니 세관에 걸릴 것 같아서 꾀를 내었습니다. 허름한 병으로 그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맑은 흰색 포도주를 담아서 생수인 것처럼 가장을 했습니다. 공항에서 세관원이 '부인, 이 병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 로마에 있는 성수인데 모두 사 가지고 와서 저도 한 병 샀습니다.' 이상해서 '이리 봅시다'하고 뚜껑을 열고 마셔보니 포도주였습니다. '부인, 이건 성수가 아니라 반입이 금지되어 있는 포도줍니다.' 그때 이 부인이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이 여기서도 일어났군요.' 이것은 세관에서 진품인 것으로 탄로가 났는데도 형형색색으로 변명하는 세상을 풍자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예수이름을 이런 데에 사용하면 안됩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인데 나는 별로 감사할 게 없는 반년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반년동안 원망할 일만 있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예수이름으로 감사할 일이 많은 줄 압니다. 매스컴에서 교통사고 소식이나 남부지방의 물난리를 많이 접하는데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게임을 하는 중간에 화산폭발을 해서 어느 지방은 대피를 하라, 지진이 있으니 대피하라는 긴급뉴스를 방송하곤 합니다.

        맺는 말

        추풍령 사고를 보고 외국인 교사 한 사람이 한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교통문화의 총체적 위기'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사고는 사고날 수밖에 없었던 총체적 위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사고는 분석해보면 인재입니다. 그러나 저 이웃 일본은 인재가 아니라 천재입니다. 대한민국에 인재와 천재가 겹치면 우리나라는 파산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이 위기에 놓일 것입니다. 그런데 기상 하나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이름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붙잡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가 더 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하나님이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80 admin 228 2013.07.27
179 admin 196 2013.07.27
178 admin 355 2013.07.25
177 admin 184 2013.07.25
176 admin 194 2013.07.25
175 admin 249 2013.07.25
admin 357 2013.07.25
173 admin 122 2013.07.25
172 admin 262 2013.07.25
171 admin 103 2013.07.25
태그